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 황금을 칼처럼 휘두르다(7) >
장년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뒤쪽으로부터 궁수 세 명이 튀어 나왔다·
순간 엽선의 선수에 서 있던 나와 선미에 걸터앉아 있던 남궁소소는 동시에 서로를 향해 신형을 쏘았다·
남궁소소는 수면 위를 나는 제비처럼 낮게 나는 그녀를 뛰어넘어 위로·
내가 선미에 두 발을 딛는 순간 남궁소소가 뱃머리를 진각으로 밟았다·
뻐엉!
나는 튕겨 올라오는 선미를 힘차게 박차며 허공을 날았다·
궁수들의 화살이 나를 따라 오르며 쏘아졌다·
이능력을 발동하고 있던 나는 체공 상태에서 화살 세 대를 잡아채서 뱃전을 향해 그대로 힘차게 뿌렸다·
촤촤촥!
뿌리긴 궁수들을 향해서 뿌렸는데 날아가긴 옆에 있는 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아직 암기술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공력만큼은 가공했던지라 세 명이 각각 목과 가슴과 어깨에 화살을 맞고 고꾸라져 버렸다·
“컥!”
“헛!”
“엇!”
그때쯤엔 나 역시도 갑판을 향해 묵직하게 떨어지는 중이었다·
시퍼런 칼날 십여 자루가 발아래에서 쇄도해왔다·
절체절명의 순간 허공에서 몸을 벼락처럼 연속적으로 세 번이나 뒤집으며 놈들이 모여든 뒤쪽으로 뚝 떨어졌다·
쿵! 소리와 함께 착지를 하는 순간 검을 뽑는 동작 그대로 가장 먼저 내 쪽을 향해 돌아서는 놈의 허벅지를 베어 버렸다·
“으악!”
시뻘건 핏물이 터져 오르는 걸 보며 그대로 돌진해 왼쪽 어깨로 놈의 가슴팍을 힘차게 밀었다·
가공할 공력을 감당하지 못한 놈과 놈의 뒤쪽에 있던 서너 명이 그대로 튕겨 나가며 배에서 떨어져 물속으로 처박혔다·
첨벙첨벙 물소리가 고요하던 호수의 정적을 깨트렸다·
숨돌릴 틈도 없이 이번엔 왼쪽에서 일도양단의 기세로 머리를 쪼개오는 두 놈의 팔목을 싹둑 잘랐다·
“으악!”
“으악!”
팔목의 잘린 단면으로 피를 뿌려대는 두 놈의 가슴을 구 성의 내공이 실린 선풍각으로 연달아 강타했다·
퍽! 퍽!
둔중한 타격음과 함께 두 놈과 두 놈의 뒤쪽에 있던 서너 명이 철퇴 맞은 고깃덩어리처럼 날아갔다·
하지만 놈들의 뒤쪽에는 호수가 아닌 불쑥 솟아오른 선루가 있었다·
덕분에 물속으로 처박히는 대신 선루와 부딪혀 내장을 진탕 당해 쓰러졌다·
그 순간 오른쪽에서 세 자루의 칼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하나는 머리를 수직으로 쪼개왔고 하나는 가슴을 수평으로 베어 왔으며 마지막 하나는 단전을 정확히 찔러왔다·
‘연수합격술!’
나는 검을 허공으로 휘둘러 위에서 떨어지는 칼을 쳐내는 한편 뒤로 한 걸음을 벼락처럼 물러났다·
덕분에 가슴을 베어오는 칼을 아슬아슬하게 흘려보낼 수 있었다·
깡!
이어 허공으로 쳐 올렸던 검으로 반원을 그려 내리며 집요하게 단전을 노리고 들어 온 칼끝을 반대 방향으로 쳐냈다·
깡!
단 한 초식만으로 두 자루의 칼을 쳐내고 한 자루의 칼을 피한 것이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나는 다시 한 걸음을 질풍처럼 내디디며 막 일 초식을 끝낸 놈들의 전권을 파고들었다·
동시에 가운데 있던 놈의 목을 죽지 않을 만큼 검으로 뚫어 버렸다·
푹!
