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집으로 돌아오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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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집이 최고야·”
나는 욕조에서 묵은 때를 밀며 여독을 풀었다·
역설적이게도 회시에서 장원급제를 하는 건 향시에서 장원급제를 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향시에서는 비록 시제를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만의 답문으로 승부를 보았다·
하지만 회시에서는 전생에서 장원급제하는 자의 답문을 가로챘다·
똑같은 답문이 두 개가 나오겠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최소한 한 시진 이상 빨리 냈을 테니까·
나중에 답문을 낸 진짜 장원급제자는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간주 되어 실격처리 될 것이다·
양심에 찔리지 않느냐고?
천만의 말씀· 그대로 두었다면 놈은 10년 후 항주부의 지부대인으로 발령이 나서 수탈과 악행을 일삼았을 것이다·
몇 가지를 꼽으라면 부유한 상인과 지주들을 온갖 죄명으로 잡아들인 후 거액 받고 풀어주기 수로 곳곳에 검문소를 백여 개나 증설한 후 통행세를 뜯어내기 등이 있겠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짓은 수하들의 젊고 아름다운 부인을 탐한 것이었다·
그는 공무를 핑계로 젊은 관리들을 먼 곳에 출장 보낸 후 혼자 남은 부인들을 위로한답시고 불러다 욕을 보이는 일이 허다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그를 대신해 올 지부대인이 얼마나 청렴하고 사명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따뜻한 물 좀 더 부을까요?”
장삼이 대나무 장대 양쪽에 물통을 걸어 낑낑대며 들고 와서는 말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이 금방 가마솥에서 퍼온 모양이다·
저 녀석이 종놈답지 않게 말투는 좀 싹퉁머리 없어도 나를 걱정하고 챙기는 건 형님들보다 백배 낫다·
“좋지·”
촤아악!
촤아악!
“엇 뜨거라!”
“휴우 더 필요한 거 없으십니까?”
“됐다· 너도 좀 쉬어라·”
“공자님 안 계실 때 푹 쉬었습니다· 북경에 가셨으면 북경분타에 들러 전서구라도 좀 날려주시지· 소인이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십니까?”
장삼이 들고 온 물통을 뒤집어 놓더니 거기에 척 앉고는 육포를 꺼내 질겅질겅 씹었다·
본격적으로 얘기를 듣고 싶은 모양이다· 뜨거운 물은 그 값이고·
“닷새를 꼬박 밤잠을 설쳐가며 달려가 회시를 봤다· 회시가 끝나자마자 제일 가까운 여곽에 들어가 쓰러져 잤고· 깨어나 보니 이틀이 지났더만·”
“그럼 그때라도 가서 전해 주시죠·”
“북경 가봤어?”
“아뇨·”
“안 가봤으면 말을 하지 마· 북경이 얼마나 넓은 줄 알아? 내가 묵은 여곽에서 천룡표국 분타까지 한나절을 꼬박 걸어야 해· 체력도 바닥난 상태에서 그 짓을 어떻게 해·”
“하면 어떻게 그리 빨리 오셨습니까?”
“뭐가?”
“항주에서 북경까지 가면 족히 20일은 걸리는 길을 거의 닷새 만에 돌아오셔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거야 표마차를 끌고 느릿느릿 걸어갈 때 얘기고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삼십 리마다 한 번씩 쌩쌩한 말로 갈아타고 달리면 닷새도 안 걸려· 덕분에 말타기 연습은 사타구니가 헐을 정도로 아주 실컷 했다· 한번 볼래?”
“괜찮습니다·”
“이제 어디 가서도 말은 좀 탄다고 말할 수 있게 됐어· 막상 해보니 별거 아니더라고·”
“말은 다 어디서 나셨어요?”
“여기 있잖아·”
나는 그때까지 등을 박박 미는데 사용하고 있던 동패를 내밀었다·
손바닥만 한 동패엔 연호(年號)와 함께 달리는 말 한 마리가 양각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바람에 오돌토돌 한 것이 오래 묵은 때를 미는데 그만이었다·
“이게 뭡니까?”
“마패(馬牌)라는 물건이야·”
“어디서 나셨는데요?”
“장원급제를 했더니 주더라고· 원래는 두루마리로 만드는데 이건 뭐랄까 좀 특별한 거야·”
“그럼 혹시 이걸 가지고?”
