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 황금을 칼처럼 휘두르다(6) >
당문의 노의원들이 납치를 당한 과정은 매우 단순했다·
그들은 저잣거리 일곱 곳에서 신분을 숨기고 가난한 병자들을 상대로 사흘째 의술을 펼치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각자가 동시다발적으로 왕진을 요청받았고 그곳으로 향하던 중 그만 감쪽같이 증발해 버렸다·
그 시각 당군백은 만나서 얘기를 해보자는 용화전장주의 요청을 받고 호위무사들과 함께 용화전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나는 비룡당의 표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인맥을 전부 동원해 흉수들을 찾도록 지시하고 부탁했다·
해질무렵 백선객점에서 다시 만난 하오문 향주 목리극은 이렇게 말했다·
“당문의 노의원들은 물론이거니와 흉수로 짐작되는 자들도 하오문의 눈이 미치는 곳에는 현재로선 없는 듯합니다·”
다급한 마음에 서쌍교방까지 찾아가서 만난 서호삼견은 이렇게 말했다·
“섭섭하다 섭섭해·”
“뭐가요?”
“힘들고 돈이 안 되는 표행을 할 때는 잘도 불러대더니만 정작 큰돈이 되는 표행을 할 때는 쏙 빼놓고 말이야·”
“남만행 때문에 그러시는 모양인데 표사들이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겨서 포상금으로 조금 주었습니다· 예전에 선배님들께도 그 정도씩은 표행비로 챙겨드린 걸로 압니다만·”
“누가 그깟 표행비 때문에 이러나· 마총의 보물 때문에 그러지· 우리가 갔으면 한몫 단단히 챙겨 나왔을 텐데·”
“그건 둘째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사실 우리를 불러줬으면 그깟 표행비 받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둘 다 시끄럽다·”
일견의 면박에 이견과 삼견이 입을 꾹 다물었다·
나를 향한 일견의 말이 이어졌다·
“한나절 내내 방도들을 전부 풀어 알아보았으나 항주의 흑도방파들 중에는 수상한 곳이 없었네· 상대는 당문의 의원들 세를 가진 곳이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긴 하지·”
“하면?”
“독보강호 하는 낭인들이 저지른 일일 공산이 크네· 그것도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동시에 이렇게 솜씨가 깔끔한 것을 보면 분명 고도의 전문가들일 것이고·”
“항주가 아무리 넓고 독보강호 하는 무인들이 많다지만 하오문과 서쌍교방의 안망에 걸리지 않으면서도 이 정도 솜씨를 지닌 전문가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겁니까?”
“외부인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가령 다른 곳에서 임무를 띠고 사나흘 전에 항주로 들어왔다거나 하는·”
“사람들을 납치해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자주 하는 일이네·”
“제가 만약 대낮에 무공을 전혀 모르는 일곱 명의 노인들을 유인해서 납치해 달라고 부탁하면 몇 명이나 동원하시겠습니까?”
“우린 무공을 모르는 양민들은 건드리지 않네· 하지만 가정을 해본다면 최소 스무 명은 동원해야겠지· 여기에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호위무사들과의 격전까지 감안하면 서른 명 정도?”
“항주에서 서른 명 정도의 칼잡이들이 일곱 명의 노인들을 데리고 있으면서도 당분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숙식을 해결할만한 곳이 어딜까요?”
“평소라면 항주의 절반이 그런 곳이겠지· 하지만 첫 번째로 흑도방파의 영역들을 제외하고 두 번째로 지금처럼 하오문도와 흑도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데도 눈에 띄지 않을만한 곳이라면 한 군데밖에 없지·”
“그곳이 어딥니까?”
“서호·”
***
나는 늙은 사공이 모는 엽선(葉船)을 타고 호수 가장자리에 둥둥 떠 있었다·
엽선은 가랑잎처럼 작고 좁고 긴 배를 말한다·
서호에서는 어부들의 고기잡이배나 나룻배는 물론 툇방 늙은이들의 낚싯배로까지 두루두루 쓰였다·
워낙 작다 보니 사공을 포함하고도 세 명 정도가 타면 꽉 차버렸다·
대신 수면에 착 달라붙어 멀리서도 잘 보이지 않고 노를 저어도 큰 소리가 나지 않으며 큰 배들보다 빠른 속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십여 척의 다른 엽선들이 도열해 있었다·
당군백이 이끄는 당문의 무사 열 명과 가불염이 이끄는 비룡당의 표사 열 명이 각 세 명씩 나뉘어 탄 엽선들이었다·
안개가 실오라기처럼 피어오르는 서호는 만월이 뜬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십여 장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안갯속에서도 각종의 배들이 밝혀 놓은 선등(船燈)은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이 시간 서호에 떠 있는 배들은 둘 중 하나였다·
고기잡이 배와 취객들의 놀잇배·
안갯속에서는 엽선들이 계속해서 나타나 내가 탄 배의 늙은 사공에게 무언가를 보고하고 사라졌다·
그들이 하는 말들은 전부 똑같이 ‘못 찾았다’였다·
그렇게 한 시진 동안 다녀간 엽선이 무려 칠십여 척이었다·
뒤쪽에 앉은 남궁소소가 내게 물었다·
“찾을 수 있을까요?”
