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43화
테스타의 콘서트 의 첫 서울 공연은 성황리에 뜨겁게 이루어졌다·
성공적으로 끝났다·
“····”
와아아아아아!
무대 바닥 아래로 리프트를 타고 내려가는 내 위로 장치가 닫혔다·
막혔는데도 분리되었는데도 저 위 광활한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의 환희가 진동을 타고 몸을 울렸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잔상이 가시질 않는다·
환호 웃음 풍선 꽃가루 조명 몰입 열기· 모든 이미지와 느낌이 강렬하고 단편적으로 내 머리에 찍히듯 남아 있다·
아직도 손아귀가 떨릴 정도로·
‘····’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들겠지·
그토록 짜릿하게 공연이 마무리되면 가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바로····
“자 내일을 위해 빨리 들어가서 씻고 자야지·”
“옙·”
내일 공연 준비다·
그렇다· 벌써 공연 끝낸 분위기 내긴 멀었지· 아직 첫날이지 않냐·
‘화려한 뒤풀이는 꿈에서 각자 해라·’
체력을 아껴야 한다·
하지만 칼같이 취침하러 가기 전에 또 거쳐야 하는 이벤트가 하나 있는 법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 너무 좋았지!”
콘서트의 여파는 바로 밀려오기 때문이다·
-테스타 첫콘 진짜 재밌었음 아ㅠㅠ 너무 울어서 머리 아프다
-다 이루었다····
-정말 행복했어 얘들아 고마워
-나의 별 (사진)
바로 오늘 공연에 대한 반응이다·
“····”
나는 대기실에서 되찾은 스마트폰 화면을 한번 쓸어본 뒤 조용히 페이지를 넘겼다·
이걸로··· 충분했다·
물론 콘서트에 대한 감상은 이렇게 찾아봐야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지인들에게서도 연락이 온다·
-공연 잘 봤습니다!
티홀릭 골든에이지 미리내 영린 뮤디···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만난 온갖 아이돌들·
이 살벌한 레드오션에서 경쟁자끼리도 서로 공연만큼은 다른 의도 없이 축하하곤 했다·
심지어 큰세진은 이테르 녀석한테까지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이 타임에 스케줄 뛰던 아이돌 녀석 중 몇은 기어코 우리 콘서트 끝날 시간에 맞춰 전화까지 했다·
가령 스페이서 권희승·
이 녀석은 내가 받자마자 수화기에서 고함부터 질렀다·
-형님들· 대체 무슨 운동을 하신 건가요!
음?
-솔직히 공연 보면서 ‘와 이 세트리스트면 공연 끝나고 축하 방문이고 뭐고 다 꺼지라고 하겠다’ 했는데····
야·
-형님들은 팔팔하시잖아요· 지금 형들 웃는 소리 들리거든요!
나는 고개를 둘러보았다·
“하하!”
“아··· 좋다·”
그 말대로였다·
‘누구 하나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4시간짜리 미친 강행군 공연을 끝내고 대기실로 돌아와 소파에 널브러져서 물을 마시는 멤버들의 얼굴에 활기가 있었다·
‘기어다녀도 납득할 만한 에너지 소모였을 텐데·’
마치 콘서트의 열기가 에너지로 치환되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다·
“····”
예전의 나라면 이게 무슨 상태 이상이라도 되냐고 상태창을 켜보려 들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나는 픽 웃으며 수화기에 말했다·
“···콘서트니까·”
-오오·
저런 녀석들이니 몇 년이나 단체 번아웃 안 오고 계속 달리고 있는 거지·
권희승 놈도 동의하는 듯했다· 역시 같은 직업을 가진 놈이라 이해가 빠른····
-아 혹시 청우 형님의 국대 경험에서 나온··· 추천 보약이라도?
“····”
-콘서트라 특별히 달이신 건가? 공유해 주십쇼 형님!
있겠냐·
아무튼 그렇게 집에 갈 준비를 하며 틈틈이 몇 번 전화와 문자에 답신했다·
그 사이 실제로도 수많은 사람이 축하와 감상을 전해주러 테스타 대기실을 방문했다가 갔다·
회사 직원 스탭 공연 관계자들 그리고··· 초대권으로 온 관객·
멤버의 가족들·
“우리 아현이···! 언제 다 커서··· 이렇게 의연하고 멋질까·”
대기실에 들어오자마자 와락 선아현을 토닥이는 녀석의 부모님과 류청우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녀석의 아버지가 보였다·
“흑····”
“괘 괜찮···· 저기·”
글썽거리는 자신의 어머니를 역으로 달래는 배세진까지·
역대급 성적 끝에 낸 콘서트· 심지어 그 구성이 지난 몇 년의 활동을 다시 경험하듯 꽉 채웠기에 가족의 감회도 남달랐던 것 같다·
“아들! 이리 와·”
“아이고 여사님····”
감격에 찬 포옹을 하는 큰세진의 부모님 옆으로 스페인어로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는 차유진 그리고····
“할머니!”
