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 표행을 이어 받다(9) >
다급하게 외친 사람은 양홍경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엽초풍은 죽음을 각오한 듯 마지막 순간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어린 나이에 무슨 저런 어처구니없는 깡다구인가 했다·
하지만 아래를 보니 두 다리가 달달 떨리는 중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한편 비밀을 발설해버린 양홍경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었다·
문사풍의 사내가 다그치듯 물었다·
“연못 어디를 말하는 거지?”
“석등 아래에 묶어 두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풍덩 소리와 함께 누군가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물 밖으로 나온 그의 손에는 큼지막한 항아리가 들려 있었다·
문사풍 사내가 밀봉된 항아리를 떨어뜨려 깨뜨리자 와장창 소리와 함께 네모 난 목함이 나왔다·
다시 목함의 뚜껑을 열자 이번엔 촛농이 무슨 얼음 언 것처럼 가득 부어져 있었다·
촛농을 조심스럽게 제거하자 마침내 유지로 정성스럽게 싼 낡디 낡은 서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짐작조차 못 할 서책의 겉장에는 창랑삼십육검이라는 여섯 글자가 용사비등한 필체로 씌어 있 었다·
“물을 가장 멀리해야 할 검보를 물속에 숨겨 놓았으니 경내를 그렇게 몇 번이나 뒤졌어도 찾지 못할밖에·”
검보가 무사함을 확인한 다섯 명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걸 가져가 장로회의를 거쳐 새로운 장문인을 정하면 될 터였다·
누가 장문인 자리를 차지 하더라도 나머지 네 곳의 가문은 그 못지않은 것들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절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할 테니까·
양홍경과 그의 일행은 모든 걸 체념한 듯했다·
자신들이 아무리 엽초풍을 장문인으로 인정하고 옹립하면 무얼 하겠나·
고작 열 명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는 것을·
그때 비옥경이 엽초풍에게 물었다·
“검보가 아니면 유성표에게는 무얼 주었지?”
사람들의 표정이 다시 굳었다·
사대명표 중 한 명이 해남파의 무언가를 운송하려다 죽임까지 당했다·
창랑삼십육검의 검보가 아니어도 다른 엄청난 보물일 수도 있는 것이다·
비옥경이 재우쳐 물었다·
“대체 무얼 주었느냐고 묻지 않느나?”
“모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내가 불쑥 끼어들면서 한 말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향했다·
엽초풍과 양홍경 일행도 놀란 표정이 되어 나를 보았다·
문사풍의 사내가 물었다·
“귀하는 누구시외까?”
“인사가 늦었습니다· 항주의 천룡표국에서 온 이정룡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익숙한데 혹시 국주님의 장자인 이갑룡과 무슨 관계가 있소이까? 그러니까 내 말은 혈연적으로 그와 무슨 사이라도 되는지를 묻는 것이외다·”
“저의 첫째 형님이십니다·”
순간 비옥경 일당을 제외한 사백여 명의 무인들 속 곳곳에서 풍운비룡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중에 나타난 네 명의 사형제들도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앞서 비옥경도 그랬고 아무래도 호족 가문의 후계자들이다 보니 외부활동이 많아 중원무림의 소식에도 어느 정도 정통한 것 같았다·
“알고 보니 풍운비룡 소협이셨군요· 귀하의 명성은 익히 듣고 있었소이다· 이 몸은 해남파 십일대 제자 남사군이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한데 조금 전의 그 말씀은 무슨 뜻이외까?”
“진실을 알고 나면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는 뜻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모르고 지나가는 편이 나을 수도 있지요· 최소한 몰랐다고 변명은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눈치를 보아하니 소협께선 그 얘기를 우리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모양이구려· 감당을 하고 말고는 알아서 결정할 테니 아시는 바를 말씀해 주시겠소이까? 보셨다시피 이 몸의 사제들은 입이 납덩이라서 말이외다·”
“정 그러시면 수하들을 전부 물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건 정말 호의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남사군이 주변에 있던 사형제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모두가 동의를 하면서 각자의 가문에서 동원해 온 오백여 명의 무인들이 수십 장 밖으로 물러났다·
이제 연못가엔 엽초풍과 양홍경 일행 나와 내 일행 그리고 남사군을 비롯한 해남오가의 후계자 다섯만 남게 되었다·
나는 해남오가의 후계자들을 한차례 쓰윽 훑어보았다·
그리고 조금 전 엽초풍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 전설이 사실이었다고?”
