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41화
시청자는 관객은 숨을 참고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잠실 주 경기장·
콘서트 무대 곳곳에서 핸드 마이크를 잡은 아이돌들이 투명한 무대 장치에 담겨 저 위로 떠오르고 있····
“민하야!”
“아·”
미리내 박민하는 황급히 VR 기기를 벗었다· 그녀의 귀에 몇 번 소리를 지른 멤버 성하린이 안심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연습 가야지·”
“으응·”
박민하는 약간 아쉬운 얼굴이 되었으나 얼른 기색을 지워내고 기기를 껐다·
성하린이 물었다·
“어··· 테스타 선배님들 콘서트 보고 있던 거야?”
“응? 으음··· 맞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질문이었다·
테스타의 콘서트 자체에 대해서는 미리내 멤버 모두가 관심이 있었다· 특히 최근 말도 안 되게 잘나가는 아이돌의 콘서트라는 점에서·
같은 회사니까 비슷한 포멧을 쓸 수도 있을 테니 모니터링할 가치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실시간으로 열심히 봤다는 것을 티 낼 필요는 없었다·
‘아이돌에게 이성 친목은 리스크가····’
여지를 줄 필요는 없다·
열애니 관심이니 쓸데없는 오해에 휘말릴 수도 있었기에 모니터링하고 싶은 멤버들이 각자 알아서 나중에 VOD나 보기로 암묵적 합의를 했다·
그래서 박민하도 방금 군말 없이 실시간 모니터링을 중단했지만 직전에 본 화면이 아른거렸다·
테스타 각 멤버를 태운 채 무대에서 허공으로 떠오르는 투명한 장치들·
‘아까 그건····’
현관에서 준비하던 멤버들이 마침 한마디씩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선배님들 콘서트에 또 무슨··· 최신 기술 쓰신다는 이야기는 들었던 것 같은데·”
“맞아· 그 기계 제작하려고 주문만 두 달 넘게 피드백했다잖아·”
“진짜?”
“응응·”
“와 엄청 대단한 건가 보다! 두 달?”
정율기의 리액션이 워낙 좋아 이 화제에 관심 없던 멤버도 귀가 솔깃한 듯 물었다·
“아니 정확히 무슨 기곈데? 무대 장치 맞아?”
맞았다· 특수한 무대 장치·
박민하는 얼마 전 회사를 지나가던 중 열린 회의실 문틈 사이로 들렸던 박문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이런 수요도 있을 것 같은데요·
콘서트에 관한 회의 중이었을 것이다·
그때쯤 이미 회사 일부에선 테스타가 이번 콘서트를 완전히 곡으로만 꽉꽉 채웠다는 것이 알음알음 소문이 난 상황이었다·
‘그거야···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박민하 자신도 내심 납득했던 기억이 났다·
콘서트에는 으레 그런 꽉 찬 공연이 ‘표 값어치를 한다’라고 여겨지지 않는가·
하지만 관객은 사람이고 사람은 각자의 가치 판단이 다르기 마련이다·
-난 애들이 실물로 떠들고 말하고 이런 거 더 보고 싶었는데ㅠㅠ
-너무 교감 없이 무대만 계속 본 기분임
무대는 인터넷으로도 충분히 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직접’ 가수를 대면할 때는 그 이상의 특별한 친밀감과 실존감을 느끼고 싶다는 관객들 말이다·
그래서 테스타는 거기까지 보완책을 고려한 것이다·
곡으로만 꽉꽉 채우면서도 관객에게 특별히 ‘연결되는’ 경험도 줄 수 있는 장치를·
“관객석 코앞까지 갈 수 있는 기계래·”
* * *
간헐적인 비명이 시간 차를 두고 콘서트장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어 어어?’
