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 전설의 표행(12) >
명부삼귀와 편복은왕을 쫓아 버리는 데 성공한 나는 따뜻한 밥을 지어 먹겠다는 애초의 계획을 취소하고 다시 밤길을 재촉했다·
저 무시무시한 노인네들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노인네들이 더는 우리의 흔적을 찾지 못할 정도로 달아나야 비로소 완전히 따돌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우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격자가 있을 수 있는 인가나 촌락 그리고 관도를 최대한 피해야 한다·
한마디로 길도 없고 사람도 다니지 않는 오지로만 이동하는 것이 가장 좋다·
대신 이런 곳을 지날 때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누군가 뒤를 바짝 따라온다고 가정했을 때 전인미답의 장소에 사람 발자국이 있으면 그건 또 그것대로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건 어느 정도 감안을 했다·
사실 명부삼귀와 편복은왕 정도의 고수쯤 되면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발자국을 모조리 씻어주지 않는 한 완전히 따돌리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다만 노인네들로 하여금 불필요한 발품을 팔아 시간을 허비하도록 만드는 방법들이 몇 가지 있었다·
가장 쉽고 확실한 건 강을 건너는 것이었다·
방식도 간단했다·
보통 때처럼 강을 최단 거리로 건너는 대신 배를 타고 상류나 하류로 한참을 더 가서 내리면 된다·
그렇게 하면 추적자들은 사냥감이 어디에서 내렸는지 모르기 때문에 강을 건넌 다음 발자국이나 기타의 흔적을 찾아 한참을 오르내려야 한다·
이렇게 추적자들이 지체하는 동안 우리는 조금 더 멀리 달아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닷새 동안 모두 아홉 차례의 크고 작은 강들을 건너면서 이동했다·
이동 중에는 한 식경 이상 휴식을 취한 적이 없고 끼니는 아침에 한 번 벽곡단으로 대충 해결했다·
무엇보다 불을 피우지 않았다·
기온이 크게 떨어지는 밤과 새벽에는 바위 밑이나 절벽 아래에서 어깨를 찰싹 붙이고 앉아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쪽잠을 잤다·
그나마도 한 시진 정도가 고작이었다·
덕분에 피로가 빠른 속도로 누적됐다·
삼백 년 공력에 오랜 표행 생활로 단련된 나조차도 닷새째 되는 날에는 볼이 떨리고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다·
하물며 호리독사와 연소교는 어떻겠나·
산중턱에서 잠시 이동을 멈추고 십리경으로 척후를 살피는 그 짧은 시간에도 두 사람은 바위에 나란히 기대어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하지만 그 고생을 한 덕분에 명부삼귀와 편복은왕을 가까스로 따돌릴 수 있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리고 엿새째 되는 날 우리는 지금까지 건넜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과 마주했다·
저 멀리 하남성 동백산에서 발원해 대륙을 가로지르며 흐르다 마침내 황해로 빠져나가는 이 웅장한 강의 이름은 회수(推水)였다·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장강을 기준으로 남무림과 북무림을 나눈다·
하지만 평생 하늘과 땅만 보며 사는 농부들에게는 진령(奏萬)과 함께 저 회수가 대륙을 남북으로 나누는 실질적인 경계였다·
회수를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의 기후와 풍토와 습속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회수의 남쪽에서는 주로 쌀농사를 짓고 북쪽에서는 밀을 재배한다·
남선북마라며 남쪽에선 배를 타고 북쪽에선 말을 탄다는 말의 배경 또한 실제로는 장강이 아니라 이곳 회수였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나는 회수와 맞닿은 산중턱의 소나무 숲에 숨어서 강변을 굽어보는 한편 십리경으로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다·
이십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은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한가롭고 고즈넉했다·
마을의 규모나 지세로 보아 회수를 오르내리는 여객선이 정기적으로 들르는 곳도 아니고 고기잡이를 업으로 삼는 곳도 아니었다·
그저 대륙의 여느 작은 촌락들처럼 강을 끼고 들어섰을 뿐이었다·
다만 그 강이 회수라는 게 다를 뿐·
“잘 아는 곳인가요?”
“처음 보는 마을이오·”
“역사가 깊은 표국이나 오랜 경력의 표사들은 표마차 없이 작은 표물을 운송할 때 이용하는 자신들만의 지름길이 있다고 하던데·”
“나는 오랜 경력의 표사가 아니어서 아직 나만의 지름길까지는 없소·”
“폄하 하려고 한 말은 아니었어요·”
“그렇군·”
“정말이에요·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는 십리경을 떼고 가만히 연소교를 돌아보았다·
별것도 아닌 말에 미안해하는 것도 그렇고 남을 추켜 세워주는 것도 그렇고·
이건 평소에 알던 그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왜 그런지 이유를 묻기도 전에 연소교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슬그머니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내 눈을 피했다·
“···?”
