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오지산 천지령(3)
———————-
천지령 반토막을 달라는 내 말에 남궁소소와 장량기 가불염 등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표정만 굳었다·
표사와 쟁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처구니없는 한마디였지만 어떻게든 자기들부터 살려 보내려는 내 속셈을 알기에 다들 얼굴이 무거웠다·
나는 속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애써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화조신옹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는 이미 선하령에서 천라지망에 갇혀 한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일이 있다·
아무리 대범한 인물이라고 해도 불과 스무날 만에 장소를 옮겨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진절머리가 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일단 속아 넘어가야 성립이 되는 말이었다·
“푸하하하!”
화조신옹이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그러다 갑자기 미치광이처럼 웃음을 뚝 그쳤다·
“이제야 네놈이 누군지 생각났다· 그날 모산파의 도사놈이 나와 강시들을 이끌고 천룡표국을 찾아갔을 때 네놈이 이렇게 말했었지·”
“···!”
“비록 전사자는 아니나 이들 역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바친 사람들이다· 백성이 곧 나라니까· 하여 이문과 편리를 따지지 말고 운송하는 것이 강호의 도리다·”
“···!”
“한데 이제 와서 강시들을 미끼로 천라지망을 펼친 것도 모자라 활로를 알려 줄 테니 천지령 반토막을 달라고?”
“···!”
“네놈을 부르는 늙은 대장궤의 호칭이 아마 사공자였지· 하면 너는 표왕 이종산의 넷째 아들이겠군· 후후· 표왕은 협명이 천하에 진동하는 자인데 어찌 이런 견자(犬子)를 보았을꼬·”
“···!”
“하지만 나는 네놈이 마음에 든다· 좋다· 나를 안전하게 빼돌려 준다면 천지령 반토막을 주마·”
당연히 거짓말일 것이다· 상관없다·
내 목적은 천지령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를 속이는 것이니까·
다행히 그는 완전히 속은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우물쭈물 하다가 용화교의 교도들이 나타나기라도 하는 날엔 모든 게 도로아미타불이다·
“하면 저의 동료들을 보내 주시지요· 선배님께서 어디로 가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선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나를 바보로 아는 게냐? 그렇다면 더더욱 죽여 없애야겠지· 저들이 네 놈이 알고 있다는 그 활로를 이미 알고 있어서 무림인들에게 가르쳐 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저의 동료들 중 단 한 명이라도 목숨을 잃는다면 맹세코 저는 선배님께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쉬운 길을 놔두고 구태여 어려운 길로 가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법 배짱이 두둑하다만 내게는 안 통한다· 내 다른 놈들을 모조리 죽인 후 네 놈의 입과 귀를 찢고 눈알을 파낼 것이다· 어디 그때에도 입을 다물 수 있는지 보자·”
그러면서 화조신옹은 당장 손안에 든 가불염의 목부터 부러뜨리려 했다·
이건 생각지 못한 상황이다· 아무리 미치광이기로서니 무림인 천 명이 몰려오고 있는 상황에서도 배짱을 부릴 줄이야·
살다 살다 이런 광오하고 미친 인간은 처음 보았다·
그때였다·
“뇌검(雷劍)이 오고 있어요!“
갑자기 빽 소리를 지른 사람은 남궁소소였다·
뇌검이라는 말에 화조신옹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는 남궁소소를 잠시 뚫어지게 바라보다 얼굴을 묘하게 일그러뜨렸다·
”네년은 누구냐? 왜 남장을 하고 있는 거지?“
남궁소소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만큼 커졌다·
표사와 쟁자수들 역시 이건 또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냐는 표정들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남궁소소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남궁소소는 이미 각오한 일인 듯 담담하게 말했다·
”어차피 말만으로는 안 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곤 갑자기 자신의 얼굴 여러 곳의 혈도를 빠르게 짚었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밀가루 반죽이라도 된 것처럼 조금씩 변하더니 어느새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뭐 뭐야!”
