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 황금을 칼처럼 휘두르다(4) >
회랑을 거쳐 집무실의 문 앞에 이르렀을 때 한 무리의 호위무사들이 보였다·
숫자는 다섯 명 한 손에는 전부 검을 쥐고 있었다·
호위무사들은 나를 보더니 대충 고개를 숙여왔다·
눈빛도 도발적이거니와 나를 향한 어떤 존중의 기색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들이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건 오랜 습관이었다·
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안쪽으로부터 말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보기만 하겠다니까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곤란합니다·”
“그게 이리 단호하게 거절할 일인가요?”
“비룡당의 살림은 국주님께서 오셔도 함부로 들여다보실 수 없습니다· 그건 이미 약속을 받은 일입니다·”
“누가 보면 겁박이라도 한 줄 알겠네· 마교의 유물들을 구경해 보고 싶은 마음에 가볍게 부탁해본 것인데 손님 앞에서 날 이렇게나 면박주다니·”
“죄송합니다·”
“험험·”
나는 헛기침을 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시비를 대동한 마흔 살가량의 귀부인과 칠순 노인이 커다란 탁자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전립성은 마치 꾸중을 받는 하인처럼 한쪽에 구부정하게 시립해 있었고·
내가 들어서자 대화가 뚝 그치며 칠순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귀부인은 그대로 내 자리인 상석에 앉아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큰어머님을 뵙습니다·”
귀부인은 이병룡의 친모인 청화부인이었다·
“주인도 없는 방을 객들이 차지하고 있었구나·”
“별 말씀을요·”
“이해해 주어 고맙구나·”
침실도 아니고 이 정도야 웃으며 넘길 수 있다·
아닌 말로 곽석산이 저렇게 찾아와 앉아 있으면 반색을 했을 것이다·
짧은 대화를 끝으로 청화부인은 나와 칠순노인을 번갈아 볼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내가 저 노인에게 인사를 올릴 때까지 기다리려는 모양이었다·
노인은 허옇게 센 눈썹과 그 아래 자리 잡은 눈동자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더불어 어떤 상대에게도 쉽게 굽히지 않을 것 같은 당당함이 있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저 노인네를 본 적이 없었다·
눈치 빠른 전립성이 옆에서 얼른 한마디 거들었다·
“석 대행수께서 국주님을 뵙고 가시는 길에 잠깐 들리셨다고 합니다·”
석 대행수라는 호칭과 함께 청화부인이 대동했다는 사실에서 나는 칠순노인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렸다·
그는 만금전장의 대행수 석대광이었다·
별호는 섭혼금도(攝魂金刀)·
대륙의 스물아홉 개 도시에 분타를 거느린 거대 전장의 대행수 답게 그는 어지간한 상방의 방주들보다 더 큰 힘을 자랑했다·
다녀가는 길에 잠깐 들르긴 개뿔· 음모의 냄새가 철철 났다·
어찌 되었건 큰 어머니의 외가에서 온 사람이었다 게다가 연배도 나보다 훨씬 많았다·
나는 늦게나마 공손한 태도로 예의를 갖췄다·
“대행수님을 뵙습니다·”
“갑자기 찾아뵈어 실례가 많습니다·”
“별 말씀을요·”
“전 장궤께서도 앉으시지요·”
나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서 전립성에게도 앉을 것을 권했다·
그러자 전립성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천룡표국의 혈족들이 만나는 탁자에 함께 앉을 수 있는 장궤는 천룡표국을 통틀어 손지백이 유일했다·
청화부인과 석대광도 의아한 얼굴을 했다·
“무얼 하십니까?”
“알겠습니다·”
전립성이 마지 못한 듯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이종산에게 손지백과 곽석산이 있는 것처럼 내게는 전립성과 가불염이 있었다·
나는 전립성이 비룡당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청화부인에게 똑똑히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야 다음부터는 조금 전처럼 함부로 대하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또 하나· 만금전장의 대행수가 비룡당으로 와서 탁자의 한쪽을 차지하고 앉았는데 정작 비룡당의 장궤가 명령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서 있는 건 용납할 수가 없었다·
내 뜻을 짐작한 듯 석대광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는 젊은 당주의 치기쯤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걸음을 주셨는지요?”
