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 미친 놈(5) >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양 떼 같은 구름이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시원하게 비나 쏟아졌으면 좋으련만·”
그 사이 통천방주 석삼두가 달려와서 백포산군에게 칼 한 자루를 공손히 바쳤다·
백포산군이 칼을 집어 들어 아래로 축 늘어뜨리더니 내 옆으로 다가와 섰다·
이어 아직도 몸을 완전히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준비되었느냐?”
“이 빚은 꼭 갚겠습니다·”
“애뇌산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말과 함께 백포산군의 칼이 하늘로 치솟았다·
순간 왼쪽 허공으로부터 한 줄기 빛이 쇄도했다·
백포산군은 나를 베려던 칼로 왼쪽 허공을 급박하게 베어갔다·
깡!
격렬한 첫 합의 불꽃이 새파랗게 튀었다·
이어 소나기 같은 격돌이 펼쳐졌다·
까가가강! 깡깡깡!
백포산군은 흡사 불벼락처럼 쏟아지는 공세를 경시하지 못하고 다섯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한 사람이 나와 백포산군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눈으로도 쫓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검광을 뿌려대고 있는 검사는 다름 아닌 현 도화곡의 팔대 곡주 이막하였다·
여태까지 이막하 역할을 하고 있던 가짜가 아니라 폐관수련을 끝내고 막 나온 진짜 이막하였다·
한데 어쩐지 혈색이 창백했다·
주화입마를 만났을 거라는 내 짐작이 맞는 모양이었다·
다급하게 나오느라 아직 내상을 완전히 치료하지도 못한 것 같고·
갑자기 이막하가 두 명이 되자 통천방의 흑도들과 일천여 군중이 크게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막하는 기습의 이점을 이용 순식간에 백포산군과 대여섯 장의 거리를 벌려 놓은 후에야 비로소 그와 마주하고 섰다·
이어 검을 거꾸로 세워 양손으로 검파를 쥐고 이마까지 올리는 무림의 인사법 이른바 포검식의 예를 취했다·
“도화곡주 이막하입니다· 사정이 있어 잠시 고인의 눈을 속였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척무군이오· 속지 않았으니 미안해할 것 없소·”
“그러셨군요· 기왕에 기다려 주셨으니 이 몸이 오랜만에 만난 사제와 회포를 풀 수 있도록 잠시만 더 시간을 주시겠는지요?”
“아무래도 내가 한발 늦은 것 같군·”
말과 함께 백포산군이 칼을 석삼두에게 휙 던졌다· 내 팔을 자를 의사가 없음을 표시한 것이다·
이막하는 백포산군에게 가볍게 고개 숙여 다시 한번 예를 표했다·
이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표물을 내게 주거라·”
“곡주님····”
“어서!”
내가 비무첩을 이막하에게 주면 약속대로 표물 운송의 임무를 무사히 마친 게 된다·
그러면 백포산군이 내 팔을 자를 명분도 없어진다·
하지만 내가 표물을 건네주는 순간 그녀가 백포산군과 생사대결을 펼쳐야 한다·
말 그대로 어느 한쪽이 죽어야만 끝나는 싸움· 당연히 죽는 쪽은 이막하가 될 것이다·
백포산군이 순순히 칼을 버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내 팔을 포기하는 대신 이막하의 목숨을 가져갈 수 있으니까·
아니면 처음부터 이막하를 끌어내기 위해 나를 제물로 삼았거나·
가슴 속에서 격랑이 몰아치면서 갑작스러운 복통이 찾아왔다·
나도 모르게 잠깐 얼굴을 찌푸렸다·
“고통스럽느냐?”
