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 무저갱(6) >
광동칠살을 비롯해 보물을 하나라도 차지한 오백여 명은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반면 넋 나간 사람처럼 지켜보고 있던 빈털터리 이천여 명의 눈동자에는 뜨거운 열기가 감돌았다·
급기야 사람들은 두 진영으로 나뉘어서 대책들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빈털터리들은 작전이라기보다 서로서로 자극하며 각오를 다졌다·
그러다 누군가 크게 외쳤다·
“우리가 천장에서 떨어지는 돌덩어리들을 몸으로 막는 사이 저들은 달려가 보물을 챙겼소· 저 보물의 절반은 우리 것이오!”
누가 들어도 개소리였지만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자들의 심장을 정확히 저격했다·
그때였다·
“다른 방법도 있지·”
커다란 나무통을 앞쪽으로 멘 장한이 고수들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 나왔다·
나무통 속엔 삼뇌가 들어앉아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삼뇌가 내게 말했다·
“뗏목에는 아직 적지 않은 포댓자루들이 남아 있는 것 같군 쉰 개는 되어 보이는데 과연 그걸 지킬 수 있겠는가?”
흑교방을 비롯한 아홉 개 흑도방파들이 나름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지킨 답시고 애초 약속한 표비를 남겨 둔 포댓자루들이었다·
처음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때에 비교하면 한 줌도 안 되지만 그래도 돈으로 환산하면 여전히 엄청난 양의 재물이었다·
삼뇌는 지금 빈털터리 이천여 명에게 저거라도 빼앗아 보는 게 어떻겠냐며 부추기고 있었다·
과연 그의 선동은 효과가 있었다·
아직 기회가 있음을 알아차린 이천여 개의 살기 어린 시선들이 뗏목으로 집중되었다·
그에 반응하여 비룡당의 표사들과 음양쌍교의 마인들은 바짝 긴장했다·
“반격이 매섭군요·”
“오행에는 항상 이기는 것이 없지·”
“이렇게 해서 얻으시는 게 무엇입니까?”
“자네와 수하들을 무장해제시키는 것·”
“최종 목표는 목함이겠군요·”
“물론이네·”
“한데 고작 쉰 개의 포댓자루로 이천여 명의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요?”
“쉰 개의 포댓자루에 든 금은보화들을 쪼개 골고루 나눠 준다면 한 명당 금전 열 냥씩은 족히 챙길 수 있을 것이네· 그 정도면 자네가 지핀 불씨를 꺼트릴 수는 있을 것 같네만·”
빈털터리 쪽 사람들이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또다시 갑론을박이 벌어졌지만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그걸로는 만족을 못 한다는 쪽과 그거라도 건지는 게 어디냐는 쪽이었다·
비율은 반반· 이것으로도 좀 전의 달아오르던 분위기에 찬물을 뿌리기엔 충분했다·
삼뇌의 묘수에 보물을 차지한 오백여 명의 무인들은 반색을 했다·
한 방 제대로 먹이나 했다가 오히려 남은 쉰 개의 포댓자루까지 통째로 빼앗기게 생겼다·
빈털터리들이 하나둘씩 살기를 끌어 올리며 뗏목을 향해 다가왔다·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채채채챙!
표사들과 음양쌍교의 마인들이 도검을 뽑아 쥐고는 공격에 대비했다·
이천과 칠십의 싸움은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삼뇌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한 사람을 불렀다·
“가 표두·”
“하명 하십시오?”
“정확히 몇 포대 남았습니까?”
“쉰다섯 개입니다·”
“전부 나눠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주진 말고요·”
“예?”
“천마성교의 생존자들이 이백오십 명쯤 되는 것 같군요· 저들의 양쪽 귀를 잘라오는 쉰다섯 명에게만 선착순으로 한 포대씩 주도록 하세요·”
“끝까지 보물을 약탈하려는 자가 있다면 노상강도로 간주 모조리 베어 죽이며 마지막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결사항전합니다·”
“존명!”
“표사들도 대답하라!”
“존명!”
