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45화
용족이 지닌 심장·
달리 드래곤 하트라 불리는 물건은 일반적인 마정석보다 뛰어난 효율을 보인다·
많은 마력을 담아낼 수 있고 그런 심장을 동력원으로 움직이는 육체는 거인족의 강체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평·
많지 않은 개체와 영역의 확장에 관심 없는 로드·
자신의 영역에 처박혀 홀로 노는 걸 즐기는 성향·
그럼에도 하계의 가장 큰 세력으로 자리 잡은 건 그들의 시조가 ‘바알’이기 때문임을 지금의 대공 중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런 용족이 어떻게 되었는진 알고 있겠지?”
[····]
대수롭지 않게 묻는 태현과 달리 요르문간드의 몸이 다시 한번 흠칫거렸다·
배터리·
김태현의 출생지인 지구에서 사용되는 용어·
1회 차 때의 회귀·
축복받았던 종이라 평가받던 용족은 김태현의 배터리가 되어 영역전쟁의 소모품으로 활용되었다·
“대공 정도 되는 녀석이니 효율은 더 좋겠지·”
[잠깐····]
“하자드가 이 사실을 알면 즐거워하겠어·”
[아니 일단 본좌의 생각을 들어보고····]
“걱정할 거 없다· 죽지 않게 잘 조절해 볼 테니·”
[···!!]
“격이라는 게 있으니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
심하게 말을 더듬는 요르문간드·
오르갈이 그런 마해왕을 불쌍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히죽·
태현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약속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심할 필요 없을 것 같고· 추가적인 대화를 나누기에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었군·”
[말해라····]
“함께 탑을 오를 생각이 있는가?”
[물론이다·]
요르문간드의 즉답에 태현이 고개를 저었다·
“이 몸은 생각이 다르다만?”
[····]
“너를 살려둬서 부하로 부려도 되겠지·”
오르갈처럼 부하로 부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네놈은 그럴 수 없을 거 같단 말이지·”
[····]
요르문간드는 오르갈과 다르다·
현재의 오르갈에게선 과거의 위엄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녀석의 격이 과거보다 낮은 상태이며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기 때문이다·
만약·
‘오리지널이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영역전쟁부터 시작되었다면·’
오르갈이 다른 대공들에 비해 역량이 크게 부족하지 않았다면·
루시퍼와 티폰·
기억을 되찾은 엘븐과 로자리아·
다른 대공들이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1회 차의 회귀에 그랬듯 오르갈은 여전히 권능의 각성에 닿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전처럼 묵직한 체하며 일차원적인 방법으로 강해지는 데 그쳤을 것이다·
신마력을 다루게 된다 해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되돌아볼 시간 같은 건 가지지 못했으리라·
“요르문간드· 너는 다르다·”
[····]
“잔재주를 부리는 것치곤 주제 파악이 빠른 편이지·”
김태현이라는 이름을 지닌 존재에게 수없이 패배했다·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계약을 맺었고 복종시키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쏟아부었다·
“실험체로 탄생한 태생 덕분인가· 네놈은 죽음도 격락도 고통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더군·”
오르갈을 부추겨 티폰을 거꾸러뜨린 적 있다·
“이 몸이 보기에 넌 강함보다 지배에 대한 야망이 큰 존재다·”
중간계인 무림을 지금의 모습으로 바꾸어 지배하고 있는 것도 예시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태현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등탑 과정에서 ‘폭주’를 각성시킨다면 꽤 도움이 되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몇 개의 차원을 지배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듯 보인다만··· 그래선 뒤통수를 맞을 위험성도 배제하지 못할 테고·”
[이봐 본좌는 그렇게····]
“혓바닥 놀릴 거 없다· 네놈은 신수와 동화되어 그 쓰임을 증명하면 된다·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이진 않았을 텐데·”
[····]
요르문간드가 침묵했다·
김태현의 말이 맞다·
반란의 실패에는 대가가 따른다·
최악의 경우 소멸·
소멸하지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고통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용도 폐기· 또는 용도의 재설정·
김태현은 자신의 방식대로 지옥을 선사하려 하고 있었다·
‘배터리··· 그런 식으로 이용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보다 유용한 쓰임새를 설정할 수 있도록 마음을 돌릴 필요가 있다·
[지금의 시간선에서 알아낸 정보가 더 있다· 그걸····]
“그만·”
[····]
“네 입을 열게 하는 건 로자리아의 역할이다· 신수와 동화된 그녀라면 네놈이 이곳에서 얻었던 정보를 읽는 것쯤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물론 다소 격이 손상되고 정신이 파괴되어야겠지만·
이제 와 배신한 녀석에게 기대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태현이 쐐기를 박았다
[그래서는 수많은 기회를 놓치게 될 뿐이다! 탑의 가능성을 통해 성좌로 각성하는 것· 네놈의 목표를 위해선 본좌의 권능이 필요할 텐데?]
