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 황하를 건너다(6) >
천마와 천하십대고수들의 생사대전에 얽힌 비사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특히 천하십대고수 여섯이 협공을 하고도 다섯이나 쓰러졌다는 말에 정도무림인들은 경동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 모인 정도무림인들 중 백여 명 정도는 쉰 살 이상의 노강호이자 일파를 대표하는 무림 명숙들이었다·
그들이 과연 수십 년 전 일왕봉에서 펼쳐졌다는 천마와 천하십대고수와의 생사대전을 몰랐을까?
어느 날 갑자기 천하십대고수들 중 정도무림 쪽 다섯 명의 신변에도 큰 문제가 생겼는데?
천만의 말씀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놀라고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건 뼛속까지 새겨진 천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적개심이 있었다·
지난 정마대전 당시 수천에 달하는 정도무림인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들었다·
그들 중에는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노강호들의 사부나 사형제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건 아율극리가 이끄는 일백의 마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마교주가 되고자 하는 건 일부 수뇌부의 얘기일 뿐 나머지는 모두 마신을 섬기는 광신도들이었다·
그들은 정마대전에서 죽은 형제들의 원혼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성보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심산유곡에서 튀어나온 것도 모두 그 때문이고·
그런 배경 속에서 장초풍이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통성명은 이쯤하면 된 것 같으니 본론을 말하리다· 황하를 건넌 칠천교도들에게 사흘 내로 해산을 명하고 귀하들 역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 조용히 남은 생을 보내시오· 하면 아무 일 없을 것이오·”
“목숨을 잃는 것이 두려웠다면 다들 심산유곡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황하를 건너 진군해 오고 있는 병력은 이미 구천을 넘겼습니다· 이곳에 도착할 때쯤엔 일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단순히 신분을 숨긴 채 숨어 살던 마교도들이 가세하는 것만으로는 이렇게 빠른 속도로 불어날 수 없다·
앞서 유성표국의 표사에게 들은 것처럼 흑도와 사파인들이 대거 가세하는 모양이었다·
천마성교를 중심으로 한 거병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자 그동안 무림맹의 추살대에게 쫓기거나 핍박 받던 자들이 ‘이때다’ 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 정도무림의 일만 병력과 비슷한 숫자였다·
애초 전쟁을 막기 위해 시작한 표행이었는데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무림맹의 정예고수 삼백이 이십여 장 높이의 절벽 위에서 뇌성궁으로 귀하들 한 명 한 명의 심장을 겨누고 있소· 아무리 정예의 고수라고 해도 초전(初筋)이 발사되는 그 즉시 일 할은 족히 쓰러질 것이오·”
뇌성궁은 무림맹의 타격대들이 쓰는 특수한 활을 말한다·
뇌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활을 쏘면 흡사 천둥을 연상케 하는 소리가 작렬하기 때문이었다·
활과 화살의 크기며 굵기가 예사롭지 않더라니 무림맹의 그 유명한 뇌성궁이었나 보다·
그걸 각파의 최고수들까지 가세해 잡았으니 협곡 안에 갇힌 마교도들이 빠져나갈 길은 요원해 보였다·
한편 뇌성궁의 무서움을 잘 아는 흑풍사의 마적들과 마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절벽 위쪽에 있는 정도무림의 고수들을 노려보았다·
화살을 쏘기 전에 먼저 발시의 징후를 살펴 최대한 민첩하게 대응하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아율극리는 유유자적하게 말했다·
“옛 성현께서 말씀하시길 전장으로 나아갈 때는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를 먼저 살피라고 했지요· 지금은 천시와 지리 모두 저희에게 불리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양쪽이 대치하는 사이 이미 해는 서산 너머로 사라지고 황토고원 전체에 어둠이 짙게 깔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협곡 안은 폭이 이십여 장으로 상당히 넓었지만 절벽의 그늘로 말미암아 다른 곳보다도 더 어두웠다·
게다가 야율극리가 말을 하는 사이 그나마 은은한 빛을 뿜어내던 달마저 짙은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제아무리 일갑자 이상의 고수들이라고 해도 빛이 한 줌도 없는 상황에선 이십 장 아래의 어둠 속을 뚫어 볼 재간이 없었다·
애초 고지를 차지하면서 무림맹 쪽에 유리했던 상황은 잠깐 사이에 모두 천마성교 쪽으로 유리하게 바뀌었다·
“천시지리인화(天時地利人和)라· 하늘의 때와 땅의 이로움은 사람의 화합만 못 한 법!”
