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 무저갱(7) >
칠십여 명이 각 네 개씩의 포댓자루를 양쪽 어깨에 짊어지고 울창한 수림 속을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머리 위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우가 남만의 뜨거운 열기를 식혀 주었다·
근동의 지리를 잘 아는 독고완이 선두에서 길을 잡았다·
당군백이 그 뒤를 바짝 쫓았다·
행여라도 독물이 발견되면 전문가인 그녀가 위험을 미리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당군백은 수차례에 걸쳐 질주를 멈추게 했고 그때마다 풀숲에 웅크리고 있던 독사며 독개미 따위를 찾아내 사람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그렇게 달리고 멈추기를 반복하길 한나절 마침내 이틀 전 야영을 했던 북강 기슭에 도착했다·
폭우로 불어난 강에는 통나무를 칡넝쿨 밧줄로 연결해 만든 부교가 아직도 버티고 있었다·
이제 부교만 건너면 포구 마을 곡평이었다·
곡평엔 마을 사람들에게 맡겨둔 말들이 있었다·
그 말에 보물을 싣고 무이산맥 쪽으로 길을 잡는 한편 복건성과 강서성에 있는 천룡표국의 분타들에 최대한 빨리 지원요청을 하는 게 내 계획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지나온 뒤쪽 산 정상의 나무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절벽을 올라온 흑도와 사파인들이 뒤를 바짝 추적해 오고 있는 것이다·
마총에서 나온 보물의 대부분을 내가 중간에 표비로 챙겨버렸으니 지금쯤 눈이 회까닥 뒤집혀 있을 것이다·
“모두 서둘러!”
가불염을 시작으로 한 명씩 부교 위를 달려 건너기 시작했다·
포댓자루를 네 개씩이나 짊어지고 흔들리는 부교 위를 달려가는 것은 제아무리 십 년 경력의 표사들이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다들 생각보다 잘 해냈다·
흐르는 물살에 부교가 팽팽하게 당겨진 덕분에 훨씬 덜 흔들렸던 것이다·
가장 마지막으로 건넌 나는 부교의 밧줄을 뎅겅 잘라 버렸다·
순식간에 팽팽함을 잃은 부교의 한쪽 끝이 흐르는 물살에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우리를 놓친 흑도와 사파인들은 강 건너에 서서 갖은 욕설을 퍼부어 댔다·
그러나 누구도 섣불리 건너오진 못했다·
무기를 패용한 채 폭우로 불어난 강을 헤엄쳐 건너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때쯤 거짓말처럼 폭우가 뚝 그쳤다·
하지만 강물은 한동안은 계속해서 불어날 것이고 흑도와 사파인들이 방편을 마련해 다시 강을 건너려면 빨라도 한나절은 걸릴 것이다·
우린 그전에 벌써 이곳을 떠나고 없을 테지만·
“와아아아!”
그제야 한숨을 돌리게 된 비룡당의 표사들이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포구가 떠나가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들의 발아래에는 보물이 가득 든 포댓자루들이 너덧 개씩 놓여 있었다·
돌이켜 보면 진짜 꿈같은 일이었다·
마교에 납치당한 이병룡을 구하러 왔다가 그 마교의 잔당들을 오히려 내가 구해준 것으로도 모자라 상상도 못 할 돈을 벌어가게 생겼으니 말이다·
“고맙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사이 이병룡이 곁으로 다가와 강 건너에 시선을 꽂으며 불쑥 한 말이었다·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본 후 물었다·
“저요?”
“솔직히 네가 날 구하러 올 줄은 몰랐다·”
“국주님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너랑 이렇게 손발이 잘 맞을 줄도 몰랐고·”
손발이 맞았다고 하려면 서로 공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계속 포로로 잡힌 상태에서 처맞기만 하다가 구출된 인간이 저렇게 말하니 살짝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네가 도화곡의 이전건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수향문의 가모께서 조용히 천룡표국을 찾아와서는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가셨다· 나와 조영영을 두고 더는 혼인 이야기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해달라시더군·”
“····!”
이병룡과 조영영의 혼담은 이종산이 완곡한 거절의 의사를 밝히면서 사실상 무산 된 지 오래였다·
한데 무슨 이유에선지 항주엔 이병룡과 조영영이 언젠가 혼인할 거라는 얘기가 끊이지 않고 나돌았다·
표사와 쟁자수들은 이병룡이 일부러 소문을 내고 다니기 때문이라고 수군거렸다·
나는 다시 한번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대화를 들을 만한 위치에는 아무도 없었다·
남궁소소는 포댓자루를 세느라 여념이 없었고 조영영은 당군백과 함께 부상자들의 상처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다시 이병룡의 말이 이어졌다·
“이 모든 게 너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제가 뭘 어쨌다고요?”
