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 사천구룡방 (1) >
여종매는 본래 하남 사람으로 대별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평천(平川)이라는 곳에 살았다·
가난했던 홀어머니는 그녀가 열세 살이 되어 초경을 치르자 은전 열 냥과 비단옷 한 벌을 받고는 쉰 살 먹은 포목상 왕 씨의 다섯 번째 첩으로 팔아 버렸다·
시집(?)을 가보니 그녀는 첫 번째 정실부인이 낳은 딸과 동갑이었다·
왕 씨가 자신의 처소를 찾는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정실부인의 딸에게 불려갔다·
그리고는 정실부인과 세 명의 첩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정실부인의 표독스러운 딸도 아니고 딸의 하녀에게서 죽지 않을 만큼 뺨을 맞았다·
왕 씨에게 제발 자기를 집으로 좀 보내 달라고 울면서 사정도 해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도망치면 네년과 네년의 어미를 모두 찾아 죽여 버리겠다는 경고였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여종매는 어머니가 전염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 밤 잠자던 정실부인과 그녀의 딸 방에 차례로 침입 비명을 지르지 못하도록 식칼로 목을 그어 버리고는 대별산으로 도망쳤다·
짐승처럼 온산을 헤집고 다니길 열흘째 마침내 소문으로만 듣던 도화곡을 찾았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려 일갑자가 훨씬 넘는 세월을 거의 도화곡에서만 보냈다·
자신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제자들 역시 저마다의 곡절이 한 가지씩은 있었다·
그 모든 사연들을 안고 성도로 가는 길은 생각했던 보다 훨씬 고단했다·
하지만 처음에 우려했던 것과 달리 삼백 명의 제자들은 성도가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구대제자들이 그랬다·
이 모든 게 세 명의 걸출한 사내들이 가져온 기적이었다·
고목과 같은 존재감으로 모두를 안심시키는 표왕 어린 제자들을 사매처럼 든든하게 지켜주는 남궁세옥 그리고 위기의 순간마다 천재적인 발상으로 돌파구를 만들어 내는 이정룡까지·
특히 이정룡은 간밤에도 놀라운 계획을 내놓더니 판을 깔아 놓고 기다리겠다며 객원표사들을 이끌고 먼저 성도로 달려갔다·
이제는 사실상 그 신기방통한 아이의 행보에 도화곡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말은 않지만 이종산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말씀하신 문규(門規)입니다·“
대파산맥을 넘어 사천성으로 들어가기 직전 잠시 쉬는 틈을 타 이막하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산을 내려온 만큼 기존의 문규들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
이에 그 초안을 이막하에게 만들어 보도록 지시했었다·
그녀는 오대장로 중 서른 살이 넘어 도화곡으로 들어온 유일한 사람이었다·
고향은 산서성 태원(太原)이었고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산서상인의 애지중지하던 딸이었다·
심지어 상재가 뛰어나 혼인도 하지 않은 채 아버지를 도와 상방을 산서성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크게 키웠다·
한데 하필 아비와 막역한 사이였던 왕족이 역모에 휘말려 참변을 당하면서 그 여파가 상방에까지 미쳤다·
그녀는 부모님의 희생 덕택에 가까스로 살아남아 도화곡으로 왔고 이후 제자가 되어 지금까지 살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만들었군·”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만 했을 뿐입니다· 읽어 보시고 부족한 것들을 말씀해 주시면 다시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게·”
“그럼·”
“이 장로·”
돌아서 가려던 이막하를 여종매가 조용히 불렀다·
“예 곡주님·”
“어찌하여 산을 내려가지 않았는가?”
“무슨 말씀이신지····”
“마음만 먹는다면 젊은 나이에 도화곡을 벗어나 얼마든지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 보통 사람들처럼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 터인데·”
이막하의 시선이 저만치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섭부용과 함께 꼬물꼬물 떡을 나눠 먹고 있는 구대제자들에게로 향했다·
“딸들 같아서요·”
“···?”
