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32화
나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테스타가 또 활동한다·
-엄마야
그 소식이 전해진 후 다양한 소리가 인터넷에 나오고 있다·
물론 아이돌이 활동기가 끝난 후 연달아 새 곡 하나 추가해서 리패키지 앨범 들고 오는 경우는 꽤 많다·
하다못해 같은 앨범 속 수록곡을 하나 골라 후속 활동을 하는 경우도 과거엔 종종 있었다·
‘하지만 같은 곡을 리믹스해서 갑자기 들고 오는 건 없었겠지·’
그것도 이렇게 활동기가 마무리되는 듯하다가 갑자기 다시 활동 계획을 쏟아내는 식으로 말이다·
-개좋은데 영문을 모름
처음에는 다들 당황했다·
예상했지만 말이 나온 건 성적 문제였다·
기껏 음원 순위 잘 유지해 놓고는 왜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팬서비스 활동을 하냐는 거다·
고맙게도 화살을 우리가 아니라 회사에 돌려주긴 했다만·
-이거 테스타 회사가 판단 잘못한 듯
이래서 신생은 안 된다 너무 감정적이다 아마추어 같은 판단 등등 비판의 소리도 툭툭 튀어나왔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논조가 바뀌었다·
-테스타 리믹스 뮤비 미국 인기동영상 들었다···
└엥??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해외반응이 빠르게 물량으로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반이 된 건··· 바로 접근성이다·
-아니 라임스톤이 테스타 활동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요
└??
└왜···?
라임스톤이 프로모션을 걸어줬거든·
드림랜드를 운영하는 글로벌 컨텐츠 대기업이 대놓고 나선 것이다·
기분 나쁠 정도로 튀어나오는 바이럴마케팅도 아니라 딱 정통파 프로모션이었다·
관심 좀 있던 사람은 다 우리의 재활동 소식을 알 수 있도록 타임스퀘어 전광판부터 라디오까지 정석적인 뉴스 노출을 일정 맞춰 바로 실시해 줬다·
그 결과·
-이게 그 테스타야?
-이봐 너희 힙합은 어디 갔어
-난 정말 혼란스러워 대체 이놈들은 뭐 하는 놈들이지?
└마치 그 질문을 듣는 게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사는 케이팝 밴드
└아 맙소사lol
-지금 선언함: 나는 이 섹시한 에이전트 버전이 더 마음에 듬
└호르몬에 찌들었구나 너
리믹스 뮤직비디오 댓글창에 글래스톤베리 공연으로 유입한 영문 댓글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내는 더 혼란에 빠졌다·
-테스타 라임스톤이랑 무슨 아티스트 레이블 계약이라도 한 건가?
자기 소속 가수에게나 해줄 대우라는 것이다·
‘테스타의 미국 레이블은 라임스톤’ 설까지 나오기까지 딱 반나절 걸렸다·
그리고 사실은 곧 밝혀졌다·
-아 어트랙션 공식 테마곡으로 지정한대! 그래서 리믹스 냈구나 헐
즉 라임스톤은 자기 어트렉션 관련 홍보를 정석적으로 한 것뿐이다·
-아ㅋㅋ 대기업 못 놓치지
-테스타가 잘 탔네
드디어 앞뒤 정황을 깨달았다는 듯이 사람들이 ‘테스타가 글로벌 인지도를 천상계급으로 높일 기회를 놓치지 않았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해해 준다면 그걸로 좋았다·
-음습댕 믿고 있었음 ㅅㅂ
오냐·
‘감사합니다·’
국내 음방까지 한 주를 도니까 괜한 잡음이나 사이가 멀어지는 것 같은 불쾌감도 없다· 정식 활동처럼 취급받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리믹스 자체에 대한 반응이 국내에서도 괜찮다·’
솔직히 같은 곡으로 뇌절하냐고 좀 지겹거나 뜬금없다고 여길 수도 있었을 텐데 글래스톤베리 공연이 제대로 떡상한 덕에 기대가 더 컸다·
‘뭘 하려는 걸까?’라는 기대감·
-샤따 내리긴 아깝긴 함ㄹㅇㅋㅋ
-야 가자
-섹시컨셉 놓치지 말고 지금 테스타 입덕해 지금 하면 개꿀잼 자컨과 레전드 무대영상 끼워드림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느낌으로 이해받는 건 예상외의 좋은 조건이었다·
‘사실 여기서는 원래 국내 여론 리스크를 감수하려고 했는데·’
우연히 이 흐름을 잡았다·
물론 우연이든 운이든 간에 기회는 결국 잡을 줄 알아야 기회인 것이다·
직업 한번 제대로 고른 녀석들이 이 그룹에 팀원으로 있어서 잡았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나는 조용히 웃었다·
“음? 문대야 왜?”
