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37화
어느 순간부터 청려 놈을 볼 때마다 1+1로 이게 따라오는군·
“왕!”
나는 거의 엉덩이가 날아갈 기세로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개를 보았다·
저놈 군대 간 동안 몇 번 들여다 봐줬다고 어째 붙임성이 더 좋아졌다·
“산책 시간이냐·”
“그렇죠·”
여기는 원래 이놈을 볼 때마다 만나던 카페는 아니다·
새벽녘 지리 조건상 자주 안개가 끼는 아파트 단지의 산책로·
바로 테스타가 회사를 옮기고 이사하기 전 숙소였다· 여전히 VTIC 현재 숙소가 있는 위치기도 하고 말이다·
‘활동기에만 같이 합숙한다고 했던가·’
입주민만 쓰는 공간인데 새벽이라 사람이 없고 안개까지 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 청려를 여기서 만난 게 둘 다 더럽게 바빠서 시간이 새벽밖에 안 된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검은 옷차림으로 벤치에 앉은 청려가 말했다·
“지금 시기에 ‘일부러 만났다’는 류의 목격담이 나올 가능성은 아예 제거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군·
그룹끼리 앨범을 동시 발매해서 이 악물고 성적으로 지랄한 게 직전이었다·
‘우리는 하하호호 친구로 잘 지내고 있음· 싸운 건 너희뿐임’ 같은 기분을 팬들에게 느끼게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음 생각만 해도 머리 다 뽑힐 것 같은데·’
그리고 그걸 서로 알아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건 편하긴 했다·
“우웅····”
무릎 앞에서 서성이던 털 덩어리가 더 안 걷냐는 듯이 나와 자기 보호자를 번갈아 보다가 포기한 듯 바닥에 냅다 앉았다·
개가 헥헥 대는 소리와 함께 짧은 침묵이 흘렀다·
“····”
그러고 보니 얼굴 본다고 딱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닌데 말이다·
뭐 이렇게까지 대놓고 서로 얼굴에 주먹 꽂아 넣는 식으로 앨범을 냈으니 일 다 끝난 후 정산할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색하진 않으나····
‘딱히 내기를 한 것도 아니고·’
정황상 내가 이겼으니 승복하냐고 면상에 대고 웃는 짓을··· 굳이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내가 애냐·’
‘그러게 X발 왜 면상에 장갑을 던졌냐’ 같은 소리 정도는 할 법도 하지만 나는 그냥 개나 툭툭 두드리며 벤치에 등을 기대 걸터앉았다·
이긴 놈은 그래도 됐다·
테스타는 확실히 이겼다·
“후배님· 아주 기뻐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
“글쎄·”
하지만 상대를 완전히 조졌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참 애매한 문제다·
“어차피 우리 곡이 본격적으로 미국에서 성적 낸 건 리믹스 음원부터니까 너희랑은 활동 시기가 좀 달라졌지·”
테스타의 리믹스 활동은 VTIC의 컴백 활동이 다 끝났을 때 즈음 시작했다·
시기가 느리게 어긋났다는 거다·
불꽃도 꾸준히 장작을 넣어야 타는데 화제성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쯤 우려먹고 MT 예능까지 다 끝났으니 그때는 이미 동시 발매 떡밥으론 어그로가 안 끌렸지·’
글래스톤베리에 둘 다 출연하는 게 마지막 장작이었다·
몇 달이나 계속 비교해서 누가 이겼고 누가 졌는지 떠들기엔 현대 사회가 하도 빨리 질리고 피곤해하지 않는가·
게다가 우리가 좀 잘 됐어야 말이지·
인터넷에 가끔 이야기 나와도 논란감이 될 것도 없이 그냥 ‘올해는 테스타 리믹스지’ 정도의 선에서 정리된다고 들었다·
그게 진정한 의미의 승리라고 한다면 맞는 말이겠지· 하지만····
“너희도 얻을 건 다 얻어갔고·”
군 제대 이후 리프레쉬 팬덤 결집 국내 화제성까지·
VTIC에게도 새로운 유입이 적지 않았으니 다음 앨범도 잘 만든다면 기세가 유지될 것이다·
음원은 어차피 우리한테 밀릴 걸 저쪽도 알았을 테니 예상 못 하게 정면 승부로 손해 본 건··· 글래스톤베리 화제성 정도인가·
‘그것도 사실 헤드라이너로 명예는 챙겨갔지·’
그러니까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이 진검승부가 이긴 놈이 다 먹는 제로섬 게임일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두 팀 다 Win-Win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문득 청려가 몇 달 전 MT 예능 촬영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니 정성을 들여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잘 키워 써야죠·
“여기까지 봤냐·”
“글쎄요·”
청려가 눈만 돌려서 쳐다보았다· 검은 모자 밑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내가 질 가능성이 없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정도로 해두죠·”
“····”
나는 피식 웃었다·
뭐 얕보지 않아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나는 시선을 개에게 돌렸다· 개가 남의 발목에 얼굴을 비볐다· 간지러운데·
“네가 차려놓은 판 덕분에 잘 먹었다·”
“····”
“기분은 어떠냐·”
“나쁘진 않은데·”
녀석이 턱을 괬다·
“너무 하네요· 나는 후배님이 손해를 볼 때마다 항상 걱정해 줬는데·”
“진심이냐?”