“맞아· 경향대운하를 따라 내려오면서 역참이 나타날 때마다 들러 보여줬어· 그랬더니 알아서 말을 척척 내주더라고· 마패가 그렇게 요긴한 물건인 줄 처음 알았다·”
“아직 정식으로 관원이 된 것도 아닌데 벌써 마패까지 내주었다고요?”
“그게 좀 복잡해·”
나는 북경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으리으리한 장원에는 백발의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척 보는 순간 엄청난 신분의 관원임을 직감했다·
“인사 올리거라· 이부시랑(吏部侍郎) 금불위 어른이시다·”
이부는 관리의 임용과 인사를 담당하는 최고기관이고 이부시랑은 그곳의 수장인 이부상서(吏部尙書)를 보좌하는 벼슬이다·
정 3품으로 품계도 높지만 그 직책의 특성상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갑자기 왜 나를 부른 걸까?
“유생 이정룡 인사 올립니다·”
“네가 이종산의 아들이더냐?”
순간 머리끝이 쭈뼛 섰다·
항주의 지부대인 조차도 천룡표국의 국주 앞에서는 눈치를 본다·
그런 이종산을 이름 석 자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놀라지 말거라· 오랫동안 보지 못했으나 난 네 아비와 제법 막역한 사이니라· 네가 지금 이 자리에서 나와 독대를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고·”
천룡표국의 이씨 가문이 선조 때부터 황궁과 관부에 인맥을 만들어 두고 대물림해오고 있다는 말은 들었다·
소문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자 나도 모르게 전율이 일었다·
“호부 밑에 견자 없다더니 안 본 사이에 이종산이 아들을 이렇게 든든한 소룡으로 길러냈을 줄은 몰랐는걸·”
“과찬이십니다·”
“아들을 이용해 황실과 관부의 권세까지 손에 넣으려 할 줄은 더더욱 몰랐고 말이야·”
“···!”
말 속에 가시가 있다· 그냥 가시가 아니다·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가시다·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너는 당분간 벼슬길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
“과거 급제는 너희의 노력으로 하는 것이나 벼슬은 너희의 노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필요에 따라 나누는 것이지·”
“···!”
“지난 10년 동안 부유한 강남삼성 출신의 유생들이 회시의 상위권을 싹쓸이 해왔다· 그 일로 타성 출신 관료와 유생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
“해서 당분간 강남삼성 출신의 유생들은 아무리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를 해도 큰 벼슬을 주지 않기로 합의를 보았다· 장원급제를 한 너는 특별히 상징성이 크다·”
나는 이 노인이 말하는 ‘우리’와 ‘합의를 보았다·’ 속에 숨겨진 엄청난 의미들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노인은 강남삼성 출신의 관리들이 모인 거대 당파에 속해 있다·
그리고 잔뜩 불만을 토로한 다른 당파와 물밑 조율을 한 끝에 영광은 가지되 실리는 챙기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황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세 가지면 그 아래서 권력을 잡은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일곱 가지라고 하더니 이 정도일 줄이야·
나는 어차피 벼슬길에 관심이 없었다·
사실 섣부른 욕심으로 장원급제까지 해버리는 바람에 어떻게 일상으로 돌아가나 크게 고민 하던 중이었다·
한데 이렇게 알아서 쫓아 보내 준다고 하니 오히려 고마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기왕 물러날 거면 뭐라도 조금 챙겨 볼까?’
아니다· 아서자 사적인 영달을 위해 나라의 제도를 이만큼 이용했으면 됐다·
무리해서 챙겨봐야 어차피 나라 곳간에서 나올 것들 더이상 욕심을 낸다면 나 역시 부패한 관리와 다를 게 없다·
무엇보다 특히 이 노인 너무 무섭다·
“알겠습니다·”
“···!”
내가 너무나 명쾌하게 수긍해 버리자 노인은 살짝 당황한 모양이었다·
나를 이곳까지 끌고 온 젊은 관리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내 말을 전부 알아들었더냐?”
“항주의 천룡표국이란 곳에도 사람이 있음을 증명한 것으로 되었습니다· 소생은 고향으로 내려가 조용히 가업을 이으며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지금 너에게 그동안 유생으로서 한 모든 고생이 전부 헛수고였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데도 아무렇지 않단 말이더냐?”