“끄떡없습니다·”
“대별산에서 너를 처음 만나던 때가 생각나는구나· 그때만 해도 우리가 이런 인연으로 살아가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었지·”
“···?”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네가 우리에게 보여준 헌신과 의리를 나는 죽어서도 잊지 않을 것이다·”
“저도 도화곡의 제자입니다·”
“물론이다· 너는 누가 뭐래도 도화곡의 팔대 제자이고 나의 자랑스러운 사제이다· 하니 이제 그만 이 곡주 사저의 뜻을 따르거라· 이건 부탁이 아니다·”
이막하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이미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져 버렸다·
나는 납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백포산군에게 맞은 장법의 여파로 뱃속이 출렁거렸다·
아마도 검은 피가 한 바가지는 더 고여 있을 것이다·
뒤돌아 가서 행낭을 짊어진 다음 천룡표국과 이정룡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수 놓인 표기를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천천히 이막하에게로 걸어갔다·
내가 한 걸음을 더 옮길 때마다 이막하의 수명은 그만큼 짧아졌다·
도화곡의 구대제자들은 벌써부터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걸음을 멈추었을 때 나는 표기를 바닥에 힘차게 꽂았다·
그리고 이레 전 바로 이 자리에서 백포산군이 직접 휘갈겨 써준 생사대결의 비무첩을 공손하게 건넸다·
“항주 천룡표국의 표사 이정룡 표주 백포산군 척무군으로부터 받은 표물을 도화곡주 이막하 대협께 전달합니다· 이에 대협께서는 표물을 받으시고 표첩에 수결을 부탁드립니다·”
이막하가 먼저 비무첩을 받아 들고는 내가 내민 또 다른 종이와 세필을 집어다 정성 들여 수결해 주었다·
나는 표첩을 받아들고 품속에 갈무리했다·
무림사를 통틀어 유례가 없는 최단 거리를 최장 시간에 걸려 운송한 나의 표행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표행이 끝나자 남궁소소와 섭부용이 통천방의 흑도들을 피해 칠검향의 고수들을 이끌고 나는 듯 달려왔다·
이어 들것에 나를 태워 도화곡의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그사이 이막하와 백포산군은 장원 앞 공터로 자리를 옮겨 살벌하게 대치하는 중이었다·
이막하는 협봉검을 뽑아 들었고 백포산군은 적수공권인 채로 뒷짐을 지고 섰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십여 장· 하지만 누구든 공격을 시작하는 그 즉시 거리는 의미가 없어지고 대기는 가공할 살기로 가득 찰 것이다·
“두려워서 숨은 줄 알았더니만 내상을 치료 중이셨구려·”
“도화곡의 문기를 너무 우습게 보셨군요·”
“짐작하다시피 도화곡의 전대 곡주에게 죽임을 당한 내 제자의 원혼을 달래러 왔소이다· 이에 현 곡주께 오늘의 승부가 단순한 비무가 아님을 미리 경고하는 바이오·”
“고인께서 말씀하신 전대 곡주는 저의 스승이십니다· 제자는 스승의 은원도 함께 물려받는 법· 기꺼이 상대해 드리지요·”
“그만한 기백이면 내가 선공을 해도 되겠군·”
“준비되면 오시지요!”
말과 함께 이막하게 한 발을 빼며 비스듬히 섰다·
하늘을 향해 비스듬히 세운 협봉검의 검신이 강렬한 투기를 감지하고 징징 울어댔다·
그 순간 파리한 혈색의 이막하는 온데간데없고 한 자루 보검으로 돌변한 고수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비록 파훼법을 찾는 데는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이막하는 예전에 내가 알던 오대장로의 한 명이 아니었다·
더욱 강해지고 꼿꼿해졌다·
일문을 이끌 위엄을 갖춘 진짜 곡주였다·
“갈!”
일갈과 함께 백포산군이 신형을 쏘았다·
번쩍하며 이막하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살짝 뛰어오른 후 좌방에서 우방으로 바뀌었다·
반격의 방향을 바꾸어 바둑 수를 내다보듯 상대가 계산해 놓은 첫 대여섯 합을 무용지물로 만들려는 수법이었다·
한데 그런 안배가 무색하게 불과 일장 여의 거리를 남겨두고 백포산군의 격공장이 작렬했다·
뻐엉!
구경꾼의 시각에서 본 백포산군의 격공장은 직접 상대할 때와는 또 달랐다·
대기가 물결처럼 출렁이는가 싶더니 항아리만한 무형의 구체가 이막하를 향해 죽일 듯이 덮쳐갔다·
이막하는 한 걸음 뒤로 솟구치며 허공을 두 번 질풍처럼 베었다·
검신에 어리는 새파란 기운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무형의 구체가 ‘쩌적!’ 소리와 함께 터지듯 흩어져 버렸다·
흩어진 와중에도 남은 경력의 기세가 이막하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을 찢어버릴 것처럼 잡고 흔들어 댔다·
이막하는 그 여진을 뚫고 들어가며 전광석화와 같은 검초를 펼쳤다·
이능력을 발동했는데도 불구하고 어찌나 빠르고 강맹한지 흡사 그녀의 손에서 한 줄기 빛 덩어리가 뿜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검기가 따로 없군!‘
그녀의 검 끝이 백포산군의 목을 꿰뚫으려는 순간 대상이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막하의 검은 헛되이 허공을 찌를 뿐이었다·
단지 헛수고로만 끝나지 않았다·
대경실색한 이막하는 허리를 산뜻하게 비틀면서 몸을 허공에 띄웠다·
도약을 위해 미처 무릎을 굽힐 수 없는 상태에서 펼친 절묘한 한 수!