“그럼요·”
나는 고개를 저었고 놈이 웃었다·
‘별수 없나·’
원래 저런 놈이다·
분위기가 누그러들었다· 바뀐 태도를 감지라도 하는 것처럼 개가 일어나서 혼자 앞발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바지에 구멍 나겠네·
“MT 예능 쿠키 영상에 얘가 나오던데·”
“콩이를 꼭 쓰고 싶다고 해서· 후배님 그룹에서도 예능에 나왔던 강아지가 한 마리 나왔잖아요·”
“뭉게다·”
“음?”
“걔 이름 뭉게라고·”
“그래요? 항상 개를 개라고 불러서 이름은 외우지 않는 줄 알았지·”
“····”
나는 청려 놈의 개··· 아니 콩이를 이름으로 부르겠다고 선언했다·
“하하!”
이 새끼 너무 웃는데 오늘만 봐주겠다·
“콘서트 준비 중이라고 들었는데·”
“어·”
안개가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산책로 구석에서 이온 음료나 홀짝이면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정산한 건 없지만 정리는 했다·
생각보다 편안했다·
* * *
‘그래· 괜찮았지·’
청려는 박문대와 대화했던 날의 회상을 끝마쳤다·
-VTIC이 딱히 손해 본 것은 없다·
새벽 대담에서의 결론은 그렇게 나왔다·
하지만·
‘체감은 다른 문제라서·’
대기실· 청려는 자신의 눈가에서 오가는 붓에 미동도 하지 않고 눈동자만을 움직여 주변을 확인했다·
대중 여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룹 내부적으로 느끼는 사기의 문제다·
남이 달릴 때 걷는 것은 뒤처진다는 뜻이다·
같은 시기에 같은 포지션인 남자 아이돌이 발매한 곡이 자신들보다 잘 됐다는 그 압박감·
회사 직원들은 도리어 반발심리라도 든 건지 자주 이번 VTIC의 성적을 추켜세우며 감탄했지만 요란스러움이 작위적이라 도리어 분위기를 해친다·
‘이런 식으로 굴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지금까지 제대로 쓸 일이 없어서 기능이 쇠퇴한 모양이다·
‘이번’ VTIC은 성적 문제로 난항을 겪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다른 그룹에게 밀린 적도 선배나 후배 그룹의 견제가 유의미한 타격이나 팬 유출을 만든 적도 없다·
멤버가 탈퇴하는 어마어마한 사건은 있었으나 그건 사고고 재난이었다· 활동이 무산됐으면 됐지 실패를 눈으로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이번 VTIC은 내부적으로 처음 겪는 패배감을 소화하는 중이었다·
“····”
청려는 문득 난데없이 낯선 깨달음을 얻었다·
‘이번’ VTIC이라니·
그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이제 순번을 매길 일은 없을 테니까·
끝없이 재장전되던 탄환 같던 소모품처럼 갈아 끼우던 인생은 이제 끝났다·
남은 건 이미 발사된 탄환 하나뿐·
그 궤적과 결과가 이 자리에 남을 것이다·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패배도 함께·
“····”
“저·”
스타일리스트가 떠나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멤버가 입을 열었다· 주단이었다·
“형이 문대 씨를 만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건너편에 앉은 채율이 소리 내서 미소 지었다·
“아 우단이도 문대 만나고 싶어? 나도 요새 얼굴 좀 보고 싶던데·”
“아뇨· 꼭 직접 대면하는 편이 좋다는 것도 옛말이죠· 통신 기술이 이렇게 발달했는데요· 비용을 절약하는 편이 더 경제적이죠·”
“우리 막내는 참 똑똑해····”
순식간에 벙 뜬 채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편의 신오가 말을 거들었다·
“문대 씨 기분 좋으시겠다· 테스타 이번에 정말 잘 됐잖아·”
“맞아!”
그 사이 다시 돌아온 스타일리스트가 마지막으로 드라이기를 이용해 금속 바디체인을 데웠다·
위이잉-
드라이기의 소음이 가득 차며 대화가 잠깐 끊겼을 때·
후·
약간 서러운 듯한 그 한숨은 금방 사라졌다·
그리고 체인 착용이 끝나고 다시 멤버들만이 의자에 덩그러니 앉아 있을 때·
“사실····”
채율이 고개를 들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테스타분들한테 다 같이 잘 활동해 보자고 말은 하면서 당연히 우리가 이길 줄 알았어·”
“····”
“그냥 나는··· 아! 나 방금 재수 없었지!”
