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 붕정만리 (9) >
여태 의자에 몸을 묻고 있던 백군악이 천천히 일어났다·
거대한 체구와 이글거리는 눈빛 그리고 은발의 머리카락이 뿜어내는 위압감은 단번에 장내를 압도해 버렸다·
“내 칼을 가져와라·”
동굴 깊은 곳에서 범이 으르릉거리는 듯한 음성·
녹림도 하나가 커다란 칼을 무슨 통나무 짊어지듯 어깨에 짊어지고 나타났다·
백군악은 녹림도의 어깨에서 도파(刀祀) 즉 용머리 모양의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뽑았다·
스르릉!
묵직한 금속성과 함께 사람 키만한 대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퍼런 예광을 토해내는 도신을 보자 나도 모르게 목이 간질간질했다·
30년 전 백군악이 제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녹림 고수들을 지옥으로 보낸 전설적인 칼이었다·
제왕의 자리에 오르고 난 이후에는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배신자들과 살수들을 마찬가지로 지옥에 보낸 칼이었고·
백군악이 공터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국주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는구려·”
“···?”
“40년쯤 전이었나? 그때 혈기방장한 표사였던 국주께서는 선대인이신 전대 국주를 따라 진령을 넘던 중이었지요· 나와 선대인이 겨루는 걸 지켜보며 가슴 졸이시던 모습이 어제처럼 생생하구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이면 백군악이 삼백여 명의 수하를 거느린 대형 산채 귀왕채(鬼王蒙)의 채주였을 때였다·
그때 백군악은 이종산의 부친 즉 내게는 조부가 되는 송해일검(松海一劍) 이적명과 진령에서 일전을 겨룬 모양이었다·
천룡표국의 역사에 관해서는 웬만큼 안다고 자부했다·
한데 이건 나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문득 이종산의 표정이 궁금해 오른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승부욕의 근원을·
‘졌었구나!’
혹시 이적명으로 하여금 왼팔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만들었다던 부상이····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상황이 묘하다·
이종산은 나와 비슷한 나이였을 때 자신의 아버지가 산적 두령에게 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마침내 백군악이 공터로 완전히 들어섰다·
둘 사이의 거리는 무려 오 장 한데도 뭐라 말할 수 없이 강렬한 투기로 꽉 찼다·
스르릉!
이종산의 오척장검도 뽑혔다·
그가 표왕이라 불리기까지 평생을 함께해온 애검이었다·
이종산이 검을 아래로 늘어뜨린 상태에서 옆으로 비스듬히 서며 말했다·
“선공을 양보해 드리겠습니다·”
“무어?”
“나이를 초월해 고수가 하수에게 선공을 양보하는 것이 강호의 도리라고 오래전 맹주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백군악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광소를 터뜨렸다·
“음하하하!”
대기가 떵떵 울리고 초목이 부르르 떨렸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경파에 내공이 약한 사람들은 손으로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본격적인 싸움을 앞두고 내공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한참을 웃던 백군악이 돌연 정색을 하고 말했다·
“어디 40년 동안 얼마나 컸는지 볼꺼나?”
순간 백군악의 신형이 환영처럼 쭉 늘어났다·
그나마 나는 이능력을 최대로 발동한 탓에 그 정도라도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백군악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번쩍하고 사라지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터져 나오는 굉음들!
꽝! 꽈과과광! 꽝꽝!
백군악의 성명절기는 녹광마혈도(緣光魔血刀)라는 이름만 들어도 방문좌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마공이었다·
얼마나 많은 흑도와 백도의 고수들이 저 녹광 아래에서 피를 뿌리며 죽어갔는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무지막지한 기세로 숨 쉴 틈도 없이 몰아붙이는 백군악의 공세는 흡사 수십 대의 대포를 이종산의 얼굴에다 연달아 쏘아대는 것 같았다·
이종산은 감히 반격할 생각을 못 하고 방어를 하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나 이 역시 내게 보이는 광경일 뿐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흐릿한 잔영을 남기며 얽히는 두 개의 그림자 주변으로 천둥과 번개가 꽝꽝 치는 것 같을 것이다·
‘이 무슨 엄청난 내공이!’
나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한 아니 상상할 수 있는 영역 밖에서 존재한 백군악의 가공할 도법에 입안이 바싹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만약 이종산이 지기라도 한다면?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때였다·
꽈과과과광! 꽝꽝꽝!