“아뇨·”
나는 옆에서 스트레칭을 하던 류청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류청우는 의아한 듯이 보다가도 슬쩍 웃는다·
이 녀석은 그 미친 공연 이후로 완전히 평정심을 되찾은 모습이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대담해진 것 같다·
“이번 음악방송은 사전 녹화 그대로 진행하자· 비공개는 필요 없겠어·”
“예·”
그룹 일이라면 한 번 더 의향을 묻고 안전한 합의 절차를 하나 끼워 넣던 것에서 벗어나 조금 더 선택적으로 자유롭게 굴기 시작했다·
‘리더라고 대놓고 연장자처럼 총대 메려고 하더니·’
어깨에 좀 힘이 빠진 것이다·
예전에는 가끔 회피형 멤버들을 볼 때마다 ‘널 도와주고 싶어· 잘 이해는 안 되더라도 노력해 볼게·’ 같은 난감하고 조심스러운 기색을 보이곤 했는데 그것도 사라졌다·
생각의 거리감이 줄어들었다고 해야 하나·
‘자기도 한번 생각에 빠져서 뭘 못하는 시간을 겪어봤다는 건가·’
그게 자기답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확실히 얻어간 것은 있나 보다· 녀석은 전보다 지시나 일 이야기가 허물없고 거침없어졌다·
공연이 끝나고 며칠 후 류청우가 천연덕스럽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났다·
-형 나는 내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게 좋아·
-하지만 내가 배려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그래· 다 끌어안고 혼자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나는 피식 웃었다·
뒤에서 인이어를 고치던 큰세진도 씩 웃는다·
“우리 이쪽 토크쇼는 오랜만인가? 미국 한두 번 오는 것도 아닌데도 이상하게 감회가 새롭네·”
“이번 컴백 때는 출연 안 해서 그럴지도 모르지·”
“아~ 그건 그렇다·”
여기는 백스테이지·
우리는 곧 출연할 한 미국의 토크쇼 촬영을 준비 중이다·
애초에 본격적인 해외 공략을 이 리믹스 활동으로 하려고 미뤄뒀기 때문에 이번 활동기에서는 이 타이밍에 해외 출연을 다 몰아놨거든·
덕분에 비행기 타고 여기저기 하루 텀으로 돌아다니게 생겨서 시간은 빡빡해졌지만 말이다·
우리 중 개인 스케줄이 예정된 놈이 또 고생을 좀 했다·
“저 세진 형은··· 다음 작품도 준비하셔야 하는데·”
“맞아· 그 로맨스 코미디!”
하지만 개인 스케줄의 당사자 배세진은 덤덤했다·
“괜찮아· 연기는 무조건 연습실에서 해야 하는 게 아니니까·”
“이야·”
“오오~”
“형 멋져요!”
과장된 호응에도 배세진은 이번엔 버럭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 대신 약간 어설프지만 픽 웃었다·
“···! 오?”
“형· 화 안 내요?”
“안 내· 칭찬이잖아·”
김래빈까지도 약간 놀란 눈으로 배세진을 보았으나 곧 다들 피식피식 웃는다·
“우리 좀 옷빨 타는 것 같은데요·”
“그런가·”
이런 잠입용 수트 같은 것도 수트는 수트라고 다들 좀 어른스럽게 구는군·
“저도 인정할 거 있어요·”
혼자 짧게 스페인어로 기도문 같은 것을 중얼거리던 차유진도 툭 끼어들었다·
“뭔데?”
“저 여기서 재밌는 거 잘할 수 있어요·”
“여기?”