“어느 날 갑자기 네 놈이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승승장구하는 바람에 오히려 내가 무능력하게 보였음을 모르진 않겠지? 그래서 나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보여 주고 싶었다·”
“아마 유명해지시긴 할 겁니다·”
“내가 등신처럼 보이겠지? 이해한다· 나 같아도 그랬을 테니까·”
“그랬을 테니까가 아니라 그랬습니다·”
“앞으로도 내가 너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아무리 재수 없게 굴어도 형님들과 부화뇌동해서 괴롭히지는 않겠다고 약속하지·”
누가 보면 그동안은 내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해서 괴롭힘을 당한 줄 알겠다·
그리고 자기가 괴롭히면 나를 곤란하게 만들 수는 있고?
생각 같아선 완전히 짓밟아 뭉개버리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다른 건 몰라도 지금 그가 느낄 절망감만큼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책만 할 필요 없습니다· 쓰레기더미에서도 꽃이 핀다고 형님께도 제게는 없는 장점이 한 가지는 있으니까요·”
“그게 뭐지?”
“죽마고우들입니다·”
“죽마고우?”
“솔직히 말하면 형님의 비위를 맞춰주며 술이나 얻어먹는 껍데기들이라고 여겼습니다· 한데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당장 조영영만 해도 목숨을 걸고 형님을 구하러 왔고요·”
“영영은 단지 내 행방을 묻기 위해 만금전장을 찾았다가 재수 없게 납치당했을 뿐이다· 위험한 줄 알았다면 절대 만금전장의 문을 두들기지 않았을걸· 그걸 모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다·”
“그것도 그렇군요·”
“지금 나 엿 먹이는 거냐?”
“형님 말에 설득당했을 뿐입니다·”
“뭐!”
그때 갑자기 표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포구 마을로 들어서는 언덕배기에서 한 떼의 기마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숫자는 어림잡아도 백 명 하나같이 도검궁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장 앞쪽에서 천룡표국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진 깃발이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깃발의 아래에는 건장한 체격의 초로인이 말을 달려오고 있었다·
“황룡당주님께서 지원병을 이끌고 오셨다!”
“와아아!”
표사들이 다시 한번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억만금의 보물을 짊어지고 항주까지 갈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가 지원병력이 백 명씩이나 나타나자 그야말로 든든한 것이다·
한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천룡표국의 표사들이 모두 언덕을 넘자 또한 무리의 기마인들이 나타났다·
숫자는 천룡표국 보다 많은 이백여 명 하나같이 표사들 못지않게 강건한 기도를 풍기는 기마인들이었다·
선두의 무인이 치켜든 커다란 깃발엔 수향문이라는 세 글자가 붉은 글씨로 선명하게 씌어 있었다·
“수향문에서도 무사들이 왔다!“
”와아아!“
깃발의 아래에는 흡사 관운장을 연상케 하는 용모를 지닌 반백의 초로인이 준마를 탄 채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수향문주!”
이병룡의 입에서 나직하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왼쪽으로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조영영의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이병룡은 황급히 강물로 달려가 퉁퉁 부은 얼굴을 씻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아무리 깨진 혼담이라지만 못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갑작스러운 지원병력의 등장으로 모두가 환호하는 그때 누군가 조용히 내 등 뒤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천천히 돌아보니 연소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엔 그녀의 수하들 이십여 명이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말 고삐를 쥔 채였다·
그새 몇 사람이 마을로 가서 흑도와 사파인들이 맡겨둔 말들을 훔쳐 온 모양이었다·
“떠나시려오?”
“네·”
“잠깐만 기다리시오·”
나는 근처에 있던 표사에게서 포댓자루 두 개를 건네 받았다·
이어 야차곤이 고삐를 잡고 있는 말 안장에 척 얹어 주고는 다시 연소교에게 돌아왔다·
“여기까지 포댓자루를 짊어지고들 온 값이오·”
“한나절의 노동치곤 후하군요·”
“내가 원래 통이 좀 크오·”
“거부가 된 것 축하드려요·”
“표물을 맡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 주시오· 보아서 알겠지만 나는 의뢰만 있다면 흑백은 물론이거니와 정사마(正邪魔)도 따지지 않소·”
“도무지 두려움을 모르는군요· 잘 알지 못하는 마인들과 함부로 거래를 했다가는 큰일 나는 수가 있어요·”
“이거 혹시 협박이오?”
“협박이면 먹혀들까요?”