조용히 장초풍의 곁을 지키고 있던 사마옥의 입에서 묵직한 일갈이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절벽 위쪽이 환해지는가 싶더니 백여 발의 불화살이 비처럼 쏘아졌다·
뻐버버버버벙!
천둥 소리 같은 파공성과 함께 화살은 협곡의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간 다음 맞은편 절벽에 가지런히 꽂혔다·
놀랄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맞바람에 의해 살대 전체로 옮겨붙은 불은 꺼지지 않고 그대로 커다란 횃불이 되었다·
보통의 불화살과 달리 살대 전체에 역청을 두껍게 발라 둔 모양이었다·
덕분에 잠깐 칠흑처럼 어두워졌던 협곡 안은 처음보다 오히려 더 밝아졌다·
흑풍사의 마적 이백과 마군 일백은 또다시 무림맹 정예들이 당기고 있는 뇌성궁의 사정권에 들어오게 되었다·
“화합의 정수는 전쟁이지요·”
야율극리의 즉각적인 대답이었다·
선전포고 같은 내용과 달리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여유로웠다·
그 순간 절벽 위쪽으로부터 뇌성궁을 당기고 있던 무림맹 소속의 고수 하나가 픽 고꾸라지더니 이십여 장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쿵!
뇌성궁을 쥔 채 마교 쪽 진영에 머리부터 떨어진 그의 주변으로 뿌연 먼지가 솟구쳤다·
그리고는 꿈쩍을 하지 않았다·
즉사였다·
밑에서 협곡 위를 향해 활을 쏘지도 않았고 그가 암기를 맞은 징후도 없었다·
가만히 있다가 혼자 뚝 떨어진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아를 막론할 것 없이 모두 크게 당황해했다·
한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절벽 위 가장자리에 나란히 서서 뇌성궁을 당기고 있던 무림맹 쪽 고수들이 계속해서 뚝뚝 떨어졌다·
쿵! 쿵! 쿵! 쿵!
머리부터 떨어지는 자 어깨부터 떨어지는 자 허리부터 떨어지는 자 등부터 떨어지는 자· 어느 쪽으로 어떻게 떨어지든 모두 즉사였다·
멀쩡하게 있다가 갑자기 스르륵 넘어가는 것도 그렇고 낙하하는 순간 경신공을 일절 펼치지 않는 것도 그렇고 흡사 단체로 미쳐서 자살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십여 명이 그렇게 죽었다·
‘이게 무슨!’
절벽 아래에 있던 무림맹 수뇌부는 대경실색한 나머지 모두가 두 눈을 부릅떴다·
마교 놈들이 무슨 사술을 부린 것 같은데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나 역시도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 순간 절벽 위에 남아 있던 노강호들로부터 연이은 일갈이 터져 나왔다·
“섭혼미령안(攝魂述靈眼)이다!”
“노마두들과 눈을 마주치지 마라!”
“묵혼귀갑대와 용봉지회는 뒤로 빠져라!”
절벽 위의 무림맹 쪽 고수들은 각자가 목표로 했던 자들의 심장을 겨누고 마군들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 위를 올려다보니 자연스레 눈이 마주친 모양이었다·
초집중한 상태에서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건 섭혼술에 빠져들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그리고 협곡 안이 잠깐 어두워졌다가 불화살들로 말미암아 다시 밝아지는 순간 무언가 촉발이 일어난 것 같았다·
게다가 저들은 마군이라 불릴 정도의 노마두들이었다·
반면에 절벽 아래로 떨어진 이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타격대와 별동대의 대원들이었다·
장초풍이 더 늦기 전에 공격 명령을 내렸다·
“활을 쏴라!”
섭혼술에 빠진 사람도 정신이 번쩍 들게 할 정도의 대갈일성이었다·
그와 동시에 절벽 위로부터 뇌성궁이 일제히 터졌다·
뻐버버버버버벙!
굉음과 함께 시커먼 강전들이 협곡 안으로 소나기처럼 퍼부어졌다·
시위 터지는 소리에 이어 화살 쳐내는 소리와 박히는 소리와 비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울렸다·
“크헉!”
“꺼헉!”
“커헉!”
왁자지껄한 소란과 달리 강전은 노강호들이 쏜 백여 발 정도밖에 발사되지 못했다·
그러나 미처 피하거나 쳐내지 못하고 쓰러진 건 장초풍이 호언장담한 대로 무려 삼십여 명에 이르렀다·
한데 대부분 흑풍사의 마적들이었다·
그들은 모두가 말을 타고 있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위치가 높았다·
반면 야율극리가 이끌고 온 일백의 마군들은 화살을 도검으로 쳐내거나 마상의 마적들을 방패처럼 활용하며 피했다·
“협곡을 장악하라!”
