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 죽은 자들의 땅(2) >
눈 덮인 산봉우리를 타고 오른 지 한 식경 시야를 가리고 얼굴을 할퀴는 눈보라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보라가 아니었다·
고지대에서 부는 삭풍이 사방에 쌓인 만년설을 들추고 때리면서 일어나는 일종의 눈폭풍이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진작에 얼어 죽었을 상황에서도 앞서가는 야율극리는 멀쩡했다·
심지어 나는 무릎까지 푹푹 꺼지는 눈밭을 그는 고작 손가락 한 마디 깊이 정도의 흔적만 남기며 유유히 걸었다·
‘답설무흔이라니· 미친·’
눈밭 위를 달려도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는 경공술의 최고 경지를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야율극리는 발자국이 남으니 답설유흔이라고 해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지금 딱 필요한 만큼의 내공만 써서 눈밭을 걷고 있을 뿐이었다·
한데 그 못지않은 내공을 몸속에 지닌 나는 왜 이렇게 푹푹 빠지는가·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고 무조건 싸움을 잘하는 게 아닌 것처럼 내공이 무공의 전부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뭘 알고 가시는 겁니까?”
슬쩍 말을 한 번 걸어보지만 그는 뒤를 돌아보기는 커녕 대꾸도 하지 않고 눈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혹여라도 지옥불이 솟구칠까 얼른 속도를 내어 따라붙었다·
한참을 걷자 눈 덮인 산봉우리에 웬 깎아지른 바위골짜기 지대가 나타났다·
경사가 워낙 급하다 보니 눈조차 쌓이지 못한 절벽들이 희끗희끗 보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후우우웅!
갑자기 황소도 날려 보낼 것 같은 강풍이 휘몰아치면서 발밑의 땅이 뚝 끊어졌다·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천 길 낭떠러지였다·
그 한 가운데에는 십여 장 밖 안개에 휩싸인 허공으로 이어지는 운교(雲橋) 즉 가느다란 구름다리가 놓여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두 가닥의 굵은 쇠사슬에 통나무를 횡으로 엮은 구름다리는 도대체 언제 만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녹이 슨 데다 강풍에 쩔렁쩔렁 흔들리기까지 했다·
“마침내 도착했군·”
야율극리가 구름다리 너머의 안개를 노려보며 말했다·
“과연 범부들은 접근조차 못 할 험산절봉이로군요·”
“지난 수백 년간 수많은 무림고수들이 황금과 신공절학에 눈이 멀어 천마대총으로 들어가려 했지· 하지만 단 한 명도 첫 번째 관문을 넘지 못했다·”
“전대의 교주님들을 제외하면 우리가 최초이겠군요·”
“최초이자 마지막이 되겠지·”
말과 함께 야율극리는 출렁거리는 구름다리 위로 거침없이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는 허깨비라도 된 듯 구름다리와 하나가 되어 가볍게 미끄러져 갔다·
나는 좀 달랐다·
줄타기하는 마희단의 광대처럼 양팔을 좌우로 쭉 뻗은 채 열심히 중심을 잡으며 걸어갔다·
중간쯤 이르자 내 몸무게가 가해지면서 구름다리의 출렁거림이 극에 달했다·
중심을 잡느라 아예 어깨와 허리와 두 다리가 따로 놀 지경에 이르렀다·
야율극리만큼은 아니지만 나 또한 많은 방면에서 절정급의 경지를 밟은 고수였다·
몇 번 위험한 고비를 맞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나아갔다·
마침내 구름다리를 모두 건넜을 때는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던 또 다른 바위골짜기 지대가 나타났다·
무슨 조화인지 강풍과 눈보라도 뚝 그쳤다·
아무래도 이쪽 편의 암봉 전체가 기상조차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기문진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설봉을 오르기 시작한 후부터 지금까지 겪은 눈보라가 사실은 기문진을 통과하면서 만난 환상이었던지·
‘망할 놈의 마교 같으니라고!’
날카롭게 갈라지고 솟은 바위들 사이로 십수 장을 더 걸어갔을 때였다·
이번에는 누가 봐도 동굴 형태를 띤 입구와 함께 그것을 막은 커다란 석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바위 문엔 용사비등한 필체로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살아서 이곳으로 들어오는 자 반드시 목숨을 내놓아야만 한다· 귀하는 위대한 선대의 사령(死靈)들을 배알할 준비가 되었는가?]