“창랑삼십육검이 그 정도였을 줄이야·”
“해남파의 검법이 구대문파를 압도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군·”
비옥경과 장대한 체구의 사내와 왜소한 체구의 사내가 번갈아 한 말이었다·
그렇게 반목을 일삼던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해남파의 제자라는 게 자랑스럽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원래 이야기에 나의 개인적인 추리와 해석이 살짝 보탰다·
“구대문파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각 문파의 장로들이 모두 출동해 장강을 넘어 해남도로 돌아가려던 철검무적의 앞을 막아섰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파훼법을 가르쳐 줄 것과 이후로는 그 누구에게도 전수해 주지 않겠다고 맹세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그들이 대체 무슨 권리로!”
“신공절학이라고까지 불리는 사문의 비전검법을 꺾을 무공초식이 나타났으니 아무리 명문대파라고 한들 그냥 보내 줄 수가 없었겠지요· 만약 흑도문파 같았으면 협공을 해서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 없애버리는 편을 택했을 겁니다·”
“그래서요?”
“철검무적께서는 만약 거절한다면 살아서 장강을 넘을 수 없음을 직감했을 겁니다· 해서 지금은 그들이 원하는대로 해 주는 대신 훗날 해남파에서 원하면 무엇이든 한 가지를 들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증표로 장로들의 수결이 들어간 호패를 달라고도 했고요·”
“일종의 보은패로군요·”
“여러분의 어린 사제께서는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유성표를 통해 그 호패를 구대문파에 보내려 했습니다· 이백 년 전 가져갔던 아홉 개의 초식을 돌려 달라는 전언과 함께 말이지요·”
“그게 사실이더냐?”
내 이야기의 끝에 이르러 비옥경이 엽초풍에게 물었다·
어느새 강건한 표정으로 돌아온 엽초풍이 꼭 다문 입술로 대답했다·
“사실입니다·”
남사군이 다시 내게 물었다·
“한데 그게 왜 감당 못 할 일이 라는 거외까?”
“유성표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시기는 점창파의 장문인께 첫 번째 호패와 전언을 전달한 후 금사강을 넘어 강북으로 들어가려던 것으로 짐작되는 때에·”
“혹시 점창파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 거외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속단은 금물입니다· 하지만 점창파에서 유성표가 가져온 호패와 전언을 받고 어떻게 생각했을 지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지요·”
“아마도 발칵 뒤집혔을 거예요· 그리고 서둘러 다른 여덟 개 문파에 전서구를 날렸겠죠· 구대문파는 무림맹 내에서도 따로 회동을 가질만큼 강력한 결속력을 자랑해요· 그 소식을 전해 들은 구대문파가 어떻게 생각했을지를 짐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지요·”
불쑥 끼어들어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쏟아낸 사람은 남궁소소였다·
역시 똑똑한 여자였다·
딱 적절한 때에 끼어들어 기름을 확 들이부어 주었다·
해남오가의 후예들은 자기들끼리 혹은 나와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남궁소소를 계속해서 흘끔거리던 참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남궁소소가 말문을 트자 모두 호기심 어린 얼굴이 되었다·
남사군이 그들을 대신해서 물었다·
“소저는 누구시외까?”
