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 표행을 이어 받다(4) >
대륙 어느 곳이나 강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곳의 지명은 십중팔구 하구 아니면 해구였다·
강의 입구 혹은 바다의 입구라는 말만큼 해당 지역의 특징을 직관적으로 말해주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섬 중앙의 오지산(五指山)에서 발원한 물이 해남도의 절반을 가로질러 북쪽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곳의 지명도 해구였다·
해구는 해남도를 통틀어 가장 큰 항구도시였다· 대륙에서 온 배들은 모두 이곳에 닿고 대륙으로 가려는 배들 또한 전부 이곳에서 출발했다·
따뜻한 날씨 야자수를 비롯한 온갖 열대목들 갖가지 복장과 용모를 한 이민족들까지·
해구의 이국적인 분위기에 취한 우리는 주변을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며 시내로 향했다·
범선에서 말 여덟 필을 내렸지만 도시도 붐비고 주변도 살필 겸 해서 일부러 고삐를 끌고 걸었다·
결정적으로 현재로선 말을 달려서 가야 할 만큼 딱히 정해진 목적지가 없었다·
어느 순간 나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걷던 일견이 불쑥 말했다·
“해구는 여전히 역동적이군·”
“해남도에 와 본 적 있으십니까?”
“십 년쯤 전인가?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해남도로 들어왔다가 한 달 정도 머물다 돌아간 적이 있었네·”
“배신자요?”
“방의 전재산을 훔쳐 달아났지·”
“방의 전재산을 빼돌릴 정도면 고위직이었겠군요·”
“삼당주였네·”
“그건 지금 선배님의 직책이 아닙니까?”
“그렇네·”
“···?”
알만하다·
십 년 전 일견은 배신자를 처단한 후 그의 자리를 방주로부터 물려받은 모양이었다·
아마도 상대는 밧줄에 묶인 채 산채로 바다에 던져 졌을 것이다·
친하게 지내다 보니 서호삼견이 무자비한 흑도들이라는 걸 나도 모르게 자꾸 깜빡깜빡한다·
“아무튼 그때 해남도에 머무는 동안 아주 재밌는 풍경을 보았는데 한번 들어 볼 텐가?”
“공짜인가요?”
”오며가며 만나는 해남도의 무림인들 중 앞니 빠진 고수들이 유난히 많더군· 특히 흑도의 영수급 인물들은 거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처음엔 해남도의 수질이 안 좋아서 그런가 했네· 한데 그렇다고 하기엔 양민들은 너무 멀쩡하더란 말이지·“
“누군가에게 맞았군요·”
“역시 눈치가 빠르군· 정확하게는 어떤 수법에 당한 것이었네· 해남 무림의 사정에 정통한 이에게 연유를 물었더니 모두 특정한 문파의 검법에 당한 흔적이라고 하더군·”
“권법이 아니고요?”
“분명 검법이라고 했네·”
“검법에 당했다면 외팔이가 되거나 얼굴에 칼자국을 새기거나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앞니가 몽땅 빠졌다니 이상하기 짝이 없군요·”
“바로 거기서 그 검법의 독특함이 나오는 것이지· 그 문파는 해남파(海南派)였고 검법의 이름은 창랑삼십육검(治浪三十六劍)일세·”
해남파는 오지산 여모봉 기슭에 자리 잡은 해남도 제일의 검도명문이었다·
대륙에는 상리를 벗어나 빠르고 기이하며 신비스러운 검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중 특징적인 것 몇 가지가 좌수검을 규칙으로 한다든지 검날을 사선으로 기울여서 휘두른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원인은 창랑삼십육검에 있는 해암번랑(海廢離浪)이라는 절초 때문인데 해남파의 제자가 이 초식을 펼치면 바위에 부딪힌 파도 마냥 갑자기 튀어 올라서는 검 손잡이 아래의 뭉툭한 부분 즉 검두로 인중을 찍는다고 하네· 그러면 상대는 앞니가 몽땅 나가버리는 것이지·”
검두는 그럴듯한 명칭과 달리 그냥 쇠뭉치였다·
그걸로 인중을 찍는다는 것은 곧 망치로 인중을 찍는 것과 같다·
나도 모르게 한 손으로 인중을 어루만졌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언제부턴가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며 따라오던 남궁소소 탁중로 독고완 호리독사도 덩달아 자신들의 인중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나마 앞니가 터져 나간 자들은 운이 좋은 편이네· 그 바람에 충격을 흡수해 목숨은 건졌으니까· 반 촌 차이로 좀 더 위쪽의 정확히 급소를 맞은 자들은 죄다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하더군·”
“무시무시하군요·”