한 번 들어오면 죽어서 귀신이 되어야만 비로소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들어와서 선대 귀신들을 만나볼테냐라는 뜻이고·
다른 일반인들의 무덤 앞에서 저런 글귀를 봤어도 모골이 송연했을 것이다·
하물며 이곳은 무려 천마대총이 아닌가·
덜컥 겁이 나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석문의 경고에 담긴 의미를 모를 리 없는 야율극리가 문장의 아래에다 손가락으로 무언가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슨 조화인지 그의 손가락이 지나가는 자국을 따라 한순간 푸르스름한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근의내명(滿依來命)]
공식적인 문서의 말미에 써넣는 것으로 삼가 말씀을 받들겠다는 뜻의 상투적인 표현이었다·
그때였다·
꾸드드드등!
굉음과 함께 커다란 석문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석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예상했던대로 시커먼 동굴이 입을 쩍 벌리며 나타났다·
야율극리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야율극리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달빛에 의지해 채 대여섯 걸음도 옮기기 전이었다·
꽝!
방금 통과한 석문이 그대로 떨어지며 굳게 닫혀 버렸다·
그 기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지축이 다 흔들릴 지경이었다·
석문이 닫히면서 동굴 안은 한순간 칠흑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벽을 따라 꽂혀 있는 수십 개의 홰에 사르륵 불이 붙었다·
횃불은 동굴 속 더 깊은 곳으로 달려가며 계속해서 저절로 밝혀졌다·
그러자 동굴의 형태며 크기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가는 방법은 확실히 아시는 거지요?”
“너와는 상관 없는 일일 터인데·”
“너무 노골적이신 거 아닙니까?”
“혹시라도 살려줄 거라고 생각했더냐?”
“어차피 죽이실 거라면 제가 구태여 선천오법술을 구술해 줄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동이 터 오르면 너는 내 손에 선천오법술의 구결이 적힌 종이를 쥐여 주든가 아니면 발끝에서 부터 심장에 이르기까지 살점을 한 토막씩 잘려야 한다·”
‘마구니답게 살벌하군·’
“그러니 동이 터 오르기 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나를 죽일 수 있다면 죽여라· 그게 내가 선천오법술의 구결을 대가로 너에게 치르는 값이다·”
‘원래 그럴 생각이었소·’
“그리고 하나 더· 구결에 장난질을 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천룡표국이 쑥대밭으로 변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속으로나마 따박따박 대꾸를 하던 나는 마지막 말에 이르러 그만 합죽이가 되었다·
온몸에 털이 곤두서며 소름이 쫙 끼쳤다·
저자의 무공과 야망을 알기에 더더욱 생생한 공포가 전해졌다·
“왜 대답이 없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대하겠다·”
야율극리는 횃불이 밝히는 길을 따라 동굴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저 인간은 천성적으로 두려움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를 따라 대여섯 장 정도를 걸었을 때였다·
이번엔 동굴 한복판에 황소도 통째로 삶아 올려놓을 법한 너럭바위가 나타났다·
놀랍게도 바위 한가운데 해검지(解劍地)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이 보였다·
바위 위에는 갖가지 모양과 크기를 가진 병장기들이 뿌옇게 먼지가 쌓인 채 놓여 있었다·
이곳을 찾은 전대 천마교주들의 병장기들인 듯했다·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을 걸 보면 대부분의 교주들이 제자에게 애병을 넘겨주었고 이곳까지 가져온 이들은 얼마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몇 개 안 되는 이것들이야말로 무림인에게는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무려 천마교주들이 마지막까지 사용하던 병기니 얼마나 무시무시한 공능을 가졌겠나·
그나저나 무당파의 입구에 있다는 해검지를 천마대총에서도 볼 줄이야·
아마도 성스러운 장소로 들어섰으니 마땅히 예를 갖추라는 뜻일 게다·
야율극리는 허리춤에 꽂아둔 두 자루 적동곤을 비롯해 품속의 단도까지 꺼내 바위 위에다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에는 가만히 나를 돌아보았다·
“저도요?”
“쓸데없이 시간 끌지 마라·”
“전 교도도 아닙니다만·”
“두 번 말하게 하지도 마라!”
할 수 없이 등에 메고 있던 월인소야검을 검갑째 풀어 적동곤의 반대쪽에다 놓아두었다·
“됐습니까?”
