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 황금을 칼처럼 휘두르다(5) >
다선초당의 뒤쪽으로 작은 후원이 붙어 있었다·
남궁소소는 그곳에서 이른 아침부터 한 뼘이 조금 넘는 꼬챙이로 허공을 열심히 찔러대는 중이었다·
진지한 표정이나 복잡한 발걸음의 궤적으로 미루어 무공을 수련하는 것 같았다·
꼬챙이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도 드물거니와 동작들이 매우 난해해서 나로서는 어떤 종류의 무공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기세만큼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꼬챙이를 허공에 대고 찌를 때마다 한 가닥 돌풍이 쉭쉭 불어댔다·
왠지 같은 동작을 남궁세옥이 펼쳤다면 ‘꾸릉꾸릉’하고 우레 소리가 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남궁소소는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더욱 열심히 수련에 매진했다·
그런가 하면 조금 떨어진 나무 그늘에서 칠현금 줄을 갈고 있던 매소옥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공자님!”
“오랜만이오·”
“그러게요·”
“잘 지내시오?”
“덕분에요·”
“세옥 형님은 어딜 가셨소?”
“차 상인들을 만나러 가셨어요· 저녁 때나 오실텐데·”
짧게 몇 마디를 나누고 나니 딱히 더 할 말이 없었다·
매소옥은 다선초당에 있는 여자들 셋 중 나이가 제일 어려서 그런지 숫기도 없고 조용했다·
그때쯤 남궁소소는 보법을 펼쳐 마당 끝까지 간 상태였다·
전체 초식을 이어서 수련하던 중이라 중간에 끊기가 애매해 끝까지 가려는 것 같았다·
나는 상기된 얼굴로 생글생글 웃고 있는 매소옥에게 물었다·
“언니들은 잘 대해주오?”
“물론이죠·”
“세옥 형님도 잘 대해주시고?”
“그럼요·”
“호리독사도 자주 놀러 오고?”
“당연하죠· 네?”
덫을 던져 놓고 가만히 매소옥을 살폈다·
만약 호리독사가 자주 왔었다면 얼떨결에 대답을 했어도 매소옥의 성격상 아니라고 주워 담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굴이 발개지더니 고개를 푹 떨구었다·
이 인간이 그러면 그렇지·
“최근 열흘 이내에도 왔었소?”
“그것이····”
“충분히 대답이 되었소·”
“선배님!”
익숙한 음성에 돌아보니 한껏 차려입은 당군백이 호위무사 십여 명과 함께 들어서고 있었다·
“어딜 다녀오는 모양이오·”
“볼 일이 좀 있어서요·”
“이렇게 일찍?”
“네·”
애써 씩씩한 척 하지만 대답이 짧다·
갔던 일이 무언가 잘 안 된 모양이었다·
그때 남궁소소가 마지막 동작을 막 끝내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가왔다·
이어 땀 때문에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다 윗머리에 단정하게 옮겨 붙이고는 내게 물었다·
“어때요?”
“머리카락 말이오?”
“방금 본 점혈법요·”
“그게 점혈법이었소?”
“그럼 뭐라고 생각했어요?”
“무공을 수련하는 줄은 알았지만 점혈법인 줄은 몰랐소· 기세가 예사롭지 않던데·”
“지난 삼 년 동안 고심해서 창안한 점혈법이에요· 이름은 초상지풍(草上之風) 옛 성현이 남긴 경전 중에서 한 구절을 따왔죠· 무엇의 어느 대목인지 알겠어요?”
