40화· 공주의 호위무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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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왕부의 장로회의는 시작되기도 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람들은 모두 머릿속으로 각자의 주판을 굴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시작하시죠·”
“오늘은 좋은 소식과 더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이번엔 진짜 좋은 소식 맞습니까?”
“어찌 그러십니까?”
“회의도 시작하기 전에 목석처럼 굳은 장로들의 얼굴을 보니 오늘도 대장궤께서 반어법을 쓰시나 해서 그렇습니다·”
“반어법이라뇨· 저는 언제나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다만 장로회의에서 항상 그걸 뒤집어 버렸지요· 좋은 일도 나쁜 일로· 나쁜 일은 더 나쁜 일로요·”
이종산과 손지백의 주고받는 일침에 오당 당주들이 ‘험험’ 헛기침을 하며 어색하게라도 표정을 풀었다·
“좋은 소식부터 가시죠·”
“첫 번째 안건은 월성교 구역의 주루와 기루들에 관한 것입니다· 금룡표국이 그동안 절반의 비용으로 추진하고 있던 계약들을 전부 무산시켰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화원을 빼앗긴 것이 큰 타격을 준 것 같습니다·”
“애초에 그렇게 공격적인 계약을 했던 것은 일단 영역을 넓힌 후 나중에 추수를 하겠다는 뜻이었는데 그때까지 버틸 자금원이 끊어졌으니 발을 뺄 수밖에요·”
곽석산이 통쾌하다는 듯 말했다·
총표두인 그는 일선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해서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면 거의 말을 안 했다·
대신 초반에 이렇게 한두 마디 추임새를 넣는 것으로 분위기를 돋우었다·
“덕분에 녹원루와 다른 주루의 루주들도 전부 마음을 돌렸다고 합니다· 마치 이리를 쫓았더니 집 나간 양떼들이 전부 돌아온 것 같습니다· 그려· 껄껄껄·”
자신들이 관리하는 구역에서 벌어진 일들을 말하고 있는데도 이갑룡과 을룡은 조용했다·
자신들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풀이 죽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생에서 지켜봐 아는데 저 인간들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
“강룡당주와 복룡당주는 루주들을 만나 보았는가?”
“예· 만나 보았습니다·”
“예· 만나 보았습니다·”
“방심하지 마라· 금룡표국이 아니어도 월성교 구역을 넘보는 표국이나 무림문파들은 차고도 넘친다· 이번 일에서도 보았겠지만 위기를 느꼈을 땐 이미 늦은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둘 다 씩씩하게 대답은 하는데 그걸 바라보는 이종산의 표정은 어쩐지 탐탁지 않았다·
그러다 슬그머니 나를 돌아본다· 마치 비교를 하듯·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믿음직스럽지 않다고 해도 이갑룡과 을룡은 그가 첫 번째와 두 번째로 본 자식이다·
젊은 이종산으로 하여금 아비의 지극한 기쁨과 감동을 알게 해준 존재들·
몇 번의 실수를 했다고 해서 자식을 아끼는 마음이 미움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안타깝고 안쓰러울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나는 겸손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물론 손해를 보면서까지 그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두 번째 안건은 이화원 보호에 관한 것입니다·”
이화원이라는 말에 장로들의 얼굴에는 묘한 감정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특히 이갑룡 을룡 병룡의 표정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치 지금부터 일어나게 될 격전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일단 현 상태는 오당에서 각출한 표두 세 명과 표사 스무 명이 파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일 뿐 속히 모든 걸 책임지고 전담할 당을 정해야 합니다·”
“그거라면 갑론을박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적룡당주 양자건이 첫 번째로 운을 뗐다·
“일전에 청룡당주께서도 언급했지만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십칠각주의 한마디였고 계약 역시 오롯이 그가 기지를 발휘해 따낸 것입니다· 하니 이화원을 맡아서 보호할 곳도 당연히 십칠각이어야겠지요·”
“십칠각엔 표사가 단 한 명도 없지 않습니까?”