“진짜 여자잖아!”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표사들이며 쟁자수들이고 간에 입이 쩍 벌어져서 어쩔 줄을 몰랐다·
자신들과 열흘 동안 동행한 거인표사가 역용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일 것이다·
한데 상상도 못할 만큼 아름다운 여자가 눈앞에 나타났으니 죄다 놀라 나자빠질밖에·
남궁소소는 나를 향해 말했다·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죠·”
그리고는 허리춤에 있던 검을 벼락처럼 뽑아 휘둘렀다·
곁에 있던 어른 허벅지 굵기의 생나무 밑동이 ‘쩍!’ 소리와 함께 사선으로 깨끗하게 잘려나갔다·
너무나 깔끔하고 위력적인 검술에 모두의 입이 다시 한번 쩍 벌어졌다·
화조신옹을 비롯해 장량기와 몇몇 표사들의 눈은 특별히 더 커졌다· 검술의 유파를 알아본 것이다·
화조신옹이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뇌검과 무슨 사이더냐?”
“뇌검 남궁무룡 대협이 바로 저의 조부님이십니다· 이제 뇌검이 오고 있다는 저의 말이 괜한 엄포가 아니라는 걸 아시겠지요?”
화조신옹은 정말로 놀란 표정이었다·
일생에 단 한 번 패배를 안겨준 초절정의 검사· 지금도 그의 얼굴엔 그때 당한 칼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천지령을 복용해 100년 공력을 얻었다면 모를까 현재로선 뇌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그도 잘 아는 것이다·
표사와 쟁자수들은 이번에야말로 눈을 허옇게 뒤집어 떴다·
거인표사가 역용을 한 것도 그게 아름다운 여자였다는 것도 모자라 남궁세가의 영애이기까지 했으니 지금쯤 기절초풍할 지경일 것이다·
더불어 남궁소소는 이제 매우 위험해졌다· 남궁무룡에게 원한이 있는 화조신옹에게 자신의 신분을 노출해 버렸으니 말이다·
남궁소소가 다시 외쳤다·
“그를 죽이면 맹세코 나를 비롯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사생결단의 각오로 마지막까지 싸울 것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 죽겠지만 선배님의 발걸음을 최소 반 식경은 붙잡아 둘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 순간 십여 마리의 번견들이 또다시 컹컹 짖어댔다· 소리의 울림이 아까보다 훨씬 크고 가까워졌다·
화조신옹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능력을 발동하지 않았는데도 촌각이 한 시진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화조신옹이 말했다·
“열을 세겠다· 그때까지 내 눈에 띄는 놈이 하나라도 있다면 맹세코 머리통이 붙어 있지 못할 것이다·”
화조신옹이 가불염을 휙 던졌다· 남궁소소의 협박이 먹혔다·
표사들이 얼른 달려가 가불염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어 보였지만 어쩐 일인지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아무래도 처음 사로잡힐 때 마혈을 짚인 모양이었다· 나는 얼른 장량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얼른 사람들을 이끌고 가십시오·”
“사공자님·”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명을 받들겠습니다·”
장량기는 가불염을 번쩍 들어 말에 태웠다· 이어 뒤를 돌아보며 사람들에게 외쳤다·
“표물은 전부 버리고 사람들만 간다· 나머지 여덟 필의 말은 걸음이 느린 쟁자수들이 타고 표사들은 육검진으로 쟁자수들을 호위하며 전속력으로 숲을 빠져나간다· 실시!”
화조신옹 외에도 숲에는 위험이 한 가지 더 도사리고 있었다·
그건 무리 지어 사람을 사냥한다는 용화교의 교도들이었다·
내가 서두르라고 장량기를 다그친 것도 그 때문이다· 다행히 장량기는 내 말뜻을 충분히 알아들었다·
표사가 중간에 표물을 버리고 도망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일은 장량기에게도 그를 따르는 표사들에게도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오점을 안고 사는 것이 여섯 명의 표사들과 열두 명의 쟁자수들을 잃는 것보다 낫다·
표사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장량기가 비록 나와 대립각을 세우기는 했지만 근본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소저도 가시오·”
“저는 남겠어요·”
“도대체 당신이 왜!”
