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40화
평일 첫 콘서트들이 으레 그렇듯이 저녁 시간에 시작한 콘서트 장소의 하늘에는 이미 붉게 석양이 내리다 못해 어둑해졌다·
하지만 그 하늘 아래 공연장은 더 밝고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와아아아악!!
그건 지금 이 관객석에 직접 앉아 있지 않은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ㅠㅠ아 너무 설렌다
-와 분위기 뭐임
바로 온라인 시청자들·
한때 테스타가 실시간 스트리밍을 잘 제공하지 않는 회사 소속이었던 터라 관객이 몰래 찍는 조악한 저화질 영상 혹은 녹음만 보고 달렸던 적도 있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플랫폼을 옮긴 후부터 테스타는 꼭 콘서트마다 실시간 중계 심지어 VR 중계까지 해줬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콘서트는 심지어 첫날이 스트리밍 데이였다·
온갖 사람들 테스타에게 관심과 호감을 가졌던 다양한 네티즌들은 각자의 커뮤니티와 SNS에 옹기종기 모여 실시간으로 그 모습을 관람 중이었다·
-콘서트 보는 거 처음이야
-나 응원봉도 샀잖앜ㅋㅋㅋ와 VR화면에 응원봉 보이는 거 신기함
그 기대에 부응하듯이 테스타는 최신 활동곡과 세계관용 퍼포먼스곡이 몰아치듯 오프닝으로 쏟아부었다·
고음과 퍼포먼스가 터질 때마다 사람들이 열광했다·
-미친 개잘해
-와씨 이거짘ㅋㅋ
-현장 가고 싶다ㅠ
그리고 그렇게 감탄과 호응으로 달아오른 상태에서 테스타의 ‘세트리스트 꽉 채워옴’ 토크가 나오는 순간 다시 한번 분위기가 기대로 불타올랐다·
-왘ㅋㅋㅋㅋㅋㅋㅋ
-표정 봨ㅋㅋㅋ의기양양
-진짜 곡으로만 꽉꽉 채운 듯
-간 사람들 돈 안 아깝겠다
-팬만 즐기냐 머글도 즐기게 해줘라 머글도 테스타 곡 안다 콘서트 자리 선예매 말고 일반용으로도 좀 남겨줘ㅠ
└개웃곀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웃고 떠들던 사람들도 다음 순간 멈췄다·
토크를 마친 테스타가 손을 흔들며 무대 뒤로 불쑥 들어가자 역광 조명이 켜졌다·
흰 천에 비치는 실루엣들·
-어 저거
어딘가에 걸쳐 서거나 앉아 있는 테스타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리고 소품들은··· 의자와 책상·
-교실?
무대 천장의 톱니바퀴에 따스한 불빛이 들어오며 맞물려 움직였다·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치리리릭 찰칵·
[When I was a child·]
차유진의 내레이션·
데뷔 초에만 들을 수 있던 차유진이 감성적인 디렉팅을 받아 녹음한 목소리다·
평소처럼 톡톡 튀는 듯한 자유로운 억양이 아니라 어딘가 정적인 느낌·
어린애처럼 치기 어린 듯하면서도 담담한 그 목소리가 그리운 영문 내레이션을 말한다·
[아이였을 때 나는 언제나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일상에 달이 뜬 밤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교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본다·]
모든 실루엣이 하늘을 바라본다·
야외 공연장 어두워진 저 위를·
[노을이 지고 있었다·]
공연장의 스피커를 타고 오르골처럼 맑고 청량한 음이 울렸다·
물방울처럼 공기에 구르는 소리·
모두가 아는 친숙한 멜로디가·
♬♪♩♪- ♬♪♬♪- ♪♩-
-마법소년이다
아직 석양이 남아 있는 남보랏빛 하늘을 배경으로 분홍빛으로 붉고 노란 노을이 터지듯 사방으로 조명이 올라왔다·
정중앙에서 무대를 잡는 스트리밍 캠의 시점으로 사람들은 홀린 듯이 그 위를 바라보았다·
무대의 하얀 천이 내려가며 실루엣이 그림자처럼 보이던 인영을 드러낸다·
교실 책상에 걸터앉은 소년들·
[내일 만난 너를
오늘 내내 생각해
낮처럼 파란 꿈을 꿔]
그들은 이 긴 시간을 지나 여전히 하복 차림이다·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대형에 맞춰 무대로 걸어 나오며 안무를 하는 그 모습들은 어느새 데뷔 초의 그 머리색과 스타일이었다·