테스타의 올팬은 눈을 깜박였다·
멤버들을 태운 무대 장치가 허공으로 올라가 객석에 가까워지는 거 너무 좋다· 가끔 와이어를 탄 멤버들이 관객석 가까이 와주는 연출을 동영상을 봤으니까·
그런데··· 안 멈춘다·
[Umm umum Um-]
부드러운 허밍음 같은 반주가 회장에 울리는 가운데 테스타는 더 가까워졌다·
마치 작은 열기구나 풍선 혹은 비눗방울처럼 보이는 그 반구의 무대 장치는 이제 그곳에 탄 인영의 전신이 손가락보다 크게 보일 정도로 선명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손만큼 커지고 이윽고 눈앞의 응원봉만큼 시야의 부피를 차지하며 이쪽으로 온다·
더 크게·
가깝게·
얼굴의 세세한 윤곽이 보일 때까지·
“····”
응원봉을 잡은 손이 떨렸다·
이윽고 올팬은 자신의 거의 앞을 천천히 멈추듯 지나가는 멤버와 마주 보게 되었다·
선아현이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흡·”
팬은 딸꾹질이 날 것 같아서 숨을 멈췄다·
사실 관객에게 다가가는 연출은 콘서트에서 이미 흔했다·
돌출무대가 대표적이고 소위 말하는 토롯코라 말하는 이동차를 타고 관객석 앞을 지나는 것부터 열기구 객석에 몰래 숨어 있다가 일어나기 등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관객에게 적당히 다가가는 것에 만족한다· 극장이 커질수록 물리적 한계 안전의 문제도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극복하는 것·
와이어에 고정되어 안정성을 최대한 살린 그 부유용 무대 장치는 객석의 바로 앞까지 와서 멤버가 마이크를 들어 올리는 장면을 실제로 보게 해주었다·
“····”
부드러운 멜로디 전주가 끝날 무렵·
자신의 눈앞에 한 멤버가 멈췄다·
올팬은 숨도 쉬지 못하고 자신과 눈이 마주친 박문대를 보았다·
약간 긴 머리가 목덜미를 덮고 있는 하얀 얼굴·
목소리가 울린다·
[Stay here-]
선명한 발성이 풍성하게 전신을 통과해 지나갔다· 거짓말 같은 소름이 돋았다·
가사가 귓가에 울렸다·
[깊은 이야기가
우리 사이에 흘러
푹 빠져서 물보라를 그릴래]
박문대가 지나가고 시원하게 웃으며 손을 뻗는 이세진이 지나갔다·
무심코 마중 나온 손이 마치 하이파이브를 하듯 맞닿을 듯 바로 앞에서 지나갔다·
[손뼉을 쳐도
소리가 안 나게
푹 깊이 담겨 줘 내 마음속에]
류청우가 하나하나 시선을 맞춰주며 미소 지었다· 배세진이 진지하게 눈을 들여다보며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부른다·
키가 바뀌고 홀로 올라가는 프리코러스·
[물결은 점점
크고 선명히]
아예 무대 장치에 주저앉아 장난스레 눈높이를 맞추는 차유진 진지한 얼굴로 곰곰이 객석을 하나하나 살피는 김래빈·
그 얼굴들을 직접 대면한다·
[세상을 다 덮도록-]
부드럽게 베이스와 드럼이 떨어치고 물결처럼 전신에 소리가 밀려든다·
[Stay
난 여기 있을게
이 모습 그대로 마음 그대로
변치 않을 약속]
멤버들이 관객석 여기저기를 놓치지 않고 방문한다· 세심하게 짠 동선은 놓침이 없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무대 장치 위에서도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다·
전광판에 잡히는 것은 진지한 얼굴들·
[Stay
힘들고 지친 날들에
찾아와줘 어깨에 기대어
쉬도록]
응원봉이 중앙제어를 타고 테스타의 상징인 세 가지 색으로 물들었다·
활짝 핀 화원 같기도 하고 불빛 축제 같기도 한 그 모습에 멤버들이 잠깐 전광판을 돌아보며 웃었다·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그 자리의 모두가 그 벅찬 기분을 함께 느끼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얘들아····’
하지만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기분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그 자리에 없는 사람들·
-부럽다··
-아 직접 가고 싶었는데ㅠㅠ
약간 씁쓸한 기분으로 이 무대를 지켜보던 온라인 시청자들이었다·
그들은 짙은 소외감을 느끼며 ‘이래서 콘서트는 직접 봐야 한다’ 등의 소리를 중얼거리며 슬픔에 젖어 있었는데····
-어??
