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 골육상쟁 (10) >
석문이 닫혀버린 동굴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하지만 입구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횃불을 여덟 개나 밝힌 탓에 걷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모두 횃불을 아래로 비추어 내가 밟은 곳 외에는 절대 밟지 않도록 하시오· 도처에 기관진식이 매설되어 있어 까딱하다가는 고기 산적이 되어버리는 수가 있으니·”
대응왕이 앞서가며 한 말이었다·
자신의 실력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고수나 세력이 들이닥쳤을 때를 대비해 파놓은 비상통로인 것 같았다·
누군가 뒤를 밟아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굳이 기관진식이 없더라도 눈이 지붕 높이만큼 쌓여서 모든 걸 덮어 버렸을 테니까·
거추장스러운 건 뒤에서 추적 해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동굴 안에 살고 있던 진짜 주인들이었다·
인기척이 느껴질 때마다 박쥐떼가 찍찍거리며 날아드는 통에 횃불을 몽둥이처럼 사방으로 휘둘러 대야했다·
한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땡! 땡! 땡!
무언가 이질적인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이견이 황금대야를 휘두르며 자신에게 날아드는 박쥐들을 매우 효율적으로 때려잡고 있었다·
“그건 왜 들고 온 겁니까?”
“눈더미에 쓸려가 버리면 아깝잖나·”
“그렇다고 원래 주인에게 줄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왜?”
“놔두게·”
대응왕이 나를 말렸다·
나도 더 따질 생각이 없었다·
그냥도 빼앗는 사람들인데 주인이 버리고 도망치는 물건을 챙겼기로서니 무슨 시빗거리가 되겠나·
대응왕으로부터 소유권을 주장할 의사가 없음도 확인받았겠다·
이견은 황금대야의 화살 구멍에다 가죽끈을 끼우더니 본격적으로 어깨에 척 둘러멨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하필이면 밑창에 구멍이 나가지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며 대응왕이 내게 물었다·
“표왕의 아들이라고?”
“그렇습니다·”
“나도 소문은 들었지· 장강에 범선을 일곱 척이나 띄웠다지? 남만에서는 오랜 세월 숨겨져 있던 칠마총 중 한 곳의 보물을 전부 털어먹었고·”
“과찬의 말씀입니다·”
“칭찬으로 들리는가?”
“비난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만·”
“재밌는 친구로군· 아무튼 고맙네· 덕분에 시간을 벌었고 무사히 탈출까지 할 수 있었네· 이 신세는 꼭 갚도록 하지·”
“지금 갚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떻게 말인가?”
“아미파에 준 보은패는 어디서 나셨습니까?”
“아미파의 장문인과 똑같은 질문을 하는군·”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백칠십 년 전 전대 사조께서 해남파에 준 보은패를 사천성의 악명 높은 마두가 가지고 찾아 왔으니 얼마나 당혹스러웠겠나·
“한데 말이야· 왜 내가 유성표를 죽였을 거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 거지? 당연히 그렇게 의심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랬다면 아미파로 직접 가져가지도 않으셨겠죠· 그건 내가 유성표를 죽인 범인이라고 자백을 하는 꼴이니까요· 잘 아시겠지만 유성표에게는 친구가 많았습니다·”
“자네 부친이신 표왕도 그중 한 명이고 말이지?”
나는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런 짐승같은 자의 입에서 유성표나 표왕의 이름이 자꾸 언급되는 게 싫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나를 찾아 왔네· 하얀 여우털로 만든 호백구(孤白衰)를 입고 모자까지 쓴 사내였는데 장검을 등에 멘 일곱 명의 수하들과 함께였지· 그는 단 칠십여 초식만에 나를 꺾었네·”
사천성 백대고수이자 실제로는 오십 대 고수의 말석도 넘볼 거라는 대응왕을 단 칠십여 초식만에 제압했다고?
그 정도의 고수는 청성파를 통틀어도 일곱 명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그자가 유성표를 죽인 범인일까?
“그리고 하는 말이 이제 그만 강호를 은퇴하는 게 어떻겠느냐더군· 당연하게도 그건 권유가 아니었네·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했더니 이번엔 약속의 증표로 사천 무림에 금분세수를 천명하라지 무언가· 쳐 죽일 놈들 같으니라고!”