놈의 눈과 입이 쩍 벌어지는 걸 보며 오른쪽에 있는 놈은 발로 무릎을 찍어 부러뜨리고·
쩍!
왼쪽에 있는 놈은 남은 한 손으로 귀싸대기를 후려쳤다·
퍽!
그냥 귀싸대기가 아니다·
고막을 터뜨리고 뇌를 진탕 시켜버리는 천룡표국의 권장공 박룡수의 일 장이었다·
“커헉!”
“허억!”
검에 목을 찔린 놈은 뿜어져 나오는 피를 틀어막으며 도망쳤고 다리가 부러진 놈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검을 바닥에 찍으며 한쪽 무릎을 털썩 꿇었다·
귀싸대기를 처맞은 놈은 갑자기 넋이 나간 것처럼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그대로 ‘쿵!’ 쓰러져 버렸다·
이 또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쯤엔 선미와 선수 쪽에서 당군백과 가불염이 낭인들과 격렬하게 싸우며 승선을 시작한 상태였다·
특히 당군백과 당문의 무사들이 오르는 선미 쪽 싸움이 격렬했다·
당군백이 무슨 짓을 했는지 대여섯 명의 흉수들이 바닥에 쓰러져서는 발작적인 경련과 함께 코와 입으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독공에 당한 게 틀림없다·
그에 비하면 가불염이 표사들을 이끌고 승선 중인 선수 쪽에서는 좀 더 원초적이면서 정직한 싸움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한 척의 엽선에 탄 표사 세 명이 후방에서 화살을 쏘아대며 엄호하면 그 틈을 타 다른 엽선의 표사들이 승선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엔 내가 갑판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엽선들이 누선에 붙을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면 이제는 저들이 나를 향해 집중되는 공세는 나누어 받아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뒤통수에서 지독한 살기가 느껴졌다·
뇌가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나는 다시 이능력을 발동함과 동시에 앞쪽에서 달려드는 놈의 칼과 목을 동시에 치고 베어 버리며 앞으로 한 걸음을 도망쳤다·
뒤쪽의 지독한 살기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앞쪽의 상대를 베어 버려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질풍처럼 돌아섰을 때는 톱날이 숭숭 돋은 거치도(錯齒刀) 한 자루가 무자비한 속도로 따라붙으며 내 목을 베어오고 있었다·
거치도의 뒤쪽에는 검은 두건을 쓴 장년인이 살기를 폭사하며 서 있었다·
모골이 송연해진 나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검을 휘둘러 막았다·
까가가가가강!
접검의 순간 일평생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와 함께 검의 중단에서 흡사 폭죽 터지듯 불꽃이 작렬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장검이 반 토막으로 싹둑 잘려나가고 없었다·
“이런 미친!”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한줄기 오싹한 기운이 정수리에서부터 시작해 척추를 타고 내려갔다·
나도 모르게 세 걸음을 후다닥 물러났다·
다행히 막 배에 올라타 난동을 피우듯 뛰어다니는 남궁소소를 상대하느라 뒤쪽의 흉수들은 내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아마 내게 달라붙은 자들의 시선을 끌려고 일부러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제왕검의 살초들을 마구 구사하는 것 같았다·
남궁소소가 그 와중에도 소리쳐 말했다·
“난풍파검(亂風破劍) 냉철양! 양주에 거치도를 성명병기로 쓰며 살인을 밥 먹듯 하는 낭인 고수가 한 명 있었는데 세옥 오라버니에게 일검을 맞고 소주로 튀었다고 들었어요·”
“저자가 그자란 말이오?”
“그자라면 이마에 번개 모양의 검상이 있을 거예요· 조심하세요· 오라버니 말이 저 거치도에 팔다리는 물론이고 목까지 썰려버린 무림고수가 한둘이 아니래요!”
“도움을 줘야지 겁을 주면 어쩌오!”