“남직예의 양주에서 온 남궁소소라고 해요·”
“양주에서 남궁 성을 쓰는 곳이라면 설마····”
“남궁가주이신 남궁유룡 대협께서 저의 할아버지 되세요·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창룡검 남궁세옥이 오라버니고요·”
천하 오대세가 중 한 곳인 남궁세가는 언감생심 해남오가 따위와 비교할 곳이 아니었다·
해남오가가 해남파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뭉쳐야 비로소 어깨를 한번 견주어 볼 만했다·
하물며 뇌검 남궁유룡에 비할만한 무인은 해남오가를 탈탈 털어도 없을 것이다·
내 정체를 알았을 때보다 더 큰 술렁거림이 사방에 흘러나왔다·
심지어 내가 얼마나 유명한 표사인지를 전혀 몰랐던 엽초풍과 양홍경까지도 남궁소소를 보며 눈이 동그래졌다·
“남궁세가의 영애께서 여긴 어떻게?”
남사군이 한층 공손해진 말투로 물었다·
남궁소소는 눈으로 나를 힐끗 가리키며 말했다·
“강호의 경험도 쌓을 겸 풍운비룡을 도와 표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그는 제 오라버니 남궁세옥과 거의 의형제 간이고요·”
의형제면 의형제지 거의 의형제는 또 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남궁소소의 한마디에 나를 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다시 한번 돌변했다·
남궁소소와 같은 거물을 객표로 고용한 것이 놀라운 모양이었다·
명표를 꿈꾸는 내가 남궁소소에게 밀렸다는 게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사람들이 이번 일을 한층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남사군이 다시 내게 물었다·
“소협의 생각을 더 듣고 싶구려·”
“대륙에서 구대문파는 중원무림의 태산북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변방으로 여겼던 해남파의 검 아래 굴복했던 비사가 세상에 알려지는 걸 용납할 수 없을 겁니다· 파훼법을 돌려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점창파의 짓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구대문파 중 한 곳에서 벌인 일일 거라고는 짐작을 하고 있다는 뜻이외까?”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현재로선 그럴만한 동기를 가진 곳이 구대문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흑도의 고수일 수도 있지 않겠소이까? 사대명표 중 한 명이라면 응당 운송하는 표물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일 테니까요·”
“유성표는 강호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경공의 고수였습니다· 게다가 초절정의 검사이며 사대명표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제
아무리 흑도의 고수라고 해도 유성표를 죽이고 표물을 훔쳐 갈 만한 이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
“유성표를 죽인 고수는 무슨 이유에선지 표물만 취했을 뿐 그의 주검에 어떤 불경한 짓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짐승들이 뜯어먹지 못하도록 높은 바위 위에 올려놓고 하오문에 연락까지 해 주었습니다· 마치 주검을 수습해 주고 그의 유품을 누군가에게 전해주라는 듯· 이런 건 표물을 노린 흑도들의 행태가 아니지요·”
순간 비옥경이 돌연 추대랑을 돌아보며 물었다·
“저 말이 사실이오?”
갑작스러운 질문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까지 한몸에 받게 된 추대랑은 화들짝 놀랐다·
특히 내 눈치를 보느라 어쩔 줄을 몰라했다·
“사실이냐고 묻지 않소이까?”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한데 왜 내게 말하지 않은 것이오?”
“그땐 구대문파와 연관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들이 유성표를 죽일 이유가 없으니까요·”
비옥경을 포함해 모두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극적 효과를 위해 살짝 양념을 치기는 했지만 구대문파가 유력한 용의자라는 내 생각은 진심이었다·
그건 남궁소소와 서호삼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아까 엽초풍으로부터 철검무적과 구대문파 사이에 있었던 일화를 들었을 때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고·
한편 해남오가의 후예들은 어느새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로회의에서 누구를 해남파의 차기 장문인으로 추대하든 그는 반드시 이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해남파의 전설이자 자존심과도 같은 철검무적이 무려 삼십 년간의 수련 끝에 창안한 아홉 초식과 맞바꾼 보은패였다·
그걸 되찾든가 아니면 아홉 초식을 돌려 받든가 하지 않고서는 장문인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나는 결정타를 던졌다·
“누가 장문인이 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해남파에서 이백 년 전의 비사를 들추어내고 보은패가 등장한 이상 구대문파는 구대문파대로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게 되어버렸으니까요·”
“그들이 어떻게 나올 것 같습니까?”
