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55화
성력과 성력의 싸움·
‘요마’의 성력으로 ‘미궁’의 성력을 사용하며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해 두었다·
태현이 사용하는 건 ‘포식자’의 성력·
차이라면 이전과 달리 10%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웃기는 일이지·”
김태현에 대해선 모두 안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10퍼센트다·
“삼천세계가 무너지지 않는 한도 내에선 최대로 끌어온 건가·”
‘삼천세계의 포식자’는 하급 성좌·
‘의식에 기거하는 미궁’은 상급 성좌·
중급 성좌인 ‘운명을 거스르는 요마왕’의 힘으로도 압도하지 못했다·
‘격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확실한 건·
“이 정도면 제압할 수 있겠군·”
포식의 아가리·
봉인되어 사용하지 못했던 자신의 근원이 ‘미궁’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있었다·
성력에 무력했던 일전과 달리 이번에는 ‘포식자’의 힘을 투영한 까닭이다·
이그문의 저항 또한 거세었다·
미로(迷路)와 미궁(迷宮)·
포식이 먹어 치우는 것 못지않은 속도로 녀석의 의식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있다·
“과연· 의식에 기거한다는 건 이런 말이었나·”
지금의 공간은 김태현이라는 존재를 이루고 있는 심상 세계·
거기에 6층 차원의 틈을 연결시킨 곳이다·
공간과 시간을 통제하고 있는 건 맹약을 맺은 대공들·
단언할 수 있다·
이 정도로 마련된 무대에서 이 정도로 저항하는 건 미궁의 힘이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네놈도 결국 선택받았다는 것이잖나·”
둘러놓았던 요마의 불꽃이 약해지고 있다·
불꽃이 사라진다면 더 이상 미궁의 움직임을 잡아둘 수 없다·
“결국 이번에도 목숨을 버릴 각오가 필요한 거로군·”
피식·
입꼬리를 말아 올린 태현이 손을 그러쥐었다·
쩌어어억·
새롭게 시야를 가리던 미궁들이 눈 깜짝할 사이 소멸되는 모습을 보였다·
후욱·
태현이 몸을 기울였다·
그것만으로 목표했던 지점에 이동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
몸에서 피어난 아지랑이가 아가리의 형태로 눈앞의 공간을 물어뜯었다·
그곳에 대적자가 있었다·
“틈을 만드는 재주 하난 대단하구나·”
[네놈·]
“티폰의 얘기를 듣지 못했다면 꼼짝없이 놓칠 뻔했겠어·”
차원의 틈에서 있었던 이그문과 티폰의 전투·
신마력의 소모가 따르는 티폰과 달리 이그문은 별다른 무리 없이 차원의 틈을 견디는 게 가능하다 말했었다·
“명색이 ‘미궁’의 성력을 다루는 녀석인데· 그 정도쯤은 대수롭지 않았겠지·”
[다 같이 죽자는 거냐?]
이그문이 주위를 둘러싼 아가리를 보며 물었다·
요마의 힘이 남아 있고 포식자의 아가리로 완전하게 포위하고 있다·
통합왕의 격에 닿았고 성력을 완전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미궁의 힘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다·’
그로서는 처음 느끼는 패배감이었다·
‘본귀의 여정이 고작··· 이곳에서 끝이라고?’
100층 중 6층·
가능성의 탑은 아직 94계층이나 존재한다·
[크큭··· 크크크큭····]
이그문의 몸이 들썩였다·
태현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상하좌우·
빈틈없이 포위한 아가리가 조여들기 시작했다·
[돌연변이· 가짜 주제에····]
그가 노골적인 살기를 드러내었다·
파지직·
아지랑이처럼 피어난 핏빛의 성력이 아가리와 닿자 스파크가 튀었다·
성좌의 아바타가 전력으로 벌이는 힘겨루기·
공간이 일렁이거나 무너지는 듯한 현상은 없었다·
이그문의 마지막 저항을 확인하며 아바타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을 확인했다·
5초·
지금 끝내지 못한다면 두 번의 기회는 없다·
도망갈 틈도 막아낼 틈도 없이·
‘한 번에 먹어 치운다·’
콰드드드드·
아가리에 달린 송곳니가 몸을 파고드는 감촉·
태현이 소리치는 이그문의 얼굴을 감상하며·
“꼭꼭 씹어먹어라·”
자신의 권능을 독려해 주었다·
콰직!!!