도검 부딪히는 소리가 갑자기 두 배로 빨라졌다·
그나마 흐릿한 잔영으로 존재하던 두 사람의 모습이 이제는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막강한 기세에 주변의 흙이 소용돌이치며 솟구쳐 올라 두 사람을 에워싸 버린 탓이다·
마치 두 마리의 늙은 용이 먹구름 속에서 서로를 향해 벼락을 때리며 싸우는 것 같았다·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사력을 다해 흙먼지 속 두 사람의 궤적을 쫓았다·
놀랍게도 이종산이 반격을 시작하고 있었다·
갑자기 전세가 역전되었다·
이종산이 백군악을 그야말로 무자비한 속도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앞서 수십 대의 대포를 이종산의 얼굴에다 대고 쏘는 것 같았다면 지금은 흡사 벼락을 동반한 폭우가 백군악을 향해 퍼부어 대는 것 같았다·
대경실색한 백군악이 반전을 노리며 가공할 내공을 도초에 담아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종산은 훨씬 빠르면서도 예측을 할 수 없는 보법과 검초로 백군악의 급소를 노렸다·
천룡표국의 비전절기인 천무십검(天武十劍)은 본래 만년설로 뒤덮인 천산(天山)에서 그 뿌리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한마디로 새외의 무공을 개파조사께서 항주로 가지고 와서 발전시킨 것이 지금의 천무십검이었다·
십검에서의 십(十)은 12성까지 익혔을 때 나타난다는 열 개의 검영(劍影)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곽석산이 내게 말했다·
그렇게 되면 상대는 혼자서 열 명의 절정 고수와 싸우는 듯한 공포를 맛보게 된다고·
그러나 천룡표국의 역사를 통틀어 12성의 성취를 이룬 사람은 없다고도 했다·
지금 이종산이 구현해 내는 검영은 일곱 개 혹은 여덟 개?
한데도 백군악은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신형은 어느새 더욱 짙어진 흙먼지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까르르릉 따앙!
두 개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것처럼 물고 물리던 금속성이 갑자기 기괴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동시에 백군악의 대도가 흙먼지를 뚫고 허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질풍처럼 휘몰아치던 싸움도 뚝 그쳤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대도는 우리 쪽 진영 하고도 객원표사들이 있는 통나무 탁자 위로 묵직하게 떨어져 박혔다·
쾅!
한참 싸움에 집중하고 있던 서호삼견이 화들짝 놀라서는 만세를 부르며 뒤로 넘어갔다·
잠시 후 흙먼지가 걷히면서 드러나는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백군악이 한 발을 뒤로 크게 내디딘 상태에서 고개를 쳐들고 있었고 이종산은 백군악의 턱밑에 오척장검을 척 붙이고 있었다·
좌중의 공기가 요동쳤다·
누구 하나 말소리를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수백 명이 동시에 아우성을 치는 것보다 더 요란하게 대기가 출렁였다·
무려 30년 동안이나 녹림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절대자가 절강성을 대표하는 표국의 국주이자 표왕으로 알려진 늙은 표사에게 패한 것이다·
그것도 고작 삼백여 초식만에·
천하십검이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너무나 큰 충격에 오백의 녹림도들도 사백여 명의 표사와 도화곡 여제자들도 좀처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심지어 한 명씩 승리를 거머쥘 때마다 양쪽에서 번갈아 터져 나오던 함성도 쏙 들어가 버렸다·
나 역시도 천무십검이 이렇게까지 강할 줄 몰랐던 지라 어안이 벙벙했다·
사람들이 받은 충격이 아무리 큰들 당사자만 할까·
철컥!
이종산이 검을 검갑에 회수한 후 공손하게 포권을 쥐었다·
“양보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양보를 해주었다는 뜻이 아니다·
패배한 상대의 체면을 세워 주려는 승자의 겸손일 뿐이다·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지가 더욱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그 손 놓지 못할까!”
갑작스러운 일갈과 함께 녹림맹의 장로 중 한 명이 무서운 기세로 탁자 위를 나는 듯 달려왔다·
이견이 탁자 위에 박힌 백군악의 대도를 뽑기 위해 도파를 잡고 낑낑댔던 것이다·
깡!