“너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잠시 짬을 내었느니라· 늦었지만 네 형을 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주어 정말 고맙구나· 이건 진심이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청화부인이 눈짓을 하자 옆에 서 있던 시비가 비단 보자기로 싼 목함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전립성이 눈빛으로 내 허락을 얻은 후 조심스럽게 비단 보자기를 풀고 목함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수령을 짐작할 수 없는 산삼 세 뿌리가 들어 있었다·
“삼백 년 된 장백삼이다· 천목신의(天目神醫)의 말이 오랜 표행으로 지친 몸의 원기를 북돋우는데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더구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이건 저보다 장독(杖毒)으로 고생하시는 병룡 형님께 더 필요한 약인 것 같습니다·”
“어른이 주는 것이니 받거라·”
장독 즉 매를 심하게 맞아서 생긴 독이라는 말에 청화부인의 눈까풀이 금세 파르르 떨렸다·
나는 청화부인을 구태여 자극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이쯤에서 물러났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국주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나는 이번 기회에 너희 두 형제가 지난날은 잊고 잘 지냈으면 한다· 나 또한 너를 친아들처럼 여길 것이다·”
“감사합니다·”
“처음엔 너에게 괘씸한 마음도 적지 않았다· 만금전장에서 찾아낸 장보도가 모든 일의 발단이 되어 너와 천룡표국에 억만금의 이익을 가져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병룡만 저리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너는 병룡의 부족함이 자처한 일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래 나도 그 점이 가장 큰 원인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너희 둘은 손을 잡아야만 한다· 너에겐 뛰어난 수완이 있고 병룡에겐 든든한 외가가 있으니 말이다·”
얘기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할 말이야 많지만 나는 이종산을 생각해서라도 꾹 참았다·
“다른 당들과 달리 비룡당에는 단발성 의뢰만 넘쳐날 뿐 정기표행의 의뢰가 들어오지 않는 이유를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짐작하고 있습니다·”
“갑룡과 을룡의 외가 사람들이 연일 드나들고 있다· 너와 비룡당에 대한 견제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가장 아픈 곳을 찌른다·
그녀의 말처럼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십 년까지 계약을 맺는 정기표행이 단 한 건도 없다는 건 비룡당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당을 키우려면 무조건 큰 규모의 정기표행을 따내야 한다·
그러려면 거상이나 대농장 등과 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이런 곳들은 이갑룡과 을룡과 병룡의 외가에서 꽉 잡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만금전장이 산서상인들의 정기표행을 받도록 알선해 준다면 단숨에 강룡당과 복룡당을 찍어 누를 수가 있다·
“대신 너도 형의 체면을 조금 살려 주려무나·”
“무슨 말씀이신지요?”
“국주님께서 네 형의 당주직을 박탈한것은 하마터면 표국에 큰 손해를 끼칠 뻔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일벌백계로 삼기 위함이다·”
딱 여기까지만 하면 토를 달 것도 없이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표국은 손해를 본 것이 없고 오히려 유례없이 큰 이득을 보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렇게 된 것에는 네 형의 공로 역시 크다는 것을 너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해서 네가 그 점을 부각해 주었으면 한다· 하면 사람들이 달리 볼 것이고 국주님께도 네 형을 복권시킬 명분이 생기지 않겠느냐?”
“어떻게 말입니까?”
“네가 빚진 마음에 남만행으로 벌어들인 모든 돈을 병룡 형님의 외가인 만금전장에 맡기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어차피 너도 믿고 맡길만한 전장이 필요하니 이는 서로가 좋은 일일 것이다·”
나는 그제야 청화부인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전장은 자기 돈 백 냥을 가지고 천 냥의 금력을 휘두르는 곳이다·
전장에서 굴리는 돈의 구 할은 남의 돈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남이란 당연히 전장에 돈을 맡겨 둔 사람 즉 전주(錢主)들을 말한다·
한마디로 만금전장에서 내 돈을 유치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한데 내 돈을 탐낸 것은 비단 만금전장 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열흘 동안에만 무려 쉰 곳이 넘는 전장의 장주들이 사람을 보내와 나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그러나 모조리 거절했다·
돈이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아직 정확한 투자처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로서는 구태여 서두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어차피 물건들을 전부 처분하려면 한두 달 안에 끝날 것 같지도 않고요·”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을 했었지· 한데 대행수께서 아주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더구나· 아무래도 네가 직접 들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바쁘신 와중에도 구태여 내가 이리로 모셨느니라·”
청화부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석대광이 입을 열었다·
“남만에서 가져온 보물을 전부 만금전장에 위탁해 주시는 겁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표물을 감정하는 장궤들에게 보물을 감정하고 처분하라는 건 대장장이들에게 밀가루 떡을 치라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나와 전립성은 깜짝 놀랐다·
석대광은 토끼처럼 놀란 우리 두 사람을 보고도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가볍게 웃기까지 하는 여유를 보였다·
“보물을 통째로 만금전장에 맡기라고요?”