이을룡이 뜻밖이라는 듯 물었다·
“십칠각이 다른 당이나 각에 지원을 요청하는 형식을 취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소이다· 큰 계약건이 있을 때는 지금까지 늘 그래왔고·”
“그거야 내가 전담을 하다가 인원이 부족하여 다른 당에서 보충을 할 때의 이야기지요· 지금의 상황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런 논리라면 십칠각주는 앞으로도 오로지 표사의 자격으로 다른 당과 각의 표행에 동참만 해야 할 뿐 그 어떤 일도 독단적으로 맡지 못할 것이오· 그렇다면 구태여 십칠각을 차지하고 있을 이유가 무엇이오?”
“저는 지금 짊어질 수 있는 크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염소 한 마리에게 양곡이 산더미처럼 실린 수레를 앞에서 끌라면서 정작 수레를 끌던 다섯 마리의 황소들에게는 뒤에서 밀라고 하는 격이 아닙니까? 수레가 제대로 굴러가겠습니까?”
“그 염소가 모두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수레를 우리 천룡표국 앞까지 끌고 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외다·”
“그러니 더욱 안될 말이지요· 진왕과 이화원을 보호하는 것은 천룡표국 전체의 일이지 결코 십칠각 한 곳의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십칠각 역시 천룡표국의 일부이고요·”
장로회의가 열리기도 전부터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열심히 주판을 굴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천룡표국이 다른 표국과 경쟁하는 것처럼 오당과 십육각 역시 천룡표국 내에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한다·
천룡표국에게 진왕과 이화원을 보호했다는 간판이 필요한 것처럼 오당에게도 진왕과 이화원이라는 간판은 그야말로 좀처럼 오지 않을 기회였다·
많은 주루와 기루 혹은 부유한 장원들이 천룡표국에 보호를 의뢰하지 않는다·
천룡표국 내 특정한 당을 지정해서 의뢰를 한다·
심지어 천룡표국 내 특정한 당 중에서도 특별히 어떤 표두와 어떤 표사로 해달라고 요구를 하는 의뢰인들도 많았다·
만약 천룡표국 내 특정 당이 항주 최고의 원림인 이화원에서 진왕과 일가족을 보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 효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이게 사실상 나 때문에 월성교의 주루들을 지킨 이을룡이 얼굴에 철판까지 깔고서 저리 필사적으로 항변하는 이유다·
한데 양진각은 왜 나를 옹호해 주는 걸까? 이을룡과는 또 왜 저렇게 각을 세우고·
양진각은 사실 나와 별로 교감이 없었다· 전생에서도 그는 이을룡의 사람이었다·
지금쯤이면 이미 반쯤 넘어간 상태일 텐데····
“하면 복룡당주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이번 계약을 따낸 일등공신이 십칠각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심에 황룡당이 있었음을 잊어선 안 됩니다· 표두들을 동원하여 황쏘떼와 싸운 것도 진왕과 만날 수 있도록 친분을 이용해 물꼬를 튼 것도 모두 황룡당주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 말은?”
“전 황룡당에게 이화원의 보호를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을룡은 스리슬쩍 나를 어디까지나 보조자에 불과한 일등공신으로 끌어 내리고 대신 황자충을 주동자로 격상시켰다·
아마 장로회의 전에 미리 황자충을 찾아가 열심히 회유했을 것이다·
내가 적극적으로 황룡당을 밀어줄 테니 복룡당과 함께 이화원으로 들어가자고·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황자충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도 진왕과 이화원이라는 간판이 욕심나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좀 실망인데·
“황룡당의 공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지· 진왕과의 친분을 봐도 그렇고 황룡당이 이화원을 보호하는 일에서 배제된다는 건 당연히 말이 안 되오· 다만 전면에는 십칠각이 서야 한다는 것이외다·”
다시 양진각이 말했다· 순간 나는 양진각이 왜 내 편에서 이야기하는지를 알아차렸다·
그의 말을 얼핏 들어보면 나를 옹호하는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그 반대였다·
처음엔 이을룡으로 하여금 반대할 명분을 계속 만들어 주고 지금은 나를 편 들어 주는 척하면서 오히려 황룡당이 전담 당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역설하고 있다·
왜냐하면 휘하에 표사를 수십 명씩 거느리지 않는 한 십칠각은 죽었다 깨어나도 진왕과 이화원이라는 큰 먹이를 삼킬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복룡당 황룡당 적룡당이 함께 나눠 먹기에는 충분히 컸다·
한데 이 와중에 이갑룡은 왜 조용할까?