지난 일 년 동안 남궁소소과 찰싹 붙어 다니면서 나도 이제 어느 정도는 여자에 대해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이 얼굴이 여자들에게 얼마나 먹히는 지도·
이미 마음을 준 연인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실제로는 서른 살이나 더 많은 어른으로서 여지를 주면 안 된다·
싹은 빨리 잘라내야 한다·
그게 그녀를 위해서도 좋다·
“혹시 내가····”
“너구리 같아요·”
“뭐라고요?”
“눈두덩에 동그랗게 자국이 났다고요·”
한식경째 십리경으로 마을을 살폈더니 눈 주변이 동그랗게 눌렸나 보다·
연소교가 내 눈을 피한 것도 웃지 않으려고 그런 것이고·
나는 다시 십리경을 눈에 붙이고 마을을 계속해서 훑었다·
그리고 질문을 하는 대신 그녀가 궁금해 할만한 것을 말해 주었다·
“나만의 길은 없지만 천룡표국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지름길들이 있기는 하오· 하지만 표사들 전부의 입을 막을 수는 없으니 일부러 피했소·”
“하면 지금까지 전혀 모르는 길로만 왔다는 말인가요?”
“나도 어디로 갈 줄 모르는데 추적자들이 어떻게 알겠소? 그러니 최소한 내가 갈 길을 예측해 미리 간 다음 덫을 파놓고 기다릴 수는 없었을 거요·”
“철두철미하군요·”
“하지만 회수는 다르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오든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려면 반드시 이 강을 건널 수밖에 없소·”
“그들이 회수를 봉쇄했을 거라는 말씀인가요?”
“천룡표국으로 쳐들어 왔던 추혼쌍귀니 좌호법이니 하는 마교도들은 어떤 자들이오? 특히 머리를 굴리는 쪽으로·”
“추혼쌍귀(追魂雙鬼)는 별호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시피 한번 점찍은 목표물은 평생 놓쳐 본 적이 없다는 천리추종술의 대가들이에요· 좌호법 혈영노조(血影老祖)는 한때 삼뇌군사의 뒤를 이을 거라고 평가됐던 천재 책사고요·”
“이을 거라고?”
“스무 살 정도 젊었거든요· 한데 삼뇌군사께서 너무나 오래 사시는 바람에 이름을 날릴 기회가 없었죠·”
“그래도 일흔을 훌쩍 넘긴 노마겠구려?”
“물론이죠·”
“그들에 비하면 명부삼귀와 편복은왕은 상대적으로 무공이 고강할 뿐 추적을 하거나 상황을 보는 눈은 아무래도 한 수 뒤처지겠군·”
“하지만 가장 먼저 우리를 찾아냈죠·”
“하물며 우리가 천룡표국을 빠져 나갔다는 걸 추혼쌍귀와 혈영노조라는 자들이 열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을까?”
“그거야말로 천마성교의 저력을 너무 얕잡아 본 거예요·”
“내 짐작이 틀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천룡표국을 빠져나온 지 사흘 후쯤에는 알아차렸을 것이오· 국주님께서도 그 정도면 우리가 장강을 건너는 데 무리가 없다고 판단하여 표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전쟁을 끝내는 방향으로 유도했을 것이고·”
“그 사실을 뒤늦게 간파한 천마성교는 장강을 포기하는 대신 총력을 쏟아부어 이곳 회수에다 천라지망을 펼치려 했겠군요· 말을 타고 가장 빠른 길로 쉬지 않고 달리면 충분히 우리보다 앞서 도착할 수도 있고요·”
“항주에서 천룡표국과 천마성교 사이에 짧게나마 교전이 있었으니 지금쯤이면 정사마의 모든 무림인들이 성보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을 것이오· 그들은 천마성교의 움직임을 주시했을 것이고·”
“도시와 시골 사람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구별 없이 회수 전역에 지켜보는 눈이 있다고 봐야겠군요·”
“이제 내 말을 이해하겠소?”
연소교는 충격으로 대답도 못 하고 마른 침만 꼴깍 삼켰다·
나는 나대로 말을 하면 척척 알아듣고 다음 수를 내다보는 그녀의 통찰력에 크게 놀랐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건 역시 삼뇌의 목을 베고 성보를 훔쳐서 나를 찾아온 그 모든 과정이었다·
저게 어딜 봐서 열아홉 살짜리 여자아이의 행동이란 말인가·
‘예쁘게 생긴 사내대장부지· 그것도 노강호들 뺨칠 정도로 뚝심과 배짱이 두둑한· 덤으로 싸움도 잘하고·’
“이제 어떡하죠?”
