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 다시는 표사들을 무시하지 마라(6) >
낯선 얼굴의 등장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통나무 벽 아래에서 튀어나온 얼굴은 이리저리 주변을 훑어보더니 나를 발견하고 반색을 했다·
“당주님!”
“쉿! 조용히 하시오·”
얼굴의 주인은 호리독사였다·
연소교 일당은 물론이거니와 조영영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리독사의 얼굴을 아는 이병룡은 또 이병룡대로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에 얼굴이 환해졌다·
그 사이 호리독사는 머리를 이쪽저쪽으로 흔들어댔다·
“뭐 하는 거요?”
“들어가려고요·”
“그 좁은 구멍으로?”
“머리통만 들어가면 나머진 다 들어갑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정말로 미꾸라지처럼 쑥 들어왔다·
일시적으로 관절을 꺾거나 어긋나게 만들어 몸을 축소하는 축골공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걸 가장 잘하는 건 역시 남의 집을 내 집처럼 넘나드는 양상군자들이다·
호리독사가 그쪽 출신이라는 걸 잠시 깜빡했다·
전후 맥락을 알고 보니 머리통만 들어가면 다 들어간다는 말이 얼마나 엄청난 말인 줄을 알겠다·
“공자님 앞에서 문장을 걱정했군·”
“별말씀을요 ”
“그런데 이렇게 함부로 드나들어도 되는 거요?”
“밖에서 독고완이 망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문밖에 보초가 있을 텐데·”
“당군백 소저께서 준 미혼약으로 잠시 재워 두었습니다· 당 소저의 말씀이 일각 정도 후에 깨어나면 자기들이 깜빡 졸았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감쪽같을 거라고 하더군요·”
“당군백도 왔소이까?”
“남궁 소저께서도 오셨습니다·”
“그 여자들이 왜요?”
“당주님께서 만금전장으로 가시는 길에 다선초당에 들르시어 자신들을 먼저 객원표사로 고용해 두었다고 하시던데요?”
이 여자들이 또 이렇게 한 밑천을 잡으려고·
“또 누가 왔소?”
“주루 보호 문제로 빠진 삼각을 제외한 비룡당의 표사 전원이 지금 산꼭대기에 숨어서 대기 중입니다· 가 표두님께서 직접 이끌고 오셨고요·”
“가 표두가 직접요?”
“그렇습니다·”
“수고들 많았소·”
“별말씀을요· 그런데····”
[저자들은 왜 함께 잡혀 있는 겁니까?]
[갑자기 왜 전음으로 묻는 거요?]
[워낙 무서운 자들이어서요·]
[저들을 아시오?]
[음양쌍교(陰陽雙敎)의 추종자들이잖습니까· 제 짐작이 맞는다면 짝눈은 설표 곱사등이 노인은 산노 사마귀는 우숙 거인은 야차곤이라는 별호를 쓸 겁니다· 한데 저 미녀도 마인들과 한패입니까?]
[···!]
오호라· 이것 봐라·
[음양쌍교가 무엇이오?]
[과거 천마성교 내에 도사리고 있던 여덟 개 마교 교파 중 한 곳입니다· 음양쌍교는 그중에서도 사실상 본교인 천성교 다음으로 강력한 세를 자랑했다더군요·]
[교(敎) 안에 또 교(敎)가 있었다고요?]
[그 얘기를 하려면 좀 복잡합니다·]
[최대한 간략하게 해보시오·]
[아주 오래전 천성교라는 마교 일파에서 전설로만 전해지던 마신이 탄생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의 무공은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것이었다고 합니다· 당연하게도 그 시대의 천하제일인 이었고요·]
이후 마신이 중원 전역에 흩어져 있던 여덟 마교를 하나로 모으는 마교통일대전을 펼친 이야기가 잠시 이어졌다·
이미 이병룡과 조영영에게서 들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조금 더 진행되자 두 사람에게서는 듣지 못한 내용들이 나왔다·
[삼백 년의 세월은 무서운 것이어서 일통이 된 후에도 흡수된 일곱 마교의 불빛은 완전히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깊은 숲속에서 어두운 동굴 속에서 외딴 섬에서 자신들만의 교리와 무맥을 은밀히 이어나갔지요· 무려 이백 년 동안이나·]
천마 대종사가 된 마신이 일곱 마교의 영혼이 묻혀 있다는 칠마총을 찾아 성물과 성보를 손에 넣으려고 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 맥이 이어졌군·]
[그렇습니다·]
[현재의 세는 어느 정도나 되오?]