“제가 낳지는 않았지만 제 손으로 먹이고 가르치고 키웠습니다· 저것들을 버리고 어떻게 산을 내려갈 수 있었겠어요·”
“세상의 많은 가난한 부모들이 은전 몇 개에 자식을 팔아버리기도 한다네·”
“저는 곡주님과 여러 사숙님들 덕분에 가난하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하니 그런 어려운 고민도 할 필요가 없었지요·”
산중에서의 생활이 어찌 가난하지 않았겠나·
삼백여 명을 이끌고 이렇게 성도로 터전을 옮기는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거늘·
여종매는 알고 있었다·
세상의 그 어떤 고난과 환란이 닥쳤어도 이막하는 절대 제자들을 버리지 않았을 거라는 걸·
“그만 가보시게·”
“그럼·”
대별산을 떠난 지 23일째 되는 날 표행단은 마침내 거대한 사천분지의 동쪽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가릉강(喜陰江)에 도착했다·
가릉강 최대의 포구마을 남충(南充)은 줄지어 늘어선 여곽과 주루만 보아도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교통의 요지인지 알 수 있었다·
한데 오늘은 포구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초월한 수의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천룡표국과 도화곡의 깃발을 동시에 앞세우고 사백여 명의 표행단이 나타나자 사람들이 앞다투어 길을 터주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한 무리의 죽립인들이 떡하니 앞을 막아섰다·
숫자는 고작 열다섯 등에는 도검을 멨는데 하나같이 사나운 기세를 폴폴 풍겼다·
그 바람에 표행단 전체가 걸음을 멈추게 됐다·
행동강령에 따라 양진각이 표사 스무 명과 함께 앞으로 치고 나가서는 놈들과 대치하며 외쳤다·
“누가 감히 천룡표국의 앞을 막아서는가!”
“도화곡주를 뵈러 왔소이다·”
“정체를 밝혀라!”
“먼저 도화곡주를 뵙게 해주시오·”
챙! 채채채채챙!
양진각을 필두로 스무 명의 표사들이 일제히 도검을 뽑아 들었다·
양진각이 살기를 뿌려대며 말했다·
“강호인들이라면 표국의 규칙을 모르지 않을 터· 마지막으로 경고하겠다· 정체를 밝혀라·”
두 번씩이나 정체를 밝히라는 표국의 경고를 무시한 채 버티고 서 있다면 노상강도로 간주 얼마든지 베어 버려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지금 표행단은 사백여 명을 헤아렸고 막아선 이들은 고작 열다섯 명에 불과했기에 노상강도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였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중 열에 두세 명은 도검을 패용한 무림인들이었다·
보통의 도시나 포구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비율이었다·
그때 여종매가 말했다·
“길을 터주세요·”
양진각이 가만히 이종산을 돌아보았다·
어찌할지를 묻는 것이다·
이종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양진각이 비로소 길을 터주었다·
우두머리인 듯한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죽림을 깊이 눌러 쓴 바람에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가 포권을 쥐며 말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내게 볼일이 있나요?”
“한가지 여쭐 것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소문을 듣자 하니 천룡표국과 손을 잡고 사천구룡방을 칠 거라고 하던데 이것이 사실인지요·”
보통의 경우라면 네 놈은 누구며 그건 왜 묻는지부터 따졌어야 한다·
하지만 여종매는 이들에게 무언가 사정이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저들이 누구든 대답이 달라질 건 없었다·
문득 어젯밤 이종산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내일이면 가릉강의 남충이라는 포구에 도착할 것입니다· 성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포구들 중 가장 큰 곳으로 족히 이천 명은 운집해 있을 걸로 추측됩니다·”
“그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선전포고를 하기에 좋은 시간과 장소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일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국주님의 경험과 지혜를 조금 나눠 주시겠습니까?”
“하오문이 제 아들 녀석을 통해 전해준 정보를 들어 아시겠지만 사천구룡방은 마땅히 없어져야 할 악의 무리입니다·”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쓸어버리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너무 나간 것입니다· 명분이 과하면 오히려 자승자박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하면 어찌해야 합니까?”
