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24화
공연이 한창인 글래스톤베리·
차유진의 중학교 동창 어느 호떡 가게에서 테스타를 마주친 이후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던 해나는 입을 벌린 채 무대를 올려다보았다·
쿵·
어두운 올드 스쿨 힙합 사운드가 울리고 있었다·
끼이이익!
눈앞의 무대 전광판·
거친 엔진 야수의 하울링 같은 뒤틀린 밴드 사운드를 뚫고 완전한 저음의 낮은 랩이 튀어나온다·
그들의 타이틀 의 바뀐 도입부가·
[Get this feeling
Then I’ll fall and fall]
바닥을 쿵쿵 스텝으로 찍는 듯한 안무와 고조되는 드럼·
그것에 맞춰 모자 쓴 고개를 까닥거리는 볼점과 삼백안이 도드라지는 퇴폐적인 인상의 퍼포머·
김래빈·
[Umm-]
그가 자세를 낮춘다·
왜곡된 일렉베이스와 함께·
어깨부터 발끝까지 팝을 넣어 튕기며 입을 연다·
[난 sleepwalk
아스팔트 위를 걸어 slowly 쭉
Chill out 덤덤히 여전히 툭 step step
(Reload)]
툭툭 던지는 듯한 손동작 뒤로 멤버들의 코레오그래피는 사방으로 튀어나오듯 하다 팔짱을 끼며 정렬된다·
어슬렁거리며 다가가는 듯한 위협적인 동작이 무거운 리듬을 따라 퍼졌다·
그 위에 거친 랩·
[아직까지 재장전 중
겁 없이 열없이 너 없이 철컥]
손동작 뒤에서 고개를 까닥이며 튀어나오는 다음 주자·
차유진·
[(yeah Reload-)]
‘아!’
씩 웃는 그 얼굴 아래로 바운스와 스텝이 놀 듯이 들어간다·
알맞은 반주 대신 오는 건 초고음·
[Woo-]
저 높은 옥타브 위에서 노는 박문대의 화음이 찍어 올리듯 같이 몰아쳐 들어온다·
[나 오늘도 sleepwalking 매일
꾸는 꿈에도 네가 나와서
아무 다짐도 이 악뭄도 소용없어]
길게 끄는 초고음의 목소리와 함께 다시 랩이 쏟아진다·
사지를 리드미컬하게 쓰며 리듬의 강약을 조절해 다 같이 튀어 다니듯 무대 사방에 서서··· 싱크로·
바닥에 눕듯 몸을 처박는다·
[Get out]
극단적이다·
해나는 눈이 튀어나올 듯이 헐떡였다·
이건··· 전 곡과 너무 다르다!
그렇다고 원곡처럼 그저 매끈하고 밝고 신나는 것도 아니다·
[받은 게 많아서]
쿵·
발을 맞춰 안무가 바뀐다·
[하나도 못 버려]
우웅!
강렬하고 찌르는 듯한 고음 아니면 몰아치듯 두들기는 랩·
영문 해석이 무대 뒤 전광판에 뜨지만 안타깝게도 그걸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퍼포먼스와 보컬 랩이 함께 공격적으로 몰아치니까!
[나도 네게 선물을 줄게]
퍼포머가 핸드 마이크를 꽉 잡고 내뱉는 묵직하고 빠른 올드 스쿨 힙합·
이대로면 역사적 전통성의 존중감이라는 의미라도 들어갔을지 모른다·
하지만 코러스가 들어가야 하는 순간·
[Bad feelings·]
어마어마한 전자음이 꼬인 채로 스피커를 강타한다·
“···!!”
올드 힙합의 정통성이라면 적절히 따라 부르기 편하고 투박한 반복 어구가 나올 타이밍·
하지만 그 대신 미친 듯이 무겁고 정신 사납게 날뛰는 미디음이 컴플렉스트로에 가깝게 공기를 몰아세운다·
그리고 전자 멜로디·
[Bad feelings
fill me up
roll it underground]
전신을 크게 움직이며 느리게 하지만 강하게 무대를 채우는 동작·
차유진이 고개를 까딱이고 입 끝을 비틀며 제스처와 안무를 완성해 간다·
자연스럽기는커녕 히피는커녕··· 다 X까라는 식의 전개 방식!