지척에 이르러 힘차게 내려친 녹림맹 장로의 낭아봉은 일견의 검에 의해 가로막혔다·
그와 동시에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녹림맹 장로의 허리를 삼견의 단창이 찔러갔다·
그리고 다시 장검을 회수한 일견이 가세했다·
까강! 깡깡!
눈 깜짝할 사이에 대여섯 차례의 공방이 벌어졌다·
그건 마치 바람 부는 가을 들판에 누군가 불씨를 댕긴 것과도 같았다·
오백여 명의 녹림도들과 사백여 명의 표행단이 일제히 도검을 뽑느라 맹렬한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채채채채채챙!
한바탕 피의 살육전이 벌어지려는 찰나·
“누가 감히 흑두산장에서 내 허락 없이 칼을 뽑는가!”
천지를 울리는 사자후가 백군악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왔다·
칠백여 명의 무인들이 거짓말처럼 뚝 멈추었다·
백군악이 이종산을 돌아보며 천천히 말했다·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라더니 놀랍기 그지 없군· 맹주가 된 후에도 수련을 게을리 한 날이 없었거늘·”
“흐르는 세월을 누가 붙잡을 수 있겠습니까·”
“이 정도 실력이면 얼마든지 내 한쪽 팔을 못 쓰게 만들 수 있었을 터인데····”
“복수할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찾아뵈었을 것입니다·”
“내게 묵은 감정이 전혀 없단 말이오?”
“아버지께서 제게 말씀하셨지요· 산중엔 산중의 도(道)가 있고 길에는 길의 도(道)가 있다고요· 그날의 대결은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백군악의 눈동자가 한없이 깊어졌다·
불과 한 시진 전만해도 눈동자에서 태양이 이글거리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저물어 가는 노을이 보였다·
“충분히 선공을 양보하실만한 검법이었소·”
“기회를 주셔서 영광이었습니다·”
“국주께서 한 가지 아셔야 할 것이 있소·”
“경청하겠습니다·”
“잠강의 나룻배를 숨긴 것은 내가 맞소· 하지만 그 방법을 제시해준 자들은 따로 있소· 그들의 진짜 신분은 나도 알 수가 없소·”
“···!”
“강호인들은 우리를 흑도라고 손가락질하지만 흑도는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오· 심지어 백도무림의 결사체인 무림맹에도·”
그들의 진짜 신분은 모른다고 했지만 백군악은 어느 정도 짐작을 하는 것 같았다·
십중팔구 하양표국일 것이다
우리 길을 방해할 이유가 있는 세력 중에 잠강의 사정을 이토록 자세히 아는 곳은 화양표국밖에 없으니까·
문제는 과연 화양표국 선에서 결정한 일이냐 하는 것일 뿐·
“녹림맹은 계속 천룡표국의 친구로 남을 것이오· 부디 성도까지 안전하게 가시길 바라외다·”
“녹림맹과 맹주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
흑두산장에서의 한나절은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다·
우선은 암중에서 따라다니던 무림인들의 수가 훨씬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함부로 눈앞에 나타나지 못했다·
새로운 천하십검의 일석을 차지한 초절정 검사가 이끄는 표행을 감히 누가 무슨 배짱으로 막아서겠나·
장담하건대 녹림맹에서의 대결로 말미암아 우리는 수많은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게 되었을 것이다·
여섯 번째 찾아온 하오문도의 말이 그걸 증명해 주었다·
“강호인들이 온통 녹림맹주와 표왕의 일전에 대해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녹림과 표국은 물과 불처럼 천적인 동시에 공생도 하는 묘한 관계인지라 더욱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한 모양입니다·”
“표행길이 생각보다 순탄한 것도 그 때문입니까?”
“염라대왕이 상여의 맨 앞줄에 서서 가고 있으니 잡귀가 얼씬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무슨 말씀이 그렇습니까?”
“헛 죄송합니다· 소인이 배운 게 없다보니 그만·”
이번에 찾아온 하오문도는 여러모로 촐싹 맞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염라대왕과 상여라니·
이종산을 염라대왕에 비유한 건 그렇다고 쳐도 도화곡의 행렬을 상여라고 하는 건 도화곡의 제자들이 들었다면 칼부림이 났을 일이다·
신세를 지는 입장인데다 매용초의 얼굴을 봐서 참는다·
한데 하오문에서도 도화곡의 성도행을 죽으러 가는 길이라고 여기는 걸까?