진왕과 이화원이라는 간판은 그 역시 탐나지 않을 리가 없을 텐데·
이번 판에 끼어들지 않는 조건으로 월성교 구역의 주루 하나쯤 양보 받았나?
이병룡은 나처럼 발언권이 없어서 입도 벙긋 못하고 있었다·
대신 갑론을박이 오고 갈 때마다 침을 삼키고 혀로 입술을 핥아댔다·
끼어들고 싶어서 아주 죽겠는 모양이다·
그도 사람이고 용혈이고 모든 각들 중에서 가장 큰 칠각을 가졌는데 왜 판에 뛰어들고 싶지 않겠나·
이종산은 서두만 뗀 이후 조용히 대화를 지켜보았다·
장로회의에 대여섯 번 참석하면서 지켜본 결과 그가 침묵할 때는 두 가지 경우였다·
첫 번째 자식들이 경험 많은 노장로들과 논쟁을 하면서 무언가 한 뼘씩 더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두 번째 어처구니없는 대화들이 오고 가서 어디까지 가는지 한번 지켜나 보자 할 때·
아직은 그의 속마음을 모르겠다·
이제 남은 사람은 내가 가장 무섭게 생각하는 청룡당주였다·
무림맹 군사부 출신답게 머리가 비상한 그는 일단 전생에서는 확실하게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사안마다 나누자면 수없이 왔다 갔다 했다·
어떤 때는 이갑룡의 손을 들어주고 어떤 때는 이을룡을 가마에 태워주었으며 또 어떤 때는 형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이병룡을 구해주기도 했다·
유지평의 이런 솜씨를 잘 알기에 이갑룡 을룡 병룡은 아예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엄청난 공을 들였었다·
마치 제갈량을 얻으려는 유비처럼·
물론 나의 이런 판단들은 전부 전생에서 표사들이 하는 얘기를 듣거나 전립성과의 대화 중에 넘겨짚거나 표국이 돌아가는 분위기로 미루어 짐작한 것들이다·
그러니 내가 모르는 내밀한 관계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청룡당주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양진각이 유지평에게 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유지평을 향했다·
그의 논리가 무서운 줄은 모두가 알기에 관심이 집중됐다·
유지평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것보다 계약서는 다들 보셨습니까?”
“···?”
“···?”
“···?”
사람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유지평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선뜻 이해를 못했기 때문이다·
이을룡이 물었다·
“그거야 대장궤께서 가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걸 보았는지 묻는 것이오·”
“그게 왜 중요한 겁니까?”
“이화원으로 가서 남경상단주와 계약을 한 사람이 십칠각주이기 때문이오· 만약 내가 계약을 하러 갔다면 이화원을 전담하는 당으로 청룡당을 특별히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을 것이오· 당연히 여러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사람들의 표정이 살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즐기려는 듯 유지평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말했다·
“그런데 보는 과거마다 장원급제를 할 정도로 영민한 십칠각주가 그렇게 안 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남경상단주는 과연 그 청을 거절했을까요? 골치 아픈 금룡표국을 떼내고 무려 금전 백 냥이나 아끼게 해준 사람의 청인데?”
이갑룡 을룡 병룡 양진각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있던 황자충까지· 한꺼번에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손지백을 또 바라보았다·
“험험·”
손지백이 헛기침을 하더니 소맷자락에서 계약서를 주섬주섬 꺼내고는 특정한 구절을 찾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 씌어 있습니까?”
