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 전설의 표행(7) >
아침부터 시작된 비는 오후가 되어도 그치질 않았다·
도롱이를 입고 커다란 죽림을 쓴 우리는 인적 없는 산길을 묵묵히 걸었다·
항주를 떠나와 이렇게 도보로만 이동한 지 벌써 사흘째였다·
말(馬)을 타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대신 강이 나타날 때마다 큰 배가 있는 포구마을을 찾아가야 한다·
그런 곳에는 눈이 많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연소교가 불쑥 물어왔다·
천룡표국을 벌집으로 만들어 놓고 온 것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천마성교도들은 천룡표국에서 빠져나가는 모든 표물과 표사와 쟁자수들을 이 잡듯이 검문하려 들었을 것이다·
반면 특별한 이유 없이 표물을 외부인에게 보여주는 건 모든 표국에서 금기로 여기는 일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천룡표국이 수백 년간 지켜 온 원칙을 마교의 협박 따위가 무서워 깰 리 만무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격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연소교와 함께 목숨 걸고 마교의 성보들을 운송하는 것처럼 이종산도 후방에서 그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경륜과 지혜를 발휘해 표사와 쟁자수들의 인명피해가 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행히 전쟁 전문가인 무림맹 총군사 사마옥이 함께 있으니 그나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걱정되시오?”
“저로 말미암아 벌어진 일이니까요·”
“천룡표국으로 찾아온 건 소저의 의지이지만 일을 이렇게까지 크게 벌인 건 국주님의 의지요· 빚진 마음이 있다면 최대한 멀리까지 달아나도록 합시다· 그게 국주님을 비롯한 천룡표국의 표사들이 전쟁을 감수하는 이유니까·”
“국주님께선 왜 절 내쫓지 않으신 거죠? 그랬다면 모든 게 간단했을 텐데요·”
“우리는 표국인들이오· 의뢰를 거절하는 일은 있어도 사마외도라고 해서 의뢰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은 없소· 하물며 혼자 전쟁을 막겠다며 찾아온 이를·”
지금처럼 강북으로 향하는 암표행에서 가장 첫 번째로 만나는 난관은 역시 장강이었다·
남무림에서 흑도의 악명 높은 고수가 유명한 무림방파의 제자를 죽인 후 북무림으로 도망친다고 치자·
그럴 때 제자를 잃은 무림방파에서 가장 먼저 봉쇄하는 곳이 장강이었다·
북무림에서 살인을 하고 남무림으로 도망 쳐도 마찬가지다·
숲이 우거진 산과 달리 장강은 사방이 트여 일단 눈에 띄기가 쉬웠다·
게다가 반드시 배를 타야 해서 건널 수 있는 곳 또한 한정적이었다·
만약 적들이 우리의 탈출을 눈치챘다면 지금쯤 남직예성과 접경을 이루는 장강 일대가 마교도들로 북적댔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대형 여객선을 타고 장강을 건너던 중 사람들이 떠드는 얘기들을 통해 천룡표국의 소식까지 들을 수 있었다·
“대치를 이어가던 천룡표국과 천마성교도 삼천여 명이 결국 전면전을 벌였다더군· 모두의 예상을 깨고 천룡표국이 대승을 거두었다던데· 피해도 놀라울 정도로 작고·”
“표국에 남은 표사와 쟁자수들을 싹싹 끌어모아 봐야 천 명도 안 되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대승을 거둘 수 있었지?”
“한나절 정도 수성전을 펼치는 척 하다가 마교도들을 천룡표국의 경내로 끌어들여 덫에 빠트린 무림맹 총군사의 작전이 주효했다더군·”
“대범한 작전도 작전이지만 천하십검 중 한 명인 표왕의 압도적인 무공과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려는 표사와 쟁자수들의 치열함이야 말로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하던걸·”
“거기에 외부로부터의 조력도 한몫했을 겁니다· 수향문주가 용무관 삼양문 응조문 진검문 철사문 등· 항주를 대표하는 정도문파의 문주들을 설득해 제자들을 대거 이끌고 천룡표국으로 달려갔다더라고요·”
“세가 약해서 그렇지 수향문이야말로 천룡표국보다 오래된 항주의 유서 깊은 검도 명문이지· 문주인 옥면검협 조충헌은 본래가 유명한 협객이었고·”
“그러고 보니 한때 아름답기로 유명한 수향문주의 딸과 표왕의 셋째 아들 사이에 혼담이 오가다가 없던 일로 되지 않았었나?”