“먹혀들면 또 무얼 빼앗으려고·”
“한가지 빼앗고 싶은 것이 있긴 한데 간단한 협박 정도로는 가능할 것 같지 않으니 그냥 포기하고 말겠어요·”
“보통 사람들은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돈을 주고 사거나 부탁을 하는데 역시 마교의 인물들은 화끈하군·”
“귀하는 혹시 내게 부탁할 게 없나요?”
“부탁은 아니고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소·”
“뭐죠?”
“몇 살이시오?”
“궁금한 게 고작 그건가요?”
“도무지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어서 말이오· 삼뇌와 맞서는 담력이나 귀신같은 암기술을 보면 마흔 살은 넘겼을 것 같기도 하고····”
“제가 그렇게 늙어 보이나요?”
“마교에는 마음만 먹으면 칠순 할머니도 방년 십팔 세로 보이게 만드는 마공이 얼마든지 있다고 들었소만·”
연소교는 피식 웃더니 돌아서 수하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어 설표가 대신 고삐를 잡고 있던 말에 훌쩍 올라타서는 말했다·
“계묘년(笑卵年) 칠월 생이에요· 그럼 이만·”
그리고 말머리를 돌려 박차를 가했다·
설표 산노 우숙 야차곤 등을 비롯해 스무 명의 마인들도 나를 향해 정중히 포권지례를 한 후 연소교의 뒤를 따랐다·
나는 그들을 향해 마주 포권지례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계묘년이면 몇 살인지 육십갑자를 한참이나 계산했다·
“칠십팔!”
“육십갑자를 뒤로 세면 어떡해요?”
불쑥 나타난 사람은 남궁소소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당연히 뒤로 세야지·”
“나이가 많다고 누가 그래요?”
“하면?”
“내가 갑오년 생이니 계묘년 생이면···· 열여덟!”
나도 남궁소소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칠십팔 세라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열여덟 살이라는 것 역시 믿기 어려웠다·
남궁소소가 얼른 말을 바꿨다·
“아무래도 칠십팔 세가 맞는 것 같아요·”
“아니 열여덟 살이 맞는 것 같소· 칠십팔 세라고 하면 사부인 백골시마와 얼추 비슷해져 버리는데 그건 더 말이 안 되지 · 맙소사· 강호에 아무리 기인이사가 많다지만 어떻게 고작 열여덟 살짜리 여자아이가····”
나는 한참을 얼떨떨해 하다가 문득 이상해서 물었다·
“한데 나보다 어릴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소?”
“여자들은 딱 보면 보이는 게 있어요· 그것보다 어제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옷은 왜 바뀐 거예요?”
동굴 속에서 청삼인으로 변장해 활개를 치고 다니다가 이병룡을 구해 달아나려는 순간 천장이 무너져 아수라장이 된 적이 있었다·
그때 구석진 곳으로 가서 사람들 몰래 얼른 인피면구를 벗고 쓰러진 누군가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야기 하려면 복잡하오·”
그때쯤엔 황룡당주 황자충과 수향문주 조충헌이 차례로 당도했다·
나는 먼저 황자충에게 예를 갖췄다·
“황룡당주님을 뵙습니다·”
“상황은 어떠한가?”
“전원 무사합니다· 보시다시피 형님과 조영영 소저도 찾았고요·”
“하늘이 도왔군· 천만다행일세·”
“만금전장은 어떻게 됐습니까?”
“국주님께서 표왕부의 고수들을 이끌고 가셨으니 별탈 없을 걸세·”
“합비로 떠나신 총표두님과 두 분 형님들은요?”
“내가 이쪽으로 떠나오기전 사람을 보냈으니 지금쯤이면 허탕만 치고 표국으로 돌아와 있겠지· 국주님께서 이 소식을 들으면 참으로 기뻐하시겠군·”
이종산이 기뻐할 일은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그건 그렇고 천룡표국의 표사들 속에 뜻밖의 인물들이 있었다·
진금봉 곽극산 노효광 능천비 등가걸을 비롯한 이병룡의 죽마고우들이었다·
정 걱정이 되면 천룡표국의 묵룡당에서 대기하라고 했더니만 그새를 못 참고 함께 달려온 모양이었다·
그들을 발견한 이병룡은 격정을 억누르느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지금은 친구들과 회포를 풀 때가 아니었다·
이병룡은 조충헌에게도 따로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올렸다·
“문주님을 뵙습니다·”
조충헌은 옥면검협(玉面劍快) 이라는 별호에 어울리게 초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잘생긴 얼굴을 자랑했다·
조영영의 빼어난 용모는 순전히 그녀의 아비를 닮은 덕분이라 하더니 오늘 보니 과연 고개가 절로 끄덕여 졌다·
세가 크지 않아서 그렇지 수향문은 역사가 천룡표국 보다도 오래된 항주의 유서 깊은 검도명문이었다·
특히 조충헌은 협객 기질과 고매한 인품 덕분에 사철 그를 찾는 무림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조충헌은 야차곤에게 두들겨 맞아 퉁퉁 부은 얼굴의 이병룡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고생이 많았겠군·”
“실로 면목이 없습니다·”
조충헌은 이어 어깨를 가늘게 떨고 있는 조영영에게 물었다·
“항주에서부터 끌려 온 것이더냐?”
