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 죽은 자들의 땅(6) >
나는 담담하게 야율극리의 주검을 수습했다·
얼굴과 목 주변에 묻은 피를 닦고 부러진 팔다리를 맞추었으며 가슴을 뚫고 나온 갈비뼈도 조심스럽게 집어넣어 주었다·
다음에는 향을 피우고 이 거대한 무덤의 주인들이자 야율극리의 사조들인 석관 속 고인들을 향해 조용히 축원을 올렸다·
“여기 또 한 명의 외로운 영혼이 있습니다· 부디 그가 길을 잃지 않고 당신들의 곁으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소소하게 의식을 치르고 난 후에는 저만치 나가떨어져 있는 청동화로를 다시 가져와 장작들을 넣고 불을 지폈다·
그때부턴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모두 무사하려나?’
지금쯤이면 용마를 타고 황토고원의 협곡으로 달려간 연소교가 장초풍과 사마옥에게 내가 처한 상황을 알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두 사람이라고 해도 강력한 기문진이 작동 중인 천마대총의 권역으로 들어올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나는 살아서 이곳을 나갈 테니까·
문제는 밖으로 나간 후의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아니었으나 어차피 할 수밖에 없는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바로 내게 동화되고 각인된 천부교활교경과 선천사법술과 선천오법술을 본격적으로 익히는 것이었다·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지·’
나는 야율극리가 그랬던 것처럼 제단 아래의 돌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운기행공 대신 상단전에 정신을 집중하며 삼매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정수리의 백회열이 활짝 열리며 어디선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파도 소리 같기도 한 그것은 태고로부터 이어져 온 우주의 소리였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식음까지 전폐해가며 수련에 매진했다·
사실 먹을 게 없었다·
먹은 게 없으니 무언가를 쌀 일도 없었고 종일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게다가 뱃속이 비니 놀라울 정도로 정신집중이 잘 되었다·
나는 점점 새로운 시대의 천마교주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윽고 칠 일째 되는 날 새벽이었다·
마지막 장작 두 개를 양쪽 청동화로에 나누어 넣은 후 막 수련을 시작했을 때였다·
‘왔다!’
누군가가 나와 함께 천마대총 안에 있다는 게 느껴졌다·
예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기감이었다·
심지어 그가 나타난 정확한 위치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눈을 번쩍 뜬 후 제단 뒤쪽 삼십여 개의 석관들 중 가운데 있는 하나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잠시 후 드르륵 소리와 함께 석관의 뚜껑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얼굴 하나가 불쑥 솟아 올라왔다·
“···!”
“···!”
칠순 가량의 나이에 고집스러운 인상을 지닌 노인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굳었다·
이어 제단 위에 누워 있는 야율극리를 발견하고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노인은 나와 야율극리를 번갈아 보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작은 음성이었지만 내공이 실려 있었기에 공동 전체가 나직하게 진동했다·
노인은 다시 한번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더니 이윽고 결심을 한 듯 관 밖으로 나왔다·
그런 다음 관속에서 밧줄에 묶인 무언가를 열심히 끄집어냈다·
예상했던 대로 장작더미와 횃불을 밝힐 기름 항아리 등이었다·
전대교주들의 석관 사이에 가짜 석관이 하나 섞여 있고 그곳으로 들어가면 바깥과 연결된 비밀통로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천마대총의 치밀한 안배로 미루어 단순히 출입구를 안다고 해서 아무나 들락거릴 수 있는 구조는 아닐 것이다·
짐을 모두 끌어 올린 노인은 다시 석관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와 내 앞에 섰다·
노인의 눈빛이 또 한 번 야율극리에게로 향했다·
“제단 위에 누운 사람은 전대 교주이셨던 적룡마제 동방신행의 칠제자 야율극리입니다· 그리고 저는····”
“풍운비룡 이정룡 대협이시지요·”
“저를 아십니까?”
