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 중원을 가로지르다(7) >
마침내 도화곡의 제자 이백여 명이 도착했다·
그들은 달려오는 속도 그대로 우리 쪽 진영에 뛰어들며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녹아 들었다·
그런 다음 숨돌릴 틈도 없이 팔백 마교도들을 향해 검을 뽑아 들었다·
이막하는 내 곁으로 다가와 앞을 막아섰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외쳐 불렀다·
“장문 사저!”
“다친 곳은 없느냐?”
“보시다시피 멀쩡합니다·”
“다행히 늦지 않았구나·”
“대체 여길 어떻게 알고 오신 겁니까?”
“네가 사천성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가는 길에 혹시라도 들를지 몰라 의빈 분타에서 기다리고 있었느니라· 한데 상황이 그리 간단한 게 아님을 나중에서야 알고 급히 말을 구해 달려오는 길이다·”
“이 많은 사람들이 전부 의빈 분타로 가서 절 기다렸다고요?”
“다들 가고 싶어하는데 누군 데려가고 누군 빼고 할 수가 있어야지· 하는 수 없이 본장을 관리할 인원 백 명만 남겨둔 채 전부 데려갔더니만 결과적으로 아주 잘한 일이 되었구나·”
사천성에서 항주로 돌아가려면 의빈 분타에서 배를 타고 장강수로를 따라 동으로 흘러가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길이었다·
지금은 비룡당의 범선이 의빈까지 오는 데다 도화곡에 부탁해 분타까지 운영하게 했으니 점검도 할검 내가 의빈에 들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그녀의 말처럼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 않았는 데다 항주가 아닌 무림맹으로 향했기에 도화곡과 의빈 어느 쪽도 들러 볼 수가 없었다·
잠깐이나마 나를 보러 저 많은 사람들이 성도에서 의빈 분타까지 갔다는 말에 나는 가슴 한쪽이 짜르르 울리는 것 같았다·
아무리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교류하는 사람이 적다지만 대체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정을 주고 그리워한단 말인가·
“소제가 사천에 온 줄은 또 어떻게 아시고요?”
“사천무림이 온통 고인이 된 유성표와 그가 분실한 표물을 쫓는 천룡표국의 사형제들 얘기뿐인데 귀를 닫고 살지 않는 이상 어찌 모를 수 있겠느냐? 자세한 얘기는 차차 하자꾸나·”
그러면서 이막하는 사인교 위에 앉아 있는 삼뇌와 팔백 마교도들을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아무리 다급해도 해야 할 도리가 있다·
나는 뒤돌아 포권을 쥔 상태에서 십수 명의 팔대제자들을 향해 짧게나마 묵례를 올렸다·
그리고 모두를 아우르며 말했다·
“소제의 처지가 곤궁하여 사저들께 큰 폐를 끼치게 됐습니다·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함께 온 사질들에겐 더 말할 것도 없고요·”
“너는 지난날 우릴 지켜주기 위해 백포산군과 생사결도 마다치 않았다· 그러면서 도화곡의 제자 된 도리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었지· 한데 너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우리에게는 어찌 폐를 끼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더냐?”
마흔 중반의 팔대제자 한 명이 정색하고 나를 나무랐다·
그녀는 바로 내가 의빈 분타주로 지명한 옥소군의 사부인 양모영이었다·
의빈 분타엔 옥소군 외에도 그녀의 또 다른 제자들인 은옥교 서동예 구숙정도 파견되었었다·
제자들이 잔뜩 의빈 분타에 있으니 간만에 그녀들도 볼 겸 해서 함께 갔다가 여기까지 달려온 모양이었다·
“소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알면 됐다· 그리고 소군은 잘 해내고 있느니라· 우리가 타고 온 이백 필의 말도 녀석이 불과 반 시진 만에 구해주었지· 혹시라도 궁금해할지 몰라 말해 주는 것이다·”
“역시 제 눈이 틀리지 않았군요·”
내가 자신의 제자를 칭찬하자 양모영의 입가에 비로소 미소가 어렸다·
눈치를 보아하니 의빈 분타주로서 인근 상방들에 제법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옥소군이 힘을 쓴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백 필의 말을 반 시진 안에 구하려면 옥소군을 포함해 분타에 파견된 전 제자들이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다녔을 것이다·
대화를 좀 더 이어가고 싶었지만 이막하의 말처럼 지금은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막하가 먼저 삼뇌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난 사천성 성도에 위치한 도화곡의 당대 곡주 이막하라고 합니다· 귀하는 천마성교의 마지막 군사인 삼뇌 뇌천자이시지요?”