“껄끄럽다면 껄끄러운 사이일 텐데도 불구하고 달려가 돕는 걸 보면 옥면검협이 대인배는 대인배군·”
“그렇기도 하지만 절강성의 패자이자 든든한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천룡표국이 무너진다면 다른 정도문파들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지·”
수향문의 조영영과 용무관의 진금봉을 비롯해 이병룡의 친구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당연히 그들도 함께 천룡표국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한때는 나와 투닥거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내가 달아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다들 함께 싸워 주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덕분에 우리는 항주를 떠난 지 닷새째 되는 날 가장 큰 난관이 될뻔한 장강을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이건 이종산이 전쟁을 감수하면서 벌어 준 시간과 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에 수많은 사람의 조력과 희생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총군사님과 함께 도울 방법을 찾겠다던 이종산의 마지막 말이 얼마나 무거운 한 마디였는지 이제서야 실감났다·
그날 오후 우리는 험준한 산 하나를 올랐다·
해 질 무렵이 되자 능선을 넘었고 자연스럽게 물을 찾아 골짜기 쪽으로 내려갔다·
오늘 저녁은 여정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불을 피울 작정이었다·
왕대나무를 잘라 만든 간이 그릇에 밥도 짓고 육포를 넣어 육수도 끓이고·
닷새 동안 추위에 떨면서 염소똥 같은 벽곡단만 주야장천 먹었다·
뜨끈한 국물에 하얀 쌀밥을 말아 먹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오장육부가 든든해 지는 것 같았다·
한데 어렵게 찾은 계곡 가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있었다·
검게 그은 얼굴에 앙상한 체격을 가진 세 명의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바위 사이에다 커다란 솥을 걸고 무언가를 열심히 끓여대는 중이었다·
천렵을 하는 듯한 모습에다 꾀죄죄한 복장까지·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촌로들이었다·
문제는 이곳이 인적도 없고 길도 없는 오지 중의 오지라는 데 있었다·
‘약초꾼들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노인들의 용모가 어딘지 모르게 살짝 기괴했다·
하나같이 눈이 툭 튀어나온 데다 관자놀이는 움푹 들어갔으며 머리털과 눈썹이 죄다 빠지고 없었다·
피를 나눈 친형제들이 아니라면 오랜 세월 동류의 무공을 익힌 탓일 수도 있다·
그것도 섭리를 벗어난 좌도방문·
하지만 무공을 익힌 흔적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초절정의 고수들은 기운을 얼마든지 안으로 갈무리할 수 있으니까·
잠깐 사이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가마솥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뚜껑도 없이 김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마솥에는 무슨 이유에선지 맹물만 있었다·
그렇다고 물속에 넣어 끓여 먹을 고기나 생선 같은 것들도 보이질 않았다·
수상한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다·
불길한 예감을 느낀 나는 그대로 지나칠 생각이었다·
한데 우리가 다가오는 걸 멀리서 지켜보며 나누는 그들의 대화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정말 이리로 오는군·”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먹음직스럽게 생겼는걸·”
“아서요· 표사들은 고생을 많이 해서 질깁니다·”
“늙은 황소를 잡아도 부드러운 부위가 열 관은 나오는 법이다· 하물며 젊은것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 클클클·”
이 노인네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한데 따지거나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저들을 건드려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살기나 기세는 아닌데 그런 것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저 노인들에게는 있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대여섯 장의 거리를 두고 서둘러 지나치려는 순간 한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못 본 척 지나치려고?”
끝까지 시치미를 떼고 걸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누가 그걸 모르나·
어떻게든 싸움을 피하고 도망치려다 보니 그런 거지·
연소교와 호리독사에게 전음으로 신호를 준 후 경공을 펼쳐 달아나려는 순간이었다·
무언가 대기를 찢으며 날아오더니 ‘땅!’ 하는 굉음과 함께 눈앞의 고목에다 주먹만한 구멍을 뚫어 놓았다·
노인이 던진 돌멩이가 뚫고 들어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목은 한번 부르르 떨고 말 뿐이었다·
속도가 너무나 빠른 탓이었다·
맹세코 이토록 빠르고 강력한 돌팔매질은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우리 중 누군가가 저 돌멩이를 머리에 맞았다면?
아마도 달리는 중에 머리통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 버렸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졌다·
순간 연소교의 전음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명부삼귀(莫府三鬼)인 것 같아요!]