“이 프로그램이요·”
차유진이 뚱한 얼굴로 말했다·
“·”
“세상에·”
몇 년 전 <127섹션>으로 게임 매니아 층에 어필해서 이 토크쇼에 처음 출연할 때만 해도 ‘이런 너드 같은 쇼에 내가 나오다니’라며 기겁하던 녀석은 이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팬들 좋아하면 저도 좋아하는 거 시도해요· 멤버들이 하고 싶은 거 저도 해요·”
“오~”
멤버들이 기특하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너도 좀 변했네·”
배세진이 중얼거리다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뉘앙스의 문제를 깨달았군·
“좋은 방향으로 그랬다는 거야! 그 팀워크가 좋아졌다고·”
“하하 응· 유진이도 이해했을 거야·”
“Yeap 칭찬 알아요!”
나는 배세진을 쳐다보았다·
“형도 많이 변하셨는데요· 좋은 방향으로·”
“···! 그렇···긴 한가·”
배세진의 얼굴이 좀 벌게졌다가 이내 가라앉아서 곧 생각에 잠긴 듯 잔잔해진다·
아무래도 데뷔 서바이벌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돌아보는 것 같았다·
뭐 많은 일들이 있긴 했지·
나는 낯선 스탭들 사이에서 똘똘 뭉쳐있는 친숙한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데뷔 이후 아니 데뷔하기부터 별 우여곡절을 다 겪으며 여기 서 있는 녀석들의 얼굴이 보였다·
몇 년 전이었다면 눈을 피했을 녀석 카메라가 돌아갈 때만 적극적으로 잡담을 걸었을 녀석 굳이 나서지 않았을 개인주의적인 녀석····
각자 자기만의 사정을 가지고 있던 놈들이 이젠 다 뭉쳐서 솔직하고 침착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뜨거운 속으로·
물론 좋은 의미로 한결같은 녀석도 있다만·
나는 김래빈의 어깨를 툭툭 도닥였다·
“···? 형?”
“오늘도 잘해보자고·”
“물론입니다!”
그래·
마침 뒤를 돌아본 선아현이 스탭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은 후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 곧 시작한대요···!”
“딜레이 없이? 좋네·”
저 밖에는 관객이 있고 쇼호스트가 있고 밴드가 있고····
카메라 너머 우리를 볼 수많은 사람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온전히 우리만 여기 있다·
“자자 서시고·”
땀에 살짝 젖은 녀석들이 둘러섰다· 맞댄 머리에서 열기가 났다·
그래도 괜찮았다·
“테스타 오늘 뭔가 보여준다·”
“보여줘야지·”
“갑시다·”
우리는 스테이지로 나갔다·
[오늘의 게스트를 모시겠습니다· 최근 UK에서 어마어마한 무대를 보여준 KPOP 스타죠· 바로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7명의 남성 밴드····]
막이 오르고 있었다·
* * *
한국·
[앤디 : 다들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직종을 변경하셨나요?]
[차유진 : 오 어떻게 아셨죠? 저희 CIA에 취직했거든요·]
[하하하하!]
“으아아아····”
벌써 실시간 촬영 선공개가 뜬 테스타의 미국 토크쇼를 보며 한 팬이 녹아내리고 있다·
바로 데뷔 초 때는 산삼보다 귀했다던 올팬·
테스타의 러뷰어다·
이제는 그 수가 적지 않은 올팬은 영상을 다 시청한 후 즐겁게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 안에도 테스타가 있다·
-우리 문댕이 다 컸다ㅠㅠ 머리카락 기른 거 이렇게 한쪽만 넘겨서 목에 홀로그램 타투 보여주려는 거였구나 하 (사진)
“감사합니다····”
박문대의 첫 홈마가 사담용 SNS 계정에 올려준 일용할 보정샷을 저장하며 팬은 들뜬 기분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손을 따라 테스타의 세상이 펼쳐진다·
멤버 둘의 트윈 홈마가 올려준 페어 안무 직캠 GIF 예능 출연분 컨셉 포토 지난 무대들 멤버 각자의 출국 장면들이 스토리가 되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반응들·
위튜브 댓글 캡처 기사 순위 음원 별점 공연 후기들이 숫자와 묘사로 타임라인을 수놓았다·
이윽고 키보드배틀을 벌이는 개인팬의 글들을 지나 자신의 SNS 친구인 한 공무원과 전 대학원생의 기분 좋은 글을 쓱 보며 타임라인을 갱신한다·
테스타의 바다·
그때 그 속에 푹 빠져 있던 팬에게 새 글이 툭 튀어나왔다·
-애들아 빌보드 핫백예측 뜸 빨리 보고 와 제발 나랑 이야기좀 (링크)
어?