“폭풍우가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별이 뜨는 곳을 알 수 있는 법· 아무래도 선대의 인연이 귀하에게 이어진 모양이군요·”
그러더니 노인은 갑자기 바닥에 엎드리며 나를 향해 대례를 올렸다·
이어 아직 고개를 들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말했다·
“설산수총가(雪山守域家)의 삼십이 대손 여검학 풍운비룡 대종사를 생전에 뵙고 인사 올리게 되어 실로 영광입니다·”
“어찌하여 인연이 제게 이어졌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저의 집안사람들이 설산수총가라는 가명(家名)을 하사받고 대대로 묘귀가 될 수 있었던 건 보통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걸 보기 때문입니다· 바로 천부교활교경을 익힌 이의 눈동자에 맺히는 신광(神光)이지요·”
이 사람들 영매다· 죽은 이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말을 전하고 인간의 염원을 대신 빌어 준다는 사람들·
“만약 야율극리가 살아 있었다면 어떻게 됩니까?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도 천부교활교경을 익혔습니다·”
“대종사는 단 한 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종사가 아닌 사람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천마대총으로 들어 올 수 없습니다·”
둘 중의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쳐야만 묘귀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던 야율극리의 말이 맞았다·
“하면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도움이라뇨· 받잡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대종사께서 명령을 내리시면 속하는 목숨으로 받들겠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것도요?”
“노신이 모시겠습니다·”
묘귀라는 사람이 나타나면 어떻게 설득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한데 이렇게 간단히 해결되어버릴 줄이야·
“그 전에 한가지 확실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있었던 귀하와 저의 만남은 비밀로 해주십시오· 특히 저의 신분에 대해서·”
“어느 쪽의 신분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새로운 천마교주가 알고 보니 표사 이정룡이라는 걸 말하는 건지 아니면 표사 이정룡이 알고 보니 새로운 천마교주가 되었다는 걸 말 하는지 묻는 것이다·
“둘 다입니다·”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꽁꽁 얼어붙은 채로 제단 위에 누워 있는 야율극리를 보았다·
그가 공언한 대로 지금쯤이면 일만 천마성교도들과 일만 무림맹도들이 산기슭에 모여 전면전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사람은 새롭게 천마교주가 된 아율극리밖에 없다·
나는 지금부터 야율극리가 되어야 한다·
이러려고 그런 건 아니지만 다행히 지난 시절 표행을 하던 중 남궁소소에게서 틈나는 대로 역용술을 배워 두었다·
물론 현재의 내 솜씨는 그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럴 때 옆에 있으면 얼마나 든든했을까·’
곁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를 돕고 있었다·
언젠가 그녀와 함께 항주 시내를 돌아다니던 중 나누였던 대화를 떠올렸다·
[역용술의 최고봉은 목표로 하는 누군가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신하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 그가 죽었고 시체가 아직 부패하지 않았으며 도의를 따지지 않는다면 의외로 간단하게 성공할 수도 있어요·]
[어떻게 말이오?]
[우선은 상대와 옷을 바꿔 입어야겠죠· 그런 다음엔 얼굴 가죽을 벗겨 인피면구를 만드는 거예요· 목에서부터 시작해 머리끝까지 일체의 절개선 없이 한 번에· 죽은 지 오래되지 않은 시체들일수록 생동감 있는 표현이 가능해요·]
[생각만해도 끔찍하군·]
[그냥 그런 방법도 있다고요·]
[그런 얘길랑 그만하고 돼지껍데기에 탁주나 마시러 갑시다·]
[돼지껍데기는 튀김보다 볶음이죠·]
나는 아율극리와 싸울 때 썼던 흑요석 칼을 꺼내 손에 꼭 쥐었다·
“약속을 지키려면 부득불 불경을 저질러야 할 것 같습니다· 훗날 저승에서 만나 값을 치르기로 하지요·”
***
바깥의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천마대총의 권역을 벗어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산기슭을 개미떼처럼 뒤덮은 채 맹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한 번도 본 적 없는 대병력에 놀라고 그들의 생사를 건 전투가 뿜어내는 기세와 전운에 또 한 번 놀랐다·
얼핏 보아도 천여 명은 족히 될법한 사람들이 쓰러져 나뒹굴고 있었다·
어떤 자들은 동료들을 향해 살려 달라고 아우성쳤고 어떤 자들은 피가 철철 뿜어져 나오는 상처를 붙잡고 어떻게든 지혈부터 하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자들은 잘린 뱃가죽 사이로 흘러내리는 자신의 창자를 보며 죽음을 예감한 듯 조용히 흐느꼈다·
그러다 누군가가 지나가면서 휘두른 칼에 목이 뚝 떨어지기도 했다·
황토고원을 면한 수만 평의 산기슭은 말 그대로 인세에 구현해 낸 지옥이었다·
나는 안력을 돋우어 전장을 열심히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훑어갔다·
잠시 후 적진 깊숙한 곳으로 뛰어들어 분노의 검초를 쏟아내고 있는 남궁소소를 발견했다·
‘무사했구나!’