“혹여라도 앞니가 몽땅 빠진 무림인을 만나면 해남파의 제자에게 당한 거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을 걸세· 더불어 한때는 해남파의 제자에게 맞설 정도로 기백이 있는 자라는 것도 알아두어 나쁠 건 없겠지·”
“해남파가 이곳에 뿌리를 내린지 수백 년이 흘렀을 텐데도 불구하고 감히 맞서는 자들이 그렇게 많았다고요? 이건 마치 양주의 흑도들이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상대로 깝죽거리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닙니까·”
“근 몇십 년간 해남파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큰 내분이 생기는 바람에 갑자기 파다하게 퍼진 현상이라고 들었네· 그때가 벌써 십 년 전이니 지금은 또 어떨지 모르지·”
“일단 뭐라도 좀 먹세·”
“쓴 걸로 목도 좀 축이고·”
이견과 삼견이 불쑥 끼어들면서 한 말이었다·
일견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주루와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을 지나고 있었다·
사방에서 낯선 음식 냄새가 콧속을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그렇게 하시죠·”
모두 말을 멈추고 적당한 반점을 찾아 주변을 살폈다·
순간 도검을 찬 한무리의 무림인들이 말을 타고 나타났다·
숫자는 대략 이십여 명 하나같이 험상궂은 얼굴을 한데다 주변 사람들까지 슬슬 피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흑도의 인물들처럼 보였다·
비록 올라타지는 않았지만 우리 역시 범선에 싣고 온 말이 있었고 등이며 허리에는 각자의 병장기들을 패용한 상태였다·
대륙에서 온 것이 분명한 낯선 무림인들의 등장에 해남도의 토박이 무림인들은 곱지 않은 눈길로 한참을 훑으며 지나갔다·
“대륙에서 들어온 무인들이 우리가 처음도 아닐 텐데 이거 너무 경계하는걸· 상대할 일이라도 생기는 날엔 텃세가 장난 아니겠어·”
“제가 볼 땐 경계가 아니라 경고를 하는 것 같은데요· 무슨 일 때문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말썽부리지 말고 조용히 머물다 가라는·”
이견과 삼견이 차례로 한 말이었다·
어느 쪽이든 우리를 눈여겨보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덧붙여 놈들은 날씬한 몸매에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남궁소소에게 특히 관심을 보였다·
이미 지나치고 나서도 여전히 고개를 꺾어 남궁소소를 흘끔거리는 것이다·
심지어 자기들끼리 뭐라고 속닥이면서 킥킥거리기까지 했다·
‘저 후레자식들이!’
살짝 부아가 치밀던 나는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웃을 때 앞니가 몽땅 사라진 걸 보고는 하마터면 빵 터질 뻔했다·
일견으로부터 그 얘길 듣자마자 바로 꼭 들어맞는 인물을 목격하다니·
어느새 화는 눈 녹듯 사라지고 놈이 불쌍하게까지 느껴졌다·
이는 오복 중의 하나라는 말도 있거니와 한번 빠지면 다시 나는 법이 없다·
놈은 아마 평생 고기를 먹을 때마다 남들에 비해 절반밖에 먹지 못할 것이다·
이 얼마나 불쌍한 일 인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위해 허리에 찬 왜도 마사무네를 옆으로 살짝 추스르려는 순간 남궁소소가 내 손목을 덥석 잡아 왔다·
“참아요·”
“···?”
남궁소소는 그윽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는 멀어져 가는 놈들과 남궁소소를 잠시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도갑에서 한 손을 떼며 말했다·
“운이 좋은 녀석들이군·”
“잘했어요·”
***
우리는 해남도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인 해구에서도 가장 크고 손님이 많은 반점을 수소문해 들어갔다·
한 층당 백여 평의 공간에 전체 삼층으로 이루어진 마가반점은 이미 손님들로 만원이었다·
일 층에는 칼 찬 무림인들도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아까 지나쳤던 그 앞니 빠진 자의 일당이었다·
쓸데없는 시비를 피해 삼층으로 올라간 우리는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서호삼견의 주도하에 갖가지 비싼 음식들을 잔뜩 시켜 놓은 후 나는 가장 오래되었다는 점소이를 불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마흔 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 절름발이 장년인이 허리춤의 수건에다 손을 닦으며 급하게 나타났다·
“혹시 저희 아이들이 무슨 실수라도 저질렀는지요?”