그때 생각이 나는지 대응왕이 어금니를 한 차례 빠드득 갈았다·
“그랬다간 금분세수를 하기도 전에 고수들에게 살해당할 거라고 했더니 문제의 그 보은패를 내게 주었네· 아미파로 가져가면 무엇이든 한 가지를 들어 줄 거라면서· 나머지는 아는 바와 같네·”
예상했던 대로였다·
대응왕은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아미파와 청성파를 싸움 붙이는 불쏘시개로 쓰였을 뿐이었다·
“처음엔 내게 원한이 있는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강제로 은퇴를 시키려 하는 줄 알았네·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한데 그 년에게도 보은패를 주어 청성파의 말코들을 부르게 했을 줄이야·”
대응왕이 말끝에 고개를 돌려 남궁소소를 힐끗 바라보았다·
젊은 여자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어 살짝 당황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얘기를 하다 보니 하룻저녁에 전부 잃어버린 백여 명의 아름다운 시비들이 생각나서 아쉬운 마음에 돌아보았던가·
“그들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호백구를 입은 사내는 젊은 미공자였는데 어쩐 일인지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었네· 나머지 일곱 명은 크고 작은놈들이 뒤섞여 있었는데 모두 죽림을 쓴 데다 털옷을 두껍게 입고 있어 정확한 용모를 가늠하기 어려웠네· 얼굴은 아예 보지도 못했고·”
십중팔구 젊은 미공자 역시 역용을 했을 것이다·
아미파의 장문인이 대응왕에게 인상착의를 물을 게 뻔한데 쉽게 자신들의 진면목을 드러냈겠나·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유성표를 죽인 것은 한 사람이 벌인 일이 아니라는 것·
그날 금사강에서 유성표와 대결한 사람은 한 명의 고수일지 몰라도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아미파의 장문인께는 그런 걸 말씀드렸습니까?”
“그럴 이유가 없지 않나· 딴소리를 할 수도 있고·”
“딴소리라뇨?”
“이를테면 내게 보은패를 훔친 것이 아니냐고 추궁한다거나·”
“혹시 그들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습니까?”
“귀신이 따로 없군·”
“그렇군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만·”
“충분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천만의 말씀·”
대화를 끝내는 순간 갑자기 동굴이 뚝 끊어지면서 커다란 물웅덩이가 나타났다·
모두가 당황해하는 와중에도 어쩐 일인지 대응왕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중간쯤 왔군·”
“이게 끝이 아니고요?”
“오래전 동굴을 파는 중 산 중턱쯤에 이르러 수맥을 건드렸네· 수평으로 파면 수압 때문에 동굴 전체가 물로 가득 찰 것 같았지· 할 수 없이 아래로 길을 냈다네·”
“하면?”
“모두 잠깐 숨을 참고 수중 동굴을 지나야 할 거요·”
말과 함께 대응왕은 횃불을 던져 버린 후 거침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연이은 돌발 상황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에라 모르겠다·”
자기가 판 굴에 자기가 죽으려고 뛰어들지는 않았을 터 삼견이 가장 먼저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독고완과 남궁소소와 엽초풍이 뒤를 이었다·
탁중로는 번견 세 마리를 데리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견이 그런 탁중로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러게 유성표의 무덤가에서 잡아먹자니까 끝까지 고집을 피우더니만· 수천 리를 힘들게 끌고 와서 한번 제대로 써먹기나 했으면 내가 말을 안 해·”
그러고는 보란 듯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라져 버렸다·
화가 잔뜩 난 탁중로는 겁에 질린 번견들의 목줄을 풀어 주었다·
이어 먼저 뛰어들더니 바로 사라지지 않고 번견들을 재촉하며 기다렸다·
“힘내· 할 수 있어!”
끙끙거리며 망설이던 번견들이 끝내 하나둘씩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내 탁중로와 함께 물속으로 사라졌다·
다음에는 점창파의 제자들이 줄을 이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단석조가 내게 물었다·
“감당할 수 있겠나?”
“무얼 말입니까?”
“은하산장에서 일천 무림인들의 질타를 보았겠지? 우리는 그렇다고 쳐도 그동안 자네를 향해 쏟아지던 강호인들의 찬사는 이제 험악한 비난으로 바뀔 걸세·”
“알고 있습니다·”
“명표가 되지 못할 수도 있고·”
“표사에게 약속을 지키고 표행을 완수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한 모자란 행동 때문에 명표가 될 수 없다면 마땅히 감당해야겠지요·”
“부디 후회 없는 선택이었으면 좋겠군·”
말과 함께 단석조도 뛰어들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일견이 내게 한마디 했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멀리 보면 사람들로부터 기대보다 비난을 받는 편이 살기에는 더 편할 걸세· 어느 순간에 이르면 모든 것이 익숙해지면서 더는 못할 게 없어지거든·”
“혹시 그거 위로입니까?”