그녀의 옆에는 남궁세옥이 세가의 무사들과 함께 변화무쌍한 검진을 펼쳐가며 천마성교도들을 추풍낙엽처럼 베어 넘기고 있었다·
일단 남궁소소를 찾고 나자 다른 사람들은 저절로 눈에 들어왔다·
워낙 고수들인 탓에 그들이 싸우는 곳은 기세 자체가 주변과는 확연히 달랐다·
장초풍을 비롯한 무림맹의 최고수 백여 명과 편복은왕을 비롯한 천마성교의 최고수 백여 명은 전장의 한복판에서 서로 맹렬하게 격돌하고 있었다·
흡사 쉴 새 없이 천둥벼락이 내리치는 폭풍을 보는 것 같았다·
현재로선 거의 동수 저들은 각 진영의 명운을 걸고 그야말로 백척간두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치는 중이었다·
그중에는 천룡표국주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표왕부의 호위무사들을 끌고 온 이종산과 나의 사부인 북해투왕 혁방세도 있었다·
연소교도 보였다·
놀랍게도 그녀는 무림맹 쪽의 진영에서 한편이 되어 천마성교도들과 싸우고 있었다·
죽은 삼뇌와 함께 나를 잡으러 왔던 때를 생각하면 그리고 그녀의 출신을 생각하면 너무나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른 무림맹의 고수들과는 달랐다·
천마성교도들과 싸우되 함부로 죽이거나 베어 넘기는 법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천마성교도가 무림맹의 고수와 싸우다 죽을 위기에 처하면 오히려 무림맹의 고수를 공격해 어린 교도를 구출해 내기도 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아니다· 그게 아니었다·
한쪽의 편을 들기는 오히려 쉽다·
연소교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오히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현실이라는 괴물을 상대로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서둘러야 해!’
뒤쪽으로 이십여 장 높이의 비탈에 박혀있는 거대한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집채만 했다·
거기다 오랜 세월 황토고원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깎일 대로 깎여 둥그스름하기까지 했다·
‘저거다!’
나는 재빨리 경공을 펼쳐 바위의 뒤쪽으로 올라갔다·
이어 양 손바닥을 바위에 척 붙이고 두 발을 땅바닥에 단단히 고정했다·
그런 다음 삼백 년의 공력을 한 줌의 남김도 없이 전부 끌어 올렸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온몸의 핏줄이 툭툭 불거지는 게 느껴졌다·
드드드드····
거대한 바위의 뿌리가 조금씩 뽑히기 시작했다·
양손을 번갈아 떼고 옮겨가며 계속해서 밀어 올리자 점점 흙 묻은 아래쪽이 보였다·
한데 내가 상상했던 상황이 아니었다·
‘엇!’
알고 보니 바위는 밖으로 드러난 부분만 둥글었을 뿐 땅속에 묻혀있던 부분은 이빨의 뿌리처럼 뾰족했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근육이 터져나가도록 힘을 썼다·
“으아아아!”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바위는 비탈의 아래쪽으로 점점 기울어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쿵!’ 소리와 함께 마침내 완전히 넘어갔다·
그때부턴 손 쓸 일이 없었다·
옆으로 길게 누운 바위는 굉음과 함께 천지를 뒤흔들며 가파른 비탈을 빠르게 굴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쿵! 쿠르르 쿵! 쿵!