철저히 임팩트를 위해 짜인 거의 광기까지 느껴지는 수준의 안무 싱크로율과 퍼포먼스·
차라리 현대 엔터테인먼트 예술 산업의 정수에 가깝다·
[Bad feelings
pick you up
roll it underground]
애티튜드고 나발이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
그렇게 주장하는 듯이 보라고 외치라는 듯이 무대를 질주한다·
‘이게 무슨···?!’
사실 그녀는 테스타의 첫 곡 라이브를 본 순간에 생각했다·
-그들이 공연을 글래스톤베리에 맞게 구성했나 보구나!
평소보다 좀 더 밴드 라이브답고 보컬과 감성을 강조한 분위기 말이다·
서정적이고 벅찬 감성!
그게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히피 컬쳐를 근본으로 두는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 추구하는 정신과도 맞았으며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처음으로 참석한 공연자가 취할 바람직한 자세같이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영어 가사의 영화 OST로 분위기 반전에도 성공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최대한 KPOP스러움을 자제하고 전통적 유럽 친화적으로 가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Fill in the blank]
눈앞에서 LED 폭죽과 함께 거친 안무가 터진다·
손을 까딱거리던 가장 체격 큰 멤버가 웃음기 없이 신체의 동작을 최대한 써서 압도감 넘치게 위압적으로 안무를 끈다·
그 군무가 전광판의 뜨는 것만으로 몸이 움찔거린다·
[Ururururu-]
까딱 잘못하면 난장판이 될 것 같은 마치 각종 야생동물을 부위별로 뜯어 패치워크로 덕지덕지 붙여 놓은 것 같은 그 강렬한 각자의 개성!
차라리 묘기에 가깝다·
개인의 고난도 안무와 보컬 랩 애드립이 쉴새 없이 튀어나오고 마치 개인기를 자랑하듯이 이어진다·
숨도 못 쉬게·
[Fill in the blank]
그리고 겨우 요동치던 전자음들이 잔잔해진다·
[Fill in the blank with···]
둥· 둥·
느긋이 뛰는 베이스의 낮은음에 맞춰 정렬한 멤버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 나온다·
검은 점퍼를 입은 멤버·
그는 주변을 돌아보며 급할 것 없다는 듯 걸어 나와 전체 대형을 잡는다·
[These bad feelings]
류청우·
마침내 원곡의 후렴 멜로디가 돌아온 자리 가운데 그가 섰다·
* * *
류청우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 무대의 구성을 보고 나눈 대화를·
-유진이나 래빈이가 중점이겠구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랩이 중심인 곡 그것도 강렬한 이미지와 개성이 중요하다면 이 팀에서 적임자는 그 둘이었다·
박문대도 고개를 끄덕였었다·
-둘이 이런 컨셉을 잘 받긴 하는데요·
그러나·
-자기 색이 워낙 강한 녀석들이라서요· 자기들 멋대로 하면서도 그룹 퍼포먼스로 잘 뭉치려면 더 필요한 게 있잖아요·
-필요한 거?
류청우는 가운데로 나왔다·
-중심이요·
강렬한 개성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산만함이다·
가짓수가 늘어날수록 시너지보다는 서로가 부자연스럽고 하나의 그림으로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렇다고 서로서로 맞추다 보면 그 강렬한 개인 파트의 맛이 약간 아쉽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개개인이 멋대로 굴면서도 하나의 팀으로 보일 수 있으려면·
-균형과 힘·
곡의 중심 후렴·
무대 위 류청우는 고개를 까닥거렸다·
주변에서 멤버들이 칼 같은 움직임으로 주변의 대형을 갖춘다·
그리고 떨어지는 보컬·
[너도 벗어나지 마
매일 아침 나를 생각해]
멜로디에 맞춘 안무 동작을 끊는 점마다 정확히 힘이 들어가 시선이 딱 맞는다·
노래와 군무가 한데 합쳐진다·
그리고 듣기 좋은 코러스 멜로디·
[These Bad feelings]
산책하듯·
훅 무거운 반주 위로 선명한 보컬이 환기하듯 듣기 쉬운 방향으로 노래를 끌고 간다·
안무도 더 이상 미친 듯이 색을 바꿔 서로 힘겨루지 않는다·
그저 센터를 중심으로 능숙히 집중된다·
[These Bad feelings]
집중력의 구심점·
그 안에서 마침내 류청우는 생각했다·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거라고·