“안전을 위해서라도 보물은 이곳 천룡표국에 두는 것이 좋겠지요· 대신 계약서만 작성해 주시면 저를 비롯해 만금전장에서 고용한 전문가들이 상시 비룡당을 출입하며 보물을 하나씩 처분하겠습니다·”
“지금도 보물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중입니다· 저희로서는 구태여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냇가에 굴러다니는 백 냥짜리 수석(水石)도 임자를 만나면 천 냥짜리가 되는 것입니다· 보물의 처분은 결국 임자를 찾는 지난한 작업이지요· 만금전장에 맡겨 주시면 대륙의 스물아홉 개 도시에서 성업 중인 분타와 그 인맥을 최대한 동원 최고의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물론 차액의 일부는 만금전장 몫으로 주셔야 하고요·”
어찌나 당당하게 말을 하는지 나는 내가 부탁을 하는 처지인 줄 알고 하마터면 ‘어이쿠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뻔했다·
“큰 어머니와 대행수님의 뜻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워낙 큰돈이 걸린 일인지라 충분히 숙고한 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들을 얘기는 모두 들은 것 같았다·
나는 반강제로 자리를 정리해 버렸다·
청화부인이 말했다·
“물론 그래야겠지· 하지만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나도 네 의중을 알아야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지 않겠느냐?”
적이 될지 동맹을 맺을지 잘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다르게 말하면 일이 틀어질 경우 자신도 비룡당을 향한 집중견제에 동참하겠다는 경고였다·
그 말을 끝으로 청화부인은 석대광과 함께 자리를 떴다·
나는 이종산의 면을 생각해서 두 사람을 비룡당의 정문 앞까지 배웅해 주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사라지자 전립성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표물을 감정하는 전문가와 보물을 감정하는 전문가가 따로 있다는 석 대행수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만금전장에서 임자를 훨씬 더 잘 찾을 거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고요·”
“사기꾼의 말도 그렇지요· 처음에 들을 땐 빈틈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해서 다들 깜빡 속아 넘어갑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일단은 술을 담가놓으세요· 좋은 날이 있으면 다함께 마시게· 호리독사가눈치채면 죽 쒀서 개 주는 수가 있으니 잘 숨겨 두시고요·” “예?”
“산삼 말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
늦은 오후 나는 죽림을 눌러 쓴 채 어느 수로에 서 있었다·
저만치 늙은 사공이 젓는 나룻배가 지나가자 얼른 손을 흔들며 불렀다·
“이보시오· 사공!”
잠시 후 배가 닿았고 가볍게 올라탄 후 뱃머리에 걸터앉았다·
맞은 편에는 앞 서 탄 손님이 앉아 있었다·
뽀얀 피부에 보석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유생은 더운지 연신 쥘부채를 부치는 중이었다·
“겨울이 유난히 춥더라니 올여름은 더위가 극성일 듯합니다· 본래 겨울이 추우면 여름도 그만큼 덥다고 하지 않습니까·”
“음과 양의 조화지요·”
“그러고 보니 요즘 천룡표국의 비룡당에 매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지요? 덕분에 다른 표국의 표사들이 비룡당의 표사들을 매우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게 없으시군요·”
“각자 벌어 먹고사는 주머니가 있는 법이지요·”
유생은 천 개의 눈과 귀를 가졌다고 하는 하오문 향주 목리극이었다·
일전에 아라사 출신의 벽안귀를 수소문하면서 처음 만났으니 오늘이 두 번째였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나는 늙은 사공을 힐끗 곁눈질했다·
듣는 귀가 있어도 상관없는지를 묻는 것이다·
“듣지 못한답니다·”
“매번 아쉬울 때마다 불러내어 죄송합니다·”
“공자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것에 비하면 아직도 모자랍니다· 오히려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부탁드린 건 어찌 되었는지요?”
“만금전장에 큰 위기가 닥친 듯 합니다· 망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솔솔 흘러 나오는 걸 보면 심대한 타격은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게 무슨!
“역시 모르고 계셨군요· 원래 전장업이 다 그렇습니다· 업종의 특성상 표국과 달리 내부의 사정을 철저히 숨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외부인들은 좀처럼 속사정을 알기가 어렵지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만금전장의 본장이 보름씩이나 마교도들에게 장악되었었다는 소문이 은밀하게 돈 모양입니다· 그 바람에 항주는 물론이거니와 중원 전역에 있는 스물아홉 개 분타에서 전주(錢主)들이 앞다투어 돈을 빼내는 중이라고 합니다· 황실 고관대작들을 비롯한 큰손들은 진작에 다 빠져나간 상태이고요·”
전장업은 신뢰가 생명이다·
저기다 맡기면 어떤 경우에도 내 돈이 무사할 거라는 신뢰·
만금전장은 그걸 잃어버렸다·
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는 것 같았다·
아예 관심을 꺼버린 탓도 있겠지만 이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만금전장의 뒤에는 산서상인들이 있습니다· 이만한 일로 망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건 조금 터무니 없는 듯 싶습니다만·”
“역설적이게도 만금전장의 소식에 가장 정통한 산서상인들이 제일 먼저 돈을 뺐습니다· 동향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여곽이라도 도둑이 들었다고 하면 한동안은 찾지 않는 것이 세상 이치지요·”
“소생할 방법은 없는 겁니까?”