“일은 사람이 도모하나 성사 여부는 하늘에 달려 있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안 되는 일을 억지로 되게 하면 반드시 탈이 날 것입니다· 소생도 소생의 아비도 그것은 원치 않습니다·”
괜히 고집을 부려 당신과 당신이 속한 당파를 곤란케 하지 않겠다·
그랬다간 화를 살 수 있다는 것 또한 안다· 하니 안심하시라···· 뭐 이런 뜻이다·
노회한 관리답게 그는 바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
“허허· 이 친구 보게·”
“다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말해 보라·”
“소생의 집안은 대대로 무림세가였던지라 문과에 급제한 관원들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하여 항주에 계신 소생의 아비는 자식을 북경으로 보내놓고 말석이라도 좋으니 급제만 하여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계시지요·”
일단 아버지가 나로 하여금 과거시험을 보게 한 것은 순전히 자랑용이다·
결코 당신이 우려하는 것처럼 다른 목적이 있지 않다···· 는 말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소생의 아비는 특히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지부대인이 직접 황제폐하의 교지를 대독해 주는 걸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가장 빠른 파발로 항주부에 소생의 장원급제 소식을 알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면 나머지는 그곳의 지부대인께서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면 내게는 무엇이 좋으냐?”
이 뻔뻔한 노인네를 좀 보소· 멀쩡하게 장원급제한 사람을 빈손으로 내려보내려 하면서 이 정도 청에도 조건을 단다고?
“소생이 장원급제를 하고도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는 걸 아시면 아비의 낙담이 이만저만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어르신께서 어려운 가운데도 이리 체면을 세워 주신 걸 아시면 분명 감읍해 하실 것입니다·”
막역한 사이가 그냥 만들어졌을 리 없다·
천룡표국에선 필시 이 노인네와 그의 가문에 막대한 뇌물을 바쳤을 것이다·
나는 지금 계속해서 막역한 사이로 남으려면 당신도 최소한의 밥값은 해야 한다는 나름 경고의 말을 하고 있었다·
“음하하하!”
시종일관 협박조의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던 노인이 갑자기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젊은 관리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었다·
한참을 웃던 노인이 웃음을 뚝 그치며 말했다·
“정말 아깝구나· 거두었으면 천군만마가 부럽지 않을 재목으로 길러낼 수도 있었을 것을 내 손으로 낙향시키고 배가 아파서 어찌 잠들꼬·”
노인은 그러더니 갑자기 상체를 내 쪽으로 쓱 숙였다·
칠순을 넘겼을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나를 노려보는 눈동자에 정광이 가득하다·
“정녕 후회하지 않겠느냐?”
“소생은····”
“잠깐· 내 말을 먼저 듣거라· 생각이 바뀌었다· 만약 네가 고집을 피운다면 못 이기는 척 하고 일을 한번 꾸며 볼 수도 있느니라·”
“···!”
“일은 사람이 도모하나 성사여부는 하늘에 달려 있다고 했느냐? 내가 바로 그 하늘의 구름을 움직이는 사람이다·”
등에서 식은땀이 나고 똥구멍이 간질간질하다·
세상에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이 나나니벌과 노회한 관리라고 하더니· 실제로 겪어보니 딱 그렇다·
이 노인이 지닌 힘의 크기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나로서는 측량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속으면 안 된다· 여기서 나까지 손바닥을 뒤집으면 지금까지 한 말들이 전부 위선이 되어 버린다·
“저희처럼 표국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오래된 격언이 하나 있습니다· ‘십 리를 갈 때는 비바람에 대비하고 백 리를 갈 때는 춥고 더운 날씨에 대비하고 천 리를 갈 때는 생사에 대비하라·’는 말이지요·”
“···?”
“외람되오나 오늘 소생이 어르신을 뵙고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크게 눈을 떴습니다·”
“···?”
“벼슬길은 본시 천 리길이온데 소생이 어리석어 고작 백 리길만 각오하고 왔습니다· 하여 더 늦기 전에 아비의 그늘로 돌아갈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이것 보라지· 이러니 내가 놓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나· 향시와 회시에서 연달아 장원을 했다기에 예사롭지 않은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비범할 줄이야····”
예? 뭐라고요?
아 이 노인이 진짜 왜 이러실까·
노인은 앉은 자세까지 바꿔가며 한참이나 입맛을 다셨다·
그러다 마침내 결심한 듯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어찌 아무렇지도 않겠느냐· 너무 실망하지 말거라· 달은 차고 기울기를 반복하는 법· 내 오늘 너의 모습을 반드시 기억해 두었다가 언젠가 때가 무르익으면 부를 것이니라·”
부르지 마십시오· 안 불러도 됩니다· 저는 표국으로 돌아가 원래 목표대로 표사일에 전념할 것입니다· 제발요·
“그때까지는 한직에 만족해라·”
“한직··· 이라고요?”