“기회를 놓친다? 네놈에게 들을 말은 아니군·”
[아니 사실이다!]
요르문간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너희들은 이그문을 저지하기 위해 5층으로 돌아가는 데 급급할 터· 6층에 흩뿌려진 가능성들을 확인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겠지·]
“너를 믿고 6층에 흩어진 가능성들을 수거하라는 거냐? 한번 저버린 믿음을 회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믿으라는 게 아니다· 본좌를 이용해라·]
6층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간선에 흩뿌려 놓은 이그문의 유산·
그가 1200년간 머무르며 분석한 중간계의 가능성·
[본좌의 권능이 각성한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계획이다·]
패기를 이용해 존재력을 감춘다·
패기를 이용하여 존재력을 강화한다·
전자의 경우 시간선을 넘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고 후자의 경우 해당 시간선의 법칙을 새롭게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된다·
“듣기에는 그럴듯한 말이군·”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니다· 본좌에게 ‘정신지배’를 사용해 확인해 봐도 좋다·]
“유감이다만·”
[····]
“이 몸은 현재 ‘정신지배’를 사용할 수 없다·”
[뭐···?]
“무림에 도착해 정보를 알아내는 과정에서 봉인당했거든·”
생각지도 못한 말인지 되묻는 요르문간드의 오드아이가 크게 흔들렸다·
“로자리아와 접촉하지 않으면 회복되지 않을 거다· 그러려면 5층으로 돌아가는 게 우선이겠군? 굳이 네놈의 말을 신뢰할 필요는 없겠지·”
요르문간드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쓰임새를 인정받기 위해 발악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처음부터 그리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콱·
태현이 요르문간드의 목을 잡았다·
츠즈즈즈즈·
핏빛 마력이 마해왕의 존재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
요르문간드가 저항하기 위해 소리쳤으나·
꽈악·
이미 격차가 확연히 벌어진 상태에서의 의미 없는 발악일 뿐이다·
잠시 후 태현의 손 위에 도마뱀 수준으로 줄어든 이무기가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존재력의 대부분을 흡수하셨군요·]
“약속대로 죽이진 않았다·”
죽이진 않았다·
지성도 없는 상태로 격락시켰을 뿐·
‘역시 권능의 사용에는 부담이 없는가·’
[마스터의 자애로움에 저 오르갈·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요르문간드와 어울리더니 말주변이 늘었군?”