이을룡이 조급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청룡당주의 말이 맞네· 남경상단주가 천룡표국 내에서도 특별히 십칠각이 이화원을 전담해 보호해 줄 것을 조건으로 달았네·”
“남경상단주가 미치지 않고서야 왜····”
이을룡이 흥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가 자리가 자리인지라 서둘러 뒷말을 삼켰다·
이을룡의 이런 의구심은 사실 매우 합당한 것이었다·
제아무리 십칠각이 계약에 주도적 역할을 했어도 가진 힘이 없으니 남경상단주 입장에서는 함부로 진왕과 그 가족의 보호를 맡길 수가 없다·
이을룡이 지금까지 짠 모든 계획은 바로 이런 전제에서 출발했다·
장로회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바깥에서 물밑작업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공황상태에 빠져 버렸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힌 이을룡이 손지백에게 따지듯 물었다·
“한데 왜 이걸 안건에 올린 겁니까?”
“십칠각엔 표사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네·”
“하지만 계약서에는 전담 당으로 이미 십칠각을 정해 놓았지 않습니까?”
“진왕과 이화원을 보호하는 일은 천룡표국 전체의 일이지 결코 십칠각 한 곳의 일이 아닐세· 십칠각 역시 천룡표국의 일부분이고·”
이을룡이 양진각에게 내세웠던 논리를 손지백이 그대로 두 번이나 돌려주었다·
손지백의 말에서 무언가 희망을 읽은 이을룡이 재우쳐 물었다·
“계약서에 십칠각으로 정해져 있더라도 무시하겠다는 말씀입니까? 과거처럼 십칠각이 오당에 지원을 요청··· 하는 형식을 취하지 않고요?”
“그거야 내가 충분한 역량이 있어서 전담을 하다가 인원이 부족할 때 다른 당에서 보충을 하는 것이지· 지금 상황과는 전혀 다르네·”
이제는 아예 바뀌어서 양진각이 했던 말을 이을룡이 하고 그걸 다시 손지백이 이을룡이 했던 말로 반박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탕이었다·
이을룡은 뒤늦게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린 얼굴이었지만 손지백의 말이 결코 자신에게 불리한 것이 아닌지라 영문을 몰라 했다·
그를 늪에서 구해준 건 양진각이었다·
“그래서 대장궤께선 어찌 생각하신다는 겁니까?”
“이제부터 당신들이 그걸 의논하고 답을 내놓아야지· 그런 일 하라고 당주 자리에도 앉혀 주고 장로회의에까지 불렀는데·”
말 속에 은근한 꾸짖음이 있었다· 양진각은 대번에 합죽이가 되어 버렸다·
손지백이 유지평에게 물었다·
“청룡당주의 생각은 어떠신가?”
“이거야말로 당사자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계약서에 표사 한 명 거느리지 않은 자신의 각을 써넣었는지 말입니다·”
“하기사 그것도 그렇군·”
돌고 돌아서 모두의 시선이 결국 내게로 집중되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물었으면 서로 민망하지 않고 좋게 끝냈을 것을·
“십칠각주에게 발언권을 주겠네· 아무래도 자네가 이 일에 관해 설명을 해주어야겠군·”
“복룡당주의 말씀이 매우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계약을 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나 표사 한 명 없는 십칠각이 이화원을 전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랬다간 강호인들의 비웃음만 살 것입니다·”
“하면 다른 당에 양보를 하겠다는 뜻인가?”
“물론입니다·”
“어디에?”
“그거야 당연히 황룡당이지요· 이유는 앞서 두 분 당주님들께서 충분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굳이 중언부언 하지 않겠습니다·”
“십칠각에서 전담을 하되 황룡당에 지원요청을 하는 것이 아니고 아예 황룡당에 전부 넘기겠다?”
“그렇습니다·”
“한데 왜 계약서에는 십칠각을 특정해 썼을꼬?”
