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25화
몇 시간 전·
‘아··· 어쩌지?’
류건우 휴직 중인 큰달은 영미권 사이트를 뒤적거리며 침음했다· 그간 해온 영어 공부가 헛되지 않았는지 눈에 쓱쓱 들어왔다·
물론 찾는 건 하나였다·
테스타가 출연하는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형에게 기사가 보도되기도 전에 그 소식을 받았을 때가 생각났다·
-그렇게 됐다·
-으아악!
왜 하필 티케팅이 작년에 일찌감치 끝났냐고 비명을 질렀던 자신이 눈에 선했다·
‘이렇게 된 이상 글로 된 실시간 중계라도 찾아보려고 했는데····’
그러나 오늘 금요일 공연 당일·
헤드라이너가 공연 직전에 부상으로 증발한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심지어 급하게 섭외된 헤드라이너도 다소 미스캐스팅으로 영미권 커뮤니티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티켓을 구하기 위해 내 모든 것을 걸었는데·· 올해 글래스톤배리는 저주받았어
-사람들이 다른 좋은 무대가 많으니 그걸 보면 된다고 말하지만 나는 레드숨머를 너무 기대했다고·
이대로라면 뻔했다·
당연히 불참 사태가 더 주목받으며 금요일 공연 자체는 그저 전야제의 연속으로 시들하게 지나가리라 여겼다·
특히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약간 처절하기까지 한 패배자의 심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으나····
-방금 X발 뭐가 일어난 거지?
갑자기 낮부터 웬 밴드가 메인 스테이지에서 미친 짓을 벌인 것이다·
누구긴 누구겠는가·
‘형!’
바로 큰달이 영어 사이트까지 뒤지게 한 그 그룹이다· 테스타!
-진심으로 이 충격을 공유하고 싶다
-lololololololololololololol
테스타는 가장 영미권에서 대중적일 영화 OST 곡을 첫 곡으로 밴드 라이브를 해놓고선 다음 곡으론 미친 듯이 실험적인 묵직한 힙합을 했다·
심지어 굳이 최신 타이틀곡을 변형시켜서 자기들이 지금까지 정식으로 앨범도 내본 적 없는 스타일로!
‘으아아아!’
국내에선 안 보여줬으면서 심지어 투어 VOD가 나오는 것도 아니면서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 지를 것도 없었다·
애초에 그 자리에 테스타 팬이 몇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다 소리를 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업로드되는 몇몇 위튜브 직캠들에서도 ‘What?’ 등의 당혹과 놀라움의 감탄사로 카메라가 흔들리는 것이 뻔히 보일 정도로 예상치 못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다음 곡입니다·]
심지어 그다음 곡에선 또 뒤통수를 쳤다는 점이다·
‘헉·’
테스타는 밝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부드럽고 무용적인 선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이전 타이틀곡 하나를 선곡했다·
바로 <약속>·
[키워드는 인어입니다·]
일부러 놀리기라도 하는 듯한 선곡이었다·
글로벌 인터넷에 퍼진 고정관념으로 보자면 완전히 전형적인 KPOP스러운 무대였기 때문이다·
밝은 색감 건전하고 밝은 노랫말 그리고 거칠지 않고 매끈한 물을 이용한 특징적인 안무까지·
[지금처럼 비 오는 날을 위한 곡이라고 할 수 있죠·]
[Yeap 우리가 6월의 U·K 날씨를 열심히 체크했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자연스러운 선곡이라니까요·]
게다가 또 말만 그럴싸하게 붙였다!
하지만 이쯤 되니 오히려 그 점에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저항정신을 느끼게 만드네
-말 그대로 순수한 글래스톤베리의 정신이야· 너희 모두 X까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거지LOL
오히려 한결같다는 것이다·
하나의 방식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 하고 싶은 건 뭐든지 다 하는 것 같은 그 태도·
그러면서도 뭐 하나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는다·
자기들이 뭘 하는지 알고 있었고 잘했다!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어서 정말 재밌었어!
-솔직히 난 금요일 공연 중에 ‘공연의 경험’으로서 제일 즐긴 순간은 그때였다고 생각해·
그 모든 건 굉장히 실험적으로 보였고 그 ‘실험성’ 자체가 밴드의 색으로 보이게 하기엔 충분했다·
괜한 시비도 통하지 않았다·
-글쎄· 그들의 회사가 전부 짜주는 걸 마치 숙련 노동자처럼 익혔을 뿐이잖아?
└그마아아아안· 난 이제 지겹다· 그들은 싱어송라이터라니까? 내가 이 설명을 몇 번이나 해야 하는 거야?