굵은 나무들이 풀처럼 쓰러지고 작은 바위들이 정이라도 맞은 것처럼 땅속에 박혔다·
그렇게 이십여 장을 굴러가자 천마성교들과 무림맹도들이 싸우는 전장을 코앞에 두게 되었다·
그때쯤엔 가속도까지 붙어서 바위의 기세가 어지간한 성벽 따위는 그대로 깔아뭉개고 지나갈 정도였다·
“바위다!”
“피해라!”
대경실색한 사람들이 사방팔방에서 목구멍이 찢어지도록 고함을 질러댔다·
그중에는 일갑자는 족히 될 것 같은 고수들도 많아서 귀청이 쩡쩡 울릴 정도의 사자후를 내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고함을 지르든 집채만한 바위가 굴러가면서 나는 대지의 비명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쿵!
우지끈!
꾸구구궁!
설상가상으로 바위가 완벽하게 둥글지 않다 보니 굴러가는 방향을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향해 죽일 듯이 칼을 휘두르던 사람들은 바위를 피해 좌우로 도망치고 흩어지기 바빴다·
그 모습이 흡사 우리 속에서 범을 만난 양떼들 같았다·
바위는 비탈진 산기슭이 끝나고 황토고원의 평지로 접어들고서도 무려 이십여 장을 더 구른 다음에야 비로소 멈췄다·
전체 굴러간 거리는 백여 장에 달했으며 정마대전이 벌어지고 있던 전장의 한복판을 그대로 가로질렀다·
바위가 굴러간 곳을 따라 작은 계곡을 연상케 하는 길이 생겨났다·
그 길을 기준으로 왼쪽 천마성교도들의 진영과 오른쪽 무림맹도들의 진영이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하지만 피차 적진 깊숙이 침투해 격전을 벌이던 돌격대 혹은 타격대의 고수들도 적지 않아서 여전히 적아가 뒤섞여 있는 곳도 많았다·
한편 갑작스럽게 천재지변을 만난 이만여 명의 무인들은 바위가 굴러온 비탈 쪽으로 일제히 시선을 꽂았다·
그곳엔 야율극리의 옷을 입고 그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쓴 내가 바람에 옷자락을 휘날리며 오연하게 서 있었다·
허리춤에는 야율극리가 생전에 애병으로 쓰던 두 자루 적동곤도 야무지게 꽂혀 있었다·
“칠성군께서 나오셨다!”
“칠성군께서 출관하셨다!”
“칠성군께서 성보를 얻으셨다!”
일만 천마성교도들의 환호성에 산천초목이 부르르 떨었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바위를 뽑아 굴린 내게서 그들은 승전을 예감한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전장의 복판에 있던 편복은왕이 돌연 장검을 바닥에 거꾸로 척 꽂더니 나를 향해 한쪽 무릎을 털썩 꿇었다·
이어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외쳤다·
“대종사를 뵙습니다!”
편복은왕은 야율극리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약속한 극초절정의 고수였다·
그가 무릎을 꿇었는데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야 누가 감히 서서 나를 맞이하겠나·
뒤이어 혈영노조와 명부삼귀 등을 비롯해 일만 천마성교도들 전부가 병기를 꽂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대종사를 뵙습니다!”
이제 전장엔 두 종류의 사람들만 존재했다·
나를 향해 무릎을 꿇은 자들과 꿇지 않은 자들· 물론 무릎을 꿇은 일만여 명 중 상당수는 흑도와 사파의 인물들일 것이다·
한편 장초풍과 구대문파 장문인들을 주축으로 한 무림맹도들은 모두가 날벼락을 맞은 듯한 얼굴이었다·
특히 이종산과 남궁소소와 연소교는 충격으로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중에서도 또 특히 남궁소소는 온몸이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야율극리가 살아서 나왔다는 건 곧 표사 이정룡이 천마대총 안에서 죽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남궁소소의 얼굴에서 천천히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산기슭에 모인 이만 여의 무림인들을 쓰윽 쓸어 보았다·
이어 하늘이 떵떵 울리는 창룡후를 쏟아냈다·
“지금부터 본좌의 허락 없이 병장기를 휘두르는 자는 정마를 막론하고 그 즉시 목숨이 떨어질 것이니 모두 명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