사십여 명의 우렁찬 목소리가 협곡을 쩌렁쩌렁 울렸다·
내가 던진 한마디는 그야말로 폭탄이 되어 주변을 초토화 시켜 버렸다·
뗏목을 향해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오던 이천여 명의 걸음이 뚝 멈추었다·
다시 웅성거림이 시작되었지만 오래 가지도 않았다·
금 쪼가리 몇 개로 만족해선 안 된다고 주장을 했던 사람들부터 하나둘씩 돌아섰다·
흐름은 순식간에 바뀌어 이천여 명 전부가 삼뇌와 그 일당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선착순이라는 말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 것이다·
채채채채챙!
“다가오지 마라!”
“가까이 오는 자는 죽여 버리겠다!”
다급해진 천마성교의 마인들이 병장기를 뽑아 들고 삼뇌의 앞을 막아섰다·
삼뇌는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일단 뒤로 피하시죠·’’
마인들은 삼뇌를 절벽 쪽으로 이끄는 한편 병장기를 계속해서 휘둘러 대며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했다·
기세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이천의 흑도와 사파인들은 마인들을 절벽까지 몰아 놓고도 좀처럼 시원하게 공격을 하지 못 했다·
그때 연소교가 야차곤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렸다·
그 즉시 야차곤이 뗏목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쿵!
“모두 비켜!”
야차곤이 머리 위로 장초자곤을 휘두르며 기세 좋게 달려갔다·
순식간에 사람들을 뚫고 절벽 아래까지 도착한 그를 흑산적웅이 막아섰다·
“이 미친놈이!”
꽝! 꽈꽝! 꽝꽝꽝!
두 자루 판부와 장초자곤이 허공에서 난상으로 격돌했다·
곰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체구의 흑산적웅과 칠척장신의 거대원숭이 야차곤의 격돌은 주저하던 사람들의 가슴에다 대번에 불을 질러 버렸다·
“와아아!”
이천여 명이 함성을 내지르며 질주했다·
그리고 곧 일방적이고도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으악!”
“아악!”
“크악!”
애초에 상대가 되질 않는 싸움이었다·
도검을 휘두르며 끝까지 저항하는 마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온몸이 벌집으로 변해서 죽어갔다·
차라리 한칼 맞고 일찌감치 쓰러진 자들은 살았다·
흑도와 사파인들의 입장에선 구태여 죽이는 수고까지 치를 필요 없이 귀만 잘라가면 되니까·
한바탕 격전이 지나가고 난 후의 광경은 참혹했다·
절벽 아래가 온통 피칠갑으로 변한 가운데 백오십여 명이 칼을 맞거나 팔다리가 부러진 채 쓰러져 신음했다·
야차곤과 최초로 싸움을 시작했던 흑산적웅은 장초자곤에 맞았는지 머리통이 박살 난 채 엎어져 있었다·
양쪽 귀도 잘려나가고 없었다·
사실 쓰러져 신음하는 자들 대부분이 양쪽 귀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중이었다·
제대로 서 있는 사람들은 고작 쉰 명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다들 한 칼씩 맞아 피를 흘리거나 극심한 공력의 소모로 지쳐 헐떡거렸다·
당주급 고수들의 헌신으로 마지막까지 몸을 보전한 삼뇌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수하들의 죽음보다 자신이 패했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내가 물었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보기 좋게 역전을 당했군·”
“피차 손해가 막심하니 무승부인 듯합니다·”
“내가 자만했음을 부인하고 싶지 않네·”
“소똥도 뜨거웠던 때가 있는 법 선배님께서 과거에 어떤 명성을 누리셨는지 잘 압니다· 하지만 일교(一敎)틀 다시 일으켜 세우시기에는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것 같습니다· 부디 현실을 똑바로 보시기를····”
“일침이 서늘하군·”
“혹여 제게 복수를 하시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오십시오· 무림의 은원은 본래가 물고 물리는 것· 각오하고 있겠습니다· 단 그땐 천마성교도 씨가 마를 각오를 하셔야 할 겁니다·”
“정당한 승부였으니 복수를 목적으로 자네를 찾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네·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것 같군·”
“뗏목에 부상자들을 전부 싣고 좀 더 떠내려가 보십시오· 이곳 지리에 훤한 표사의 말이 백여 장 정도만 내려가면 이곳의 절반 높이에 불과한 절벽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조금 더 내려가면 백길 폭포가 도사리고 있으니 조심하시고요·”
나는 삼뇌를 향해 정식으로 포권지례를 올렸다·
이어 가불염을 돌아보며 부상자들을 뗏목에 실을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삼뇌를 비롯한 천마성교의 마인들은 부상자들을 잔뜩 태운 채 뗏목과 함께 떠내려갔다·
이로써 목함을 노리는 제일 큰 세력은 사라진 셈이었다·
그러나 방심해선 안 된다·
목함에 절륜한 마공비급이 있을 거라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
천마성교 때문에 겉으로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자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이럴 땐 생각할 시간을 주면 안 된다·
나는 비룡당의 표사들과 음양쌍교의 마인들을 돌아보며 일갈했다·
“볼일이 끝났으니 모두 절벽을 오른다!”