신체의 감각이 차단되는 느낌·
동시에·
띠링·
[‘탑의 관리자’가 ‘김태현(도플갱어)’을 확인합니다·]
[‘탑의 호민관’이 ‘삼천세계의 격락자(도플갱어)’를 확인합니다·]
[‘탑의 주인’이 ‘성좌의 아바타(도플갱어)’를 확인합니다·]
[‘김태현(도플갱어)’ ‘삼천세계의 격락자(도플갱어)’ ‘성좌의 아바타(도플갱어)’가 탑의 ???층으로 소환됩니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메시지가 울린다·
감각이 차단된 기분은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김태현(도플갱어)’의 의식을 강화합니다·]
[‘삼천세계의 격락자(도플갱어)’의 의지를 강화합니다·]
[‘삼천세계의 포식자(도플갱어)’의 근원을 강화합니다·]
눈을 뜬 그곳에·
[이렇게 빨리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이야·]
인자한 목소리의 노인·
[누가 도플갱어 아니랄까 봐· 자네도 제법 거친 방법을 즐기는군?]
탑의 주인이 있었다·
* * *
“탑주(塔主)·”
태현이 노인의 정체를 입에 담았다·
[고작 한 층을 경험한 것만으로 이리 마주할 줄은 몰랐다네·]
노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통합왕의 힘을 지녔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두 성좌의 힘을 다루던 자신인데·
‘존재력을 가늠할 수 없다·’
[그리 살필 거 없네· 탑주라 해봤자 뒷방 늙은이에 불과하니·]
“뒷방 늙은이라··· 말은 잘하는군·”
삼천세계를 창조한 유일신·
자신을 이곳으로 불렀으니 할 말이 있다면 계속해 보라고·
태현이 뒷말을 삼키며 턱을 까딱였다·
[뭐가 그리 급한가·]
스윽·
탑주가 손을 젓자 허공에서 두 개의 찻잔이 나타났다·
적당한 온도로 데워진 내용물도 채워진 채였다·
툭·
찻잔이 부드럽게 원탁에 내려앉았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자신도 원탁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백색의 공간에 있었는데·
‘언제?’
탑주는 그런 태현의 반응을 즐기는 듯했다·
[하자드와 함께 차를 즐겨 마시는 듯하더군·]
후룩·
그가 한 모금 마신 찻잔을 원탁에 내려놓았다·
[로자리아를 선택했던 김태현··· 아니 이제는 자네가 김태현이지?]
“보아하니 이 몸의 여정을 관찰하고 있었던 듯한데 이왕이면 둘러 말할 것 없이 간략하게 말하도록·”
오리지널과 무슨 얘기를 나누었고 어떻게 대공들과 맹약을 맺었으며 6층의 수많은 시간선에서 무엇을 했는지·
무슨 생각으로 아스모데우스를 심상에 받아들였고 어떤 생각으로 이그문과 함께 포식에 잡아먹혔는지·
눈앞의 노인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기에 보인 반응이다·
‘이그문 녀석이 이 자리에 없다는 건 도박수가 통했다는 건데····’
[좋아· 지금부터 자네를 ‘김태현’· 바깥으로 나간 이를 ‘포식자’라 부르도록 하지·]
잔을 기울인 그가 말을 이었다·
[이그문과의 대결은 자네의 승리였네· ‘요마’의 힘과 ‘포식자’의 힘을 모두 사용한 게 주요했지· ‘미궁’은 일반적인 성력으로는 통제할 수 없거든·]
일반적인 성력·
삼천세계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힘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건 눈앞의 노인이 유일할 것이다·
[아스모데우스도 있었지만··· 그는 자네에게 영향을 받은 듯하더군·]
“···?”
용의 개입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아스모데우스가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선택을 했다고·
그로 인해 지금은 탑주조차 접근하지 못하는 곳으로 소환되었다 하였다·
“바보로군· 이 몸의 뒤를 노렸으면 어찌 되었을지 몰랐을 텐데·”
이그문을 상대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용’의 성력을 사용한 아스모데우스가 뒤를 노렸다면 또 어찌 되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말과 달리 만족스러워하는 듯한데·]
“이 몸의 생각까지 읽는 건가·”
[아니· 오래 산 자의 통찰 같은 걸세·]
“어찌 되었든 이 몸은 성력을 지닌 이그문과 아스모데우스의 경쟁에서 최종 승리한 셈이다·”
[그리고 죽어 이상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지·]
이그문을 소멸시키며 사용한 포식·
그 힘은 자신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아직 완전히 소멸한 건 아니지만 지금 상태로는 틀림없이 소멸할 걸세·]
“그것도 늙은이의 통찰인가?”