“도비(盜匪)들 말이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다더군요·”
도비는 하오문에서 활동하는 큰 도둑들을 말한다· 본래 돈의 흐름과 방향은 도둑들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목리극은 만금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내 부탁을 받고 항주의 늙은 도비들을 풀었던 것 같다·
“그게 무엇입니까?”
“모두가 우러러볼 만큼의 거액을 가진 전주가 만금전장에 돈을 맡기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전주여야 합니까?”
“금전 십만 냥이면 빠져나가는 물길을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이십만 냥이면 물길의 방향을 거꾸로 돌리게 할 것이라더군요·”
이제야 청화부인과 석대광의 의중을 확실히 알아차렸다·
그들은 나와 내가 가진 재물을 이용해 만금전장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참고로 내게는 금전 삼십만 냥으로 추산되는 재물이 있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나에게까지 손을 내밀었을까·
“만약에 그런 곳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 큰 전장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기야 하겠습니까만 지금의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대륙 스물아홉 개 도시에 있는 분타부터 하나씩 쓰러지겠지요· 본장은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겠지만 그때가 되면 사실 고리업이나 놓는 대형 전당포 수준으로 전락하게 될 겁니다·”
목리극의 입에서 고리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만금전장은 본래 고리업으로 황실 고관대작들의 돈을 불려주면서 지금의 거대 전장으로 커왔다·
본의 아니게 만금전장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생겼다·
당연하게도 현재로선 돈을 맡길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읍소를 해도 모자랄 판에 와서 협박을 하고 돌아갔단 말이지·’
나는 품속에서 은전 열 개가 든 전낭을 꺼내 목리극에게 주었다·
“사례비입니다·”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분명히 뛰어다닌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그냥 넘어갈 수야 있나요· 술값이라도 보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정 그러시다면·”
“그리고 계속해서 만금전장을 주시해주십시오· 무언가 중요한 변동사항이 생기면 그 즉시 제가 알았으면 합니다· 그게 아니어도 매일 매일 돌아가는 상황을 알았으면 좋겠고요·”
“알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필요 이상의 큰돈을 받았으니 남은 값을 해야겠군요· 다선초당에 머물고 계신 당군백 소저께서 열흘째 용화전장을 찾고 있습니다·”
“어째서요?”
“서호의 호반에 한때 향연루(香煙樓)라고 불렸던 장원이 있습니다· 가운데 연못을 두고 단층 짜리 전각 대여섯 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 이건 굳이 설명해 드릴 필요가 없겠군요·”
과거 항주 유흥가를 섭렵한 나였으니 잘 알지 않겠냐는 뜻이었다·
항주 유흥가를 섭렵하지 않았어도 나는 그 장원에 대해 잘 알았다·
항주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에 자리 잡은 향연루는 삼백 평이 채 되지 않은 작은 장원이었다·
장원 내의 전각들은 단층이었던 탓에 주루나 반점으로 쓰기엔 너무 비효율적이었고 주거용으로 쓰기엔 또 너무나 시끄러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덕분에 포목점 상방 기루 등으로 주인이 계속 바뀌었으나 어떤 업종도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때문에 항주 사람들은 그 장원을 부를 때 그나마 10년 정도로 가장 오랫동안 영업을 했던 주루인 향연루라는 이름을 썼다·
“향연루가 왜요?”
“그곳에 의원을 낼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한데 지금 그 장원의 소유권을 가진 용화전장에서는 한사코 팔 생각이 없는 것 같고요·”
“향연루는 계륵이나 마찬가지인데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용화전장의 입장에서도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니던가요?”
“사천당문이 항주에 뿌리내리는 걸 막으려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용화전장에 압박을 가하는 모양입니다· 만약 장원을 팔면 자신들의 돈을 모두 빼겠다고요·”
여기쯤 대화를 나누었을 때 나는 이미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를 어느 정도 짐작했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정보를 위해 다시 물었다·
“어떤 세력이 방해한답니까?”
“가장 적극적으로 막는 곳은 역시 의원들입니다· 항주에만도 의원이 무려 삼백 곳이 넘습니다· 그중 다섯 곳은 멀리 복건성과 강서성에도 분타를 낼만큼 유명한 의가이지요·”
“신의방(神醫當)!”
항주의 의원들이 뭉쳐 만든 일종의 연맹체였다·
이들은 엄청난 재력과 막강한 결속력을 이용 타성의 이름난 의원들이 항주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뿐만 아니라 항주의 약재시장까지 좌지우지했다·
그 유명한 휘주상인들과 산서상인들도 항주에서 약재를 유통하는 일에 관해서 만큼은 신의방에게 머리를 숙이고 들어갔다·
“어디나 텃세가 문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