막 대중을 만나던 시기의 그 얼굴들·
-차유진 핑크 머리·· 맞아 데뷔 초에 핑크머리 걔였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돌이 이렇게 몇 년쯤 된 곡을 부를 때는 보통 리믹스나 새로운 편곡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창법이나 춤추는 방식도 성장 과정에서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그때 그 모습과 똑같을 수는 없는 법이고 그저 서로가 같이 공유하는 추억을 회상하며 감상을 느끼기 위한 무대·
하지만 지금 무대 위의 테스타는··· 그대로였다·
[All that time
아마 필요했던 거야
미래로 가는 마법이
그래서 난]
그들은 당시의 그 창법과 움직임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었다·
그 모습 그대로 선명히·
기교가 적고 여유 대신 정직한 힘이 들어갔던 그 느낌과 제스처가 다시 무대에 나타났다·
테스타의 성장한 실력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장 좋은 버전만 골라 남아 있던 ‘이상적인’ <마법소년> 무대를 고스란히 현실로 불러오는 것에 쓰인 것이다·
-아···
-왠지 그립다
이상한 감상이 떠오른다·
마치 당시로 돌아간 것처럼· 사람들은 그 무대에서 그때의 자신을 생각했다·
-학원에서 맨날 이거 몰래 봤었는데ㅋㅋ
-비눗방울 선아현 떴을 때 밤새서 보정하고 아 재밌었음
<마법소년> 무대가 끝나도 그 감상들은 끊어지지 않았다· 바로 다음 무대가 이어졌기 때문에·
책상에 앉아 있던 차유진이 씩 웃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High five~]
-하이파이브 한다!
-마법소년 교복 입고 하는 하이파이브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보는구나···
-와 맞아 이런 느낌 상상했었어
-드디어ㅠㅠㅠ
밝고 쾌활한 곡이 감성적으로 달려간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약간 유치하고 이상한 가사까지도 그대로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은 동일한 하이스쿨 컨셉의 <비행기>· 밝고 투명한 불꽃놀이 같은 색채의 무대가 어두운 하늘을 수놓았다·
그리고 잠깐 멤버들이 무대 뒤로 종이 비행기를 쫓아가듯 사라진 자리 붉은 천이 올라왔다·
그 뒤로 댄서들이 나오며 그림자를 이용해 실루엣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마치 전쟁을 벌이듯 싸우는 듯한 그 그림자들이 겹치고 떨어지고 쓰러진 끝에 붉은 천이 떨어지며 반파된 교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배러 미!
-이거 게임 콜라보 그거다
-127섹션!
어두워진 분위기에서 테스타가 창문을 깨듯 튀어나와 격렬하고 매끄러운 밴드 음악에 올라타 진격하듯 무대에 펼쳐졌다·
[Ashes to ashes dust to dust
But NOT for me 난 아니야
난 살아 그렇지 like
Legends never die]
그렇게 열광적으로 몰아치는 것이다·
심지어 콘서트면 으레 몇 곡씩은 넣던 커버곡이나 솔로 유닛 무대도 거의 없다·
7명이 꽉꽉 채우며 지금까지 달려온 궤적을 그대로 무대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마침내 찾아온 날
행차!]
잠시 후·
늑대가 우는 실루엣의 붉은 보름달을 배경으로 긴 활을 쏘는 실루엣이 보름달 그림자를 가르고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사이드 무대에 꽂힌다·
-아 개좋아
-여전히 내 최애 컨셉인 것 같아 행차··
-이때 라이트 팬됨
VCR도 최소화한 그 모습 쉴 틈 없이 몰아치는 테스타의 연대기에 온라인 시청자까지도 마치 현장처럼 자리에서 차마 일어나지 못하고 공연에 몰입했다·
벅찬 마음을 참지 못하고 막 쓰는 외마디 감상문만 주르륵 쏟아질 정도의 속도감!