“저를 지켜 주려는 마음은 고맙지만 제가 가면 엉뚱한 사람들이 다칠 거예요· 게다가 이곳의 지리는 제가 가장 잘 알고요·”
우리를 사냥하러 온 용화교도들이 거꾸로 화조신옹에게 죽임을 당할까 걱정되는 것이다·
또한 내가 화조신옹에게 약속한 빠져나가는 길 역시 자신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는 그렇다고 쳐도 용화교도들은 죽어 마땅한 놈들인데 왜 저리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남궁소소와 나의 갈등은 간단하게 해결이 되어 버렸다·
“시끄럽다· 계집도 함께 간다· 저 년은 내가 따로 쓸 데가 있느니라· 너는 호리병에 술이나 다시 채워라·”
그러면서 화조신옹이 호리병을 내게 던졌다·
이어 그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강시들 곁으로 가더니 그중 하나를 골라 어깨에 번쩍 짊어지더니 말했다·
“가자!”
***
졸지에 화조신옹의 인질이 된 나와 남궁소소는 열심히 길잡이 노릇을 했다·
나로서는 천라지망이 가짜라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했다·
남궁소소는 남궁소소대로 용화교도들이 멋모르고 화조신옹의 앞에 나타나 개죽음 당하는 걸 막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 결과 아침이 되자 귀곡성림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한데도 화조신옹은 나와 남궁소소를 죽여 없애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길잡이 삼아 길도 없는 야산들을 달리게 했다·
사흘쯤 지났을까?
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하고 야산을 헤맸더니 남궁소소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거지가 따로 없었다·
심지어 내게선 시체 썩은 냄새까지 났다· 계속해서 강시를 업고 다녔기 때문이다·
화조신옹이 남궁소소는 따로 쓸데가 있어 체력을 아껴 두어야 한다며 강시를 일절 업지 못하도록 했다·
그 바람에 나만 개고생도 이런 개고생도 없었다·
그나마 강시가 내 반토막만한 키에 뼈다귀처럼 삐쩍 마른 노인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제가 대신 좀 업을까요?”
“됐소· 저 개같은 늙은이가 눈치채는 날엔 나를 죽이려 들 거요· 내 언젠가 저 늙은이를 반드시 잘근잘근 씹어먹어····”
“뭣들 하느냐!”
“예 갑니다· 선배님!”
여정은 계속됐다·
선하령에서 얼마나 식겁을 했는지 아니면 남궁무룡이 추적해 오고 있다는 공포 때문인지 화조신옹은 언제까지고 인적이 없는 야산들만 고집했다·
심지어 불도 못 피우고 발자국이 남을만한 습지는 근처에도 못 가게 했다·
배고프면 아직 동면에 들지 않은 뱀이며 개구리 등을 잡아 날것으로 뜯어 먹었다·
물은 계곡을 만날 때마다 뱃속에 빵빵하게 채워 넣었다·
공력이라곤 좁쌀만큼도 없었던 나는 낮에는 강시를 업고 가느라 죽어 나가고 밤에는 통나무처럼 감각이 없어진 다리를 붙잡고 추위에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그러면 남궁소소가 다가와 지금은 남녀유별을 따질 때가 아니라며 뒤에서 꼭 끌어안고 진기를 나눠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화조신옹이 잠든 틈을 타 서로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벗어날지 어떻게 화조신옹을 쓰러뜨릴지 아니면 어떻게 도망을 칠지·
우리가 세운 계획이 모래성이라면 아마도 백 번은 더 쌓고 허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계획이 완성됐다·
일체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잠행 중에도 화조신옹은 한 번씩은 꼭 외진 곳에 위치한 인가를 스쳐 갔다·
그리고 몰래 들어가 화전민들이 조상의 제사 때 쓰려고 담아 놓은 술을 표나지 않게 딱 호리병 한 병만큼만 훔쳐서 나왔다·
닷새째 되던 날 이번에도 인가를 발견한 화조신옹이 술을 훔치러 들어가려 할 때 내가 슬그머니 한 다리를 걸쳤다·
“이번엔 저도 같이 들어가면 안 되겠습니까?”