“래빈이 우리 강아지 팔 마른 거 봐라· 이 몸에서 어찌 그렇게 펄펄 힘이 나서····”
“그 전 체중을 증량했습니다만····”
김래빈의 할머니도 강원도에서부터 방문하셨다·
건강을 많이 회복하신 것 같았다·
“····”
그 모든 모습이 썩 보기 좋았다·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스마트폰을 정리했다·
“문대 씨 어휴~ 오늘도 훤칠하고 잘생겼네· 어쩜 오늘 무대에서 노래를 그렇게 잘해!”
“감사합니다·”
나도 멤버의 가족들과 몇 마디 안부 인사와 감사 인사를 주고받으며 자리에 끼었다·
첫 콘서트 때야 이런 자리가 좀 어색했다만 몇 년이나 지난 지금은 꺼릴 것도 없었다· 안면이 있었으니까·
나한테 누가 찾아오지 않냐고 물어볼 만큼 눈치 없는 사람도 없었고 말이다·
“우리 명창님도 오늘 들어가서 푹 자고 응?”
“···예·”
그렇게 대화가 이어질 때였다·
쿵·
대기실에 뒤늦게 한 번 더 열렸다·
고개를 돌리자 황급히 열린 문틈에서 엉거주춤 선물을 들고 있는 검은 인영이 보였다·
“···형·”
큰달·
류건우가 된 박문대였다·
녀석은 조심히 눈치를 보며 안으로 들어오려다가 말을 더듬었다·
“형 아 아니 그게····”
‘형’이라는 호칭이 외관 나이와 관계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나 보지·
하지만 나는 그냥 웃었다·
“잘 왔어·”
“···!”
녀석의 눈이 흔들릴 때
“저기 혹시 문대 씨 친척분?”
“아? 아 네··· 그게·”
“비슷해요·”
내가 먼저 말했다·
“가족같이 지내는 형이에요·”
“오 그래요?”
“아이구 왜 서 계셔· 어서 들어와요· 가족분!”
녀석은 다른 멤버 가족들의 환영을 받으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결국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겨우 들고 있던 선물을 나에게 건넸다· 반투명한 포장 너머로 보이는 게 콘서트를 축하하는 트로피 모양 머그컵 같았다·
녀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객석이 다 퇴장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느라 좀 늦었는데····”
“안 늦었어·”
그 말에 큰달이 약간 심장이 풀린 듯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긴장이 가신 그 얼굴에 다른 표정이 떠올랐다·
벅참·
“···콘서트· 정말 좋았어·”
녀석은 콘서트에 대한 감상을 벅찬 목소리로 내놓기 시작했다·
의식적인 반말과 무의식적인 존댓말이 마구 섞여 나왔으나 그걸 제대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감명을 받은 듯했다·
“정말로 진짜 감동했고····”
···오냐·
나는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하나같이 슬쩍 웃고 있었다·
썩 괜찮은 순간이었다·
이후로 큰달의 말이 좀 이상한 방향으로 빠지긴 했지만 말이다·
“아 그리고 형 아니 네가 준 다른 표는! 저 SNS 친구에게 줬는데····”
혹시 이상한 사람에게 줬다고 내가 오해할 거라 생각했는지 녀석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 러뷰어에요! 테스타 올팬!”
잘했군·
“근데 고등학생이었어요·”
“···?”
“티슈를 받았어요····”
뭔지 몰라도 녀석은 굉장히 당혹스러운 시간을 보낸 듯했다·
“아무튼 좋은 분께 드린 것 같다는 걸 말하려고 했어!”
“그래·”
사실 누구한테 줬든 괜찮았다·
‘···팬한테 잘 가서 더 좋긴 하지만·’
신상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앉아 있었을지 내가 안다는 점이 중요했다·
나는 씩 웃었다·
“고맙다·”
“헙 아니!”
녀석은 자기가 고맙다며 손사래를 쳤으나 그러면서도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멤버 몇이 툭툭 내 옆구리를 쳤다·
“재밌게 봐주셨다니 좋네·”
“그러게·”
그 콘서트 관람평 이후론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잡담이 이어졌다·
“여름에 휴가받으면 어디 놀러 갈까·”
“아 저··· 그럼! 바다! 제 제주도?”
“좋지·”
그렇게 멤버 가족들은 한바탕 대기실에 머물다가 떠났다·
다만 대기실 방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진짜 다 정리할 즈음에 문을 두드린 사람이 있었거든·
똑똑·
“테스타 계신가요?”