[····]
“길을 열 테니 잘 따라와라·”
[넵·]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굽신거리는 오르갈에게 요르문간드를 던져주었다·
두툼한 손에 착지한 도마뱀이 마수왕의 수북한 가슴털에 몸을 숨겼다·
키이이이-·
회전시킨 마정석을 매개로 블러드 필드가 펼쳐진다·
전개한 영역을 압축시켜 하나의 혈검을 만들어 냈다·
서걱·
휘둘러진 혈검에 공간 일부가 종이처럼 갈라진다·
‘요르문간드 녀석· 돌아가는 건 배로 어렵다고 했었나·’
이번에는 오르갈과 요르문간드도 데려가야 한다·
존재력을 아끼는 것보다 차원의 틈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이는 게 이득일 것이다·
키이이- 키이이이-·
두 대공을 매개로 ‘강화’와 ‘폭주’의 권능을 둘렀다·
“가자·”
태현을 뒤따라 오르갈이 차원의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이그문이 지배하는 중원무림이었으나 요르문간드로 인해 새로운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던 시간선·
‘다시 돌아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
차원의 틈 곳곳으로 흑색과 잿빛의 마력을 퍼트린다·
오르갈보다도 약해진 두 대공의 존재력을 감지한 건 5분여가 지났을 때였다·
콰아아아· 콰아아·
‘대마력’과 ‘공간도약’의 권능을 사용하였고 생성된 중형급 게이트로 태현과 오르갈이 다시 한번 몸을 던졌다·
* * *
후룩·
후루룩·
정무맹주의 방 안에서 차를 마시는 소리가 이어졌다·
시간선을 넘어 복귀한 정무맹주 김태현·
그리고 시간선을 넘어 태현을 찾아온 하자드였다·
“대공에게 중간계의 시간 흐름은 크게 의미가 없다만··· 1200년간 계획을 준비한 그 집념만큼은 칭찬할 만하군·”
요르문간드가 벌인 행위를 들은 하자드의 평가였다·
“당분간은 도마뱀 상태로 둘 생각인가?”
“5층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그래야겠지· 또 무슨 꿍꿍이를 벌일지 모르니·”
“그렇다 하여 알맹이가 바뀌는 건 아니니···· 이걸로 티폰을 제외한 대공은 모두 모였군·”
“차원의 틈에 있는 티폰과 접촉한다면 언제든 5층으로 돌아가는 게이트를 열 수 있다·”
후루룩·
후룩·
태현과 하자드가 조용히 찻잔을 비웠다·
요르문간드가 하나의 시간선을 자신의 것으로 물들이는 데에 걸린 시간이 1200여 년·
“쉽지 않은 선택지가 주어졌군·”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고 해도 얼마나 많은 시간선이 존재하는지는 모른다·
“한번 지나친 시간선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 또한 확인했다· 본룡과 달리 한 번의 여행으로 많은 걸 얻어왔어·”
“그래· 자칫 잘못하면 차원의 틈에 갇힐 뻔했다·”
자그마치 5할·
태현이 오르갈과 요르문간드를 데려오기 위해 소모한 존재력이다·
요르문간드와 오르갈을 데려오기 위해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했던 것도 있지만 시간선을 두 번 거스르기 위해선 무언가 새로운 제약이 작용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 몸의 존재력으로도 이 정도라면 다른 대공들이라 해도 다르지 않겠지·”
“이게 6층의 가능성이었군·”
쪼르르르·
하자드가 새로이 잔을 채우며 중얼거렸다·
분화된 시간선·
중간계라 해도 공을 들인다면 성장을 위해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 예가 권능의 각성을 이끌어 낸 오르갈·
하나의 층· 그중 일부를 경험한 것치곤 얻은 게 적지 않았다·
“6층보다 5층이 급선무다· 힘은 얼마나 회복됐지?”
“전력의 1할 정도다·”
“좋지 않군· 티폰을 꺼내는 건 오르갈과 시도해 봐야 하나·”
티폰이 적대하진 않겠지만 만약을 대비해 전력은 충분히 준비해 놓는 게 좋다·
“티폰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테고··· 문제라면 손상된 그를 어떻게 이곳으로 데려오느냐군·”
백세희의 몸에 봉인당한 루시퍼·
시간선을 넘느라 존재력을 소진한 하자드·
괘씸죄로 존재력 대부분을 흡수당한 요르문간드·
시간선을 거니느라 5할의 존재력을 소모한 태현·
오르갈을 제외하면 누구 하나 전력이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존재력의 회복을 기다리자니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를 일·
지금 이 순간에도 5층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위험을 감수해야겠군·”
“티폰 정도가 아니고서야 차원의 틈에 갇히는 게 뭘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하자드가 싱긋 웃으며 차를 마셨다·
“····”
태현이 조용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본룡에게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
짤막한 대답과 달리·
‘무언가 달라졌군·’
태현은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후루룩· 후룩·
차를 마시는 소리가 조용히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