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12화
엘리베이터 안에는 침묵이 가득 찼다·
나는 굳은 차유진이 눈만 움직여 내가 들고 있는 지침서를 훑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밖에서는 여전히 목소리가 들린다·
[저 김래빈 인턴입니다·]
달칵·
그 순간 참지 못한 것처럼 엘리베이터에서 소리가 울렸다·
다만 문이 열리는 건 아니었다·
배세진이 볼펜을 누르고 황급히 챙겨온 A4 용지에 글을 갈기는 소리였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볼펜 한 줌을 바닥에 굴렸다·
‘여기!’
그 모습을 본 순간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볼펜을 집어 들고 황급히 종이에 붙었다·
-이대로 무시해?
-김래빈 맞아요? 우리 확인해야 해요·
-아니 무슨 수로?
-무시하다가 열고 들어오면 어떡하죠·
-환영도 반응도 하지 말라는 거 보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사라질 것 같은데·
-다른 층이라도 눌러볼까요?
류청우의 마지막 말에 모두의 눈이 버튼으로 향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저거!’
4층에 불이 들어와 있다·
마치 누군가 누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아무도 누르지 않았는데도·
“····”
오싹한 침묵이 다시 엘리베이터를 채웠다·
나는 다른 녀석들에게 손을 들어 진정하라는 사인을 보낸 후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였다·
[대리님?]
등 뒤로 퍼뜩 몸을 떠는 배세진의 반응을 넘기며 나는 엘리베이터 번호판 앞에 섰다·
그리고 천천히····
[B1]
우리의 목적지를 누른 후·
[4]
불이 들어와 있던 4층을 껐다·
그러자·
위이이잉-·
거짓말처럼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
정상 전력이 돌아온 듯 전등이 돌아온 엘리베이터 내부에서 멤버들이 다시 식은땀을 훔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내려갑니다·’라는 안내방송까지 나온 순간·
[아 지하로 가십니까? 알겠습니다·]
“····”
[저는 계단을 이용하겠습니다·]
엘리베이터 표시등이 내려간다·
3·
2·
1·
“뛰어·”
[지하 1층입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우리는 전속력으로 문을 박차고 뛰었다·
“옆으로···!”
지도를 보고 외치는 소리에 따라 발을 돌린다·
“저기야!”
전등이 어둑한 오래된 콘크리트 복도를 지나 맨 끝에 회갈색 방화문이 보였다·
그리고 그 문에 부착된 태블릿 PC까지·
[부산품을 등록하시겠습니까?]
“네! 네!”
예를 강타했다·
그러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화문 하단에 마치 우체통이나 택배함처럼 작은 틈이 열렸다·
끼익·
그 안은 시커멓다·
···여기로 부산품을 넣으라는 건가?
“아현 부장님 그거 오르골!”
“여기요···!”
선아현이 감싸고 있던 오르골을 얼른 내밀었다· 그리고 김래빈의 사원증올 꺼내 들었으나····
“김래빈 거 버리면 엘리베이터 못 타요!”
“아!”
상식적인 사유로 우선 오르골만을 넣었다·
물론 이 미쳐 돌아가는 예능에 상식이 통할지는 미지수였지만 말이다·
다행히 몇 초 후 태블릿 PC가 얌전히 글씨를 띄웠다·
[등록 완료]
다만 다른 반응은 없었다·
침묵·
“···이게 끝이야?”
오르골을 가져간 방화문도 열리지 않았다· 류청우가 이세진에게 한번 잡아당겨 보라고 권유했으나 문은 단단히 잠겨 있을 뿐이었다·
“····”
“····”
“우리 퇴근은?”
“야근하라는 건가 봐요·”
힘없이 우스갯소리처럼 몇 마디 내뱉는 것도 잠시·
깜박·
저 멀리 반대편 끝에서 번쩍이던 비상구의 불빛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들리는 소리·
똑똑똑·
[대리님? 계십니까?]
“····”
“···4층 친구가 내려왔나 보네·”
비상구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큰세진이 허탈한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역시 사원증도 같이 넣어야 답이었나?”
나는 다시 태블릿 PC를 내려다보았다·
[다음 납품까지
– 00:24:56]
···이제 하단에 문구가 떠 있다·
아까도 봤던 질문이·
-납품하시겠습니까?
비상구의 불빛은 점점 더 불안정하게 깜박인다·
김래빈이 아니라··· 아까 본 오르골 괴물이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여기서 납품을 눌렀을 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다들 알고 있다· 그래서 공포도 잊고 머뭇거리는 가운데·
큰세진이 어깨를 짚었다·
“···하자·”
“····”
“다른 방법이 없잖아·”
“정말 정말 없을까요···?”