“···?”
“허구헌날 뱀과 개구리만 잡아먹는 것도 이젠 지겹습니다· 인간적으로 남은 밥이라도 좀 훔쳐 먹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흔적이라도 남길 수작이라면····”
“저를 죽이십시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우리는 어느 이름 모를 야산의 커다란 동굴에서 저녁을 맞았다·
산꼭대기로도 성에 차지 않는지 아름드리 전나무에까지 새처럼 날아올라 사방을 살피던 화조신옹이 동굴로 돌아왔다·
“불을 피워도 좋다·”
“···?”
“···?”
“이만하면 충분히 벗어난 것 같군·”
맙소사· 지금까지 무림인들이 추적해 오고 있었다 생각한 건가?
귀곡성림을 벗어난 지 꼬박 열흘이 지났는데도?
행여 생각이 바뀔세라 나는 바람에 날려 들어온 낙엽들을 쓸어모아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불을 피우고 손을 쬐자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불빛에 비친 남궁소소는 거지도 이런 상거지가 따로 없었다·
머리카락은 풀어 헤쳐져 산발이고 얼굴엔 땟국물이 줄줄 흘렀다·
‘젠장 그래도 예쁘네·’
아마도 나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시체 냄새는 몸에 배다 베다 이제는 내가 강시인지 강시가 나인지 구별이 안 될 지경이었다·
“이거 좀 삶아 먹어도 되겠습니까?”
나는 손바닥만한 개구리 세 마리를 거꾸로 들어 보였다·
낮에 계곡을 지날 때 발견해 저녁에 삶아 먹으려고 챙겨둔 것이다·
“좋을 대로·”
나는 먼저 배를 따고 내장을 전부 긁어냈다· 다음엔 미리 빗물을 받아둔 작은 솥단지에 넣고 삶기 시작했다·
반쯤 깨진 솥단지는 어젯밤 술을 훔치기 위해 들렀던 화전민 초가집에서 주운 것이었다·
그리고 부엌에서 훔쳐온 밀가루도 조금 있었다· 물이 펄펄 끓는 사이 나는 빗물에 밀가루를 개어 반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화조신옹이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다·
“무슨 짓이냐?”
“국수 만들어 먹으려고요·”
“개구리 우려낸 물로?”
“육수가 있어야 하니까요·”
“이상한 놈이로고·”
“육수라는 게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고기를 우려낸 물에 소금 넣고 간을 맞추면 훌륭한 육수가 됩니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칼 좀 빌려주십시오·”
“칼은 왜?”
“면을 잘라야죠·”
“대충 손으로 뜯어 넣어·”
“선배님은 안 드실 겁니까?”
“···!”
화조신옹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한 그릇도 안 되는 걸 누구 코에 붙인단 말이냐·”
그러면서도 품속에서 단검 한 자루를 쓱 꺼내 툭 던졌다·
황금을 정교하게 세공해 만든 손잡이 부엉이 눈깔처럼 박혀 있는 야광주까지·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저 단검은 내가 이종산을 만난 첫날 얼렁뚱땅 챙긴 바로 그 보검이었다·
한데 인질이 되어 끌려오던 날 화조신옹에게 그만 빼앗겨 버렸다·
나만 그런 게 아니어서 남궁소소도 표사용 장검과 품속에 지니고 있던 판관필까지 무기가 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빼앗겼다·
하지만 칼을 잠시만 빌려 달라고 하면 화조신옹은 귀찮은 내색을 하면서도 곧잘 빌려주었다·
사실 나와 남궁소소에게 무기가 있건 말건 화조신옹에겐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자신이 잠들었을 때 기습을 할까봐 염려되어 빼앗아 갔을 뿐·
육수가 어느 정도 우러나오자 개구리를 건져 돌판 위에 놓고 먹기 좋게 팔다리를 뚝뚝 끊어 다시 넣었다·
그런 다음 반죽한 면도 전부 썰어 넣었다·
마지막으로 훔쳐온 소금 약간과 주운 푸성귀 몇 가지를 털어 넣는 것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면이 익기를 기다렸다가 먹기만 하면 된다·
고기 냄새가 퍼지자 회가 동하는지 남궁소소가 맞은 편으로 다가와 앉았다·
“냄새가 좋군요·”
“같이 먹겠소?”