[글쎄요· 한 줌이나 되려나·]
[그 정도밖에 안 되오?]
[마교통일대전 당시 천성교를 제외한 일곱 마교의 비전절기들 그러니까 오직 교주를 통해서만 전승되던 마공들이 대부분 소실되고 극히 일부만 전해진 탓이 큽니다·]
[그것과 세가 무슨 상관이오?]
[등잔불이 작으면 몰려드는 부나비도 적은 법이지요·]
부나비라는 말이 귓속에 콱 박힌다·
보통 사람들의 눈엔 마교에 투신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치는 교도들이 그렇게 보인다·
“두 사람 전음으로 무슨 얘길 나누는 거지?”
이병룡이 불쑥 물었다·
대화가 갑자기 끊어지면서 호리독사와 내가 입술만 달싹거리자 모두가 궁금한 표정이 되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전 짜고 있습니다·”
“같이 짜자고· 같이·”
“비밀작전입니다·”
나는 다시 전음으로 호리독사에게 물었다·
[한데 이런 건 다 어떻게 아는 거요?]
[사부님께 들었습니다·]
[사부님요?]
[그렇습니다·]
[혹시 칠마총에 대해서도 아시오?]
[그 얘기도 해달라고요?]
[안 해도 되오·]
이미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전설적인 대도 공령신투가 전설적인 보물의 행방을 연구하고 추적하지 않았다면 말이 되겠나·
호리독사가 저들을 보고 음양쌍교의 추종세력임을 단박에 알아차린 것 역시 사부로부터 전해 들은 혹은 함께 추적하는 과정에서 알아낸 정보 때문이었을 것이다·
[백골시마가 누군지 아시오?]
[음양쌍교의 재건을 도모하는 무리의 수장입니다· 천마성교가 멸망하기 전에는 팔대 호교사자들 중의 한 명이었지요·]
[저 여자가 그의 제자라던데·]
[천살마녀(天熱魔女)!]
[그건 또 뭐요?]
[백골시마에게 여제자가 하나 있는데 그녀의 별호가 천살마녀라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맙소사· 소문으로만 떠돌던 천살마녀를 내 눈으로 직접 보다니·]
[만약 백골시마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요?]
[저 여자가 뒤이어 음양쌍교를 수호하는 호교사자가 되겠지요· 그러다 실전된 마공을 찾아 익히기라도 하면 그날로 교주가 되는 거고요·]
조금 전 백골시마가 죽었다는 이야길 연소교로부터 들었다·
사부의 생사를 놓고 거짓말할 리 없으니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왠지 저 여자의 목적이 보물을 찾아 전부 없애버리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호리독사는 저들이 이병룡을 납치한 자들이라는 것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번견들을 앞세우고 주야장천 남만의 밀림 속을 달려왔다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면 아예 머리 굴리는 걸 싫어하거나·
그때 호리독사가 들어온 구멍으로 또 다른 얼굴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신입표사 독고완이었다·
그가 다급하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누가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미처 더 물을 볼 사이도 없이 쏙 사라져 버렸다·
호리독사가 혀를 끌끌 차더니 나를 돌아보며 머리를 꾸뻑 숙였다·
“잠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리고는 얼른 구멍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한데 반쯤 나가다 말고 서둘러 뒷걸음질을 치더니 다시 들어왔다·
이어 노래진 얼굴로 목구멍을 쥐어짰다·
“이 자식이 빨리 말했어야지!”
“왜 그러세요?”