[통찰까지 갈 것도 없이 정해진 결말 정도라 해두겠네·]
“재미없군· 가만 내버려 두면 죽게 될 녀석을 아무 이유 없이 불렀을 리 없지· 오리지널에 관한 건가?”
[정확하군· 자네가 시간선을 이용해 이그문에게 승리했듯 바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지·]
비슷한 일·
절로 한숨이 나온다·
요컨대·
“이 몸과 달리·”
이번에는 그들이 운명을 비틀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리라·
[‘요마’와 ‘포식자’· 그들이 ‘용’에게 패배했다네·]
“한심한 녀석들·”
[두 사람이 들으면 섭섭할 말이군· 그들은 자네에게 기회를 양보한 것이니까·]
“이 몸이 선택한 게 아니야·”
‘요마’는 ‘포식자’에게·
‘포식자’는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했을 뿐이라 답하였다·
“그래서 등탑을 도와주기라도 할 셈인가?”
이번에는 탑주가 고개를 저었다·
[자네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네·]
고개를 저은 그가 말을 이었다·
[이대로 탑을 오를 것인지· 지금의 가능성에 만족하며 바깥으로 나가 ‘요마’와 ‘포식자’를 구할 것인지· 나는 그 선택을 돕기 위해 자네를 부른 것일세·]
실로 탑의 주인다운 개입이었다·
‘1층밖에 오르지 않았건만 오리지널과 같은 선택지를 제안받게 된 건가·’
제대로 된 힘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버틴 ‘요마’를 대단하다 해야 할지·
자신에게 뒷일을 맡겨 놓고 제대로 된 시간도 벌지 못한 ‘포식자’를 조롱해야 할지·
감정이 어느 쪽으로 치우치는진 중요하지 않았다·
해야 할 답은 정해져 있다·
“이 몸은 계속해서 탑을 오른다·”
[····]
“지금의 삼천세계는· 그러기 위한 시간선이지 않은가·”
[그래· 자네는 대성좌가 되겠다 말했었지·]
탑주가 허공에 검지를 그었다·
스르륵·
물결친 신마력이 하나의 영상을 이루었다·
성력을 두른 존재들이 샐 수 없이 자리하고 있는 곳·
‘바깥·’
본능적으로 그곳이 성좌들이 존재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별자리 전쟁·”
영상에 ‘요마’와 ‘포식자’의 얼굴이 보였다·
사지가 멀쩡하지 않은 건 물론 재생하지 못한 채 무언가에 결박되어 있다·
‘이 머저리들·’
[본디 하나의 소우주에선 하나의 성좌가 탄생하는 게 일반적이지· 일반적이라 말하지만 그 가능성 또한 매우 드물다네·]
탑주의 말을 흘리며 태현이 영상에 집중했다·
자신을 품었던 이들이 고통을 감내하며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삼천세계에서는 이미 세 명의 성좌가 탄생했네· 그것만으로도 소우주로서의 용량은 한계를 맞이한 셈이지·]
“대우주가 되면 되지 않나·”
태현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대우주라는 건 그리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닐세·]
“그런 자잘한 것에 신경 써선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
[자네는··· 정말 재미있는 존재로군·]
그가 태현이 탑을 오르며 마주하게 될 수많은 경우를 말해주었다·
중간계의 지구에 관한 것·
대공들에 관한 것·
아스모데우스에 관한 것·
톨킨에 관한 것·
하나같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묘수와 악수의 연속들·
예전이었다면 흥미로워했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었다·
“····”
두 눈을 영상에서 돌린 태현이 탑주와 눈을 맞추었다·
[그 모든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네· 최악의 경우 자네는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용’에게 사냥당할 테지·]
‘요마’와 ‘용’이 사로잡힌 지금·
그건 정해진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몸에게 원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용량이 한계를 맞이했네·]
한 차례 너털웃음을 터트린 탑주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자네가 탑의 100층을 오르게 되면 삼천세계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네·]
즉·
[자네가 성좌가 되기 위해서는 삼천세계가 소멸해야 한다는 말이지·]
탑주는 지금의 우주를 만든 창조자·
‘용’ 또한 그가 만들어낸 존재다·
[나는·]
‘용’이 ‘요마’와 ‘포식자’를 사냥한다고 해도·
[삼천세계가 유지되길 바란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