그 다급함에 링크를 누르자 한 커뮤니티의 글로 연결되었다·
[<빌보드 Hot 100 예측>]
한국어로 번역된 그 표의 상단에서··· 빨갛게 색칠된 한 줄이 분명히 보였다·
[Bad feelings / 테스타 ? 26위]
“···어?”
-???
-테스타?
-테스타 왜 여기 있어
활동기가 다 지나서 갑자기 예측 재진입한 테스타의 타이틀곡에 온갖 사람들이 당황과 기쁨 황당함을 내뱉고 있었다·
그것도 심지어 20위권!
앨범 차트도 아니고 음원 차트에서 말이다·
이게 뭐지?
“어 어어?”
기쁨이 차오르기도 전에 팬의 눈에 극초반에 달린 댓글이 들어왔다·
누가 봐도 초를 치는 투의·
-리믹스ㅋㅋㅋ 빌보드 편법 수작 단골이네
“····”
이건 무슨 소리야?
팬은 다급하게 인터넷에 단어를 검색했고 곧 무슨 뜻인지 알았다·
‘아···!’
리믹스 편법·
-빌보드는 리믹스 발매 시 원곡과 함께 하나의 곡 성적으로 집계합니다· 즉 리믹스를 많이 발매하면 성적을 내기 유리하다는 것을 이용해····
빌보드에선 한 곡의 리믹스 버전들이 하나하나 다른 곡으로 집계되는 게 아니었다·
‘다 원곡 하나로 묶으니까 일부러 수십 가지 리믹스를 내는 편법도 있다····’
사실 워낙 성적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편법이라기보단 팬덤이 큰 측에서 구매력을 보여주는 방식에 가까워 보이긴 했으나 라벨은 붙이기 마련이다·
깎아내리려는 쪽에서는 비하적인 단어를 붙이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어떻게든 타가수를 망치기 위해 정황상 리믹스 편법이 아닌데도 맞다고 물고 늘어지는 경우도 제법 있었던 것 같다·
‘···설마 지금 테스타도?’
테스타는 지금 글래스톤 베리 공연 버전과 비밀요원 버전으로 리믹스를 낸 상태였다· 아마 이 성적들이 크게 합산됐을 텐데····
-일단 리믹스만 냈다고 하면 달려드는 경우 많더라ㅉㅉ
순간 가슴이 서늘해질 이야기였다·
팬은 입술을 깨물고 다시 아까의 글 페이지로 돌아와서 반응을 보기 위해 겨우 댓글로 시선을 내렸다·
그런데····
-뭔 소리야 겨우 2종인데
-리믹스 편법 무새들 또 나왔네
-야 하나는 공연 음원이고 하나는 콜라보 음원인데 누가 보면 무지성으로 리믹스 찍어서 어거지로 끼워서 팔아먹은 줄 알겠다ㅋ
-아예 활동 중인 리믹스로 개소리ㄴㄴ
“어?”
여론은 아주 좋았다·
팬은 눈을 깜빡이다가 이유를 깨달았다·
테스타의 이번 리믹스의 경우엔 확실한 명분이 있던 것이다·
공연 반응이 좋아서 즉흥적으로 출시한 음원 테마파크 어트랙션 콜라보 음원 심지어 이걸로 활동을 재개한 것까지····
뭐 하나 ‘성적을 노리고 억지로 무의미한 가짓수를 늘린 것이다’라는 말을 방어하지 못할 논리가 없었다·
차라리 ‘뒤늦게 리믹스를 냈지만 미국쪽 차트 특성상 손해 보지 않고 빌드업이 되었다’가 맞았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테스타 지금 활동 들어갔지? 이거 더 오를 것 같음
-아직 음방도 미국 무대도 공개 안 됐잖아··· 혹시?
-지금 뜬 예측 계정이 너무 빠르긴 함 테스타 앞으로 2 3일 성적따라 더 오를 수도 있다는 거임ㅋㅋ
└떨어질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음 기세를 봐서는 오를 확률이 훨씬 높다고 봄ㅇㅇ
“····”
팬은 글에서 나와 자신의 SNS 타임라인으로 돌아갔다·
-빌보드 핫백 예측 보신 분?
새롭게 올라오는 글들에서 새로운 설렘과 불안 기대가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부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