순간 왼쪽에서 유령처럼 나타나 떨친 백포산군의 장력이 허공에서 몸을 뒤집은 이막하의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터져 나갔다·
뻐엉!
십여 장을 쏘아지면서 두 배로 커진 무형의 구체는 공터 가장자리에 서서 구경하고 있던 통천방 흑도들을 덮쳤다·
막강한 경력을 감당하지 못한 흑도 다섯 명이 거대한 철퇴에라도 맞은 것처럼 뻥뻥 나가떨어졌다·
아마 몸을 일으키는 순간 입으로 피를 왈칵 쏟아낼 것이다·
그 사이 백포산군의 장법과 이막하는 살인적인 검초는 더욱 강렬하게 격돌하면서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뻥! 찌익! 뻐벙! 찌직찍!
가공할 장력으로 뭉쳐진 구체가 이막하를 덮치고 당장에라도 검기를 뽑아낼 것 같은 이막하의 협봉검이 그 구체를 난도질하는 식의 격돌이 공터의 이곳저곳을 종횡무진 옮겨가며 쉬지 않고 이어졌다·
도화곡의 제자들도 통천방의 흑도들도 저 멀리 대로에서 손에 땀을 쥐며 구경하고 있는 군중도 모두 입이 쩍 벌어졌다·
천하십대고수의 한 명인 백포산군을 상대로 강호 무림에서는 이름조차 생소한 도화곡의 젊은 여곡주가 이렇게까지 잘 싸울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건 이막하의 무공 수준이 대단해서라기보다 그녀가 익힌 천금풍과 도화비검의 조화가 만들어 내는 공능에 기인한 측면이 컸다·
모든 초식이 살초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착각할 만큼 빠르고 잔인하고 살벌한 도화비검의 공세 앞에 천하의 백포산군도 공격을 퍼붓다 말고 몇 번이나 물러나곤 했다·
일견하기에는 거의 동수를 이루며 무시무시한 공방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막하는 점점 보법이 흔들리고 검 끝이 떨려갔다·
자신이 끌어 올리고 뽑아낼 수 있는 수준의 내공과 검초를 이미 넘어선 것이다·
반면 백포산군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내가 펼친 귀영무의 보법과 십초박을 관찰했던 것처럼 이막하의 천금풍과 도화비검을 관찰하고 있었다·
이미 사대장로들을 상대로 견식을 했을 텐데도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천하십대고수의 반열에 오른 괴수답게 낯선 무공에 관한 관심과 열정이 남달랐다·
“살검이로군!”
마침내 백포산군이 결론을 내렸다·
그 순간 ‘따앙!’ 하는 굉음과 함께 은빛 물체 하나가 허공으로 끝도 없이 날아갔다·
세 걸음을 재빨리 물러나는 이막하의 한 손에는 손잡이 바로 위에서부터 터져 나가버린 협봉검이 들려 있었다·
검수가 검을 잃어버렸으니 사실상의 승부가 끝난 셈이었다·
더욱이 이막하의 숨소리는 백 리를 쉬지 않고 달려온 사람의 그것처럼 거칠었다·
무려 백오십여 초식만의 일이었다·
“훌륭한 검법이었소·”
“귀하의 장법이야 말로·”
“곡주나 나나 갈 길이 멀구려·”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될까요?”