“회시에 장원급제까지 한 유생을 백의서생으로 만들 수야 있겠느냐· 무과에 급제한 것은 아니지만 너의 집안이 본래 대단한 무림세가이니 금의위에 한 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금의위라고요?”
“너에게 금의위(錦衣衛) 암행위사라는 직책과 함께 금전 백 냥 그리고 땅 오만 평을 하사할 것이다· 암행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너의 신분은 철저히 숨겨야 하느니라· 너의 아비에게도 말이다·”
나는 하마터면 앉은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를 뻔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해도 된다면 저 노인의 입도 걷어차 버리고 싶었다·
“소생이 어떻게 금의위 위사같은 중책을 맡아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제발 거두어 주십시오·”
“누가 널더러 자리를 맡으랬지· 일을 하랬더냐?”
“예?”
“자리만 맡아 두거라· 자리만· 하면 언젠가 그 자리가 너를 육부의 요직으로 이끌어 줄 동아줄이 될 것이다·”
“···!”
“그때까지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너를 숨기거라· 그래서 최대한 눈에 띄지도 않고 사철 바깥으로 나돌아도 이상하지 않은 암행위사 자리를 주는 것이다·”
“정말 아무 일도 안 해도 됩니까?”
“일을 하려면 할 수는 있고?”
듣고 보니 그렇다· 금의위도 위사도 말로만 들었지 그들이 무슨 일들을 어떻게 하는지 내가 알 턱이 없다·
“저 그런데 암행위사가 무엇입니까?”
“서류로만 존재하는 직책이다· 암행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아· 하여 나와 몇 사람 외에는 아무도 너의 존재를 모를 것이니라·”
“구태여 그런 직책을 내리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냥 초야에 묻혀 있어도 되는 것을요·”
“그래야 나중에 누가 너를 발견하더라도 데려다 쓰지 못할 것이 아니더냐· 너는 반드시 내가 쓸 것이니라· 명심하거라· 만약 나를 배신한다면 너와 너의 집안에 큰 화가 닥칠 것이니라·”
마지막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흡사 눈에서 불이라도 쏟아져 나와 내 눈을 지져대는 것 같았다·
권력의 세계는 광활하고 온갖 상상도 못 할 일들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내가 몸담을 곳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빼면 목숨이 위험해진다·
일단 주는 거니까 먹고 나중에 핑계를 만들어 보자·
하다못해 죽을병에 걸렸다고 할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저 노인이 먼저 죽을 수도 있는 거고·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 크게 착각하는 한 가지가 있다·
자신의 나이는 생각지 않고 손에 쥔 권력이 언제까지나 영원할 거라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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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공자님 말씀은 늙은 관리들이 도통 죽지를 않아서 벼슬자리가 오랫동안 적체되었고 그 바람에 벼슬길에 오르는 건 당분간 물 건너갔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그래서 급제자와 그 가문들을 달래기 위해 이렇게 마패와 상금과 땅을 하사해 주는 것이고요· 관리가 된 기분이라도 느껴보라고요·”
“그렇다니까·”
“사람 팔자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아침에는 쟁자수들에게 무시 당하고 오후에는 국수 사 먹을 돈이 없어서 쩔쩔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해·”
“말씀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립니다· 벌써부터 저를 대하는 쟁자수들의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어제는 글쎄 제게 돈을 빼앗던 쟁자수 놈이 지나가다 인사를 하더라니까요·”
“그나저나 아버지께서 한 번쯤 슬슬 부르실 때가 됐는데·”
“갑자기 국주님은 왜요?”
“부르시면 가서 전표랑 땅을 되찾아 와야지·”
“그건 지부대인께서 나라의 동량지재를 길러낸 것을 치하하여 국주님과 가문에게 내린다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말이야· 분명 나한테 주신다고 했는데 왜 갑자기 중간에 몇 글자가 바뀌어 버렸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그때였다· 인기척과 함께 표왕부 소속의 어린 시녀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그리고 욕조 속에 들어 있는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더냐?”
“국주님께서 모시고 오라셨습니다·”
나와 장삼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