“대별산 깊은 골짜기에 예사롭지 않은 검맥이 존재하는 줄은 일찍이 알고 있었지· 그래 오랜 은거를 깨고 바깥세상에 나온 소회가 어떠시오?”
“이 몸이 천마성교의 노군사와 나눌 이야기는 한 가지밖에 없는 것 같군요· 천룡표국의 비룡당주 풍운비룡 이정룡은 본곡의 팔대제자이자 나의 아끼는 사제입니다· 그를 죽이는 것은 곧 도화곡 전체를 상대로 사생결단의 싸움을 걸어오는 것임을 곡주로서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이쯤에서 물러가 달라?”
“부탁이 아니라 경고를 드리는 것입니다·”
“고작 이백 명으로 그나마 제대로 살인도 해본 적 없는 강호초출들을 데리고 하나하나가 전부 살인마들인 본교의 마병들을 감당할 수 있겠소?”
“도화곡의 제자들은 모두 들으라!”
이막하가 갑자기 산천초목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일갈을 터뜨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 지난 가을 만났을 때보다 공력이 훨씬 깊어진 것 같았다·
“전투가 벌어지면 한 명도 예외 없이 사인교 위에 앉아 있는 저 노마두의 목숨을 노려라· 옆에서 사형제가 쓰러져도 돌아보지 마라· 살아 돌아갈 생각도 하지 마라· 오늘 우리는 여기서 저들과 함께 죽는다!”
“존명!”
이백의 도화곡 제자들이 천지가 떠나가도록 외쳤다·
그러면서 어금니를 깨물고 눈알을 부라렸으며 자신들의 팔목만큼이나 가느다란 협봉검을 힘껏 꼬나 쥐었다·
그들의 모습 어디에서도 지난 날 도화곡을 떠나며 새로운 세상과 만나길 두려워 하던 강호초출들의 모습 따윈 없었다·
이막하의 말처럼 정말로 여기서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 결사항전의 의지가 읽혔다·
도화곡 제자들의 기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대단하자 삼뇌는 살짝 당황한 듯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아직도 그에게는 두 배를 훌쩍 넘기는 대병력이 있었다·
삼뇌는 이막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보았느냐? 한때 십만교도를 거느리고 천하무림을 질타하던 우리가 고작 이백 명 남짓한 시골 문파에게까지 협박을 당하고 있다· 너의 대(代)에서는 결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삼뇌의 바로 옆에서 네 명의 수하들과 함께 호위하듯 서 있던 연소교가 고개까지 숙여가며 한 대답이었다·
“갈 길이 멀다· 그만 정리하거라·”
“제가 말인가요?”
“너의 솜씨를 보고 싶구나·”
“명을 거행하겠습니다!”
대화를 끝낸 연소교가 천천히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그녀가 뭐라고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팔백 마교도의 진영에서 벌떼 같은 기세가 일어났다·
“도화곡의 제자들은 멸살구곡대진을 펼쳐라!”
이막하의 명령에 따라 도화곡의 제자 이백 명이 쏜살처럼 길을 벗어나 양옆의 들판으로 퍼졌다·
열 명으로 백 명을 잡고 백 명으로 천 명을 막아낸다는 도화곡의 절진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천룡표국의 표사들은 육검진을 펼쳐라!”
내 명령에 따라 백칠십여 명에 달하는 천룡표국의 표사들도 해남파의 장문인과 그 일행을 가운데 놓고 여섯 방위를 점하며 에워쌌다·
공격적인 형세의 멸살구곡대진과 달리 천룡표국의 육검진은 방어적인 형세였다·
이는 표국의 검진인 만큼 상대를 죽이기보다 표물을 지키는데 특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쯤엔 연소교의 입에서도 일갈이 터져 나왔다·
“십방천하결계대진(十方天下結界大陣)을 펼쳐라!”
이름만 들어도 오싹한 한기가 느껴졌다·
동시에 마교도 진영의 후방으로부터 요사스러운 복장을 한 열 명의 술법사들이 좌우로 파편처럼 튀어 나갔다·
이어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요령을 힘차게 흔들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주문을 웅얼웅얼 외워대기 시작했다·
땡그렁-!
땡그렁-!
땡그렁-!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요령 소리와 함께 주변의 들판이 갑자기 안개로 자욱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안개는 다른 곳은 다 놔두고 도화곡의 제자들과 천룡표국의 표사들이 검진을 펼치고 있는 곳으로만 스멀스믈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사람들을 휘감았다·
적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을 때는 수성을 하는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희생을 줄일 수 있다·
한데 이런 식이면 작전을 바꾸어 공격적으로 나가지 않을 수가 없다·
이대로 있다가는 싸워 보기도 전에 안개에 갇혀 허우적대다 몰살을 당할 것이기에·
이 안개는 도화곡의 제자들과 천룡표국의 표사들이 펼친 검진을 와해시키고 앞으로 불러내기 위한 수법이었다·
사인교 위에서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삼뇌가 보였다·
그때 어디선가 가공할 속도로 커지는 파공성이 들려왔다·
쒜애애액!