수많은 사람과 아는 무대 아는 곡을 즐기는 그 기분· 무대가 지나 다음 무대가 바로 와도 또 반가운 곡이 나올 때의 그 기쁨에 사람들이 흥분했다·
-미쳤는데?
하지만 조금 다른 의미로 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 * *
“와 저거 미친 짓인데·”
“어어?”
오르빗 스타즈 엔터테인먼트 사옥·
아티스트 휴게실에 앉아서 졸던 권희승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그의 눈앞에 스마트TV에 빨려들 듯 집중 중인 자신의 그룹 스페이서의 멤버들을 보았다·
TV에서는 콘서트가 방영 중····
“억 테스타 콘서트!”
“희승이 깼냐?”
권희승은 졸던 잠이 싹 달아나는 것을 느끼며
“야 시작하면 불러주지! 얼마나 놓친 거야?”
홀린 듯이 화면을 응시하던 멤버들이 손을 내저었다· 그걸 대답할 틈도 없다는 듯이·
결국 권희승은 팀원들의 등짝을 후려갈기며 자신이 직접 콘서트 세트리스트를 찾았고 곧 눈을 꿈벅였다·
이게 뭐지?
“이야 라인업 미쳤는데?”
타이틀과 활동곡 거기다 자신들이 연간차트에 들었던 곡이란 곡은 모조리 다 보여주겠다는 듯이 테스타는 혼을 쏟아붓고 있었다·
동종업계 후배로서 그 커리어와 패기에 압도당할 듯이 보던 것도 이해가 갈 지경이었다·
권희승은 이미 지난 무대들을 입맛을 다시며 보았다·
까지 놓친 거구나·
‘진짜 재밌었겠는데·’
스케줄 때문에 오늘은 못 갔지만 내일 콘서트 때는 회사 찬스로 자신도 가서 즐겨야겠다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도 생겼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런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콘서트를 생각하면서 세트리스트와 화면을 번갈아 보자 권희승은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
잠깐만·
“···쉬는 시간이 없잖아?”
“그러니까!”
멤버들이 그제야 고개를 돌리더니 거세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를 질렀다·
“지금 VCR 딱 한 번 나오고 계속 무대만 하고 계시다니까?”
“진짜 미친 짓 아니 이걸 어떻게 하고 있냐고·”
선배 호칭까지 까먹을 정도의 격렬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권희승도 혼란에 빠졌다!
‘어어···!?’
콘서트 무대 중간중간마다 넣는 VCR과 유닛 스테이지는 그냥 구성과 연출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가수에게도 의상을 갈아입고 숨을 고를 타이밍이 필요하지 않은가· 최소한의 체력 관리와 템포를 위한 배분인 것이다·
특히 테스타처럼 안무가 격렬하고 미친 듯이 라이브를 쏟아내야 하는 퍼포먼스라면?
일단 자신은 30분마다 10분은 쉴 수 있어야 정상적으로 운용이 가능한데····
지금 테스타는 옷 갈아입기만도 빠듯할 시간만 내고 있었다·
그것도 네댓 곡에 한 번씩만·
“···? ···!!”
권희승이 화면과 세트리스트를 돌아보는 사이 그룹의 작곡 멤버 하나가 혀를 내두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라면 쓰러졌어 진짜·”
* * *
“허억·”
나는 벽에 양팔을 기대고 대가리를 눌렀다·
폐가 찢어질 것 같았다·
누가 내 등을 간신히 두드렸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 같은데 본인도 입을 못 여는 상태 같았다·
나도 고개만 끄덕이며 상체를 들었다·
“호흡기!”