나는 은전 한 냥을 꺼내 하오문도에게 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어이쿠 뭐 이런 걸 다·”
“귀하는 말을 좀 조심하셔야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대별산을 떠난 지 이십 일째 되던 날 우리는 자연의 거대한 장벽 대파산맥을 앞두고 있었다·
이 산맥만 넘으면 사천성이고 거기서 다시 열흘 정도를 더 가면 마침내 성도가 나타난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남궁소소가 나타나 옆에 앉으며 물었다·
눈앞에서는 멧돼지고기가 모닥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
모닥불 주변에선 서호삼견이 열심히 군침을 흘리고 있었고·
“성도에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오늘 아침에 다녀간 하오문도가 이르길 사천구룡방이 다섯 개 흑도방파에서 무려 일천여 명에 달하는 무인들을 끌어 모았다고 하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늘어나겠지·”
“사천구룡방을 특정해 선전포고하는 것만으로도 성도 무림문파의 절반은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건 큰 그림일 뿐 보다 구체적이고 확실한 계획이 필요하오·”
“며칠 전부터 수뇌부 회의가 잦더라니 모두 그걸 의논하느라 그러셨군요· 한데 아직까지는 무릎을 치게 만드는 방법이 안 나온 거고요· 맞나요?”
“그렇소·”
그때 호리독사가 주변을 힐끔거리며 나타났다·
이어 뱃속에서 호리병 대여섯 개를 꺼내 다른 모닥불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얼른 나와 서호삼견에게 한 병씩 찔러 주었다·
이견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이게 아직도 남았어?”
“드시고 호리병은 도로 주십시오· 내일 또 담아 마셔야 하니까요·”
“대체 얼마나 훔친 거냐?”
“항아리로 열 개 정도요·”
“미쳤군· 미쳤어·”
흑두산장에서 모두가 모여 한창 비무를 하던 그때 호리독사는 녹림도들이 숨겨 놓은 술 항아리들을 귀신같이 찾아내서는 열심히 훔쳐다가 표마차에 실어 두었다·
그게 열 항아리나 되는 모양이었다·
정말 어떤 면에서는 독보적인 인간이었다·
“제가 소싯적에 수적질을 좀 해봐서 아는데 말입니다· 수적들도 그렇고 산적들도 그렇고· 언제 쓸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술만큼은 일단 남자들한테 좋은 거 위주로 마시고 봅니다·”
“또 약 파는 거 봐라·”
“산적놈들이 벌집을 통째로 따다 담그는 노봉방주(露峰房酒)는 그중 최고입니다· 농축된 봉독 때문에 가끔 생사를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별미고요·”
“고작 술 한 병이 무슨 큰 도움이 된다고·”
“모르시는 말씀· 돌 하나가 천 겹 물결을 일으키고 작은 불티 하나가 온 산을 태우는 법입니다·”
옛날 같으면 남궁소소 앞에서 이런 음탕한 이야기를 한다고 화를 버럭 냈을 것이다·
하지만 노인네들과 친해지더니 지금은 남궁소소가 오히려 한술 더 떴다·
“정말 그렇게 좋은가요?”
“저는 도둑질은 해도 거짓말은 안 합니다·”
“차라리 거짓말을 하세요·”
“소저께서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원래 도둑질보다 거짓말이 훨씬 나쁜 겁니다· 세 명이 입을 맞추면 없는 멧돼지도 만들어 낸다지 않습니까·”
“호랑이겠죠·”
“아무튼요·”
순간 머릿속에 번쩍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모두 성도로 갈 준비를 하십시오· 저는 국주님을 뵙고 허락을 맡아 오겠습니다·”
일견이 물었다·
“지금도 성도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만 선발대로 사나흘 정도 먼저 갈 겁니다·”
그리고 이종산의 막사로 막 뛰어 가려 했다·
한데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어서 걸음을 멈추고 모닥불 위의 멧돼지고기를 바라보았다·
얼추 익은 것이 금방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남궁소소가 말했다·
“제가 지키고 있을게요·”
“믿어도 되겠소?”
“그게 무슨 뜻이죠?”
“아니오· 잘 부탁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