“암기와 단도도 내려놓아라·”
단도는 무림인들이라면 장병기의 패용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한 자루씩은 가슴에 품고 다닌다·
암기는 전날 진왕과 삼천 군병이 지켜보는 앞에서 싸울 때 나한테 당한 적이 있었고·
나는 보옥이 박힌 운철단검과 소맷자락 속에 숨겨둔 비격쌍뇌창까지 죄다 꺼내 올려다 놓았다·
“귀한 물건이 많이 나오는군·”
“부잣집 자식이니까요·”
야율극리는 그제야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너럭 바위를 지나쳤다·
그의 뒤를 따라 고작 세 걸음을 더 걸었을 때였다·
갑자기 무언가 강력한 힘이 나를 통째 오른쪽 석벽으로 끌어당겼다·
대경실색한 나는 오른발로 땅을 힘차게 찍으며 버텼다·
동시에 몸을 반대쪽으로 재빨리 틀며 비스듬히 눕혔다·
순간 품속 곳곳에 숨겨져 있던 부싯쇠와 손도끼와 쇠꼬챙이 한쌍이 옷자락을 뚫거나 비집고 나와 왼쪽 석벽으로 날아갔다·
황급히 손을 뻗어 보지만 간발의 차이로 모두 놓쳐 버렸다·
땅! 따다당!
날붙이들은 벽에 부딪히는 그대로 찰싹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쇳소리가 울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석벽 전체가 강력한 자성을 띤 모양이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것들은 무기가 아니라 표사들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다니는 도구들입니다· 쇠꼬챙이처럼 생긴 건 젓가락이고요·”
야율극리는 조소를 흘리며 지켜볼 뿐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그런가 하면 숨겨둔 날붙이들을 전부 빼앗고도 나를 끌어당기는 힘은 전혀 줄어들지를 않았다·
옷 속에 입고 있는 용린신갑 때문이었다·
낑낑대며 버티는 나를 보며 그제야 야율극리가 한마디 했다·
“계속 그러고 있을 테냐?”
“아닙니다·”
나는 버티던 힘을 풀어버리고 자성에 척척척 끌려갔다·
이어 오른쪽 석벽에 등을 철썩 붙인 다음 상의를 벗고 용린신갑도 벗었다·
마지막으로 석벽과 용린신갑 사이에 눌러붙은 상의를 빼내 다시 입었다·
그 순간 야율극리가 두 눈을 부릅떴다·
“용린신갑!”
“이거야말로 무기가 아닌데·”
“그걸 왜 네놈이 착용하고 있는 거지?”
“어느 동굴 속에서 노마두가 주화입마로 죽었는데 그때 그가 입고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그대로 세상에서 사라질 뻔했지요·”
“그게 어떤 물건인 줄은 아느냐?”
“천마성교의 오랜 보물이라고 하더군요· 교주의 백수(白壽)를 축하하기 위해 교의 장인들이 대설산에서만 나는 설강금을 구해다 일 년 동안 두들겨 만들었다고·”
“그런데도 입고 다녔다고?”
“어차피 주인도 없는 물건이니까요·”
나는 오른쪽 발끝을 살짝 돌려놓으며 두 주먹을 천천히 말아 쥐었다·
대노하여 일장을 출수할 줄 알았던 야율극리는 잠시 나를 뚫어지게 보더니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나를 죽인 후 용린신갑을 차지하려는 것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전대 교주의 보물을 손에 넣게 생겼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겠나·
그래서인지 자질구레한 무기들을 숨긴 것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해검지를 지나 계속해서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둘 다 적수공권이군·’
나에게는 너무나 불리한 상황이었다·
특히 비격쌍뇌창을 통한 기습의 기회와 용린신갑을 통한 방어력을 상실한 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손실이었다·
반면 야율극리는 적동곤이 있으나 없으나 압도적으로 강했다·
이미 맨손으로 싸워서 고작 십여 초식 만에 그에게 패한 적도 있었고·
‘쉴때 돌멩이로 뒤통수라도 찍어야 하나·’
동굴은 갈수록 점점 넓어지고 횃불의 개수도 많아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이르러 갑자기 거대한 공동이 나타났다·
공동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두 개의 커다란 청동향로와 함께 향을 피우고 음식들을 올려놓을 수 있는 제단도 보였다·
마침내 천마대총의 심장부에 도착한 것이다·
“다 왔군·”
“명성에 비해 너무 소박하군요· 아니 초라하다고 해야 하나? 남만의 칠마총 중 한 곳을 털었을 때는····”