산소호흡기 솔직히 별로 도움은 안 된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
땀에 젖은 두루마기 코트를 누가 벗겨가고 얼굴을 닦아주는 손길 다음으로 옷을 갈아 입혀주는 게 느껴졌다·
‘갓난애도 아니고·’
하지만 다 사전에 합의된 사항이었다· 이럴 줄 모른 게 아니니까·
대체 이 세트리스트로 어떻게 투어를 돌 생각인지 누가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이러다가 삐끗하면 어쩌냐고·
‘안 난다·’
몇 번이나 돌려봤다·
컨디션이 나빠도 버틴다· 못 버티는 놈은 없다·
“····”
체력을 아끼기 위해 그룹에서 가장 말 많던 녀석들도 한 마디도 없다·
혹사 수준의 운동량으로 김이 날 듯이 달궈진 어깨와 팔이 서로서로 부딪히지만 누구도 농담 한마디 던지지 않는다·
그게 도리어 믿음이 갔다·
‘가자·’
우리는 다시 무대 리프트에 섰다·
클라이맥스까지는 아직이다·
* * *
‘미쳤다· 미쳤다····’
테스타의 올팬은 응원봉이 부러지도록 꽉 쥐었다·
눈앞에 무대에서 빛이 번져 보였다·
쉴 새 없이 소리를 지르고 응원 구호를 외친 탓에 단시간에 목이 다 쉬어 있었다·
멤버들이 하는 곡마다 다 너무나 친숙하고 실제로 보고 싶었던 무대고 그게 끊임없이 몰아치니 계속 도파민 과잉 상태로 있던 것이다·
‘머리가 어질어질····’
올팬이 심호흡을 하자 옆자리에서 뭔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
열지 않은 작은 생수였다·
어느 기업에서 입장 전 이벤트로 나누어준 것인지 ‘테스타 콘서트 보고 해양심층수 마시고’ 따위의 문구가 붙어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모자 쓴 옆 사람이 꾸벅 하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반사적으로 해당 물을 경쾌히 따서 마신 올팬은 자신이 굉장히 목이 말랐으며 시야가 또렷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마웠다····
‘아 내 과자!’
그 틈을 타서 올팬은 자신이 가져온 간식이라도 옆자리에 건네려 했으나 무대 전광판에서는 이미 VCR이 끝났다·
“허어억!”
올팬은 하마터면 응원봉 대신 물통을 흔들 뻔하다가 간신히 바꿔 쥐고 떨리는 손을 다잡으며 무대에 나타나는 테스타를 응시했다·
웃고 있는 테스타는 지금까지 중 가장 가벼운 옷차림이었는데 아주 즐거워 보였다·
[안녕하세요·]
우아아아아악!!
그렇게 뛰어다니고 미친 듯이 무대를 했던 게 거짓말 같은 말끔함과 친근함 기분 좋은 그 느낌에 올팬도 아낌없이 환호를 보냈다·
장장 한 시간 만에 마이크를 잡은 테스타였다· 슬슬 토크를 하면서 시간을 채울 여유로운 타이밍인가 싶었다·
[다들 아는 곡 맞으시죠?]
네!!
[좋아요·]
나도 좋아요····
머리를 쓸어넘기는 류청우를 보면서 올팬이 잘게 응원봉을 흔들었다·
비슷한 광경이 관객석 전반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그 귀여운 모습을 즐겁게 보던 테스타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박문대가 멤버들을 둘러보더니 웃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근데요· 사실 딱 하나 모르실 만한 곡을 넣었는데요····]
어어어?
[바로 지금 들려드릴 곡입니다·]
[신곡이에요·]
어억?
팬들이 미처 정형화된 반응을 보이기도 전·
무대 위에 있던 멤버들은 마이크를 내린 채 흩어지더니 각자의 위치에 섰다·
‘뭐지···?’
의아함도 잠시·
무대 바닥에서부터 멤버들을 감싸듯이 투명한 포장지 같은 장치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보호막 같은 반구를 이루었다·
“···!”
[지금 갈게요·]
흐르기 시작한 부드러운 멜로디·
그 속에서 테스타 각 멤버들을 태운 투명한 반구는 마치 드론이나 열기구처럼 무대 바닥 채로 하늘로 떠올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탠딩석을 넘어 이쪽으로·
“···!”
객석을 향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