“어차피 사천구룡방과의 일전은 불가피한 것· 공을 저들에게 넘기십시오· 하면 저들이 알아서 딱 필요 한만큼의 명분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이종산의 예상은 귀신같이 들어 맞았다·
남충으로 들어서자 정말 이천여 명 정도의 군중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모두가 자신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종매는 이종산이 말한 그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우리는 단지 개파조사님의 고향이었던 성도에 새로이 뿌리를 내리려는 것일 뿐 어떤 문파와도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를 방해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좌중이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단언하건대 군중 속에는 사천구룡방의 인물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내는 이종산에 게도 물었다·
“외람됩니다만 천룡표국의 입장도 듣고 싶습니다·”
이번엔 수천 명의 눈이 이종산을 향했다·
이종산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룡표국은 도화곡을 사천성 성도까지 옮기는 것과 동시에 안정을 찾을 때까지 장원과 제자들의 호위를 의뢰받았소· 도화곡이 어떤 이유로든 성도의 무림문파들을 공격하려 한다면 천룡표국은 그 즉시 손을 뗄 것이오· 하지만 만약 성도의 무림문파들이 정당한 사유 없이 도화곡을 핍박한다면 천룡표국은 의뢰인과의 계약에 따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성도는 초대형 흑도방파인 사천구룡방이 오랜 세월 지역의 맹주로 군림하는 가운데 군소 방파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밥을 벌어먹는 형국이었다·
여기에 제자를 300명이나 거느린 대형 무림문파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눌러앉겠다고 하면 사천구룡방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싸움은 기정사실이었고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셈이었다·
사람들이 끝도 없이 술렁이는 가운데 이종산이 사내에게 물었다·
“이제 귀하들의 정체와 길을 막아선 이유를 말해 주시오· 만약 나를 납득시키지 못 한다면 오만불손한 태도로 표행단을 막아선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오·”
사내가 천천히 죽림을 벗었다·
그러자 무수한 칼자국을 얼굴에 새긴 삼십 줄의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를 시작으로 함께 온 열네 명의 사내들도 모두 죽림을 벗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가 칼에 난도질을 당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
우두머리 사내가 말했다·
“성도의 서쪽에 민강(殺江)이 있습니다· 저 멀리 민산산맥에서 발원하여 장강까지 흘러 들어가는 이 강에는 조운으로 먹고사는 오백 여 척의 배들이 있었지요· 그 배들의 칠 할이 거대한 곡창지대의 중심인 성도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조양방(朝陽 常)이라는 이름 아래에 하나로 뭉쳐 있었고요·”
사내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성도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이 이들의 정체를 간파한 것이다·
“10년 전 사천구룡방의 무인 삼백 명이 조양방 총타를 습격했습니다· 그들의 일방적인 도륙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방주를 포함해 무려 일흔다섯 명을 죽인 후에야 비로소 지옥같은 혈사가 끝이 났지요· 그리고 조운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외부인을 새로운 방주로 세운 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조양방은 수익의 절반을 사천구룡방에 바치고 있지요·”
이 사건은 이종산과 여종매도 알고 있었다·
지난 20년 동안 사천구룡방이 성도에서 저지른 패악질들 적었다면서 하오문이 준 책자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었다·
책자에는 또 얼굴에 칼자국을 새긴 채 성도를 떠난 무인들에 관한 이야기도 씌어 있었다·
사천구룡방은 생포한 조양방 무사들의 얼굴에 무수한 칼자국을 새긴 후 풀어 주었다·
사람들이 그들을 볼 때마다 조양방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사천구룡방에 대한 공포심을 뼛속까지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사내가 갑자기 이종산을 향해 정중한 포권지례를 올렸다·
뒤에 있던 열네 명의 죽림인들도 뒤따라 예를 갖추었다·
“짐작하셨겠지만 저희는 10년 전 조양방의 혈사에서 생존한 무사들입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함께 성도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귀방의 복수를 위해 우릴 이용할 생각이시오?”
“만약 사천구룡방으로부터 조양방을 되찾게 된다면 조운을 하는 동안 모든 배의 호위를 도화곡에 맡기겠습니다·”
좌중이 또 한 번 크게 술렁였다·
민강을 오르내리는 조양방의 배들을 독점 호위하는 건 결코 작은 이권이 아니었다·
도화곡이 성도에 정착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귀하의 이름이 무엇이오?”
“장소봉입니 다·”
“전임 방주이신 칠량도(七兩植) 장추벽 대인과는 어찌 되시오?”
“저희 아버지를··· 아시는지요?”
“오래전 민강을 지날 때마다 신세를 지곤 했소· 알고보니 장 대인의 자제분이셨군· 늦었지만 조의를 표하는 바이오·”
“아아 그러셨군요·”
사내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지난 인연으로 말미암아 일이 수월하게 풀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종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장소봉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모든 군중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천룡표국은 지금 무려 200년 역사를 지닌 한 무림문파의 뿌리를 통째로 옮기는 신성한 표행을 하고 있는 중이오· 여기에는 어떤 다른 불순한 목적도 개입될 수 없소· 조양방의 일은 안타까우나 다른 방법을 찾아보길 바라오·”
장소봉은 한동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천룡표국이 절대로 거절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다시 한번 공손하게 포권지례를 올렸다·
“저희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
밤낮을 쉬지 않고 달린 덕택에 나는 이종산이 이끄는 본대보다 사흘 정도 앞서 성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얼마나 강행군을 했던지 다들 녹초가 되어 있었다·
간밤엔 폭우까지 쏟아져 더욱 몸이 무거웠다·
“일단 한 잔 마시고 시작할거나?”