“서호에 있다면·”
“저들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군요·”
“서호에는 칠백여 척의 엽선 나룻배가 있고 그중 삼백여 척이 서호를 백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은밀히 뒤지고 있소· 날이 밝기 전에 분명히 찾을 수 있소· 서호에 있기만 하다면·”
저들은 서호에서 나룻배의 권리를 가진 생업방회인 서호도방(西湖渡常)의 사공들이었다·
항주의 모든 방파를 통틀어 가장 많은 방도를 거느렸지만 돈벌이가 적은 밑바닥의 민초들인만큼 힘은 미약했다·
초저녁 무렵 서쌍교방을 나온 나는 곧장 서호도방의 방주 노도옹(權植氣)을 찾았다·
이어 사정을 말하고 한 시진 후 다시 돌아온 노도옹을 만났을 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사흘 전부터 낯선 사람들이 탄 누선(樓船) 한 척이 호수 위에 떠 있었다고 합니다· 선객들은 대여섯 명 정도에 불과했는데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여기저기 떠다니며 종일 낚시를 즐겼다는군요·”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평생을 호수에서 살아온 우리 같은 사람들은 척 보면 그 배의 선적량을 알 수 있습니다· 누선은 대여섯 명의 낚시객이 탄 배치고는 선체가 지나치게 많이 잠겨 있었다고 합니다·”
“그 말씀은?”
“선실에 무언가 잔뜩 실려 있는 게지요·”
그리고 지금 서호도방의 힘을 빌려 서호를 이 잡듯이 뒤지는 중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당군백은 시종일관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왠지 꼭 무언가 사고를 칠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나도 오늘에서야 남궁소소에게 들었다·
납치당한 노의원들은 당군백이 당가타(唐家均)에서 어려서부터 함께 뛰어놀던 친구이자 방계 친족이었던 이들의 아버지였다는 것을·
그때 또 한 척의 엽선이 안개를 뚫고 나타났다·
젊은 사공은 내가 탄 엽선에 서둘러 뱃머리를 붙이더니 그들의 방주 노도옹에게 말했다·
“찾았습니다!”
***
엽선은 산그늘이 길게 드리워진 곳을 앞두고 있었다·
늙은 사공의 노질이 갑자기 느리고 신중해졌다·
그와 보조를 맞추어 뒤따르던 다른 십여 척의 사공들도 노 젓는 속도를 늦추었다·
그러자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서 열 척의 엽선들만 산그늘 속으로 가만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잠시 후에는 아예 노 젓기를 중단해 버렸다·
방주가 탄 엽선이 멈추자 뒤따르던 다른 열 척도 똑같이 멈추었다·
노도옹이 모기만한 소리로 말했다·
“저희는 여기까지만 가겠습니다·”
무림인들의 일에 더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나는 조용히 금전 열 냥이 든 전낭을 내밀었다·
노도옹이 전낭을 품속에 챙겨 넣으며 말했다·
“뱃머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시면 됩니다·”
“신세는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계산이 끝나자 노도옹은 노를 내게 건네주고 곁으로 다가온 다른 엽선에 올라탔다·
젊은 사공 세 명이 각각 혼자서 타고 따라온 세 척의 엽선은 다른 엽선들의 사공들을 모두 태운 후 왔던 길을 조용히 되돌아갔다·
그 바람에 남은 열 척의 엽선들은 비룡당의 표사와 당문의 무사들이 대신 노를 젓게 되었다·
잠시 후 뿌연 안개 사이로 대형 누선 한 척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누선은 말 그대로 갑판 한가운데 선루(船樓)를 얹은 배로 전투용이나 유희를 위한 놀잇배 등으로 쓰였다·
누선과의 거리는 이십여 장 나는 뒤를 바짝 따르는 열 척의 엽선 들을 향해 수신호를 주었다·
[당문의 무사들은 선미 쪽 비룡당의 표사들은 선수 쪽 가운데 갑판은 나와 남궁소소가 맡는다· 어차피 도망갈 곳도 없으니 서두르지 말고 안전에 최선을 다할 것!]
“뭐라고 한 거예요?”