[너도 가지고 가
매일 꺼내 봐 나처럼]
‘이런 느낌이었지·’
복잡하고 깊은 상념은 필요 없다·
그는 지금 해야 할 일을 알았고 그걸로 충분했다·
이제 알겠다·
[These Bad feelings]
포기해도 괜찮다는 말·
듣기 싫다·
주저앉아 쉬라는 말도·
싫다·
왜냐하면····
-나는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동정도 염려도 받고 싶지 않았던 것은 그가 그걸 필요로 하지 않아서다·
그는 뭐든 할 수 있는 자신이 익숙했다·
자기효능감·
타인을 챙기는 그의 관대함도 사실 거기에서부터 나온다·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꽉 차 있는 사람이라 상황에 여유롭고 온화할 수도 있다·
류청우는 실패에 젖는 사람이 아니다·
그 명제를 일깨울 단서가 될 말들 덕에 류청우는 이제 주저 없이 정리할 수 있다·
원래 자신처럼·
[너를 쫓아가
내일 아침에도 튀어나와]
아니· 고민과 의심은 사라져야 옳다·
[너도 가지고 가
매일 확인해 나처럼]
아니 그 모든 걱정도 갈등도 자신답지 않았다·
아직 오지도 않은 실패를 고민하는 건 자신이 아니다·
이미 지나간 실패를 걱정하는 건 자신이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Get out]
밴드가 멈췄다·
치고 들어온 멜로디를 잡은 류청우는 짧은 순간 정적이 흐르는 무대 위에서 들어갈 타이밍을 노렸다·
[-]
이제는 놓아주자·
화살이 시위를 떠나듯· 공기를 가르고 변곡점을 지나 한 점을 향해 올곧게 쏘아져 가도록·
두근·
올바른 방향· 올바른 위치로·
[But no more bad feelings!]
지이이이이잉-!
비트가 드랍된다·
“후·”
눈이 빛나고 숨이 차고 무대의 모든 것은 올바른 위치에 있다·
류청우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원래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풀 드로(Full draw) (S)]
-네가 시위를 당길 때 정확한 위치에 있을 거야·
: 퍼포먼스 평정심 +150%
나는 할 수 있다·
[릴리즈(Release) (EX)]
-마침내 쏘아져 나간 화살·
: 퍼포먼스 효과 +180%
무대 위에 폭죽이 터진다·
[No more bad feelings]
또렷하고 기준점이 되는 보컬이 때린다·
힘이 강하고 무게감 있게 꽉 동작을 잡는 안무가 랩 샘플링과 리프 멜로디를 가르고 나온다·
한 점에 모이듯 센터로 포커싱이 맞춰진다·
불안하지 않은 집중력으로·
[Fill in the blank]
이윽고 후반이 몰아친다·
[Bad feelings
fill me up
roll it underground]
선아현의 당혹스러울 정도로 갑작스러운 백플립에 척수반사처럼 비명과 탄성이 쏟아진다·
하지만 곡의 중심이 뒤틀리진 않는다·
‘여기야·’
꽉 잡고 곡의 집중력이 살아난다·
중저음의 목소리 밑으로 드럼이 심장처럼 뛰고 후렴의 멜로디를 끌어가는 류청우는 변하지 않는다·
[Bad feelings
pick you up
roll it underground]
댄스 브레이크에 튀어나온 차유진과 이세진의 뒤로 박문대가 고음을 지르고 다시 전개가 튀어나와 질주한다·
[But no more bad feelings]
하지만 멜로디 후렴은 곡을 정방향으로 진행하게 만든다·
마이크를 잡은 류청우는 다시 센터로 나왔다·
[난 뛸 수 있지
저 위로
별로
염려의 말로
상념의 끝으로]
낯선 언어 변칙적인 전개로 가득 찬 곡·
하지만 마지막에 다시 잡아 들어오는 건 류청우의 후렴구다·
관객이 따라부르는 수 있는 수준까지 곡의 직관력을 높인다·
[Bad feelings]
손이 하늘을 향하며 사방으로 멤버의 대형이 깨진다·
LED 조명이 터졌다·
“····”
정적·
곡이 끝났다·
이게 뭐냐고 혼란스러워했던 사람들 입을 벌린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다가 구경하듯 쳐다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
감명받은 관객들·
와아아아악!!
그 사이에서 류청우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완벽히 인지했다·
호불호가 갈려도 좋았다·
[감사합니다!]
무대는 하나로 완벽했다·
테스타는 확실히 인상을 남겼다·
* * *
[남의 축제 가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온 테스타]
거기서부터 뭔가가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