“물론이죠·”
“사양할 줄 알았는데·”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잖아요·”
“조금만 기다리시오· 금방 삶아 주겠소·”
“일부러 속이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
“남장하고 찾아간 것 말이에요·”
“속은 적 없소·”
“설마 알고 있었어요?”
남궁소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이오·”
“언제부터요?”
“그날 객잔에서 두 번째 봤을 때부터·”
“객잔에서 두 번째라면···· 혹시 백선객점에서 다른 후기지수들과 함께 있을 때 말인가요?”
“그렇소·”
“어떻게 알았죠?”
“감포초 때문에 생긴 귓불의 반점을 보고 알았소·”
“말도 안 돼· 그럼 제가 남자인 척하는 걸 보고도 계속해서 모른 척했단 말인가요?”
“그렇소·”
“왜요?”
“처음엔 이렇게까지 친해질 줄 몰랐고 나중엔 말할 기회를 놓쳤소· 그리고 먼저 속인 사람은 내가 아니라 소저이오만·”
“···!”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야 남궁소소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나도 미안하오·”
“그런데 우리 친해진 것 맞나요?”
“이렇게 볼꼴 못 볼 꼴 다 봤는데· 이 정도면 친해진 것 아닌가?”
우리는 개구리 국수가 익어가는 솥을 가운데 두고 서로의 거지 같은 얼굴을 바라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온다는 게 신기하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면이 거의 다 익었다· 나와 남궁소소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해야 할 시간이 왔다·
화조신옹은 무기가 될만한 것들은 전부 빼앗아 갔지만 한 가지만은 빼앗지 않았다·
그건 대별채의 채주에게서 받은 대나무 젓가락 통이었다· 당연하다· 젓가락은 젓가락일 뿐 무기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대나무 젓가락 끝을 통 속에 넣고서 한번 꾹 눌러 독을 듬뿍 묻혔다·
그리고 슬그머니 솥단지 옆에 내려놓았다·
어떻게든 화조신옹이 이 젓가락을 쓰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걸 위해 이 지랄을 하면서까지 국수를 말았다· 국수가 아니라면 젓가락을 쓸 일이 도저히 없었으니까·
덧붙여 반죽을 썬다는 명목으로 단검도 회수했다·
화조신옹이 이 젓가락을 사용해 마비되는 순간 재빨리 달려들어 단검으로 숨통을 끊어 놓으면 된다·
일단 아무 이상 없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인지 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남궁소소가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만든 젓가락으로 한 입 먹었다·
“어떻소?”
“개구리에서 닭고기 맛이 난다더니 사실이군요·”
나는 화조신옹을 돌아보며 무심히 툭 던지듯 물었다·
“안 드십니까?”
“네놈들이나 실컷 처먹어라·”
그러면서 화조신옹은 자리에서 쓱 일어나더니 갑자기 강시에게로 다가갔다·
이어 손가락을 매 발톱처럼 구부려 강시의 배를 쓱 그었다·
그러자 강시의 뱃가죽이 예리한 칼에 잘린 것처럼 쩍 벌어졌다·
동시에 지독한 악취와 함께 반쯤 썩은 내장이 주르륵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