파공성을 인지하는 순간 안개 너머의 오른쪽 들판에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요령 소리 하나가 뚝 그쳤다·
‘퍽!’ 하는 소리는 세 번을 더 연달아 울렸고 그때마다 요령 소리가 하나씩 사라졌다·
마교도의 진영에서 목구멍이 찢어지도록 외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적이다!”
“동쪽이다!”
“술법사들을 지켜라!”
자욱하던 안개가 빠르게 사라졌다·
사라진 안개 너머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네 명의 술법사들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들판에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이어 동쪽 들판에서 화살 한 대가 대기를 찢으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왔다·
쒜애애액!
화살은 지금 막 술법사의 앞을 막아서는 마교도의 머리통을 관통하고 뒤이어 술법사의 머리통마저 관통해 버렸다·
퍼퍽!
잠깐 사이 익숙해진 소리와 함께 이름 모를 마교도와 다섯 번째 술법사가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쓰러져 즉사해 버렸다·
‘이 무슨 엄청난 속도란 말인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술법사들은 각각 십여 명의 마교도들에게 둘러싸였음에도 불구하고 화살을 피해 땅바닥에 덥석 엎드렸다·
덕분에 요령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대신 오른쪽 들판으로부터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백삼십여 기의 기마인들이 말을 달려 전속력으로 질주해 오고 있었다·
선두에는 학창의를 입은 백발백염백미(白髮信)의 노도사가 자신의 키만한 대궁에 화살을 재고 있었다·
그를 알아본 이견과 삼견이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청성파다!”
“무극진인이다!”
노도사는 청성파의 장문인인 무극진인이었다·
그가 서른 명의 청성제자들과 함께 은하산장의 시비들을 전부 이끌고 달려오는 길이었다·
쒜애애액!
그 와중에도 시위를 떠난 화살이 또다시 대기를 찢으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왔다·
이번 화살은 모조리 엎어져 있는 술법사들 대신 사인교에 타고 있는 삼뇌를 정확히 노렸다·
따앙!
화살은 삼뇌가 출수한 쌍두표를 맞고 새파란 불똥을 튀기며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그러고도 힘이 전혀 죽지 않아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까지 날아갔다·
팔백 마교도들은 크게 당황해했다·
천룡표국의 표사들도 앞서 이막하가 도화곡의 제자들을 이끌고 나타날 때처럼 환호성을 지르지는 않았다·
엄격히 말해 지금 우리는 저들로부터 대응왕을 빼앗아 달아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무극진인을 필두로 한 청성파의 제자들과 은하산장의 시비들이 전부 도착했다·
그들은 천마성교의 잔당들과 우리가 대치한 오른쪽 들판의 한 구역을 장악하며 멈춰 섰다·
무극진인이 마상에서 다섯 대의 화살을 쏘아 같은 숫자의 술법사들을 쓰러뜨리면서 확보한 공간이었다·
천룡표국의 표사들과 도화곡의 제자들은 본능적으로 그들을 경계했다·
마교도들과 청성파의 제자들 모두를 향해 비스듬히 돌아서며 검진을 펼친 것이다·
말을 멈춰 세운 무극진인은 우리 쪽 진영의 사람들을 한차례 쓰윽 쓸어보았다·
이어 내 옆에 있던 남궁소소에게서 시선을 멈추며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다친 곳은 없느냐?”
“걱정해주신 덕분에 소녀는 무사합니다· 장문인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같은 무림맹 소속의 장로이자 남궁세가주인 뇌검 남궁유룡을 생각해 특별히 남궁소소의 안전부터 챙기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남궁소소는 일파의 장문인이자 맹의 장로를 대하는 예를 정중히 갖추어 대답했다·
무극진인은 이어 나를 보면서도 말했다·
“우리 사이의 계산은 잠시 미뤄 두도록 하자꾸나·”
“장문진인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무극진인은 그제야 사인교 위에 붉어진 얼굴로 앉아 있는 삼뇌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북해의 얼음물을 길어다 뿌리는 것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오래도 사시는구려·”
“피차일반이외다·”
“재밌는 장난을 치고 계시더이다?”