“뒤쪽에 번을 도는 놈들도 나타났습니다·”
“하필 지금?”
호리독사는 바닥에 있는 마른 풀들을 얼른 쓸어 모아 구멍을 대충 덮었다·
이어 안절부절못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통나무를 켜켜이 쌓아 만든 창고는 기와를 얹은 보통의 전각들과 달랐다·
천장이고 벽이고 간에 일체의 뭐가 없었다·
파리도 수박씨 사이에 앉아 있어야 비로소 은신이 가능해지는 법이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벽에 달라붙었다가는 들어오는 순간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그때쯤 바깥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 함께 오는 듯했다·
호리독사는 얼굴이 점점 더 노래지더니 갑자기 연소교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이어 놈들이 그녀를 묶고 남은 쇠사슬로 자신의 허리를 감더니 손을 뒤로해서 끄트머리를 잡았다·
마치 자기도 처음부터 함께 포로로 잡힌 사람처럼·
“지금 뭐 하는 거요?”
“어쩔 수 없잖아요!”
“이런 미친!”
모두 숨을 죽이고 기척을 끌어 올렸다·
발걸음 소리가 통나무 창고 앞에서 뚝 그쳤다·
뒤이어 들리는 소리·
짝! 짝!
“누구냐!”
“누구야!”
“누구인 것 같으냐?”
“헛 칠각주님!”
“초병들이 졸아?”
“너무 피곤해서 그만·”
“닥쳐라· 팔각놈들의 기강이 형편없는 줄은 내 진작에 알았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이번 일은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니라·”
털썩!
털썩!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해 주십시오·”
“저것들을 받아 들고 문이나 열어라·”
“복명·”
통나무 문이 열리고 뺨이 퉁퉁 부어오른 보초 두 명이 큼지막한 나무통을 들고 들어왔다·
그 뒤를 또 다른 두 명이 따랐다·
한 명은 한껏 멋을 낸 비단 장삼에 청건을 쓰고 허리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보옥으로 요란하게 장식한 검을 차고 있었다·
차림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얼굴도 기생오라비 뺨칠 만큼 잘 생겼다·
조금 떨어진 뒤쪽에는 가운데가 살짝 꺾인 대형 단도 십여 자루를 허리에 찬 사내가 서 있었다·
보통의 무인들이 잘 쓰지 않는 무기도 무기지만 작고 빛나는 눈동자가 꼭 뱀처럼 섬뜩했다·
기생오라비가 멀뚱하게 서 있는 초병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내가 나눠주랴?”
“아 아닙니다·”
초병들이 들고 온 나무통은 모두 두 개였다·
하나에는 사발이 다른 하나에는 정체 모를 부산물들과 뒤섞인 밥이 가득 들어 있었다·
초병들이 사발에 국자로 밥을 듬뿍 떠서 사람들의 앞에다 마치 개밥 주듯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기생오라비가 말했다·
“갈 길이 머니 많이들 먹어 두시오·”
“이렇게 손을 뒤로 묶어 놓고?”
내가 말했다·
어떻게든 시선을 끌어 놈으로 하여금 호리독사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풍운비룡 다시 만나 반갑군·”
“우리가 전에 만난 적 있었소?”
“칠량 협곡에서의 활약은 대단했소· 덕분에 수하들을 일곱이나 잃었지· 나도 등에 큰 흉터를 새겼고 말이오·”
“설마 무림맹 타격대에 쫓겨 천중산으로 도망갔다가 당한 걸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건 아니겠지? 내가 한 일이라곤 길잡이 역할밖에 없었소만·”
“하지만 결정적이었지·”
그때 죽을 나눠주던 초병이 불쑥 말했다·
“어 왜 이러지?”
“무슨 일이냐?”