“천만에요· 다들 친절했습니다·”
“하면 무슨 일로 소인을 부르셨는지···”
장년의 점소이는 지나칠 정도로 공손했다·
괜히 책이라도 잡혀 시끄러워질까 염려하는 것이다·
이게 다 서호삼견 때문이다·
딱 봐도 연쇄살인범들 처럼 생긴 자들이 살벌한 병장기까지 휴대하고 있으니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두려워할밖에·
“몇 가지 여쭐 것이 있어 잠시 뵙자고 했으니 너무 경계하지 마십시오·”
그러면서 나는 은전 한 냥을 꺼내 그의 앞으로 쓱 밀어 놓았다·
부드럽고 정중한 어투에 이어 돈으로 기름칠까지 하자 늙은 점소이는 그제야 얼굴이 조금 펴졌다·
하지만 돈은 챙기지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먼저 질문부터 들어 보겠습니다·”
“어째서요?”
“무인의 돈은 함부로 받는 것이 아닙지요·”
“노련하시군요·”
“열다섯 살 때부터 점소이 노릇을 했습니다·”
“해남도에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살았으니 올해로 꼭 사십오 년째입니다·”
“잘 되었군요· 하면 혹시 유성표 한백경이라는 인물에 대해 들어 본 적 있으십니까? 아마도 한 달쯤 전까지 해남도에 머물렀거나 잠시 다녀갔던 것 같습니다만·”
“중원무림에서 사대명표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분이 아니십니까?”
“아시는군요·”
“이따금 저희 반점을 찾은 표사님들께서 나누시는 대화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해남도로 오셨다는 얘긴 금시초문입니다· 제가 모른다면 아마 해남도의 무림인들 대부분이 모르고 있을 겁니다·”
내가 궁금해할 지점까지 미리 추측해서 대답해준다·
사람은 제대로 고른 것 같았다·
몰라서 묻지 않는 것조차 가르쳐 주게 만드는 것·
그게 질문 몇 가지 하는 대가로 은전 한 냥이라는 거금을 내놓는 이유였다·
나는 모양이 조금 다른 은전을 하나 더 내놓았다·
죽은 유성표의 전낭에 있던 바로 그 문제의 은전이었다·
크기는 보통의 은전과 비슷했다·
다만 앞쪽에는 짐승의 발톱처럼 보이는 문양이 뒤쪽에는 합(合)자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어떻게든 유통이 된 은전이라면 가장 돈이 많이 모이고 나가는 곳에서 추적을 시작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게 바로 이곳 마가반점이었고·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장년의 점소이는 은전을 손에 들고는 동공을 좁혔다가 넓혔다가를 반복했다·
한참 후에야 그가 다시 말했다·
“어려서부터 수많은 종류의 돈을 보고 만졌지요· 특히 은전의 수명은 귀한만큼 아주 길어서 몇백 년이 지난 것일지라도 간간이 돌아 다닙니다·”
“그 말씀은?”
“하지만 이런 은전은 맹세코 처음 봅니다·”
“앞면에 발톱 모양의 문양과 뒷면의 합(合)자를 통해 유추할만한 단서는요?”
“전혀 모르겠습니다·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지요·”
“그럼 이만·”
늙은 점소이가 꾸뻑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 했다·
나는 얼른 그를 불러 세웠다·
“은전은 가져가셔야지요·”
“아무런 도움도 못 되어 드렸습니다만·”
“난 방금 해남도에서 삼십 년 동안 점소이 일을 한 사람의 경험과 식견을 산 것입니다· 비록 원하는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그랬다고 해서 귀하의 경험과 식견이 쓰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요·”
장년의 점소이는 당황한 표정으로 한동안 나를 응시했다·
그러다 허리까지 구부리며 몇 번이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후 사라졌다·
물론 은전도 챙겨서·
은전의 독특함 때문에 금방 주인을 찾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게다가 해남도에서만 삼십 년 넘게 점소이 일을 한 사람도 몰라본다면 유통이 되지 않은 은전일 확률이 매우 높다·
이게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이제 어떡한다·’
모두가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앞서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눈알이 돌아갔다·
그리고 경쟁이라도 하듯 열심히 먹어 치웠다·
이국의 낯선 음식이라 한두 개쯤은 입에 안 맞을 만도 한데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이 생선알 같은 게 뭐라고?”
“모기 눈알 요리라고 합니다·”
“대체 모기 눈알을 어떻게 모은 거지?”
“박쥐가 살고 있는 동굴에서 똥을 채집하면 그 속에 소화되지 않은 모기의 눈알들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이 게처럼 생긴 건 뭐라고?”
“게가 아니고 독거미요·”
“거미 다리에 살이 이렇게 많다고?”