“조금요·”
“우리 막내 참 무서워····”
“하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도 여기는데요·”
주단이 자신의 목에 감긴 바디 체인을 매만지며 말했다·
“원래 사람이란 경험한 대로 생각하는 동물이니까요·”
테스타가 데뷔했을 때만 해도 그들은 도리어 동시 발매한 그 신인을 안타까워하며 당연하게 승리를 예측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죽도록 노력하면 무조건 이길 수 있었으니까·
그 관성적인 감각은 몇 년에 걸쳐서 형성된 것으로 어느새 당연하게 팀에 자리 잡은 정서였다·
그러니까 정서가 깨질 때의 충격도 어쩔 수 없는 법이었다···· 적어도 주단은 그렇게 생각했다·
채율이 약간 벅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짜 고마워 우단아· 우리가 이런 대화를 다 하네! 혹시 너도 그런 생각이 들었으면····”
“아 저는 아닌데요·”
“····”
“저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는 늘 해두고 있죠·”
멤버들이 경악했다·
“그 그래도 괜찮아?”
“아니 그것도 너무 극단적으로 사는 거 아닐까? 우단이는 좀 풀어지는 연습을··· 우리 다 같이 고민 좀···”
이쯤이다·
“글쎄· 고민은 더 적절한 때에 하고·”
대기실이 조용해졌다·
청려는 빙긋 웃었다·
“지금은 그럴 순간이 아닐 텐데·”
“넵·”
멤버들은 입을 다물고 군말 없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빠릿빠릿한 그 모습은 데뷔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 언제나와 같다·
“아 우리 구호!”
패배의 느낌이 선명해도 표어는 변하지 않는다·
“오늘도 이기는 브이틱 아 빅토리어스!”
청려는 고개를 돌렸다·
무대의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가야지·”
9월·
연기된 코첼라가 개막하는 날이다·
와아아아아!!
이미 앞선 공연들로 달아오른 거대한 관중성의 한가운데·
드라이아이스가 피어오르는 무대 위·
인사말도 없이 들어간다·
[Coming up next··· VTIC]
전광판이 붉게 물든다·
댄서 수십 명을 이용한 관악대 같은 군무와 낡은 깃발을 스크린처럼 이용해 찢고 나오는 퍼포먼스가 야수처럼 펼쳐졌다·
와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천이 찢겨나간 거대한 깃대 위를 타고 걸어가 무대 위로 떨어져 내리며 들어가는 군무·
터지는 불꽃과 폭죽 밴드 라이브의 쾌감이 관객의 말초신경을 찌르고 열광을 끌어낸다·
티케팅에 성공한 팬들로 가득한 코첼라는 용암처럼 끓어오르며 수증기처럼 열기를 뿜어냈다·
채율이 뛰어나와서 후렴을 소화하고 뒤에서 주단이 더블링을 넣고 신오가 제스처를 살리고·
대기실에서의 대화를 다 잊고 완전히 몰입한 얼굴들에 흥분과 열기가 넘실거린다·
‘그렇지·’
모든 게 제자리에 있었다·
[Look at the Serpent]
청려는 관객석을 응시했다·
패배를 실감하기도 전에 모든 것을 없던 일로 만든 적은 몇 번인가·
어느 순간부턴가 그는 패배의 느낌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리고 지금 피하지 못하고 직면한 그 ‘느낌’은····
와아아아아!!!
아무것도 아니었다·
변한 건 없다·
함성도 관객도 멤버도·
무대는 계속되었다·
[Venomous teeth
심장까지 파고들어 독]
청려는 깊게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패배의 맛은 생각보다 좋았다·
* * *
[VTIC 코첼라 헤드라이너의 역사적 무대]
“오·”
화면 속에는 인이어에 손을 대고 있는 청려의 센터 컷이 나오고 있다·
무슨 화보 같이도 찍어놨다·
“반응 좋네·”
“으응·”
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멤버들의 얼굴에서도 경쟁심이 보이지만 이제 울분이나 낭패감은 없다·
“내년 Coachella 우리가 해요!”
“좋지~ 근데 그 전에 우리 것부터 열심히 준비하고·”
큰세진이 씩 웃었다·
“5분 휴식 끝!”
“으아악·”
“하····”
바닥에 죽은 듯이 누워 있던 배세진이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콘서트 준비 중인 대기실 쉴 시간은 없다·
‘후····’
나도 침음을 참으며 몸을 일으킬 때였다·
갑자기 내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기 시작했다·
“···!”
“왜 그래?”
“잠시만·”
나는 뜬 이름을 확인하고 순간 한 손을 들어 연습 재개를 막고 스마트폰을 받았다·
불가항력이었다·
[류건우]
큰달··· 박문대가 다짜고짜 전화를 건다고?
‘그럴 녀석이 아닌데·’
나는 지체 없이 전화를 받았다·
-형!!
‘야·’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귀 터지겠다·
다행히 목소리는 행복하고 밝았다· 아니 거의 환희에 차 있다· ···뭐냐?
-저 합격했어요!
“축하한다·”
합격에는 축하가 인지상정이지· 나는 합당한 리액션을 한 후에 물어보았다·
“그런데 뭘?”
-앗·
설명도 안 해줬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수화기 너머로 머쓱한 감탄사가 들렸다·
그래 그럼 이제 설명을····
-저 오르빗 엔터 합격했어요!
“···?!”
-형 회사! 테스타 회사요!
“···??”
“무슨 일··· 문대야?”
“문대 형 눈 크기 두 배 됐어요·”
소개도 안 해준 놈이 알아서 회사에 들어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