“···?”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 법· 오늘 이 싸움에서 누군가가 죽는다면 그의 목숨을 취하는 것만으로 도화곡과 애뇌산 문하의 은원을 매듭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막하는 지금 이 싸움을 단순한 백포산군의 복수행으로 보지 않았다·
두 무맥의 끝없는 보복전의 시작으로 보고 있었다·
오늘 당장에야 자신이 죽겠지만 훗날 도화곡의 제자가 반드시 백포산군을 찾아가 문파의 원수를 처단하지 않겠나·
백포산군이 죽고 없다면 그의 제자가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리고 다시 먼 훗날에는 누가 될지 모르는 도화곡의 제자가 값을 치르고 또 백포산군의 후예가 치르고····
하지만 자신의 목숨만 취하고 장원을 불 질러 없애버리겠다는 말을 거두어 준다면 훗날 도화곡의 제자들이 당신이나 당신의 후예들을 찾아가는 일이 없을 거라는 게 이막하가 하려는 말의 요지였다·
좌중이 크게 술렁였다·
무언가 비장한 기류가 흐르는 것이 지금까지의 술렁임과는 달랐다·
백포산군은 한참이나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내가 수락한들 존장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한 도화곡의 어린 제자들이 귀하의 높은 뜻과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구려·”
“우리 쪽에서는 이 사람의 사제가 책임질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막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도화곡의 구대제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나를 지목함으로써 강력한 전언을 내리는 것이다·
백포산군이 나를 보았다·
믿어도 좋을지 묻는 것이다·
내가 말했다·
“도화곡 팔대제자 이정룡 곡주 사저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백포산군은 흡족한 표정이 되어 이막하를 향해 돌아섰다· 이어 대기가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좋소이다· 귀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감사합니다·”
“이제 그만 가실 시간이오!”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백포산군이 다시 신형을 쏘았다·
이막하도 잘려나간 검을 던져 버리고 권법으로 맞서 싸울 자세를 취했다·
순간 서너 장의 거리를 남겨두고 질주하던 백포산군의 얼굴이 갑자기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굳어졌다·
대경실색한 그는 지축이 흔들리도록 진각을 밟았다·
꿍!
이어 질풍처럼 돌아서며 아무도 없는 허공 향해 맹렬한 격공장을 난사했다·
뻐벙!뻥뻥뻥뻥!
그와 동시에 허공에서는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시퍼런 벼락이 백포산군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지는 중이었다·
꾸르릉 꽝꽝꽝꽝!
하늘에서는 번갯불이 우박처럼 떨어졌고 땅에서는 가공할 장력에 쉬지 않고 솟구쳤다·
그제야 땅과 벽과 허공을 박차며 휙휙 날아다니는 사람 모양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벼락은 그림자의 손에 들린 장검이 토해내는 것이었다·
꾸르르릉 꽝꽝꽝!
장력과 벼락이 뒤섞여 울리던 굉음은 순식간에 휘몰아치는 벼락의 소리로만 바뀌었다·
대기에 구멍이라도 뚫리는 것처럼 떵떵 울리는 굉음에 내공이 약한 사람들은 손으로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이윽고 백포산군은 벼락의 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려 십여 장이나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가 이렇게까지 속수무책으로 물러나는 걸 본 적 없는 사람들은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이윽고 벼락 치는 소리가 멈추더니 커다란 방갓을 쓴 작은 체구의 한 사람이 천천히 땅 위로 내려섰다·
정확히 이막하와 백포산군의 사이였다·
마치 처음부터 두 사람의 싸움을 중단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처럼·
백포산군이 방갓의 괴인을 보며 어느 때 보다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솜씨가 하나도 녹슬지 않았구려!”
“귀하의 장법도 여전히 쓸만하군!”
용두장검을 든 괴인이 한 손가락으로 천천히 방갓의 끄트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밤하늘의 별을 빼다 박아 놓은 것처럼 형형한 눈빛을 지닌 은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보는 순간 남궁소소가 기절초풍할 것처럼 놀라면서 목구멍을 쥐어짰다·
“하 할아버지!”
순간 장내의 모든 숨소리가 한꺼번에 사라지면서 심연같은 정적이 찾아왔다·
정적은 정적이되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정적이었다·
사람의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대기만 터질 것처럼 요동치는 가운데 뇌검 남궁유룡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남궁소소와 섭부용의 호위를 받으며 팔자 좋게 들것에 누워 싸움 구경 중인 나를 발견하고는 물었다·
“얼굴이 왜 그 모양이더냐?”
“백포산군 선배님께 가르침을 좀 받았습니다·”
“방금 올라온 멍들이 아닌데?”
“오늘로 이레째입니다·”
“백포산군을 상대로 이레나 싸웠다고?”
“하루에 오십 초식씩만 주고받았습니다· 보시다시피 제가 일방적으로 좀 많이 받았지만요·”
“살아있는 게 기적인 줄 알거라· 이 녀석아!”
“닷새면 오신다고 해서 눈이 빠져라 기다렸는데 이틀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 길을 잃으신 줄 알고 걱정했습니다·”
“내가 오지 않을까 걱정한 게 아니고?”
“반드시 오실 줄 알았습니다·”
“어째서?”
“그냥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내가 늦었다면 그건 하오문의 비둘기들이 네가 보낸 전서를 너무 늦게 전달해 준 탓이지 결코 내 다리의 힘이 딸려서가 아니니라·”
“저도 피멍이 좀 들어서 그렇지 속은 멀쩡합니다·”
“애썼다·”
“다시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