칠십여 명이 일제히 절벽에 붙었다·
빈손이 되었으니 다들 마음은 착잡할지언정 몸은 홀가분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이천오백여 명의 흑도와 사파인들 역시 우리가 기어 올라가는 걸 멀뚱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보물을 몽땅 주고 갔으니 붙잡거나 못 가게 막을 이유가 없었다·
한 식경 후 비룡당의 표사들과 음양쌍교의 마인들 전원이 절벽을 오르는 데 성공했다·
나는 가장자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천오백여 명의 흑도와 사파인들은 내가 던져 놓고 온 똥덩어리 때문에 두 진영으로 나뉘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대치 중이었다·
“가 표두·”
“하명하십시오·”
“지금 즉시 한 명당 사람 머리통만한 돌덩어리들을 한 개씩 준비한 채 내 지시를 기다리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외쳤다·
“제게 묘안이 하나 있는데 들어 보시겠습니까?”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꺾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또 무슨 개수작이냐?”
“일단 들어나 봅시다!”
발끈하는 귀도살의 말을 막은 사람은 반백의 머리카락에 호랑이 같은 인상을 지닌 초로인이었다·
눈치 빠른 독고완이 재빨리 다가와 설명을 해주었다·
“흑교방의 부방주 살검광호(殺劍狂虎)입니다· 광동칠살이 사람을 많이 죽였다고는 하나 살검광호만큼은 아닐 겁니다· 한데 흉성에 비해 매우 신중한 인물이라고 들었습니다·”
살검을 휘두르는 미친 호랑이라니·
별호가 예사롭지 않더라니 광동칠살의 우두머리인 귀도살이 목소리를 살짝 죽였다·
“저 여우에게 속으시면 안 됩니다·”
“난 끝까지 들어 봐야겠으니 방해하지 마시오!”
“말투가 어째 영 껄끄러우십니다·”
“그래서 무슨 문제라도 있나?”
“····!”
“귀도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똑똑히 들어라·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이 너 때문이라고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제부터 내 행보를 방해한다면 너와 네 형제들은 여기서 뼈를 묻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채채채채채채챙!
흑교방의 생존자 팔십여 명이 일제히 도검을 뽑아 들었다·
그에 맞서 광동칠살도 각자의 병장기를 꼬나 쥐었다·
하지만 그 기세는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마지막까지 표비를 갈취하지 않았던 방파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살검광호에게 동조하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괜히 나를 자극해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린 광동칠살과 독보강호 하는 무인들이 영 마뜩찮은 것이다·
“뭐 좋으실 대로·”
귀도살이 한 걸음 물러났다·
살검광호가 다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계속 말해보시게·”
“위에서 칡넝쿨로 밧줄을 꼬아 내려줄 테니 거기에 포댓자루를 두 개씩만 매달아 주십시오· 우리가 포댓자루를 끌어 올리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탈취하거나 절벽을 오르지 못하도록 엄호해 주시고요·”
“그런 다음엔?”
“포댓자루를 모두 끌어 올린 다음에는 여러분께서 칡넝쿨을 타고 올라오시면 됩니다· 안전해질 때까지 우리가 위에서 엄호해드리겠습니다·”
“무엇으로 말인가?”