[더 자세히 말해 주시오·]
[천마성교 내에서 염왕부라는 암살단을 이끌던 사신(死神)들이에요· 저들 셋이 힘을 합치면 하늘 아래 찾아내거나 죽이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들었어요· 오랫동안 강호에 나타난 적이 없어 다들 늙어 죽은 줄 알았는데····]
[한데 그동안은 왜 삼뇌와 함께 다니지 않은 거요?]
[천마교주에게 굴복해 천마성교의 염왕부를 이끌었을 뿐 저들의 뿌리가 되는 교맥은 사령신교예요·]
[혹시 식인을 하는 자들이오?]
[고대의 사령신교는 죽은 교도의 육체를 나눠 먹는 것으로 영생을 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때의 관습 때문에 식인을 하는 자들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사마옥의 예상이 적중했다·
마교의 성보 세 개가 세상에 나타나면 심산유곡에 은거하던 거마(巨魔)들이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고 하더니만·
나는 등에 가로질러 멘 물건을 한번 추스러며 정확한 위치를 가늠했다·
둘둘 감은 광목천 안에는 이종산이 준 그의 애병 월인소야가 숨어 있었다·
이어 세 명의 노인들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호리독사와 연소교가 조용히 따랐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모습에서 두 사람이 얼마나 놀라고 긴장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윽고 노인들의 앞에 이르자 정중히 포권지례부터 올렸다·
“무림 말학 이정룡 선배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우리가 누군 줄은 아느냐?”
셋 다 나이를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늙은 와중에도 두 번째로 늙어 보이는 노인이 물었다·
낮은 쇳소리가 왠지 산 사람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 같지가 않았다·
“한때 천마성교의 염왕부를 이끌던 명부삼귀 선배님들이 아니신지요·”
“제법이구나·”
“무림맹 총군사께서 경고를 해주셨지만 이렇게 빨리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천마성교 내에 배교자들이 있는 모양이군요·”
“풍운비룡이라는 이름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만박노군이 너에게 성보의 운송을 맡긴 걸 보면 말이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믿어 주신만큼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반드시 성공시켜야겠다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상대의 무공수준부터 알아야 한다·
나는 가만히 망혼소를 시전하며 가장 젊어 보이는 노인의 단전부터 더듬어 갔다·
그리고 느껴지는 것은 갓난아기 머리통만한 덩어리였다·
‘이게 무슨!’
순간 젊은 노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어디서 잡공을 배웠구나!”
일성과 함께 젊은 노인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꽝!’ 하는 굉음과 함께 머릿속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크게 뒤로 젖히며 두 걸음이나 물러났다·
그간 숱하게 망혼소를 펼치면서 눈치를 채는 내가고수들은 일부 보았다·
하지만 이처럼 같은 음공으로 반격을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엄청난 인간들이다!‘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일단 내공으로만 따지자면 내가 오히려 저들보다 살짝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기운이 세다고 소가 왕 노릇 하는 법은 없다·
게다가 저들은 세 명이었다·
혼자서 어찌어찌 한 명은 감당한다 치더라도 나머지 두 명에게 맞아 죽고 말 것이다·
내가 죽었는데 호리독사와 연소교가 살아서 산을 내려 갈 리 없었다·
“언감생심 상대가 아님을 알았으면 성보들을 내놓고 조용히 가거라· 하면 백골시마와의 인연을 생각해 목숨들은 살려 줄 것인즉·”
가장 늙은 노인이 가마솥 아래에 장작을 무심코 툭 던져 넣으며 한 말이었다·
딱히 누구를 지칭하지 않았지만 연소교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연소교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나를 보았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고는 방금 말한 노인에게 물었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궁금증이나 시원하게 해소해 주십시오 대체 어떻게 저희를 찾아내신 겁니까?”
“너는 우리가 무섭지 않느냐?”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 상대의 수법을 알아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지 않겠습니까?”
“설마 우리에게서 달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더냐?”