└대체 이 구닥다리는 몇 년도 케이팝을 생각하는 거지?
└이 기사를 읽어 (테스타의 투어 리뷰 링크)
테스타가 이미 독특한 투어로 영미권 인터넷에 알음알음 인상을 박아놓은 덕분이었다·
방어가 됐다!
‘와·’
큰달은 신나서 스크롤을 내렸다·
차라리 평소대로 헤드라이너가 건재한 공연이었다면 ‘이런 녀석들도 있구나’ 하는 식의 해프닝으로 적당히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헤드라이너가 없었다·
오히려 그 덕분에 테스타는 특수 시기의 모든 어그로를 쭉 빨아들인 것이다·
-이 미친 형씨들이 VR 게임으로 콘서트를 했다는 건 알고 있어?
-나는 지금 글래스톤베리 텐트 안이고 저 밴드의 다음 투어일정을 원해
갑자기 나타나서 메인 스테이지에서 자기 멋대로 공연을 하고 간 KPOP 밴드의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꽤 재밌는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러다가 저녁쯤 직캠들이 올라올 때는 정말로 언급량으로 검색엔진 순위권에 오를 정도였다·
‘대단해!’
이제 어느 정도 검색엔진 고급 사용법을 익힌 큰달은 상기된 얼굴로 해당 현상들을 돌아보았다·
직접 갈 수 없던 것은 아쉽다·
하다못해 형과 시야 공유로라도 해당 상황을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나 선 넘는 부탁일뿐더러 이제는 힘든 일이었다····
‘상태창도 안 보이잖아·’
그는 단지 직캠을 보며 가장 인상적인 곡에서 센터에 서 있는 인물 류청우의 미묘한 변화를 집어낼 뿐이었다·
흔들리는 초점과 잡음 속에서도 보이는 그 존재감·
[No more bad feelings]
전광판에 잡히는 그 단단하고 선명하고 고요한 기세가 눈을 잡았다·
‘뭔가··· 한계를 뛰어넘으신 것 같아·’
한때 상태창이었던 그는 다시 한번 예리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큰달은 류청우의 활동 중지 소식을 알고 있었지만 이젠 그다지 걱정스럽지 않았다·
[Bad feelings]
어쩐지 느낌이 좋았다·
-이 새끼들 이번엔 EDM을 하고 있어!
-갑자기 신비로운 동양 악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테스타는 다섯 곡이 넘는 세트리스트를 각자 다른 느낌으로 꽉꽉 채워서 의상 하나를 후드를 덮거나 벗는 식으로 바꿔가며 기어코 하고 싶은 걸 다 했다·
덕분에 다음 날 이어진 VTIC의 헤드라이너 공연은 조금 묘한 관심을 받게 된다·
-그래! 이게 내가 예상한 거였는데
-내가 아는 케이팝이야: 군무 퍼포먼스 잘 짜인 구조의 곡 번쩍이는 의상!
VTIC 쪽이 오히려 안정적인 비교군이 된 것이다·
본래 KPOP 헤드라이너라는 것만으로도 꽤 호불호가 갈리고 다소 파격적이거나 색다른 무대로 받아들여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앞선 날짜에서도 KPOP 그룹이 있었는데 하도 정신 나갈 것처럼 의외의 선곡들을 지르고 간 덕분이었다·
-역시 그 녀석들이 이상한 거였어!!
도리어 VTIC 쪽이 의외성이 없게 느껴지는 묘한 효과가 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VTIC은 이미 헤드라이너로 나오는 것 자체에서 리스크를 고려해 강수를 두었고 덕분에 더 위험한 시도는 현명히 선택지에서 제거했다·
적절히 영미권에서 친숙할 구성과 본인들다운 컨셉추얼의 개성을 잘 섞어서 무대를 만든 것이다·
본래대로였다면 꽤 성공적인 무대였을 것이고 이래저래 호평을 받았을 것이다·
실제로도 과연 헤드라이너다웠다 무게감 있게 멋졌다 등 좋은 평이 이어지고 있었으나 문제는 화제성이었다·
-그래서 금요일 그 밴드가 미친놈들이 맞았던 거지?