“아직도 갈피를 못 잡으시는군요· 그들이 왜 그 유명한 유성표를 죽이고 그의 주검을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두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이건 경고입니다·”
내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쥐죽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
해남파의 장문인 자리를 서로 차지해 권력을 누릴 생각만 했지 그 무게에 대해서는 이정도까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문득 비옥경이 물었다·
“귀하는 어쩔 생각입니까?”
“무얼 말입니까?”
“유성표가 실패한 표행을 이어나가기 위해 표물을 회수할 거라고 말씀하지 않았던가요?”
“그건 구대문파가 관련된 줄 몰랐을 때의 얘기이지요· 우린 여기서 모든 걸 중단하고 천룡표국으로 귀환하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내 선언에 모두가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남궁소소와 서호삼견을 비롯한 내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지나친 반응이 아닐까요?”
“구대문파는 백도무림을 상징하며 협의를 목숨처럼 여기는 곳입니다· 하지만 구대문파라고 해서 모든 일을 양지에서만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일에는· 각자의 가문을 운영해 보셨으니 잘 아실 텐데요·”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왜요?”
“잠깐이면 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비옥경은 해남오가의 후계자 전부를 저 멀리 보이는 나무 아래로 데려갔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한참을 의논하더니 한 식경이 지나서야 다시 돌아왔다·
남사군과 잠시 눈을 맞춘 비옥경이 내게 말했다·
“우린 소협께서 표행을 이어주셨으면 합니다· 표물을 회수해도 좋고 초식을 모두 돌려받아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구대문파와 불필요한 분쟁을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중단 의사를 밝혔습니다만·”
“여기서 멈추시면 풍운비룡의 명성에도 크게 누가 될 것입니다· 덧붙여 복수를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유성표 대협의 억울한 죽음도 밝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궁 소저 때문입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남궁 소저가 저와 함께 표행을 가면 구대문파의 고수들이 같은 무림맹 원로인 그녀의 조부님 얼굴을 보아서라도 여러 가지 양보를 해 줄 거라 생각하는 게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솔직히 그 점을 크게 고려하긴 했습니다·”
“좋습니다·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비옥경이 평정심을 유지한 채 물었다·
“조건이 있겠지요?”
“유성표의 표행을 이으려는 것이니 그가 받지 못한 표행비를 받아야겠습니다· 금전 일천 냥입니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금전 일천 냥이라는 액수에 모두가 뜨악했다·
남궁소소와 서호삼견을 비롯한 내 일행들도 눈이 휘둥그레지기는 매한가지였다·
“그건 지나친 액수인 듯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만약 의뢰를 한다면 속히 해남파의 장문인을 결정해 함께 가도록 해 주십시오·”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유성표가 죽었으니 이제 표물을 확인하고 회수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애초에 표행을 의뢰한 표주 뿐입니다· 설마하니 구대문파를 상대로 칼싸움을 해서 표물을 빼앗아 오라는 건 아니시겠지요?”
“그건···”
“덧붙여 구대문파의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전대 장문인이신 남해일검의 뒤를 이어 해남파의 장문인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신물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입니다·”
“···!”
“아무래도 제가 너무 어려운 주문을 했나 보군요· 그럼 이만·”
모두를 향해 짧게 포권지례를 올린 나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이어 독고완이 끌고 온 말에 훌쩍 올라탔다·
남궁소소와 서호삼견을 비롯한 다른 일행들도 전부 말에 올라 떠날 준비를 했다·
비옥경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소협 잠시만 시간을!”
“금전 일천 냥에 이어 해남파의 장문인을 정하는 것까지· 여러분끼리 이 자리에서 결정할 수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해구의 마가반점에 우리가 투숙하는 여곽을 말해 놓을 테니 모레 아침까지 연락을 주십시오· 소식이 없으면 조건이 맞지 않는 줄 알고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알아낼 건 다 알아냈다·
만약 저들이 내 조건에 응한다면 그건 덤이다·
나는 미련 없이 말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