“눈에 띄면서 눈에 띄지 않아야지·”
“무슨 말씀인지 알아들었어요· 한데 설응이 문제예요· 우리야 변복과 역용을 한다지만 저 희고 커다란 설응을 어깨에 올려놓고 다니면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될 거예요· 그렇다고 보퉁이 속에 넣어 갈 수도 없고요·”
“일단 하늘로 날려 보낸 후 회수를 건넌 다음 적당한 장소에 이르러 다시 불러들일 거요·”
많지는 않지만 천룡표국의 전서각에서도 매를 키운다·
전서응은 전서구에 비해 훨씬 높게 그리고 멀리까지 날았다·
다만 어린 매를 구하거나 완벽히 길들이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야생으로의 귀소 본능이 워낙 강한 나머지 기껏 길들여 놓으면 배달을 갔다가 돌아오지 않기가 일쑤였던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전생에서 전서각주 계종명이 전립성을 찾아와 술을 마시며 그런 괴로움에 대해 토로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매는 본래 작은 새나 쥐를 잡아먹고 사는 맹금인데 무슨 이유에선지 참나무에 기생해 자라는 녹색 애벌레를 보면 아주 환장을 합니다·”
“녹색 애벌레?”
“그런 게 있습니다· 엄지손가락만 해가지고 발톱으로 찢으면 찍 하며 시퍼런 육즙과 함께 부드러운 속살이 나오는·”
“엄지손가락만 하면 매 입장에선 제법 요기가 되겠군·”
“해서 겨울에 참나무가 많은 숲에서는 절대 놈을 훈련해선 안 됩니다· 어쩌다 우연히 녹색 애벌레를 발견해서 한번 맛보면 계속 그것만 잡아먹다가 결국 주인을 배신하고 야생으로 돌아가 버리거든요· 그렇다고 바쁜 와중에 허구한 날 그걸 잡아다 먹이로 줄 수도 없고요·”
지난 엿새 동안 나는 나는 굶을지언정 놈에게는 틈나는 대로 녹색 애벌레를 잡아다 배가 터지도록 먹였다·
다행히 녹색 애벌레는 겨울이라 찾는 방법만 알면 참나무 나무껍질 속에 얼마든지 있었다·
내가 놈에게 공들인 작업은 사실 전 주인인 편복은왕과의 끈끈한 유대를 끊고 배신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런 다음에서야 나를 새로운 주인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
계종명과 달리 나는 열심히 녹색 애벌레를 잡아 먹였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 놈이 그 정성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똑똑한 연소교가 그걸 정확히 꼬집어 주었다·
“저렇게 하얀 설응을 하늘로 날려 보내면 십 리 밖에서도 눈에 띌 거예요· 명부삼귀와 편복은왕이 근처에 있다면 우리의 위치를 알아내는 건 시간 문제고요·”
“당연히 그렇겠지·”
“역시 짐작했군요·”
“사실은 그 정도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오· 편복은왕이 내게 천응을 준 이유가 정말 상여꾼들을 죽이지 않은 것에 대한 보답 때문이라고 생각하시오?”
이건 좀 어려운 문제였던지 연소교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눈을 크게 뜨고는 깜짝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회수를 앞두고 우리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천응을 하늘로 날려 보낼 수밖에 없다는 걸 계산했군요· 설응을 첩자로 심어둘 생각을 하다니!”
“노강호들이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하거나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할 때는 항상 두세 가지 안배가 있는 법이오· 조심해야 하오·”
“한데도 설응을 하늘로 날린다고요?”