“···?”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털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때 저는 천살마녀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삼뇌군사에게 번갈아 가며 인질로 잡혀 갔었습니다·”
“하지만 황금이며 보물들은 모조리 네가 쓸어갔다고 들었다· 그때 챙긴 보물이 금 수백만 냥의 가치가 있을 거라더군·”
“삼뇌군사를 포함해 기관진식에 갇혀 죽을 뻔한 천마성교도 수백 명을 안전한 장소까지 데려다주는 대가로 받은 표비였습니다· 지금은 일만마병을 키우는 씨앗이 된 귀하의 충성스러운 교도들 말입니다·”
“겁먹을 필요 없다· 밖으로 나가도 그걸 되찾을 생각은 없으니·”
“아무튼 그때 보았던 마총에 비하면 모든 것이 너무나 초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금과 은으로 만든 식기며 각종 법구들도 보이지 않고요· 천마성교도 내세를 믿는다고 들었는데····”
“많이 아쉬운 모양이군·”
“세상 모든 일은 다 돈으로 굴러가는 법이죠· 무림세가도 돈으로 운영하고 전쟁도 돈으로 하는 것이고요· 교를 재건하려면 엄청난 재물이 필요하실 겁니다·”
“재물을 탐하는 건 나약한 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힘이 있으면 세상의 모든 재물이 다 내 발아래로 모이고 쌓이는 법이지·”
“방법이 다를 뿐 같은 말 아닙니까?”
“강자가 지존이 되고 약자가 종이 되는 건 우주의 섭리다· 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도 그 때문이고·”
“그건 제가 스스로 하는 일입니다만·”
“하지 않을 도리는 있더냐?”
“그건 없지요·”
“가소로운지고·”
“···!”
자신을 황제에 비유하다니·
살아서 이곳을 나간다면 사고를 쳐도 아주 크게 칠 인간이었다·
그런가 하면 단의 위쪽에는 무려 삼십여 개의 석관이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마교 분파의 시대가 끝나고 이 땅에 천마성교가 탄생한 지 불과 이백 년도 되질 않았다·
전대의 천마교주들은 대체로 칠팔십 세 이르러서야 비로소 다음 교주에게 자리를 물려 주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대략 삼십 년 정도가 한 세대였던 셈이다·
이백여 년 동안의 교주들 무덤치고는 석관의 숫자가 너무나 많았다·
이런저런 사고를 감안하더라도 저 정도라면 최소한 칠팔백 년의 역사는 되어야 한다·
‘설마!’
어디까지 가설이지만 이곳은 강호에 알려진 것과 달리 천마대총이 아닐 수도 있었다·
만약 마교분파의 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초거대세력 즉 천하대광명종때부터 이어져 온 대종사들의 무덤이라면?
그러다 후신인 천마성교가 마교를 일통하면서 스스로는 대종사라 칭했으나 강호인들은 교주라고 불렀던 천마교주들의 무덤이 되었다면?
그때였다·
저벅저벅 하는 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야율극리가 횃불을 든 채 제단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먼저 양쪽에 있는 청동화로에 불을 옮겨 붙이는 한편 향통에 가득 쌓인 향을 집어다 향로에서 사르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이마가 땅바닥에 닿도록 계속해서 절을 올렸다·
마침내 절을 모두 마쳤을 때는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외쳤다·
“천하대광명종의 마지막 제자 야율극리가 여러 사조님들께 고하옵니다· 수십 년 전 교맥이 끊어진 이후 불철주야 팔교의 성보를 찾아 헤매다 마침내 작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적들과의 전투 중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부득불 율법을 깨고 대총으로 들어 사조님들의 영면을 방해하였습니다· 이에 동틀 무렵 생포한 적병의 육신을 제물로 바쳐 용서를 구하고자 하오니 부디 제자가 성보의 신령한 무학들을 익힌 후 무사히 대총을 나갈 수 있도록 굽어 살펴주십시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그러니까 살아서 이곳으로 들어오는 자 반드시 목숨을 내놓고 가야 한다는 석문의 경고에 따라 나를 제물로 바칠 테니 자신은 살아서 나가게 해달라는 건가?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나를 죽이는 것과 연계한 어떤 추가적인 방법이 있는 것 같았다·
이는 곧 저자를 죽여서 그 방법을 쓰면 내가 살아서 나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