[Always]
VR 촬영기기 앞·
박문대는 조용히 그 앞에 무대 장치를 세우고 상대를 들여다보듯 카메라를 보았다·
[소중히 담아서
가득 끌어안고 있을게
함께한 순간들을]
마치 그 너머의 관객을 볼 수 있다는 듯이·
시선이 이곳을 본다·
-ㅅㅂㅠㅠㅠ
-심장 떨어질 것 같아
-와 뭐지 진짜···아 이상한 느낌이야
-아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댓글이 확 잦아든다·
정말로 눈이 마주쳐서 말을 잃은 듯이·
[모두 추억으로]
이윽고 카메라를 들여다보던 그의 무대 장치도 다시 떠오른다·
반주도 다시 차올랐다·
[Stay
난 여기 있을게
이 모습 그대로 마음 그대로
변치 않을 약속]
마치 꽃잎이나 별빛 일정한 패턴을 이루는 순간의 아름다운 자연현상처럼 이제 테스타는 무대 위에 둥그렇게 반원으로 떠올라 선 채 노래했다·
보호구 같은 윗부분이 내려오며 생목소리가 주변 객석에 터지듯 내렸다·
그리고 멤버들도 시선을 내렸다·
바로 앞 스탠딩석으로·
[Stay
힘들고 지친 날들에
찾아와줘 어깨에 기대어
쉬도록]
응원봉이 흔들렸다·
[Stay]
저 먼 곳 거리감이 가늠되지 않아 은하수처럼 보이기도 하는 허공의 객석까지 불빛이 반짝였다·
직전까지 얼굴을 보고 왔는데도 실제로 그곳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Beyond the time in your heart-]
박문대는 생각했다·
콘서트의 균형감이니 수요 충족이니 그럴싸하고 합리적인 발언을 하며 이 상황을 만들었지만·
[Stay]
사실 상대를 알고 싶었던 것은 관객이 아니라 자신이었을지 모른다·
-분명 저기까지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데 우리가 보는 건 응원봉 움직임이니까·
-Yeap 궁금해요·
-···그냥 내 눈으로 보고 싶긴 하지·
멤버들의 입에서 나온 그 말들은 자신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 보러 가죠·
폭죽처럼 높은 화음이 터진다·
[Stay-!]
반주와 함께 화려한 불꽃놀이가 터진다·
팍·
완전히 어두워진 하늘을 수놓는 빛의 향연·
드론이 그사이를 뚫고 지나가며 마치 리릭비디오처럼 곡의 가사를 그린다·
하늘에서 터지는 불꽃놀이·
그리고 마치 그 모습을 비춰내듯 땅에서 반짝이는 응원봉의 불빛들·
[Stay here-]
곡은 아름다운 화음을 그리며 닫힌다·
반주 없이 피아노의 멜로디 음에 맞추어 아카펠라가 길게 여운을 남기며 테스타의 멤버들은 다시 무대로 착륙했다·
전광판마다 방금 봤던 얼굴들이 가득 찼다·
기분 좋게 미소 짓고 있는 박문대도·
“····”
올팬은 어쩐지 눈시울이 왈칵 붉어질 뻔해서 가까스로 코를 훌쩍였다·
“크흡·”
무의식 중에 입 밖으로 소리를 내는구나· 좀 낮은 소리가 나긴 했지만 하도 소리를 질러서 목이 쉰 탓····
“킁·”
“···?!”
옆자리 사람이 낸 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놀랍게도 옆에 앉은 남자가 얼굴을 양손에 파묻고 살짝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게 보였다·
누가 봐도 자신과 똑같은 상태··· 심지어 무릎에 카메라가 들썩거린다·
‘카 카메라 떨어지겠는데!’
그녀는 무대에 잠시 테스타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얼른 가방을 뒤졌다·
생수도 받았으니까 이 정도는!
“저 저기·”
그리고 조심스럽게 꺼낸 티슈를 옆으로 내밀었다·
“···!”
옆 사람은 움찔 놀라더니 천천히 티슈를 몇 장 받아 갔다·
소리는 잘 들리지 않지만 (아마도) ‘정말 감사하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꾸벅거린 추정 배우(?)는 티슈로 눈과 입을 틀어막는 것 같았다·
‘어····’
어쩐지 친근감이 느껴져서 그녀는 자신으 옆자리 사람도 테스타의 엄청난 팬이라서 관계자에게 부탁해 초대권을 받은 게 아닐까 짐작했다·
‘타이밍 되면 간식도 드려야지·’
마음이 따듯해지며 관계자석이라는 긴장도 좀 풀렸다· 그녀는 다시 씩씩하게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참고로 그들의 바로 옆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형 감동적이다 이거····”
“····”
청려는 라이벌의 콘서트에서까지 쉽게 감격하는 자신의 멤버를 굳이 타박하진 않았다·
대신 팔짱을 끼고 직전의 무대를 짧게 검토했다·
‘똑똑하네·’
몰아치듯 퍼포먼스 위주의 화려한 무대를 하다가 한 번에 분위기를 전환했다·
귀에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곡도 이런 연출과 함께라면 감성적으로 잘 각인될 테니 영리했다·
실험적인 시도였으나 예산을 적절히 썼다·
하지만····
‘거기까진 계산하지 않았을지도·’
그래서 더 좋은 수가 된 것 같지만 말이다·
“우리 콘서트에도 테스타 분들 초대하자···!”
“음·”
청려는 채율의 말에 짧게 웃은 후 다시 초점을 무대로 맞췄다·
콘서트가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