“우리도 안배를 해야지·”
나는 수통의 남은 물을 전부 마신 다음 칼로 주둥이를 탁 잘라냈다·
그러자 입구가 주먹도 들어갈 정도로 넓어졌다·
그런 다음 오늘 낮 동안 이동 중에 부지런히 잡은 녹색 애벌레 백여 마리를 수통 속에 넣고 작대기로 찧기 시작했다·
육즙이 쭉쭉 터지면서 노린내가 진동하자 설응이 벌써부터 커다란 날개를 푸닥거리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발목에 묶은 줄을 진작부터 연소교가 잡고 있어서 내게 가까이 오진 못했다·
이윽고 육즙이 흥건해지자 건더기만 건져 양손으로 꾹꾹 눌러 짠 다음 놈의 앞에다 툭 던져 주었다·
“이제 모자를 벗겨 주시오·”
설응의 머리는 편복은왕이 준 가죽 씌우개로 덮여 있었다·
사람이 생각할 때 매가 눈이 보이지 않으면 놀라서 사납게 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얌전하게 군다·
연소교가 매듭을 풀어 머리 씌우개를 벗겨 주었다·
설응이 눈앞에 잔뜩 놓인 녹색 애벌레의 속살을 미친 듯이 쪼아먹기 시작했다·
그사이 나는 수통 속에 든 녹색 애벌레의 육즙을 놈의 몸통과 날개에다 치덕치덕 발랐다·
본래의 새의 깃털은 기름기가 많아 웬만해선 물이 묻지를 않는다·
묻어도 홰를 치거나 부르르 떨어서 털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오랜 비에 축죽해질 정도로 젖었을 때는 잠깐 비행을 하며 바람에 말릴 수도 있고·
당연히 무언가로 새를 염색한다는 건 그럴 일도 없지만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쑥을 달인 것 같은 녹색 애벌레의 시퍼런 육즙은 달랐다·
어떤 성분이 들었는지 종이에 색칠을 한 것처럼 잘 먹었다·
나는 이걸 놈에게 녹색 애벌레를 잡아 먹이던 첫날 우연히 발견했다·
놈의 주둥이와 머리 주변이 온통 퍼렇게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잠깐 사이 눈처럼 하얗던 설응의 몸은 시퍼런 쑥색으로 변했다·
물기에 털이 삐죽삐죽 뭉쳐서 볼품도 없었고
“이게 닭이야 매야·”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요?”
“세상은 온통 신기한 것들로 가득 차 있소· 평소 열심히 관찰하는 습관을 지닌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수록 경험도 자연스럽게 비례해서 쌓일 거요·”
“그렇다고 해도 스물네 살에 누구도 당주님처럼 될 수는 없을 거예요·”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사이 설응이 애벌레를 깨끗이 먹어 치웠다·
그리고는 나를 노려본다·
더 달라는 건지 다 먹었으니 이제 횃대 위로 올려 달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참고로 설응을 어깨에 계속 올려놓고 걷기가 너무나 불편해 이종산이 준 월인소야검을 어깨에 걸치고 놈으로 하여금 그 위에 올라 앉도록 한 채 지금까지 이동했다·
상어 가죽으로 만들어 까슬까슬하면서도 발톱을 오므렸을 때 딱 잡히는 굵기인 검갑을 놈은 다행히 매우 좋아했다·
나는 놈을 팔뚝에 얹은 다음 다리에 묶은 가죽 줄을 천천히 풀어 주었다·
이어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그동안 답답했을 텐데 당분간 창공을 실컷 날아다니면서 사냥도 하고 그래· 대신 전 주인을 찾아가 우리에게로 데려오면 애벌레는 다시 못 먹을 줄 알라고·”
말과 함께 놈을 허공으로 힘껏 던졌다·
팔뚝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힘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놈은 순식간에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숲 밖으로까지 날아갔다·
잠시 후에는 광활한 창공의 작고 푸른 점이 되어 사라졌다·
그때 저만치 풀숲으로부터 마을을 살피러 갔던 호리독사가 돌아왔다·
그새 어디서 훔쳐 먹었는지 술 냄새가 살짝 돌았다·
“모든 게 너무나 평온해서 오히려 이상할 지경입니다· 마을 사람들도 전부 평범한 농군들이 확실하고요·”
“배는?”
“다섯 척 정도 있습니다· 죄다 코딱지만한 낚싯배입니다· 두 척은 강 위에 세 척은 나루터에· 그나마 나루터에 있는 것들 중 두 척은 밑창에 크게 구멍이 나서 띄울 수가 없는 상태고요·”
“상황이 좋질 않군요·”
“십 리 정도 하류로 내려가면 마차도 실어서 건넬 수 있을 정도로 큰 나룻배가 다니는 대형 포구촌이 나온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소?”
“천만에요· 젊은 아낙들이 정자나무 아래에 앉아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 하는 얘기를 숨어서 엿들었습니다·”
“아낙들이 뜬금없이 왜 그런 대화를 나눈단 말이오?”
“엄청난 권세를 가진 어느 황족이 대규모 사병들을 이끌고 내일 아침쯤 그곳에서 회수를 건널 모양입니다·”
“황족이라고요?”
“해서 인근의 유력한 군벌과 호족과 고위관리들까지 인사를 하기 위해 포구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는 등 일대가 난리라고 합니다· 아낙의 남편들은 이때다 싶어 배를 타고 붓 만드는데 쓰는 족제비와 담비의 꼬리털을 팔러 갔고요·”
“대체 얼마나 대단한 권세를 지닌 황족이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