“아직 잡히지도 않았습니다만·”
가장 늙은 노인은 재밌다는 듯 나를 한참이나 뚫어지게 보았다·
그러다 가장 젊은 노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노인은 자신이 걸터앉은 바위 아래에서 큼지막한 포댓자루를 집어 앞으로 옮겨놓았다·
이어 새끼줄로 꽁꽁 묶은 입구를 풀었다·
그러자 두 갈래로 갈라진 혓바닥를 낼름거리며 황갈색의 알록달록한 칠보사 십여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칠보사는 이름처럼 물리기만 하면 일곱 걸음 안에 쓰러져 죽을 만큼 맹독을 지닌 독사였다·
뱀이 많은 계절에도 보기 힘든 칠보사를 한겨울에 어떻게 저리 많이 잡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젊은 노인은 놀랍게도 맨손으로 칠보사들을 덥석 집어 산채로 끓는 물에 풍덩 풍덩 던져 넣었다·
날벼락을 맞은 독사들이 가마솥 안에서 요동치다가 허연 배를 뒤집으며 서서히 익어갔다·
한데 한 마리는 그대로 땅바닥에 남겨 두었다·
그리고 혀를 쯧쯧 하고 찼다·
순간 노인의 품속에서 피처럼 붉은 족제비 한 마리가 불쑥 튀어 나왔다·
족제비는 고개를 빳빳이 치켜든 칠보사에게 그대로 달려들더니 순식간에 목을 물어뜯어 죽여 버렷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르고 민첩한지 흡사 헛것을 보는 것 같았다·
족제비는 행여나 사람들에게 빼앗길까봐 제 몸보다 무거운 칠보사를 끌고 근처 바위 위로 올라갔다·
다음에는 칼처럼 날카로운 발톱으로 배를 갈라 쓸개부터 꺼내 천천히 씹어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호리독사가 신음하듯 말했다·
“적향서(赤香鼠)!”
향서는 사흘 전 찍힌 발자국에 남은 냄새까지도 찾아내 추적을 한다는 영물이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특유의 체취가 있기 마련이어서 일단 향서에게 걸리면 방법이 없었다·
젊은 노인의 품속에서 나온 것은 그런 향서 중에서도 가장 귀하다는 적향서였다·
나도 말로만 들었지 적향서를 직접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말이 좋아 족제비고 영물이지 저건 그냥 작은 맹수였다·
성질도 포악하고 보통의 족제비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빨라서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독이빨에 물려 죽는 수가 있었다·
늙은 노인이 말했다·
“설명이 되었느냐?”
천마성교에 남아있던 끄나풀을 통해 연소교가 입었던 옷을 구하기라도 했을까?
“아무래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추적을 해오신 것 같군요·”
“소문대로 눈치가 빠르군·”
“한데 왜 이제야?”
“천마성교도들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난 다음 장강을 무사히 건널 때까지 기다렸느니라·”
“···!”
이천 명씩이나 되는 천마성교의 교도들을 따돌린 후 불도 피우지 않고 벽곡단을 씹어가며 닷새를 달렸다·
한데 줄곧 뒤에서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니·
이렇게 되면 도망 치기는 커녕 밥을 먹기 좋게 차려 준 셈이 아닌가·
호리독사와 연소교도 기가 막히는 지 숨 쉬는 것조차 멈추었다·
그때였다·
나를 바라보고 앉은 노인들의 뒤쪽 허공으로부터 무언가 허연 것이 한점 소리도 없이 뚝 떨어져 내렸다·
“어 저거!”
“개수작 부리지 마라·”
“그게 아니고요·”
허공에서 떨어진 그림자는 저만치 바위 위에서 한참 칠보사를 뜯어먹고 있던 적향서를 덮쳤다·
푸닥거리는 소리가 났을 때는 이미 늦었다·
카악! 카악!
비명과 함께 발작적으로 버둥대는 적향서를 순식간에 낚아챈 그림자는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다시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건 놀랍게도 눈처럼 하얀 매였다·
백사 백록 백호···· 세상에 수많은 흰색 영물들이 있다고 들었지만 흰색 매는 처음 보았다·
대경실색한 젊은 노인이 뒤늦게 돌멩이를 주워 허공에 냅다 던졌다·
쒜액··· 펑!
그러나 대기를 찢으며 날아간 돌멩이는 어디선가 날아온 또 다른 돌멩이를 맞고 펑 소리를 내며 터져 버렸다·
세상에 초절정의 고수가 매를 잡으려고 던진 돌멩이를 누군가 다른 돌멩이를 던져 맞추다니·
이건 마치 날아가는 화살을 다른 화살로 맞추는 것과도 같았다·
듣도보도 못한 경지에 나는 그만 머리끝이 쭈뼛하고 섰다·
무언가 생각난 듯 연소교가 까마득한 허공으로 사라지는 흰 매를 보며 외쳤다·
“설응(雪廣)!”
순간 연소교는 물론이거니와 세 명의 노인 즉 명부삼귀의 얼굴도 차갑게 식었다·
그건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의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