“세옥 오라버니는 검술도 검술이지만 보검을 들고 다녀서 그자의 거치도가 어쩌질 못했는데 당주님은 모르겠네요· 살아서 돌아가면 이참에 보검 하나 맞춰요· 돈도 많으면서·”
세옥 운운하는 말을 들은 장년인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더욱 폭사 되었다·
아주 잘 만났다면서 기왕 이렇게 된 바에 나를 죽이고 남궁소소도 죽여 버린 후 먼 곳으로 도망쳐 버리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그리고는 질풍처럼 달려들었다·
“죽엇!”
“이미 한 번 죽었어!”
나는 장년인의 얼굴을 향해 반 토막 난 장검을 냅다 던졌다·
웅혼한 내공이 실린 투척에 장년인은 감히 경시하질 못하고 토막난 검을 힘껏 쳐냈다·
깡!
그 틈을 타 전권을 벼락처럼 파고들었다·
실전의 고수답게 이번엔 장년인이 한 발을 뒤로 살짝 빼며 공간을 만든 다음 거치도를 사선으로 휘둘러 왔다·
비무장 상태인 내 상체를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왼쪽 옆구리까지 저 톱인지 칼인지 모를 물건으로 썰어버릴 심산인 것이다·
한데 내 오른손에는 이미 품속에서 뽑아 든 두 뼘 길이의 단검이 들려 있었다·
장년인의 거치도는 내 어깨를 썰기 전에 먼저 운철검부터 만나야 했다·
까가가가가강!
여지없이 굉음과 함께 작렬하는 불꽃!
그러나 이번엔 운철검이 잘려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단 일 합에 장년인의 거치도에 달려 있던 톱날 절반이 파편처럼 터져 나가 버렸다·
“이게 무슨!”
장년인의 눈동자가 튀어 나올 것처럼 커졌다·
지금 상황에선 속전속결만이 답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는 장년인을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칼 쥔 손목과 팔뚝과 위팔을 연달아 찔렀다·
푹! 푹! 푹!
이어 운철검을 장년인의 위팔에 맡겨두듯 박아 놓은 상태에서 자유로워진 두 주먹을 번갈아 난사했다·
퍽! 퍼퍼퍼퍽퍽!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만으로도 장년인의 턱뼈가 부서지고 오른쪽 어깨뼈가 터져나가며 가슴뼈 두 대가 주저앉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능력과 귀영무의 보법과 단검술을 금나술에 응용한 임기응변 그리고 십초박의 선팔초가 그야말로 소나기처럼 펼쳐진 결과였다·
“으아악!”
장년인은 지독했다· 그 와중에도 나를 떼 놓기 위해 괴성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좌장을 떨쳐왔다·
위팔에 박아둔 운철검을 재빨리 뽑아 좌장이 뻗어 오는 쪽에 살짝 갖다 댔다·
푹!
“끄헉!”
나는 장심을 뚫은 채 장년인을 뒤로 힘차게 밀어붙였다·
‘쿵!’ 소리와 함께 그의 등이 선루에 부딪히는 순간 손바닥을 꿰뚫은 운철검을 선루의 벽 위쪽에 깊숙이 박아 넣었다·
쾅!
마지막으로 도망갈 생각 따윈 아예 하지 못하도록 왼쪽 발등을 밟고 오른발로 정강이를 힘껏 걷어차 버렸다·
쩍!
시원하게 부러진 정강이로 말미암아 장년인의 몸 한쪽이 한순간 털썩 주저앉았다·
그 상태에서도 그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이빨 나간 거치도를 어떻게든 휘두르려고 했다·
“이제 그만 합시다!”
내가 빽 소리를 지르고서야 그는 비로소 의지를 꺾었다·
장년인은 이제 단검에 뚫린 왼손은 위쪽으로 하고 칼 쥔 오른손은 아래로 늘어뜨린 채 벽에 걸린 커다란 고깃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오른팔에선 세 구멍으로부터 흘러내린 시뻘건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쯤엔 당문의 무사들과 표사들 전부가 승선해 다른 낭인들과 생사결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당군백 일행이 승선한 선미쪽은 잠깐 사이에 대여섯 명이 더 쓰러져 전부 십여 명의 흑도들이 눈을 허옇게 까뒤집은 채 입과 코로 피를 쏟아내며 죽어갔다·
그 모습이 너무나 참혹해 흡사 작은 지옥도를 연상케 했다·
가만히 놔두면 배 전체를 그렇게 만들어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외쳤다·
“모두 멈춰!”