“···!”
바로 내 표를 받아 간 VTIC 2인이었다·
“안녕하세요·”
나름대로 마스크와 모자를 쓰긴 했다만 누가 봐도 일반인은 아닌지라 좀 더 오래 기다렸다가 조심해서 온 모양이었다·
“와 정말 정말 재밌게 잘 보고 가요!”
“···감사합니다·”
나는 채율의 악수인지 하이파이브인지 모를 것을 받아주었다·
공연만 보고 조용히 돌아가겠다 싶었더니 굳이 이렇게 시간 맞춰서 인사까지 해주러 올 줄은 몰랐군·
다음 말은 진짜 더 나올 줄 몰랐고 말이다·
“아 테스타가 다음엔 VTIC 공연도 보러오면 좋겠는데!”
“···청려 선배님과 합의된 내용이신가요·”
“앗·”
그래· 안 됐을 줄 알았····
“네·”
“····”
나는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조용히 대화를 지켜보던 청려가 담담히 말했다·
“보러 와요·”
“····”
나는 피식 웃었다·
“시간 되면·”
청려는 시원하게 웃더니 알겠다고 대답했다·
“와 다들 가신 거지?”
“으응·”
그렇게 한바탕 사람들이 휩쓸고 지나가자 다시 대기실은 조용해졌다·
소파에 앉아 흥얼거리던 녀석들도 슬슬 일어섰다·
“이제 집에 갈까?”
“잠깐 우리 사진 한 장만 찍고요!”
“OK···· Oh 밖에 비가 그쳤어요·”
이윽고 매니저가 잠시 통화로 자리를 비웠다며 귀가까지 약간의 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30분 정도인가·’
지금까지 콘서트 중 최장 시간 퇴근 딜레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때 나는 문득 큰달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다 퇴장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느라····
흠····
비는 그쳤다고 했지·
* * *
뒷정리가 끝난 콘서트 무대는 깨끗했다·
“후우·”
나는 조용히 백스테이지에서 무대 위로 올라갔다· 얇은 운동화 아래로 바닥재의 시원한 기운이 올라왔다·
초가을의 새벽에 가까운 밤 시간 날씨는 선선했다·
“····”
숨을 몰아쉬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사람으로 가득했던 거대한 공연장을 둘러보며 나는 무대 위 어두운 공간에 고요히 서 있었다·
특별히 의도가 있던 건 아니었다· 한 번쯤은 이 광경도 보고 싶었는데 볼 기회가 있어서 올라온 거지·
나는 고요히 무대에 앉아서 방금까지 뜨겁게 달아올랐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서늘한 객석 저편을 보았다·
그러고 있노라면····
“문대야 뭐해?”
“···!”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가벼운 발걸음으로 무대 위로 올라온 인영이 보였다·
“···청우 형?”
“음·”
류청우는 씩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
녀석이 끝이 아니었다·
“문대 형 여깄어요?”
“···무대 끝나고 이렇게 올라오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공기가 굉장히 좋네···!”
한 명 두 명씩 멤버들이 키득거리거나 헛기침을 하며 무대 위에 나타났다·
“따라왔냐?”
“당연하지! 너 혼자 슬쩍 사라지는데·”
백스테이지 계단을 가볍게 박차고 올라온 테스타 녀석들은 각자 무대 주변을 걸어 다니며 이쪽으로 온다·
아니··· 몇 녀석은 아예 나한테 헤드락을 걸거나 남의 등을 치고 있다· 체력이 남냐?
“근데 이런 장관을 혼자 보려고 했다니··· 문대문대 너무한데?”
“맞아요 우리는 팀이에요· 형의 단독 행동 안 돼요!”
차유진이 단독 행동이라는 단어를 알다니· 아니 단독 행동의 화신 같던 놈에게 저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군·
어쨌든 왁왁거리던 녀석들은 이내 장난을 멈추고 내 옆에 대충 눕거나 앉았다·
그리고 하늘을 본다·
“오~ 경치 좋네·”
그래·
나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둠에 적응한 눈이 자세한 윤곽을 보여주었다·
“····”
별빛이 보였다·
비가 내린 뒤 맑게 갠 밤하늘에서는 점점이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물론 그 아래 광활한 객석은 여전히 빛 한 점 열기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와 별 봐·”
“비가 왔다가 그쳐서 그런지 하늘이 굉장히 맑습니다·”
“으응·”
지금 나는 멤버들과 함께 있다·
저 관객석을 가득 채우던 불빛을 기억하면서·
내일 그 불빛들을 다시 만난 것을 기대하면서·
“문대야···!”
선아현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기분 좋다···· 그렇지?”
나는 고개를 하늘로 올리며 웃었다·
행복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