“주루나 장원과 보호 계약을 주재한 당과 각은 전체 보호비의 절반에 대한 권리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번 계약은 금전 이백 냥짜리이니 계약을 주재한 십칠각의 각주로서 그 절반인 백 냥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바입니다·”
“···!”
“···!”
“···!”
“여우가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푸하하!”
손지백은 한바탕 광소를 터뜨렸다· 이번엔 누가 따라 웃든 말든 상관 않고 제 성에 찰 때까지 실컷 웃어젖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웃음을 뚝 그치며 말했다·
“그거야 이화원 보호를 십칠각이 전담했을 때 이야기지· 재주는 황룡당에서 부리고 돈은 십칠각에서 챙겨가겠다고 하면 쓰나·”
본시 표행이든 장원 보호든 의뢰가 들어오고 표비를 받으면 6할은 표국에서 가져가고 나머지 4할은 그 일을 한 당이나 각이 가져가 살림을 꾸린다·
그러나 일의 순서가 바뀌어 당이나 각이 계약을 따오면 계약을 주재한 곳에서 5할 즉 무려 절반을 가질 수 있다·
이는 그 계약을 따온 당과 각이 일도 함께 처리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
지금까지는 계속 그래왔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돈을 십칠각에서 황룡당에 주겠다는 뜻입니다· 액수는 절반인 금전 오십 냥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요·”
“···!”
이게 내 진짜 목표다· 대외적인 영광은 황룡당이 가져가고 실리는 내가 챙기고·
참고로 금전 오십 냥이면 중급 표사 열 명을 일 년 동안 고용하거나 암말을 백 마리 정도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조건이 있습니다· 황룡당에서 절 이화원을 보호하는 일에 표사로 써 주는 겁니다· 액수는 황룡당의 신입표사와 똑같이 받겠습니다·”
손지백도 다른 사람들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화원을 보호하는 곳에서 당연히 돈도 전부 가져가는 거라고만 생각했다가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이다·
이갑룡 을룡 병룡의 얼굴이 그냥 죽상이었다·
황룡당이 이화원 보호를 맡게 된 것은 좋은 일이나 그 대가가 금전 오십 냥으로 떨어진다면 자신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금전 오십 냥은 십칠각 같은 작은 조직에게는 엄청났지만 황룡당 같은 큰 조직에게는 혼자 먹기에도 빠듯한 액수였다·
물론 진왕과 이화원 보호라는 간판이 지닌 매력은 여전히 엄청나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장로회의가 끝난 듯싶습니다만·”
유지평이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장로회의의 시작과 끝은 이종산이 결정한다·
모두의 시선이 이종산을 향했다· 그가 황자충에게 물었다·
“황룡당에서는 받을 것인가?”
황룡당으로서는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다·
오히려 자기들도 좀 끼워 달라며 귀찮게 구는 똥파리들을 치워버릴 명분도 내가 만들어 줬다·
만약 황룡당이 다른 두 당과 손을 잡았더라면 자신들이 챙길 수 있는 수익은 서른세 냥으로 떨어져 버렸을 것이다·
물론 나눠 먹으니 동원되는 표사의 숫자도 그만큼 줄기는 한다·
그러나 일거리가 없어서 문제지 표사야 항상 남아돈다· 혼자 먹을 수 있다면 혼자 먹는 것이 백번 낫다·
무엇보다 진왕과 이화원을 보호했다는 간판도 황룡당이 독차지하고·
나를 돌아보는 황자충의 얼굴에 온갖 복잡한 감정이 어린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무 생각 말고 받으시라는 뜻이다·
이윽고 황자충이 말했다·
“모두가 양보를 해주신다면 황룡당에서 맡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됐군· 이만 끝내지·”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서는 이종산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가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첫째와 둘째 자식이 헛발질 하는 건 안타깝지만 넷째 자식이 기지를 발휘하는 건 또 그것대로 즐겁고 기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