“위로가 되었다니 다행이군·”
그러면서 일견도 뛰어들었다·
동굴을 따라 내려온 지 반 시진쯤 지났을까?
주변이 갑자기 광장처럼 넓어지는가 싶더니 또다시 앞이 가로 막혔다·
하지만 이번엔 아까와 달리 양쪽으로 새로운 동굴이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원래부터 지나가고 있던 자연 동굴의 중간을 뚫고 들어오면서 丁(정)자 모양의 갈림길이 생긴 것 같았다·
한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바닥에는 사람이 죽을 때 쓰는 목관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대응왕이 그 중 하나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사철 갈아입을 옷들과 함께 사람 머리통만한 포댓자루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포댓자루는 온통 울퉁불퉁 한 것이 딱 봐도 은전을 담아둔 자루였다·
설마하니 저 정도 크기의 포댓자루에 전부 금전이 들어 있지는 않을 테니까·
“다들 변복을 하시오· 포댓자루 속의 금전은 필요한 만큼 챙겨도 좋소이다· 다만 충고하건대 너무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길을 재촉해 오래 사는 데는 유리할 것이오·”
다른 목관에서는 각종 도검을 비롯해 정체불명의 암기들이 잔뜩 보였다·
대응왕은 다른 건 손도 대지 않았다·
다만 검은 옥병과 작은 못 두 개를 卍(만)자로 붙이고 꺾은 듯한 모양의 물건이 잔뜩 든 목함을 챙겨 행낭에 넣었다·
무림인들은 이걸 철질려(鐵葉察)라고 부른다·
누군가로부터 추적을 당할 때 나뭇잎 아래 살짝 깔아 놓으면 무공의 고하를 막론하고 발바닥을 뚫어 버릴 수 있다·
만약 맹독을 바르면 숨통도 끊어 놓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물건이었다·
대응왕은 청성파의 도사들이 쉽게 포기하지 않을 줄 알고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다·
변복을 끝낸 내가 물었다·
“여긴 어디입니까?”
“벽오산 기슭일세· 왼쪽으로 가면 아미파가 있는 남쪽 방향으로 나가고 오른쪽으로 가면 청성파가 있는 북쪽으로 나갈 수 있지· 준비가 끝났으면 다들 서두르지·”
그러면서 대응왕이 먼저 남쪽 동굴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곳엔 이미 독고완과 탁중로가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우뚝 걸음을 멈춘 대응왕의 뒷모습이 서늘했다·
그가 천천히 돌아서더니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내게 물었다·
“무슨 뜻인가?”
“우리는 아미파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갈 겁니다· 귀하도 우리와 함께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당연하게도 이건 권유가 아닙니다·”
“설마 나를 청성파에 넘겨주려는 건 아니겠지?”
“우리는 북쪽 동굴로 나간 다음 산에서 내려온 일행들과 합류해 다시 동쪽으로 갈 생각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일행들?”
“우리가 눈사태를 일으켰습니다·”
“이런 쳐죽일!”
뒤쪽에 있던 독고완과 탁중로가 동시에 대응왕을 찔러갔다·
대응왕은 일보를 벼락처럼 비켜서는 것으로 두 개의 검을 가볍게 피했다·
독고완과 탁중로도 만만치 않았다·
두 사람의 검이 급박하게 방향을 꺾으며 대응왕의 허리와 가슴을 쫓았다·
하지만 뒤에서의 기습으로도 어쩌지 못한 고수를 뒤늦게 찌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미 두 사람을 향해 돌아선 대응왕은 더는 피하지 않고 양손을 뻗어 검을 덥석 잡아 버렸다·
까캉!
대응왕 양손에는 어느새 강철로 만든 혈응조가 장착되어 있었다·
그가 양손을 앞으로 힘차게 당기면서 꺾어 버리자 두 자루의 검이 굉음을 내며 터져 나갔다·
따앙! 따앙!
대응왕은 이어 독고완과 탁중로의 가슴을 향해 쌍수를 뻗었다·
수많은 무림인들을 지옥으로 보낸 혈령탈백조(血靈奪魄爪의 한 수였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펼친 반격·
독고완과 탁중로는 화들짝 물러나는 한편 반 토막 난 장검으로 대응왕의 혈응조를 거세게 후려쳤다·
깡깡!