야율극리의 입에서 우렁우렁한 일갈이 터진 것도 동시였다·
절벽 위의 병력이 다시 화살을 재는 그 짧은 틈을 타 일백 마군들이 우리 쪽 진영을 향해 성난 파도처럼 질주해왔다·
잠깐 사이 동료를 삼십이나 잃은 흑풍사의 마적들이 뒤를 이었다·
“와아아아!”
앞쪽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신형을 쏘아 오는 일백 마군들도 압도적이었지만 초승달 같은 만곡도를 바깥으로 크게 뻗고 말을 달려 오는 백칠십여 마적들의 기세 또한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에 대한 우리 쪽 진영의 대응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명령은 장초풍이 아니라 이번에도 사마옥에게서 터져 나왔다·
“모두 이십 장 밖으로 물러나시오!”
마주 달려가 도륙을 해도 모자랄 판에 뒤로 물러나라고?
당황한 나와는 달리 노강호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번개처럼 신형을 뒤로 뺐다·
천하의 장초풍과 남궁유룡과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이 도망치는데 내가 무슨 배짱으로 자리를 지키겠나·
얼떨결에 땅을 박차고 튀어 오르며 이십여 장을 쏜살처럼 물러났다·
야율극리가 이끄는 일백 마군들 역시 그만큼 더 신법을 펼쳐 달려오면서 거리는 조금도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절벽 위의 병력이 다시 뇌성궁에 화살을 재고 쏘는 데 성공했다·
뻐버버버버버버벙!
섭혼술에 빠진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어서 이번에도 노강호들이 쏜 백여 발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위력은 결코 작지 않아서 말을 달려오던 흑풍사의 마적 삼십여 명이 또다시 떨어져 나뒹굴었다·
“으악!”
”커헉!“
”아악!“
‘이거였군!’
나는 그제야 사마옥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본격적으로 적아가 뒤섞여 버리면 그때부터는 활을 쏠 수가 없게 된다·
오랜 실전의 경험으로 그걸 너무나 잘 아는 사마옥은 급박한 순간에도 절벽 위의 고수들로 하여금 한 번 더 쏠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무림맹의 총군사라는 자리가 얼마나 대단한 자리인지 뼛속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야율극리가 이끄는 일백 마군들은 이번에도 흑풍사의 마적들이 성벽처럼 뒤쪽을 막아주는 바람에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
질주해온 일백 마군과 협곡 안에 있던 정도무림의 수뇌부 십수 명이 격돌하기 직전 장초풍의 일갈이 다시 터졌다·
“반격하라!”
꽝! 꽈광! 꽝꽝꽝!
검과 칼이 격돌하면서 밤하늘에 섬광이 번쩍이고 벼락이 쳤다·
장과 권이 격돌하면서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천둥이 울렸다·
막강한 경파가 방원 십수 장을 휩쓸면서 흙먼지가 폭풍처럼 일어났다·
태풍의 한가운데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천근추의 수법을 펼치지 않으면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그때쯤엔 활을 쏘던 노강호들도 어느새 절벽 위를 달려와 협곡 아래로 경신공을 펼쳐 떨어지며 속속 가세했다·
정도무림과 마교의 최고수 이백여 명이 넓은 협곡 안에서 마침내 하나로 뒤섞여 생사대전을 펼치는 순간이었다·
누가 누구와 싸우든 일대일의 대결만으로도 강호가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그런 엄청난 괴수들이 저잣거리 왈짜들의 패싸움처럼 한꺼번에 격돌하는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졌다·
한편 표왕부의 호위무사 오십도 맞은편에서 말을 달려온 흑풍사의 남은 마적들과 격돌하기 직전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아직 절벽 위에 남아 있는 서문룡과 남궁세옥을 발견했다·
그들은 섭혼술에서 빠져나온 생존자들을 추스려 협곡 아래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머릿속에서 번쩍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세옥 형님! 모두 다시 활을 잡도록 지시하십시오!”
남궁세옥이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나를 응시했다·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었음을 확인한 나는 양손을 입에 대고 종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어 흑풍사의 마적들이 달려오고 있는 협곡 앞쪽을 향해 망혼소를 힘차게 불었다·
삼백 년의 공력을 모두 끌어올렸음은 물론이었다·
지이이이잉!
망자의 휘파람 소리라는 이름답게 망혼소는 인간의 귀에는 그저 이명처럼 들릴 뿐이었다·
하지만 소리에 민감한 짐승들에게는 누군가 바늘로 고막을 계속해서 찔러대는 것과도 같은 고통이 느껴진다·
이히히힝!