그러면서 꼬챙이를 잠시 입에 물더니 머리카락을 묶었던 끈을 풀었다·
이어 찰랑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쫙쫙 끌어당겨다가 뒤통수 어림에서 소라 모양으로 배배 꼰 다음 입에 문 꼬챙이를 푹 찔러 고정했다·
그러자 사슴처럼 하얗고 긴 목덜미와 함께 미처 올라붙지 못하고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가닥이 귀엽게 모습을 드러냈다·
꼬챙이는 대봉잠(大風管)이었다·
대봉잠은 머리 부분에 봉황을 새겨 넣은 큰 비녀를 말한다·
남궁소소가 가진 것은 봉황의 머리에 은을 정교하게 씌우고 보석으로 눈알까지 박아 넣은 것이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 소인지덕초(小人之德草) 초상지풍(草上之風) 필언(必假)· 논어에 나오는 말로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아서 풀 위로 바람이 지나가면 풀은 반드시 쓰러진다는 뜻이오·”
“역시 알아차릴 줄 알았어요·”
“벌써부터 무공을 창안할 생각을 하다니 놀랍구려· 한데 남궁세가에는 이미 고절한 점혈 공부가 있잖소· 구태여 새로운 점혈법을 창안하려는 이유라도 있소?”
“그렇게 추켜세워 주지 않아도 돼요· 제게 그럴만한 실력이 없다는 것 잘 아니까· 다만 훗날 유가문파를 세우면 새로운 무공들도 많이 만들어야 하기에 미리 연습해보는 거예요· 무공을 창안하는 건 기존의 무공을 수련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거든요·”
“그런 이유가 있었군·”
“그래서 어땠어요?”
“충분히 멋졌소·”
“정말요?”
“그렇소·”
“어디가요?”
남궁소소는 잔뜩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군자가 덕으로써 소인들을 교화한다는 문맥도 유가문파의 성격과 딱 맞거니와 실제 초식을 펼칠 때마다 ‘쉭쉭’ 하고 돌풍까지 부니 이보다 더 절묘한 이름은 없을 것이오·”
“이름이 멋지다는 건가요?”
“그렇소·”
남궁소소는 금세 풀 죽은 모습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못 봤소· 남의 수련을 훔쳐보는 건 무림의 금기인데 내가 어떻게 주인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볼 수 있겠소·”
“봐도 괜찮은데· 다음에 제대로 보여 줄게요·”
죽어가던 남궁소소가 다시 살아났다·
당군백과 매소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이 오랜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다는 투였다·
사실 남궁소소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오래전 화조신옹에게 잡혀간 동굴 속에서 나는 그녀에게 한가지 약속을 했다·
내가 만약 회시에 급제하고 무림의 고수가 된다면 훗날 그녀가 세우는 유가문파의 속가장로가 되어 주겠다고·
속가장로에게 무공을 숨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무공을 창안한다면 또 모를까·
‘미안하다· 사실 볼만큼 봤다·’
그런데 난 왜 자꾸 남궁소소가 창안했다는 점혈법에서 남궁세옥이 펼치던 제왕검이 보이는지 모르겠다·
십중팔구 제왕검을 가져다가 베꼈지 싶다·
사실 검법과 점혈법은 급소와 혈도를 찌른다는 측면에서 매우 닮았다·
하지만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둥기둥~ 두둥·
정원 한가운데 있는 작은 누각에서 매소옥이 칠현금을 타고 있었다·
지금은 연주를 하는 시간도 아니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다 같이 차나 마시자는 남궁소소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세 분이서 오붓하게 담소를 나누시라고 고집을 피웠다·
그 바람에 다실엔 나와 남궁소소와 당군백만 앉아서 창밖의 매소옥을 바라보며 그 비싸다는 철관음을 마셨다·
“이게 뭐죠?”
“두 분의 객원표사비요·”
각자의 앞에 놓인 전낭을 열어 본 남궁소소와 당군백의 얼굴이 꽃처럼 환하게 피어났다·
금전 열 냥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하다·
인간의 욕심은 더 대단했다·
남궁소소가 말했다·
“이게 다인가요?”
무슨 문제라도?
“비룡당의 표사들에겐 포상금으로만 열 냥을 지급했다고 들었는데요· 그러니까 내 말은 원래 지급해야 할 표행비도 있어야 한다는 거죠· 보통은 객원표사비가 정규 표사비보다 몇 배로 비싸고요·”
“얼마를 원하시오?”
“한 사람당 열 냥씩만 줘요·”
“그렇게나 많이?”
“오고 가고 한 달을 풍찬노숙했어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도 넘겼고요· 우릴 데려다가 그렇게 부려먹고 금전 열 냥도 안 주려고 했어요?”