“그렇게 하시죠·”
“정말인가?”
내가 순순히 허락하자 이견이 깜짝 놀랐다·
“대신 주루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성도에 와 본 적 있나?”
“아뇨·”
“한데 어떻게?”
“안내해줄 사람이 나타날겁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내 말뜻을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소소의 도움으로 일찌감치 역용을 한 우리는 분위기도 파악할 겸 말을 타고 저잣거리로 들어갔다·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호객행위를 하는 아이들이 강아지 떼처럼 달라붙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일견을 두령이라고 생각한 아이들은 전부 그에게 달라붙어 싸고 맛있는 객점을 안내해주겠다며 온갖 허풍들을 쳐댔다·
그때 어디선가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놀란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져서는 길 양쪽으로 붙었다·
잠시 후 삼십여 필의 말이 대로를 질주해 오는 게 보였다·
길에는 여자와 아이들을 비롯해 오가는 행인들이 적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기마인들은 거침이 없었다·
그들과 부딪히지 않으려면 우리도 옆으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놈들은 우리가 서 있는 앞을 그야말로 쏜살처럼 지나쳐 갔다·
한데 놈들이 탄 말의 뒤쪽으로 십여 명의 사람들이 밧줄에 두 손을 묶인 채 짐승처럼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그나마 간밤의 폭우로 말미암아 바닥이 온통 진창이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모두 아연실색했다·
남궁소소가 내게 물었다·
“대체 뭐 하는 놈들이죠?”
“사천구룡방 놈들이오·”
“그걸 어떻게 알죠?”
“놈들이 아니면 성도 유흥가 한복판에서 감히 누가 삼십여 명씩 떼 지어 말을 달리며 저런 미친 짓을 벌이겠소·”
“무법천지가 따로 없군요· 관병들은 대체 무얼 하기에 대낮에 저런 끔찍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걸까요?”
“어차피 한통속이거든요·”
갑작스러운 목소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열서너 살가량의 사내아이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남궁소소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관아의 관리 열 명 중에 아홉이 사천구룡방에 매수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 가장 꼭대기에 지부대인이 있고요·”
“그렇다고 대낮에 사람들로 붐비는 저잣거리에서 사람을 저렇게 묶어 달리는데도 모른 척 한다고?”
“물론 몇 명 잡아넣기는 하겠죠· 하지만 죄다 사건과는 무관한 하급 무사들이에요· 그나마도 한 달쯤 지나면 슬그머니 풀려나고요·”
어느 도시에나 있는 일이어서 새롭지도 않다·
다만 성도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극심하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
“한데 끌려가는 사람들은 누구지?”
“용무관(龍舞關)이라고 성도의 남쪽에 제법 큰 무관이 있어요· 제자들의 수가 한 백 명쯤 되려나? 아무튼 사천구룡방이 도화곡과의 전쟁을 앞두고 제자들을 전부 보내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협조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본보기로 열 명을 붙잡아 벌써 반 시진 째 저렇게 끌고 다니고 있어요·”
“용무관처럼 사천구룡방에 맞선 곳이 많이 있니?”
“글쎄요·”
“무슨 대답이 그래?”
“배가 고파서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러면서 턱을 벅벅 긁었다·
한창 재밌을 때 딱 말을 멈추는 것이 닳고 닳은 놈이었다·
남궁소소가 피식 웃더니 동전 세 냥을 꺼내 녀석에게 주었다·
“이러면 기억이 생생하게 나려나?”
녀석은 입이 귀에까지 걸렸다·
그리곤 다른 사람들을 모두 지나쳐 뜬금없이 내가 탄 말의 고삐를 덥석 잡았다·
“보아하니 멀리서 오신 분들인 듯한데 우선 시원하게 목부터 축이시지요· 소인이 좋은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곳이더냐?”
“성도의 객점은 어디를 가든 다 거기서 거깁니다· 술에서 바가지를 안 씌우면 음식에서 바가지를 씌웁지요· 그래야 사천구룡방의 하급무사들에게 돈을 상납하고도 조금 남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차피 바가지를 쓰실 요량이면 술맛 좋고 조용한 곳이 낫지 않겠습니까요? 여곽도 겸하고 있어서 술과 식사를 하신 분들께는 특별히 싸게 해드립니다·”
그러면서 녀석의 시선이 내 등 뒤로 솟은 검파의 수실에 잠시 머물렀다가 떠났다·
나는 기다리던 손님이 나타났음을 직감했다·
“앞장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