말들이 질주를 하다말고 펄쩍펄쩍 뛰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어떤 놈들은 공중에서 허리가 꺾이고 어떤 놈들은 옆에 있는 다른 놈들과 다리가 엉키면서 함께 자빠졌다·
심지어 뛰어오르는 순간 제 몸을 가누지 못해 등부터 떨어지는 놈들도 있었다·
백사십여 필의 말 전부가 혼비백산하여 발작하자 일대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말을 타는 게 걷거나 달리는 것보다 익숙하다는 흑풍사의 마적들이었다·
하지만 미쳐 날뛰는 말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모두 말을 버려라!”
두령인 북두혈성의 일갈이 울리자 마적들은 그제야 말을 버리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절벽 위에서는 남궁세옥 일갈이 울렸다·
“발시!”
뻐버버버버버버벙!
강전이 또 한 번 비 오듯 쏟아졌다·
이번엔 앞서 일백의 노강호들이 쏠 때보다도 훨씬 더 많았다·
퍽퍽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마적들이 화살을 몸에 박고 비틀거리거나 쓰러졌다·
얼핏 보아도 사십 명은 족히 될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입에서 손을 떼고 망혼소를 멈췄다·
그 순간 내 뒤쪽으로부터 가뢰압이 이끄는 표왕부의 호위무사 오십이 말을 탄 채 쏜살처럼 튀어 나갔다·
그리고는 도망치는 말들 사이에서 만곡도를 들고 기다리는 흑풍사의 마적들을 닥치는 대로 도륙하기 시작했다·
“으악!”
“아악!”
“크악!”
기마술과 마상무예에 특화된 흑풍사의 마적들은 땅으로 내려오는 순간 한 명 한 명이 전문 살수와도 같은 표왕부 호위무사들에게 상대가 되질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어서 만곡도를 옆구리에 맞고 말에서 떨어지는 표왕부의 호위무사들 역시 속출했다·
두령인 북두혈성과 조장급 고수들의 활약 덕분이었다·
그리고 아직은 마적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때마침 서문룡과 남궁세옥이 대원들을 이끌고 흑풍사와의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으로 속속 떨어져 내렸다·
남궁세옥은 이어 장검을 뽑아 들고는 흑풍사의 두령 북두혈성을 질풍처럼 덮쳐갔다·
깡! 까가강! 깡! 깡! 깡!
격렬한 일곱 합이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친 후에야 두 사람은 비로소 떨어졌다·
정확히는 북두혈성이 남궁세옥의 맹공을 감당하지 못하고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서로의 내공을 말해주듯 만곡도와 장검이 아직도 징징 울어댔다·
당황한 북두혈성이 서늘한 음성으로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남궁세옥·”
“창룡검 남궁세옥!”
“피차 갈 길이 먼 듯하니 어서 끝장을 봅시다·”
남궁세옥이 재차 공세를 퍼부었다· 검초를 뿌릴 때마다 새파란 번개가 번쩍였다·
남궁세가의 제왕검이었다·
무림인들은 모두 자기 실력을 삼 할을 숨긴다고 하더니 생사대전에 이르러 드러난 남궁세옥의 무공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강했다·
나는 그제야 안심하고 연소교가 있는 뒤쪽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그녀는 가장 후방에서 설인탁과 석불원 그리고 미나모토의 밀착 호위를 받으며 안전한 상태로 있었다·
여기서 표사와 일반 무사들의 차이를 알 수가 있다·
모두가 앞다투어 참전해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치는 와중에도 설인탁과 석불원은 연소교와 성보를 지키는 걸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다·
다만 이런 어마어마한 고수들의 싸움을 처음 본 미나모토는 잔뜩 겁에 질렸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도 튀어 나가 싸워보고 싶은 얼굴을 했다·
‘든든하다!’
연소교의 안전을 확인한 나는 정도무림의 노강호들과 일백 마군들의 가공할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으로 다시 시선을 주었다·
그곳에 이종산과 북해투왕도 있었다·
정도무림인도 아니고 무림맹의 맹도도 아니면서 두 사람이 끼어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예상과 달리 정도무림의 노강호들이 일백 마군들에게 살짝 밀리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야율극리의 압도적인 신위가 결정적인 것 같았다·
그는 홀로 두 명의 노강호와 싸우고 있었는데 믿을 수 없게도 그 두 명은 뇌검 남궁유룡과 설산신검 장초풍이었다·
‘저게 무슨 말도 안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