“내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니오만·”
“마총에서 오독육관을 통과할 때 군백이 없었다면 비룡당의 표사들 중 절반은 독물에 당해 죽었을걸요· 이건 인정하시죠?”
“무슨 절반씩이나·”
“그럼요?”
“많아야 다섯 정도겠지·”
“다섯 명은 죽어도 되고요?”
“···!”
아뿔싸· 당했다·
남궁소소랑 대화할 때는 호랑이에게 물려간 것처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유도기술에 말려 들어갔다·
혹시 호리독사도 처음에 이런 식으로 엮여 들어갔을까?
그럴 리 없다· 그 인간은 애써 공들일 것도 없이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술 한 병만 사 주면 만사가 끝이다·
척! 척!
나는 한 사람당 두 개씩 총 네 개의 전낭을 시원하게 내놓았다·
각각의 전낭에는 금전이 다섯 개씩 들어 있었다·
남궁소소가 내용물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분위기 봐가면서 다섯 냥씩만 내놓으려고 했네·”
“소저는 분명히 큰일을 할 것이오·”
“남만행으로 비룡당이 이번에 벌어들인 금전 십만 냥 중 일 푼은 내 몫이라는 잊으시면 안 돼요· 언제 달라고 할지 모르니까 돈은 항상 전장에 준비해 두시고요· 십만 냥의 일 푼이면 금전 일천 냥이예요·”
그러면서 자기도 떨리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말없이 듣고 있던 당군백도 잔뜩 긴장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잠깐만 십만 냥?’
남궁소소의 입에서 나온 십만 냥은 분명 호리독사에게서 들었을 것이다·
한데 십만 냥은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를 뺀 순전히 금과 은의 무게만을 달고 그걸 다시 표왕부와 나눈 액수였다·
대도 공령신투를 따라다니며 수많은 보물을 훔치고 처분하는 걸 본 호리독사가 보물의 진짜 가치를 몰랐을까?
이건 호리독사가 남궁소소에게 사기를 친 것이다·
전부 얘기하려니 자기도 양심에 찔려서?
그러면 보통은 아예 발설을 안 하지 않나?
‘이중간첩도 아니고 뭐지?’
남궁소소가 재우쳐 물었다·
“왜 대답이 없어요?”
“물론이오·”
“정말이죠?”
“남아일언 중천금이오·”
남궁소소와 당군백이 동시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곤 앞에 놓여 있는 차를 집어다 뜨거운 줄도 모르고 벌컥벌컥 마셔댔다·
금전 일천 냥도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내가 회시에 장원급제한 후 받은 상금의 열 배이며 항주에서 잘 나가는 기루 열 개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남궁소소의 입장에서는 별 생각 없이 투자 좀 했다가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게 된 상황이었다·
만약 이 사실을 남궁세옥이나 뇌검 남궁유룡이 알기라도 하는 날엔 남궁세가가 발칵 뒤집힐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백지 계약서가 있었다·
남궁소소에게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의 일 푼을 분배해 주겠다는 각서를 쓰던 날 함께 받아둔 바로 그 계약서였다·
내가 각서의 약속을 지키면 지킬수록 그녀 또한 계약서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의무감이 강해질 테니 나로서도 아주 손해는 아니었다·
본래는 어려운 표행이 생기면 백지 계약서를 내밀며 한 번쯤 부탁하려고 했었다·
한데 이제는 그런 사소한 일로 써먹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아껴두었다가 금전 백 냥 짜리 급으로 꼭 써먹어야지·’
상황이 대충 정리되자 나는 옆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당군백에게 말했다·
“의원을 내는 일로 애를 먹는다고 들었소만·”
“각오를 하고 왔는데도 쉽지가 않네요·”
“내가 좀 도와주오?”
남궁소소가 옆에서 불쑥 물었다·
“어떻게요?”