테스타만 없었다면·
결국 모든 화제성이란 양날의 검이며 승자가 가려지는 법이었다·
-글래스톤 베리 공연 2일차· 나는 아직도 그 미친 케이팝 밴드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형 테스타 박문대는 사실 단번에 이 진단을 내린 상황이었으나 큰달로서는 여기까진 알지 못했다·
다만 큰달도 신뢰가 있었다·
이 상황을 그의 형이 무조건 잘 이용할 거라는·
‘형은 항상 그랬으니까····’
그가 상태창으로서 얼토당토않은 특성이나 상태이상들을 보여줄 때도 말이다· 언제나 출구를 찾았고 색다른 이용법을 찾았다·
그때를 회상하며 큰달은 의외의 감상을 느꼈다·
그리움도 불안함도 부채감도 아닌····
‘보람찼던 것 같아·’
무겁지 않은 성취감·
자기가 상태창만 아니었다면 정말 괜찮은 상황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진짜로 들었다· 그러니까 일종의 조력자였다면 말이다!
물론 그 생각은 금방 지나갔고 눈에 들어오는 건 새로운 영문 코멘트들이다·
-USB 앨범? 굉장히 친환경적이네·
-그러니까··· 정식 발매되지도 않은 오로지 공연만을 위한 리믹스였다고?
-날 죽여줘
테스타에게 글래스톤베리 버전의 리믹스를 내달라고 아우성치는 글이 범람한다·
일종의 밈처럼 테스타의 공연은 바이럴을 탔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국내에 역수입되기 시작했다·
-테스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재밌다
-외국 밴드맛도 주는 테스타 지금 입덕하면 1+3··· 아니 4!
-글래스톤베리 데이터삽니다·· 제발 팔아줘
“좋다·”
큰달이 헤헤 웃으며 그 칭찬들을 보았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에 방문했던 페이지가 주소에서 스치며 클릭 실수로 열어보게 되었다·
“아·”
바로 음반 판매량을 보여주는 SNS 계정이었다·
한창 VTIC과 경쟁할 때 살펴보다가 약간 풀이 죽었던 페이지였다·
물론 이젠 옛날 옛적에 1주일간의 초동 기간이 끝났으니 별 의미가 없었지만····
“어?”
큰달이 눈을 껌벅였다·
수치 변동이 이상했다·
-판매 : 9126
이것이 며칠 전 판매량·
그리고·
-판매 : 20274
오늘의 판매량·
글래스톤베리 공연 전날의 두 배가 넘는 수치가 표기되어 있었다·
“···?”
앨범이 발매된 지 몇 주나 지났는데 오히려 판매량이 올랐다·
순간 큰달은 자신이 잘못 봤나 싶었지만 곧 깨달았다·
‘아 홍보 효과가 생긴 거구나!’
이것도 글래스톤 베리 페스티벌의 효과구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사실 본래 타이틀곡과 공연에서 리믹스한 곡이 완전히 느낌이 다른지라 그리 극적인 그래프 변화를 보여주진 않는 것 같았다·
‘으음·’
그래서 그는 도로 영문 페이지로 돌아왔다·
-이건 일종의 사기야· 그들이 올드 스쿨 힙합을 하는 영상을 거의 찾을 수가 없다고!
-난 이 밴드가 부른 후렴구의 프론트맨에 대하여 수많은 것들을 알아냈다· 그는 놀랍게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으며 내가 본 한국인 중 가장 핫하다·
하지만 그가 힙합을 하는 장면은 더 찾지 못했다· 이건 말 그대로 지옥이다·
“아이고·”
흥미진진한 글들에 큰달의 고개가 기울어졌으나····
드르륵!
“···!”
곧 진동 소리에 화들짝 놀라 원위치되었다·
스마트폰의 알림이었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었지!’
[<알림> 쉬는 시간 끝!]
큰달은 시간이 다 지난 것을 보고 얼른 스마트폰을 껐다·
형과의 약속대로 그는 무작정 테스타에게 자신의 희로애락을 위탁하는 행동은 더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완전히 생활에서 배제해서 스스로 무미건조해지지도 않았다·
그는 적당히 균형을 유지하며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의 즐거움으로 테스타 모니터링을 하려는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 중이었다····
사실 오늘도 할 일이 많았고 말이다!
-저기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류건우 회원님 맞으시죠? 여기 인데 연락받고 전화 드렸는데요····
“아 잠시만요!”
큰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직 기간 이제 그는 준비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테스타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준비 중인 일에 한창이었다·
물론 그 전에 짧은 즐거움을 누리고 있긴 했지만·
“오 이거 어때요? ‘테스타 글래스톤베리에 울려 퍼진 도전자의 말말말’!”
“Coooooool·”
“영광스럽습니다!”
등받이를 뒤로 젖혀서 거의 침대칸이나 다름없게 된 벤에 누운 테스타가 서로에게 박수를 보냈다·
“형 대단했어요!”
“고마워·”
당연하지만 그중 MVP는 류청우였다·
그리고 그에겐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