천둥같은 대갈일성에 적아를 구분할 것 없이 모두가 싸움을 뚝 그쳤다·
다시 한번 더 소리쳤다· 이번엔 내공이 아니라 오싹한 살기를 담았다·
“대가리 박아!”
마지막까지 결사 항전을 하던 아홉 명이 쭈뼛거리며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낭인도 무림인인지라 죽으면 죽었지 굴욕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 순간 누군가의 주먹이 한 사내의 턱을 벼락처럼 가격하고 지나갔다·
뻑! 소리와 함께 쓰러진 놈의 면상을 탁중로가 부숴버릴 듯 짓밟아 댔다·
그러자 남은 낭인들이 하나둘씩 무기를 버리고 엎드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아니어도 주변엔 이미 십수 명의 낭인들이 독공에 당하거나 검상을 입고 쓰러져 신음하는 중이었다·
“일영 이영 삼영!”
“존명!”
당군백의 외침에 무사 세 명이 서둘러 선루에 내걸린 선등에 불을 붙였다·
그런 다음 선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문을 부수기라도 하는 듯 쿵쿵 소리가 울리길 잠시 초췌한 몰골을 한 일곱 명의 초로인들이 무사들의 안내를 받으며 나타났다· “상노!”
“각주님!”
당군백이 달려가더니 한 명과 손을 붙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다친 곳은요?”
“모두 멀쩡합니다·”
당군백은 여섯 명의 다른 초로인들과도 일일이 손을 잡으며 재회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 사이 가불염의 지시를 받은 독고완과 탁중로가 미리 준비해온 물병을 초로인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초로인들이 굳게 다문 입술로 나와 비룡당의 표사들을 향해서도 포권지례를 해왔다·
말은 없었지만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충분히 전해졌다·
그때 무언가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았다·
남궁소소가 검은 두건의 장년인과 나를 번갈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비약적으로 성장한 내 무공을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그녀의 앞에서 이렇게까지 숨기는 것 없이 무공실력을 드러낸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이럴까봐 비격쌍뇌창은 쓰지도 않았건만·’
남궁소소는 현명한 여자였다·
보는 눈이 많은 탓인지 자신이 품은 의문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마지막까지 엽선에서 활을 쏘던 표사들이 내가 물속에 처넣은 낭인 셋을 포로로 잡아끌고 올라왔다·
그들은 처참한 모습의 장년인과 바닥에 나뒹구는 동료들을 보고 기겁을 했다·
그런 다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항복한 동료들의 옆으로 가서 조용히 머리를 박고 엎드렸다·
상황이 대충 정리되자 나는 장년인에게로 다가갔다·
숨을 쉴 때마다 그의 입에서 붉은 피가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손에는 아직도 톱날이 죄다 떨어져 나간 거치도를 든 상태였다·
거친 낭인들의 세계에서 평생을 살아온 자의 집요함과 근성이 느껴졌다·
검은 두건을 잡아당기자 이마에서 번개를 닮은 큼지막한 검흔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궁소소의 추측이 맞았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잘 생각해서 대답하시오· 피차 바쁜데 한 번씩만 묻고 한 번씩만 대답합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소?”
“····”
“한번씩만 묻자니까·”
“깨끗이 죽여라·”
푹!
장년인의 심장에 검 한 자루가 벼락처럼 박혔다·
무얼 어떻게 해볼 틈도 없었다·
난풍파검 냉철양은 그렇게 순식간에 죽어 버렸다·
검을 박아 넣은 사람은 당문의 무사였다·
나와 남궁소소는 동시에 깜짝 놀랐다·
그가 독단적으로 한 짓일 리 없었다·
분명히 당군백의 지시가 있었다·
당군백은 굳게 다문 입술로 지켜만 보았다·
당문의 무사가 머리를 박고 엎드린 십여 명의 낭인들을 쓸어보며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한 명만 살려 주겠다· 딱 한 명만· 살고 싶은 사람은 조용히 일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