“내게 돈이 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전장의 장주들이 앞다투어 사람을 보내오고 있소· 자신들에게 돈을 맡겨달라고· 그중에는 용화전장도 있었소· 행수를 무려 다섯 번이나 보냈지·”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금전 십만 냥을 맡기겠다고 하면 신의방의 견제고 뭐고 당장에 향연루의 집문서를 가지고 달려올 걸요·”
남궁소소는 당군백을 보며 흥분해서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해·”
당군백이 원하기만 한다면 나는 정말 그렇게 해줄 용의가 있었다·
강호의 은(恩)은 계속해서 서로 주고받는 것·
도화곡을 이끌고 성도로 갔을 때 의원과 무사들을 백오십 명이나 보내 주었던 당문의 호의를 나는 잊지 않았다·
나와 남궁소소는 동시에 당군백을 보았다·
당군백은 깜짝 놀란 채로 그대로 숨을 멈추어 버렸다·
얼굴이 점점 시뻘게지는데도 불구하고 어쩐 일인지 숨을 쉬지 않고 버텼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더욱 뚫어져라 보았다·
한참만에야 당군백이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푸아!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네·”
“···?”
“···?”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왜?”
“의원의 실력이 출중하면 심산유곡에 숨어 있어도 골짜기가 미어터진다는 말이 있어요· 장소가 전부는 아닌데 번듯한 곳에 간판을 달고 싶은 마음에 제가 처음부터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을 한 것 같아요·”
“하면?”
“의원은 결국 사람들에게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해요· 가장 낮은 곳에서 항주 사람들을 만나 보아야겠어요· 동시에 다른 의원들과는 순전히 실력으로만 승부를 겨루고요·”
“가장 낮은 곳?”
“네·”
“설마····”
“당분간 강호낭중(江湖郞中)이 되어보려고요·”
낭중은 행낭 하나를 짊어지고 떠돌아다니는 의원들을 말한다·
당군백이 성도에서 함께 온 인원은 호위무사 열 명에 초로의 의원이 일곱이었다·
사천당문에서 귀밑머리가 희어지기 시작한 의원들은 명의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들었다·
그런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의술을 판다고?
그것도 순전히 실력으로만 운운하는 걸 보니 처음엔 사천당문이라는 사실도 밝히지 않은 채 환자들을 만나려는 것 같은데·
당군백은 지금 누군가의 후배나 수하가 아닌 한 무리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처음 세상에 나온 상태였다·
나는 그녀가 선택한 싸움의 방식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옆을 돌아보니 남궁소소도 나와 똑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남궁소소에게 말했다·
“응원주 한잔 사시오·”
“제가요?”
“돈도 많이 벌었잖소·”
“제가 어찌 감히 당주님 앞에서 돈 자랑을 하겠어요· 간만에 후배를 위해 비싼 곳에서 거하게 한턱 낼 기회를 드리죠· 소옥이도 그만 올라오라고 할까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깜빡하고 전낭을 안 갖고 왔소·”
“···!”
***
다선초당을 다녀온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비룡당의 표사들은 본격적인 표행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다들 경력자이기는 해도 손발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열흘 안쪽의 가까운 거리만 가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뢰는 차고 넘쳤다·
문제는 전부 단발성이라는 것이었다·
표행으로 돈을 벌려면 표사와 쟁자수들을 늘려야 하고 그러려면 결국 정기 표행들이 많아야 한다·
단발성 표행들만 믿고 무작정 표사와 쟁자수들을 늘렸다가 의뢰가 뚝 끊어지기라도 하면 망하기 딱 좋다·
첫 번째 표행단이 출발한 직후 남궁소소가 말을 타고 다급하게 비룡당으로 찾아왔다·
무언가 사달이 벌어져도 단단히 벌어진 모양이었다·
“저 좀 도와줘요·”
“무슨 일이오?”
“봉황의 목이 부러졌어요·”
“뭐가 부러졌다고?”
“이것 좀 보세요·”
그러면서 남궁소소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모가지가 뚝 부러져 나간 대봉잠이었다·
“왜 이렇게 된 거요?”
“점혈법을 수련하다가 저도 모르게 흥분한 나머지 기둥을 찔렀는데 그만 뚝 하고 부러지지 뭐예요·”
“대나무를 깎아 만든 건데 당연히 부러지지·”
“문제는 이 대봉잠이 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럼 누구 거요?”