“그러게 말입니다·”
“별미네· 별미야·”
이견과 삼견의 대화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남궁소소까지 이상한 음식들을 저렇게 잘 먹는 건 좀 의외였다·
대충 식사가 끝나고 아무 소득 없이 일어나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장년의 절름발이 점소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헐레벌떡 삼층으로 올라왔다·
등에는 웬 꼬부랑 노인이 업혀 있었다·
점소이는 우리가 앉아 있는 탁자로 냉큼 걸어왔다·
“아직 안 가셨군요· 다행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공 노인이라고 해남도에서 사 대째 내려오고 있는 전당포의 전대 주인이십니다· 지금은 아들이 맡아서 운영을 하고 있지요· 이분께 제가 본 은전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알 것도 같다고 하셔서 이리 업고 온 것입니다·”
나와 일견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동자를 빛냈다·
독고완이 얼른 의자를 빼주었다·
점소이가 노인을 부축해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혔다·
우리도 모두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는 맞은 편에 앉았다·
노인은 한 백 살은 되었을 것 같았다·
등은 굽어 곱사등이가 따로 없고 앞니는 두 개만 남고 몽땅 빠졌으며 얼굴의 주름은 줄줄 흘러내려 해골바가지에다 맞지 않는 가죽을 씌워 놓은 것 같았다·
거기다 얼굴을 계속해서 좌우로 흔들어댔다·
“차라리 저를 전당포로 데려가시지 그랬습니까?”
“혹시라도 헛걸음을 할까봐서 그만·”
“다시 저를 데리러 오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요·”
“어르신께서 직접 오겠다고 고집을 피우셔서요·”
“왜요?”
“핑곗김에 외출을 한 번이라도 더 하려고 그러시는 겁니다· 안 그러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계속 골방에 갇혀 지내셔야 하니까요·”
“은전을 좀 봅시다·”
노인이 불쑥 말했다·
금방이라도 숨을 쉬지 않을 것 같은 용모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만큼은 제법 정정했다·
나는 얼른 문제의 은전을 꺼내 앞으로 밀어 놓았다·
그러자 노인은 품속에서 손바닥만 한 확대경을 꺼내 은전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한데 얼굴은 얼굴대로 흔들리고 확대경은 확대경대로 쉴 새 없이 흔들려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잠깐이었지만 지켜보고 있던 우리는 답답해서 쓰러질 것 같았다·
“좀 잡아· 이놈아!”
“예 어르신·”
노인이 빽 소리를 지르자 점소이가 한 손으로는 노인의 턱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확대경 쥔 손목을 딱 잡아서는 은전 위에다 정확히 겨누어 주었다·
그제야 흔들림이 뚝 멈추었다·
노인은 점소이의 손에 의지해 한참이나 확대경을 밀었다가 당겼다가를 반복하더니 말했다·
“제전(祭錢)이로군·”
“그게 뭡니까?”
“말 그대로 제사 때 쓰기 위해 만든 돈이라는 뜻이오·”
“제사 때는 보통 지전(紙錢)을 쓰지 않나요?”
“보통은 그렇지·”
노인은 더는 말을 않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은전을 만든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며 그들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점소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경험과 식견을 사라는 뜻이었다·
나는 얼른 품속에서 일반적인 은전 하나를 꺼내 노인의 앞으로 밀어 놓았다·
하지만 노인은 계속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할 수 없이 은전을 하나 더 꺼내 원래 있던 것에다 포개어 놓았다·
그래도 여전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또요?”
“물이 아무 때나 들어오는 게 아니다 보니·”
“그 춘추에 욕심이 좀 과하신 거 아닙니까?”
“내 나이 백 살을 바라보지만 남의 주머니에서 돈 빼먹는 것보다 재밌고 보람있는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오·”
나도 모르게 속으로 수긍을 했다·
옆에서는 서호삼견까지 과연 그 말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언제까지 끌려다니고만 있을 수 없다·
한꺼번에 은전 세 냥을 더 꺼내 총 다섯 냥을 척 포개 놓으면서 말했다·
“물 들어왔다고 너무 세게 저으면 노가 부러지면서 말짱 도루묵 되는 수가 있습니다· 이 정도로 만족하시고 이제 그만 풀어 놓으시지요·”
“젊은 무사님께서 화통하시군요·”
노인은 탁자 위에다 딱 소리가 나도록 은전을 내려놓은 후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 오조룡 발톱처럼 다섯 가닥으로 뻗은 것은 오지산의 다섯 지맥을 상징하는 것이오· 이 은전은 오지산 여모봉에 있는 해남파에서 사십 년 전까지 사용하던 제전이외다·”
“해남파라고요?”
“덧붙여 한쪽 귀퉁이에 난 이빨 자국이 아직 변색되지 않을 걸 보면 최근 한 달 이내에 누군가 깨문 적이 있는 것 같고·”
더 들을 것도 없다·
은전 다섯 냥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