“돌덩어리로요·”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보물을 짊어지고 오르는 것만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도 여러분을 적극적으로 공격하진 못 할 겁니다· 여러분을 쏘아서 떨어뜨려 봐야 보물이 수중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보복만 당할 텐데 뭐 하러요· 안 그렇습니까?”
“···!”
“그리고 또 하나 삼십 장 높이에서 떨어지는 머리통만한 돌덩어리는 대포알보다도 무서운 법입니다· 비룡당과 음양쌍교의 무사가 칠십여 명이니 칠십 대의 대포를 속사로 쉬지 않고 쏘아대는 거죠· 한 번 보시겠습니까?”
휘이익!
내가 휘파람을 불자 칠십여 개의 돌덩어리가 일제히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쾅! 꽈콰쾅! 쾅! 쾅!
사람들을 피해 물속으로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력은 엄청났다·
수심이 정강이를 겨우 넘을 정도였기에 사실상 맨땅이나 다름없었던 탓이다·
물이 사방으로 튀고 땅이 쩡쩡 울렸다·
무시무시한 기세에 놀란 이천오백여 명의 사람들이 절벽 쪽으로 바짝 붙었다·
이윽고 돌덩어리들이 낙하를 멈추었을 때는 절벽 아래가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고요해 졌다·
나는 돌덩어리의 위력을 보여준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이제 누가 우위에 있는지 확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다시 큰 소리로 외쳐 물었다·
“어떻습니까?”
“충분히 위협이 되었네·”
“흡족하셨다니 다행이군요·”
“우리 중 칠십 명이 먼저 오르는 방법도 있네만·”
“한 명이 아쉬운 처지일 텐데요· 그리고 누가 먼저 올라갈지는 오늘 중으로 정할 수 있겠습니까? 정하면 서로 믿을 수는 있고요?”
“···!”
“하지만 저희는 믿으셔도 좋습니다· 천룡표국의 표사는 절대 표물을 들고 튀는 법이 없으니까요·”
“표물?”
“중언부언하지 않겠습니다· 목적지는 절벽 위까지고 표비는 무조건 선불로만 받겠습니다· 만약 실패하면 두 배로 배상해 드리고요·”
사람들이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살검광호는 소란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물었다·
“얼마를 원하는가?”
“거래를 하려면 서로 간의 신뢰부터 회복해야지 않을까요? 마지막에 뿌린 쉰다섯 개의 포댓자루는 제가 현상금으로 내건 것이니 포기 하겠습니다· 대신 앞서 강탈해간 포댓자루들은 전부 돌려주십시오·”
“그런 다음엔?”
“표물의 절반을 표비로 받겠습니다·”
좌중이 더욱 크게 술렁이면서 한동안 소란스러워졌다·
다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오백여 명의 진영 속에서 일곱 명이 포댓자루를 짊어지고 뛰쳐나갔다·
광동칠살이었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수심이 얕은 절벽의 가장자리를 따라 경공을 펼치며 달아났다·
그러자 가까이 있던 이백여 명이 반사적으로 뒤쫓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경공의 고수도 있었고 비도술의 고수도 있었고 뛰어난 궁사도 있었다·
수십 발와 화살과 수십 개의 비도가 날아갔다·
가장 뒤쪽에서 달려가던 두 명이 등에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뒤에서 세 번째로 달아나던 자는 뒷덜미에 비도가 날아와 꽂혔다·
앞서간 세 명의 등짝에도 순식간에 비도와 화살이 날아가 꽂혔다·
귀도살이 그나마 백여 장 정도를 달려갔지만 절벽을 타고 날아온 정체불명의 고수 다섯 명에게 둘러싸여 악전고투를 벌였다·
한데 어처구니없게도 훨씬 뒤쪽에서 날아온 비도를 허벅지에 맞고 쓰러졌고 그 즉시 검투를 벌이던 자의 검에 목이 뎅겅 잘려 버렸다·
사람들은 쓰러진 광동칠살에게 새까맣게 달라붙었다·
이어 서로 빼앗겠다며 포댓자루를 놓고 싸우다가 터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한편 절벽 위의 사람들은 표사들이고 음양쌍교의 마인들이고 간에 전부 입이 쩍 벌어져서는 석상이 되어 있었다·
덧붙여 이제는 나를 살짝 미친 사람 보듯 바라보았다·
남궁소소가 말했다·
“제갈량이 현신한 줄 알았어요·”
“다급해 지면 꾀가 나오는 법이오·”
“돈을 보면 막 다급해지나요?”