“사발이 하나 모자랍니다·”
“그럴 리가· 분명 머릿수에 맞춰 가져왔는데·”
“보십시오· 정말입니다·”
그러면서 초병이 가리킨 것은 야차곤이었다·
하필 왼쪽에 있던 호리독사부터 나눠주다 보니 엉뚱하게도 가장 오른쪽에 있던 야차곤에게서 사발이 뚝 떨어진 모양이었다·
뱀눈의 사내가 팔뚝 길이의 비도 두 자루를 벼락처럼 뽑아 들었다·
나는 재빨리 소맷자락 속에 꽂아둔 바늘을 뽑아 엄지와 검지의 끝으로 쥐었다·
여차하면 앞쪽 공중으로 튕겨놓고 선천오법술을 펼칠 작정이었다·
그때였다·
처걱!
처걱!
엉뚱하게도 초병 두 명의 목이 뚝 떨어졌다·
머리통을 잃은 몸뚱어리가 그대로 엎어지더니 시뻘건 피를 콸콸 쏟아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사이 기생오라비가 한 놈의 품속에서 열쇠를 꺼내고는 재빨리 연소교를 풀어주기 시작했다·
“삼뇌가 장보도에 표시된 곳으로 선발대를 보냈습니다· 낮에 그려주신 장보도의 진위부터 확인한 후에 움직이려는 것 같습니다·”
“병력이 많으니 신중을 기하려는 거겠지·”
“속하의 생각도 같습니다·”
“빼앗긴 무기들은?”
“모두 회수해 백 장 밖 숲에 숨겨 두었습니다· 수하들도 하나둘씩 마을을 빠져나가 그곳으로 집결하는 중입니다· 다만 말은 타시지 못 할 것 같습니다·”
“수고했어·”
“별말씀을요 ”
연소교가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자 기생오라비는 열쇠를 뱀눈의 사내에게 휙 던져 주었다·
그때부터는 뱀눈의 사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달라붙어 빠르게 쇠사슬과 수갑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나와 이병룡과 조영영은 그야말로 어리벙벙한 얼굴이 되었다·
아무래도 연소교는 천마성교의 잔당들에게 오래전부터 간자를 심어놓고 동태를 파악해온 모양이었다·
‘이렇게 치밀할 줄이야·’
마침내 연소교를 비롯한 그녀의 수하들 전부가 자유의 몸이 되었다·
아직 나와 이병룡과 조영영은 그대로 묶여 있었다·
한데 어쩐 일인지 뱀눈의 사내는 거기서 하던 일을 뚝 멈췄다·
연소교가 내게 말했다·
“만금전장이 내게 준 장보도가 진짜라면 당신 형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약속할게· 그러니 말썽부리지 말고 조용히 있었으면 좋겠어·”
“뒤통수를 제법 잘 치시는군·”
“삼뇌는 인명을 파리처럼 여기지만 동시에 지극히 실리를 추구하는 사람· 얌전히만 굴면 구태여 당신들을 죽여 표왕과 수향문주의 원한을 사는 짓은 하지 않을 거야·”
“내가 고함을 질러 사람들을 부른다면?”
“그렇게 해서 당신이 얻는 게 뭐지?”
“아무것도· 대신 당신이 하려는 일은 확실히 방해할 수 있겠지·”
설표를 비롯한 마교도들이 두 눈을 사납게 치켜떴다·
연소교는 잠시 나를 응시하더니 한층 부드러워진 음성으로 말했다·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여기까지 잘 왔어· 남은 길은 우리가 알아서 가보도록 하지· 그럼 조심해서 돌아가라고·”
기생오라비가 연소교에게 말했다·
“곧 해가 질 겁니다· 뒤쪽으로 땅을 파고 나간 다음 곧장 숲으로 사라지면 한동안은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땅은 이미 파뒀어·”
“예?”
“풍운비룡의 조력자가 들어 왔거든·”
연소교는 그때까지도 쇠사슬을 허리에 감고 있는 호리독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덤빌 건가?”