뒤에서 남궁소소가 모기만한 소리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게 비룡당에서 평소 쓰는 수신호를 주었던 모양이다·
괜찮다·
당문의 무사들도 최소한 선미 쪽을 맡으라는 것 정도는 알아들었을 테니까·
“조심하시오·”
“당주님도요·”
“나보다 앞서가지 말고·”
“당주님도요·”
“···?”
“알았어요· 조심할게요·”
“객점에서 기다리라니까 괜히 따라와서는·”
“당군백의 일인데 어떻게 그래요· 그리고 임기응변의 수완은 몰라도 솔직히 실전에서의 검술은 아직 제가 좀 더 낫지 않을까요?”
나는 무시하고 다시 앞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십여 장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갑판의 가장자리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두 놈이 보이기 시작했다·
낚시는 핑계일 뿐 망을 보는 경계병들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도 납치범들이라는 걸 확인하기 전까진 함부로 공격할 수 없었다·
공력의 차이로 한참이나 늦게 엽선들을 발견한 놈들이 깜짝 놀라서 외쳤다·
“거기 누구요?”
“그러는 당신들은 누구요?”
“밤낚시를 즐기는 선객들이오만·”
“누구 마음대로 여기서 낚시를 하는 거요?”
“낚시하는데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요?”
강태공으로 위장한 척후병은 일부러 크게 소리를 질렀다·
선실 안에 있는 동료들에게 상황을 알리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배 안에서 서너 명이 후다닥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에는 당황하고 긴장한 기색들이 역력했다·
“누군데 이밤에 떼지어 배를 모는 거요?”
건장한 체격에 검은 두건을 쓴 장년인이 나를 똑바로 쏘아보며 보며 물었다·
작은 음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십여 장 밖에 있는 사람의 고막을 징징 두들겨 대는 것이 예사 공력이 아니었다·
‘고수다!’
보통의 사람들이었다면 저 음성과 눈빛만 보고도 께름칙함을 느끼며 달아났을 것이다·
“고기는 많이 잡으셨소이까?”
“누구냐고 묻잖소·”
“무슨 사정이 있어 야밤에 선등도 밝히지 않은 채 산그늘 속에서 이렇게 낚시를 하실까? 낚싯줄에 바늘은 달려 있으려나 몰라·”
그때쯤 엽선들은 누선과 대여섯 장의 거리를 유지한 채 나란히 섰다·
각각의 엽선들에는 칼을 찬 표사와 당문의 무사들이 세 명씩 타고 있었고 언제든 내 명령이 떨어지면 곧장 누선을 향해 돌진할 기세였다·
“난 이정룡이라고 하오·”
이름을 말하는 순간 배에 탄 사람들의 얼굴에 한바탕 놀란 기색이 훑고 지나가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두건을 쓴 장년인이 체념한 듯 말했다·
“용케도 찾아왔군·”
“또한 제대로 찾아왔고·”
그때 선실 안에서 칼을 든 자들이 하나둘씩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타고난 체구의 크고 작은 차이는 있어도 하나같이 근육질에 피 냄새가 철철 흐르는 흉한들이었다·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낭인들이라는 걸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전부 서른두 명이에요·”
엽선의 선미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던 남궁소소가 목구멍을 쥐어짰다·
한 명씩 나올 때마다 숫자를 세었나 보다·
노도옹이 선실 안에 무언가 있다고 하더니 그게 전부 사람이었나 보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을 포함해 서른 명이 외부와 접촉하지 않고도 지낼 수 있도록 한동안 먹을 식량과 식수와 술통 등등이 실려 있을 것이다·
살아 있다면 어민가에 당문의 의원들도 있을 것이고·
문제는 이 작은 엽선에서 저 크고 높은 누선으로 어떻게 올라타느냐 하는 것이었다·
엽선을 옆에다 대고 기어올랐다간 한순간 무방비 상태가 되면서 목이 뎅겅 잘려나가기 딱 좋았다·
말을 하자면 이건 물 위에서 펼치는 일종의 공성전이었다·
놈들의 입장에선 수성전이었던 셈이고·
그 사이 놈들이 횃불을 십여 개 정도 밝히더니 호수 위 사방으로 던져댔다·
근처에 또 다른 지원조가 있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염려 마시오· 우리뿐이니까·”
“···?”
“서로 죽고 죽이기 전에 통성명이나 합시다· 누가 죽을지 모르지만 누구에게 죽는지는 알아야지 않겠소? 내 이름은 이미 밝혔고 저기 보이는 왼쪽은 내가 이끄는 표사들이고 오른쪽에 독기가 잔뜩 오른 사람들은 당문의 무인들이오·”
나는 다시 누선 위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들은 어디에서 온 개자식들이오? 항주의 흑도들 말이 솜씨만 보면 이 방면으로 이름이 꽤 알려진 전문가들일 거라던데·”
“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