“그렇게 말할 처지가 아닐 텐데·”
“제가 왜요?”
“여기까지 온 거 돈 때문이 아니오?”
“물론 그렇죠· 전적으로·”
“그러니까·”
“뭐 그건 그렇고요· 저들이 받아들일까요?”
“그건 나도 모르겠소·”
“하면 뭘 믿고 그렇게 몰아붙인 거예요?”
“흑도들이니까· 흑도들의 본성은 흑도들이 가장 잘 아는 법·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심리를 이용한 것이오·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통할 거 같은데요·”
“어째서 그렇소?”
“동쪽 하늘을 좀 보세요· 아까부터 먹구름이 새까맣게 몰려오는데 저거 폭우가 쏟아질 징조 맞죠?”
쏴아아아!
꾸르르 꽝! 꽝! 꽝!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한식경째 퍼부어댔다·
그 바람에 협곡의 강물은 빠르게 불어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다시 한 식경 안에 모두가 쓸려가 버릴 것같았다·
나와 비룡당의 표사들 그리고 연소교 일당은 절벽 위에서 열 개의 칡넝쿨 밧줄을 이용해 마지막 남은 이십여 자루의 포댓자루들을 끌어 올렸다·
아래에서는 도검을 뽑아 든 오백여 명이 절벽을 등지고 서서 이천여 명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똑같은 네 배지만 다섯 명을 상대로 스무 명이 공격하는 것과 오백 명을 상대로 이천 명이 공격하는 것은 다르다·
후자의 경우가 심리적인 압박을 훨씬 크다·
규모도 규모지만 나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무려 오백 명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천여 명의 빈털터리들은 부글부글 끓어 오르기는 했어도 공격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오백여 명의 표주들이 올라올 채비를 했다·
지금까지야 괜찮았지만 등을 보이는 순간 어떻게 될 지 모른다·
맹수들은 원래 등을 보이는 사냥감을 본능적으로 물어 뜯는다·
모두가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우리 몫의 포댓자루는 따로 챙겼습니까?”
“딱 삼백삼십 자루입니다·”
전체 오백여 자루 중 삼백삼십 자루를 챙겼으니 사실상 싹쓸이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해서 남은 백칠십여 자루가 돈으로 환산했을 때 적은 금액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삼십 자루만 가지고 와 보세요·”
잠시 후 내 앞에 삼십 자루의 포대가 놓였다·
그것들을 집어다 하나씩 이쪽저쪽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첨벙! 첨벙! 첨벙! 첨벙!
이천여 명의 사람들은 처음엔 돌멩이를 던져 자신들을 공격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게 보물이 든 포댓자루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우르르 물속으로 뛰어들어 헤엄치기 시작했다·
“당주는 일하고 표사들이 노네·”
“모두 포댓자루를 던져라!”
가불염이 일갈을 내지르자 그제야 표사들이 달라붙어 포댓자루를 사방으로 던져댔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던지니 아마 절반은 강바닥에 닿는 순간 찢어졌을 게 분명했다·
잠시 후에는 이천여 명 전부가 강물로 뛰어들어 자맥질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물이 불어나기 전에 금쟁반 하나라도 더 건지려는 것이다·
그 바람에 절벽 쪽으로는 단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오백여 명은 안심하고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탈탈 털며 말했다·
“우리는 이제 그만 갈까요?”
오백여 명이 올라오면 약이 바짝 올라있기 때문에 이번엔 아예 죽이려 할 지도 모른다·
한 명당 포대 두 자루씩 주둥이를 연결해 양쪽 어깨에 짊어지니 딱 네 자루가 되었다·
그 상태에서 나와 비룡당의 표사들 그리고 음양쌍교의 마인들은 신나게 내빼기 시작했다·
물론 나머지 백칠십여 자루는 절벽 위에 고스란히 놓아 두었다·
주변이 온통 짐승도 함부로 뚫고 나오지 못할 만큼 빽빽한 원시림이라 도둑맞을 일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