“이미 알고 계신 듯하니 에둘러 말할 필요가 없겠구려· 보은패의 소명은 후인된 도리로 사조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것· 저기 천룡표국 표사들의 수중에 이 몸이 원하는 물건과 장문인께서 원하시는 물건이 함께 있소이다· 각자가 필요한 것들을 챙겨 조용히 떠나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마구니들이 백주에 수백 명씩 떼를 지어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좌시하지 못할 일인데 감히 전대의 인연들을 이용해 구대문파에게 도발해오다니· 정녕 실낱같이 남아 있는 교맥조차 끊어지고 싶은 것이오?”
“아무래도 상생을 도모할 생각은 없으신 듯하구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수하들을 이끌고 조용히 떠나시오· 더불어 사천성을 벗어날 때까지 더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마시오· 하면 뒤를 쫓지는 않을 것인즉·”
“모두 합쳐도 고작 오백이외다· 장문진인께서 문내의 고수들을 이끌고 나타나셨다고는 하나 그렇게 일방적으로 엄포를 놓으실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소이다만·”
그때 삼뇌가 팔백 마교도들을 이끌고 나타난 뒤쪽 언덕 모퉁이로부터 또다시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한 무리의 기마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선두에는 세 명의 늙은 여승과 건장한 체격을 가진 서른 줄의 미공자 한 명이 나란히 말을 탄 채 달려오고 있었다·
다시 그들의 뒤에는 젊은 여승 삼십여 명과 붉은 단삼을 입은 용같고 범같은 사내 일백 명이 뒤따르는 중이었다·
미공자의 바로 뒤쪽 허공에는 붉은색 바탕에 ‘무적당문(無敵唐門)’이라고 쓰인 깃발이 언젠가 보았던 풍경처럼 펄럭였다·
“아미파다!”
“사천당문이다!”
“복호삼승의 사태들께서 아미이십칠교를 이끌고 오셨다!”
“추혼탈명 당군룡 대협께서 당문의 고수들을 이끌고 오셨다!”
어처구니없게도 천룡표국의 표사들 중에는 저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방금의 터질 것 같은 고함들은 강룡당과 복룡당과 묵룡당에서 고용한 사천성 출신의 객원표사들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추혼탈명 당군룡은 도화곡을 성도로 옮길 당시 한차례 도움을 받았던 사내로 현 당문주인 독왕(毒王) 당유고의 아들이자 당군백의 오라비였다·
잠시 후 코앞까지 달려온 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팔백 마교도들이 포진한 뒤쪽의 길목을 막고 섰다·
무극진인이 나타났을 때 어쩌면 아미파의 고수들도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당군룡이 당문의 고수를 일백 명씩이나 이끌고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돌아가는 분위기로 미루어 무극진인과 복호삼승과 당군룡은 이미 서로 공동전선을 펼치자고 얘기가 된 것 같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되자 팔백 마교도들을 가운데 두고 동서남북의 네 방위 중 동남북의 세 방향을 각각 두 곳씩의 무림문파들이 포위한 형국이 되었다·
남쪽에서는 천룡표국과 도화곡이 동쪽에서는 청성파와 은하산장의 시비들이 그리고 북쪽에서는 아미파와 사천당문이·
숫자로도 팔백여 명 대 육백여 명이니 이제 크게 밀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초절정에 이어 절정 고수들의 숫자가 훨씬 많아지면서 우리 쪽이 전력을 압도한다고도 볼 수 있었다·
비대칭 전력이라고도 볼 수 있는 천마성교의 술법사들은 역시나 비대칭 전력인 당문의 고수들이 독공을 펼쳐 모조리 시체로 만들어버리면 간단히 끝날 일이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우리 쪽 진영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반대로 이제부터는 자신들이 몰살당할 것을 걱정해야 하는 마교도들은 온몸의 털을 곤두세운 짐승처럼 긴장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무극진인이 나직히 그리고 쇳덩어리처럼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천성에는 수백 년을 이어 온 정도 문파들 간의 뿌리 깊은 결속이 있소· 중원 전역으로 보자면 구대문파 또한 마찬가지지· 귀하가 전대의 맹약을 이용해 잠시 우리를 서로 다투게 할 수는 있어도 그 단단한 결속마저 깨지는 못할 것이오·”
“최소한 오늘은 아닌 듯하구려·”
삼뇌는 이어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퇴각한다!”
삼뇌가 탄 사인교를 시작으로 팔백 마교도들이 유일한 출구인 서쪽 들판을 향해 말을 달려 도망쳤다·
연소교와 그녀의 수하들도 함께 사라져 갔다·
그 모습이 왜인지 모르게 물살에 떠밀려 가는 낙엽들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