호리독사는 연소교의 뒤에 있는 설표 산노 우숙 야차곤 등을 한차례 눈으로 쓰윽 훑었다·
그리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뒤로 한 채 등을 돌려 보이며 말했다·
“제대로 묶어 주십시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야차곤이 달라붙어 호리독사를 쇠사슬로 묶고 수갑을 채웠다·
이어 튼튼하게 잠겼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그 사이 연소교가 기생오라비에게 말했다·
“밖에도 망을 보는 자가 한 명 더 있어· 우리만 먼저 빠져나가면 뭔가 일이 틀어졌음을 깨닫고 곧장 들어와 저들을 풀어주려고 할 거야·”
기생오라비가 뱀눈의 사내에게 말했다·
“일각 정도 지켜보다가 척후병이 딴짓을 못 하게 한 다음 마지막으로 빠져나오도록· 필요하다면 척후병은 죽여도 좋다·”
“살인은 안돼·”
연소교의 짧은 일갈이었다·
기생오라비가 그대로 뱀눈의 사내에게 전달했다·
“말씀을 따르도록·”
“알겠습니다·”
연소교는 마지막으로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구멍으로 쏙 사라졌다·
뒤이어 설표가 이병룡을 밀어 넣었고 곧 자신부터 한 명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야차곤은 워낙 덩치가 커서 한참을 더 판 다음에야 겨우 빠져나갔다·
이제 통나무 창고 속에는 나와 조영영과 괜히 들어왔다가 얼떨결에 잡힌 호리독사 그리고 뱀눈의 사내만 남게 되었다·
“이름이 뭐요?”
“벙어리는 아닌 것 같던데·”
“알았소· 귀찮게 안 할 테니 신발에 묻은 말똥이나 좀 닦으시오· 아까부터 냄새가 나서 참을 수가 없소·”
뱀눈의 사내가 무심결에 고개를 숙였다·
순간 그의 정수리 언저리에 은침 하나가 정확히 꽂혔다·
사내는 앞으로 푹 고꾸라지더니 그대로 통나무가 되어 버렸다·
조영영이 물었다·
“암기는 언제?”
“설명하자면 기오·”
그러면서 나는 재빨리 사내에게로 가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허리를 붙인 채 함께 묶여 있던 조영영이 쭉 딸려 일어났다·
“뭘 하시려고요?”
“열쇠를 찾아야지·”
“소용없어요·”
“어째서?”
“야차곤이 갖고 갔어요·”
“언제 말이오?”
“조금 전 표사분을 쇠사슬로 묶고 수갑을 채운 후 튼튼한지를 확인할 때요·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마지막엔 열쇠를 달라고 하더니 일부러 풀었다가 다시 채우더라고요·”
“이런 망할!”
철그렁!
묵직하게 떨어지는 쇠사슬 소리에 무심코 옆을 돌아보았다·
놀랍게도 호리독사가 자유의 몸이 되어 손목을 어루만지면서 씨익 웃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제 전문분야 입니다·”
호리독사는 작은 쇠꼬챙이 하나로 나와 조영영의 수갑과 쇠사슬까지 순식간에 풀어주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어느새 어둠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호리독사를 앞세우고 곧장 숲으로 도주했다·
가면서 조영영이 물었다·
“이제 어떡하죠?”
“그놈의 빌어먹을 보물 나도 한번 봐야겠소·”
“우린 지도도 없잖아요·”
“마녀를 추적하면 되오·”
“곧 밤이 되면 아무것도 볼 수 없을 텐데 무슨 수로요· 내일이면 일대가 온통 천마성교의 잔당들로 깔릴 테고요·”
남곤산에 도착하면 저들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오늘 아침 두 사람에게 천리추향 한 알씩을 먹여 두었소·”
“두 사람이라면?”
“병룡 형님과 소저 말이오·”
“어떻게요?”
“먹는 음식에 넣었소·”
“혹시 아침에 먹었던 그 냄새나는 죽이?”
“맞소·”
“왜 직접 주지 않고요·”
“그게 원래 오른쪽 귓구멍에 넣어 둔 것인데 십여 일 만에 꺼내고 보니 상태가 영 엉망이어서 말이오·”
“상태가 어땠기에···”
“안 듣는 게 좋을 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