다치지 않은 것은 눈으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조충헌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외동딸이 마교도들로부터 온갖 고초를 겪으며 머나먼 남만까지 끌려왔을 생각에 노기가 솟구치는 모양이었다·
“비룡당주가 찾아온 이후로는 크게 험한 꼴을 보지도 고생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편안하게 여행을 했습니다·”
“어찌하여?”
“비룡당주가 기지를 발휘하여 그들로 하여금 우리를 표사로 고용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조충헌의 시선이 조영영을 떠나 잠시 내게로 향했다·
비룡당의 표사들과 함께 있던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올렸다·
“문주님을 뵙습니다·”
“고맙네·”
“부끄럽습니다·”
조충헌은 무언가 할말이 많지만 꾹 참는 것 같았다·
묘한 상황이었다·
한때 조영영을 짝사랑했던 나 그런 내가 성에 차지 않아 이병룡과 맺어주려 했던 조충헌 조영영을 좋아한다면서 등신 같은 짓만 하고 다닌 이병룡 그리고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조영영이 한자리에 모여 이렇게 서로를 마주 보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할 것이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건 조영영을 짝사랑했던 인물이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때 황자충이 조충헌과 대화 중인 나를 대신해 가불염에게 조용히 물었다·
“발밑에 있는 포댓자루들은 다 무엇인가?”
비룡당의 표사들이 일제히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마치 이제부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질 테니 다들 각오하라는 듯·
가불염이 나를 돌아보며 어찌해야 하는지를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가불염이 다시 황자충에게 말했다·
“주로 황금과 은으로 만든 식기들입니다·”
“모든 포댓자루가 전부?”
“그렇습니다·”
“지금 나를 놀리는 건가?”
가불염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포댓자루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어 입구를 묶은 끈을 푼 다음 거꾸로 들고 탈탈 털었다·
그러자 황금으로 만든 쟁반이며 사발이며 숟가락 등등이 와르르 쏟아졌다·
좌중이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고요해졌다·
그러나 공기는 태풍이라도 부는 것처럼 요동쳤다·
조충헌과 수향문의 무사 이백여 명도 바닥에 떨어진 황금 식기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황자충이 격정을 억누르며 물었다·
“자네들 혹시 마총을 턴 것인가?”
“마총에서 나온 물건이기는 합니다만 당주님께서 흑도와 사파인들에게서 의뢰받은 표행을 완수해준 대가로 받은 것입니다·”
“여기서 표행을 했다고?”
“그렇습니다·”
“당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백번 양보해서 표행을 하고 받은 물건들이라고 치세· 하면 장물을 표비로 받았다는 건가?”
“사실상 물건의 주인이랄 수 있는 음양쌍교의 교도들에게서도 똑같은 의뢰를 받았습니다· 보물은 우리가 갖는 대신 마공비급을 안전하게 가지고 나갈 수 있도록 흑도와 사파인들로부터 지켜 달라고요· 그러니 장물이라는 말씀은 맞지 않습니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이····”
황자충은 눈이 왕방울처럼 튀어나왔다·
조충헌은 반대로 쑥 들어갔다·
두 사람은 방심하고 있다가 마혈이라도 짚인 사람처럼 그대로 석상이 되어 버렸다·
황자충이 끌고 온 천룡표국의 표사 일백과 조충헌이 데려온 수향문의 무사 이백여 명도 모조리 입이 벌어 져서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항주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표행으로 벌어들인 재물이 억만금에 달했지만 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절정고수가 두 명이나 포함된 지원병력이 무려 삼백여 명에 달했으니까·
보름이 지나자 마침내 항주에 도착했다·
그 즉시 수향문의 사람들과 헤어졌다·
남궁소소와 당군백과는 한가해지면 술이나 마시자는 말을 주고받은 후 헤어졌다·
그리고 한 시진 후 나는 비룡당의 표사들을 이끌고 천룡표국으로 들어섰다·
남만의 포구마을에서 산 다섯 대의 수레에는 칡넝쿨로 칭칭 동여맨 포댓자루 이백구십여덟 개가 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