이번엔 혈응조에 잡혀 꺾이지도 않았는데 남은 검신이 터져 나갔다·
두 사람이 내공을 담아 내려친데다 혈응조가 평범한 강철이 아니었던 탓이다·
집요하게 따라붙은 혈응조가 두 사람의 가슴을 찢어발기려는 순간 좌우에서 대도와 단창이 대응왕의 손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머리 위에서는 검이 일도양단의 기세로 뚝 떨어졌다·
서호삼견이 각자의 성명병기를 뽑아 들고 가세한 것이다·
세 사람의 공격은 합공의 묘리를 배제하고도 앞선 두 사람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훨씬 빠르고 은밀했으며 살벌했다·
무엇보다 망설임이라는 것이 없었다·
내가 이 인간을 정말 죽여버려야겠다는 의지가 세 사람의 병기와 초식에서 선명하게 읽혔다·
하지만 살고자 하는 욕망과 분노로 가득 찬 대응왕의 혈응조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응왕은 일보를 슬쩍 옮겨 딛더니 좌수로는 칼과 창을 후려치고 우수로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검을 잡아채 갔다·
까깡! 깡!
칼과 창과 동시에 튕겨 나갔다·
이견은 혈응조에 검을 잡히는 순간 톱질하듯 힘차게 잡아당겨 내리는 것으로 부러지는 것만큼은 가까스로 피했다·
그때쯤엔 남궁소소의 협봉검이 벼락같은 기세로 대응왕을 옆구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워낙 빠른 데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날아든 일검이어서 대응왕도 결국 옆구리를 내주고 말았다·
한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절체절명의 순간 대응왕이 옆구리를 질풍처럼 튼 것이다·
협봉검은 대응왕의 털옷을 뚫고 들어간 다음 바깥으로 터져 나가며 고작 한 뼘 정도의 옷감만 잘랐을 뿐이었다·
무려 여섯 사람에 의해 시도된 세 번의 기습이 실패로 끝나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대응왕을 가운데 두고 모두가 빙 둘러 대치한 형국이 되었다·
생각했던 훨씬 고강한 대응왕의 무공에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공을 숨기고 있었어!]
[이 정도면 초절정이네!]
[우리가 당할 수도 있네!]
일견과 이견과 삼견이 차례로 내게 다급한 전음을 보내왔다·
강호의 수많은 고수들과 겨루어 본 경험으로 미루어 대응왕의 무공이 심상치 않음을 간파한 것이다·
강호의 격언에 본신실력의 삼 할을 숨기라는 말이 있다·
지금 대응왕이 딱 그런 것 같았다·
아니면 말년에 이르러 대오각성을 한 나머지 무공이 일취월장했거나·
대응왕은 대응왕대로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무극진인을 두려워한다고 내가 너희까지 두려워할쏘냐· 관도 준비되었겠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한 놈씩 모두 죽인 후 간이나 꺼내 먹어야겠다·”
남궁소소가 말했다·
“아까는 청성파에 복수하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때는 은하산장을 쓸어버린 게 청성의 말코들인 줄로만 알았지· 진짜 범인을 알았으니 여기서 너희를 죽여 복수하겠노라·”
“누가 순순히 죽어 준대요?”
“너는 특별히 살려 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하지만 백팔 명의 시비들을 대신해 나와 함께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심산유곡으로 들어가 남은 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너 정도의 미모를 지닌 아이라면 그리 손해 보는 계산은 아니지· 후후·”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자 점창오검도 나서려고 했다·
점창오검까지 나선다면 대응왕의 무공이 아무리 고명해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쪽도 서너 명쯤은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물론 내가 나서지 않았을 경우에 한해서·
“모두 물러나십시오·”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어 나를 보았다·
이어 대응왕을 무섭게 노려보는 내 눈에서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표정을 굳혔다·
내가 걱정된 나머지 누구도 선뜻 물러나지 못했다·
그때 남궁소소가 협봉검을 허공에서 한 바퀴 돌려서 검집에 회수한 후 물러났다·
그리고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들었죠? 저 마두가 내게 뭐라고 하는지· 꼭 갚아 줘요·”
뒤를 이어 독고완과 탁중로가 물러났다·
서호삼견은 잠시 나와 남궁소소를 번갈아 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얼굴로 물러났다·
그제야 대응왕이 나를 향해 천천히 돌아서며 물었다·
“네 놈의 여자였더냐?”
“나중에라도 귀하가 살 수 있는 길은 지금 나를 쓰러뜨리고 북쪽 동굴로 사라지는 것이오·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이니 숨겨둔 무공이 있다면 모두 쏟아붓는 게 좋을 거요·”
“성도에서 요설로 백포산군을 속인 후 사흘 동안이나 대치했었다는 얘기는 들었다· 하룻강아지가 산중 제왕을 상대하더니 늑대라도 된 줄 착각하는 모양이지?”
“선공을 양보하겠소·”
“버릇을 고쳐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