“세옥 오라버니 거예요· 정확하게 말하면 십 년 전 오라버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을 주었던 여자가 꽂고 다녔던 물건이예요·”
“그걸 왜 하고 다닌 거요?”
“예뻐서 잠깐만 해본다는 게 그만· 오라버니가 알면 저를 당장 양주의 본가로 쫓아 보내려고 하실 거예요·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당군백이랑 경신공을 수련하다가 다루의 지붕에 구멍을 내서 혼구녕이 났었는데·”
“큰일 났네· 큰일 났어·”
“저 좀 도와줘요·”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소?”
“이걸 감쪽같이 수리하거나 똑같은 걸 만들어 줄 수 있는 비녀장을 찾아주세요· 항주는 예로부터 온갖 장인들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니 적임자가 한 명은 있을 거예요·”
“사람을 찾아달라는 의뢰라·”
“뭐 하는 거예요?”
“방금 의뢰를 하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얼만데요?”
“금전 열 냥만 받겠소·”
“뭐가 그렇게 비싸요!”
“특별 의뢰니까 그렇지· 원래 사람 찾는 일은 우리 전문분야가 아니오· 게다가 표사들은 전부 바빠서 당주인 내가 직접 나서야 하고·”
“닷 냥만해요· 처음부터 그게 목표였잖아요·”
“소저니까 특별히 봐주는 거요·”
“닷 냥에 하는 거죠?”
“알았소·”
“은전으로요·”
“그건 안 되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검의 손잡이에 이미 전낭 하나가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잘 부탁해요·”
칠순노인은 부러진 대봉잠을 눈앞에 바짝 갖다 대고 한참이나 요리조리 살폈다·
남궁소소는 입이 오리처럼 튀어 나왔다·
뭘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내가 곧장 저 노인에게로 데려왔기 때문이다·
“방 노사라고 춘절에 고향으로 가는 천룡표국의 표사들은 전부 이곳에서 어머니와 처에게 줄 비녀를 맞추오· 단언하건대 항주에서 방 노사를 따를 비녀장은 없소·”
“사기꾼·”
“원래 정보가 제일 비싸오·”
나는 방 노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당연하지· 내가 만든 건데·”
“예에?”
“네에?”
“십 년 전 복건성 바닷가에서 나는 해죽(海竹)을 잘라다가 딱 열 개만 만들었지· 흑옥을 쌀알만 하게 깎아 넣어 검은 눈알을 표현하는 이 기법은 지금도 항주에서 오직 나만 할 수 있지·”
“그럼 수리 부탁합니다·”
“한나절 후 다시 오게·”
“그런데 봉황 말고 목련 같은 거로도 조각하실 수 있습니까? 금으로 상감해 최대한 고급스럽되 요란하지 않게 하시고요· 대는 잘 부러지지 않는 물소 뿔로 만들어 주시고요·”
“비슷한 게 몇 개 있는데 한번 볼 텐가?”
“아뇨·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물건으로 만들어 주세요· 만약 부러져서 다시 수리를 하면 누가 봐도 알아차릴 만큼 복잡하게·”
“돈만 넉넉하게 준다면야·”
나는 은전 다섯 냥이 든 전낭을 ‘척!’ 하고 내밀었다·
전낭을 열어 본 방 노인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내가 물었다·
“며칠이면 되겠습니까?”
“나 나흘 아니 사흘이면 됩니다요·”
“갑자기 왜 존댓말을····”
“제가 그동안 하대를 했습니까요?”
쓰윽 돌아보니 남궁소소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손가락 끝으로 탁자를 뽁뽁 문지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요?”
“제가 뭘요?”
“큰어머니가 좋아하시려나 모르겠네·”
나는 무심한 척 한마디 툭 던져 놓고는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저만치에서 한 무리의 무인들이 지축을 울리며 말을 달려오고 있었다·
“내가 잘 아는 사람들 같은데·”
잠시 후 말이 내 앞에 멈추더니 가불염이 다급하게 뛰어내리며 말했다·
“당문의 의원들이 납치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