선아현의 질문에는 아무도 답변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한숨과 함께 물었다·
“다수결로 할까요·”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납품 하겠습니다·”
“····”
나는 버튼을 눌렀다·
[납품 완료]
화면이 바뀌면서 비상구의 깜박이는 불도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없어졌다·
하지만 지난 경험으로 다들 알고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걸·
[납품용 직원 징발을 시작합니다·]
다시 불이 꺼지고 붉은 사이렌이 울린다·
“····”
멤버들이 무슨 대상 탈 때처럼 원을 그리고 손을 맞잡는다· 내 옆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뿌리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대리 이세진· 오늘의 업무가 종료되었습니다·
-부산품을 확인해 주세요·
불이 들어왔을 때 손은 비어있었다·
* * *
“그땐 정말로 다들 심각했지·”
촬영이라는 건 알았지만 오싹한 상황에 옆에 있던 멤버가 하나씩 없어지는 건 생각보다 충격적이었으니까·
한밤중 테스타의 숙소 류청우는 식탁에 마주 앉은 박문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
그때처럼 심각해 보이는 얼굴이 내심 당시를 떠올리는 듯했다·
류청우는 어쩐지 웃음이 나려는 것을 참으며 자신도 회상을 계속했다·
약간 으스스한 그 순간들을·
“그 후로도 계속 멤버들이 찾아왔었고·”
“····”
“사라진 멤버들이 말이야·”
* * *
우리는 일단 단서를 찾기 위해 7층으로 복귀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갑자기 사라진 멤버의 목소리가 들리는 현상을 또 겪긴 했지만·
이번엔 김래빈이 아니었다·
-주임님·
-다들 괜찮으세요? 저 이세진 대리인데요·
심지어 이번에는 문 뒤도 아니었다·
바로 등 뒤였다·
“····”
그 생생한 목소리에 다들 굳었다가 차마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해서 7층에 올라왔다·
-저기요!
“이세진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으니까 기분이 이상하더라····”
“····”
“아니 이세진 대리·”
나는 배세진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느새 불이 꺼져 어두컴컴해진 7층에서 현재까지의 수확을 정리했다·
별 건 없었지만 말이다·
“수면실이랑 탕비실 문이 잠겨 있습니다·”
“둘 다 지침서랑 관련이 있긴 하네요·”
-본사는 자율 근무 체재로 업무 종료 알림이 없습니다· 알림에 반응하는 직원에겐 수면실을 권유해 주세요·
-탕비실엔 정직원만 출입이 가능합니다·
나는 해당 항목들을 떠올리며 무의식중에 수면실 문 옆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문에 손이 닿는 순간이었다· 예상외로 문과 다른 감촉을 느껴졌다·
‘···! 이건·’
차갑고 매끄러운 표면·
‘액정이다·’
고개를 돌리자 내 몸에 반쯤 가려진 작은 화면이 손가락 피부를 만나 활성화되며 불빛을 보인다·
태블릿 PC가 수면실 문에 부착되어있던 것이다·
나는 즉시 내용을 읽었다·
[납품용 직원 명단]
-김래빈
-이세진
–
그리고 마지막에 커서가 떠 있었다·
입력하라는 듯이·
“····”
잠깐만· 이건····
‘고르게 해주겠다는 건가?’
“문대리 형 뭐 찾았어요?”
“박 대리님?”
하지만 그 말에 제대로 답변해 주기 전에 다시 전등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
타다다닥!
“저거 또 나와요!”
“아아악! 진짜!”
우리가 나온 사무실 창문에서부터 손바닥이 다시 찍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익숙해진 분위기 조성에 멤버들이 펄쩍 뛰면서도 소리를 질렀다·
“안 되겠어! 이번에는 그냥 납품하지 말자· 어떻게 되는지 차라리 확인해!”
“Yeap! 맞아요! 옳아요!”
“으응!”
어느새 부장인 선아현에게까지 말을 놓은 배세진이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게 안 되게 만들 것 같은데·’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손바닥이 찍히던 사무실 창문이 기어코 깨졌다·
[!!!!]
요란한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또 다른 낡은 오르골 상자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거미처럼 뻗은 사지가 불쑥 튀어나와 좀비처럼 기어 온다····
“아아악!”
“악!”
“뛰어요!”
“아니·”
그러나 나는 멤버들을 잡았다·
“왜!”
“문대야 발 못 움직이겠어? 업혀!”
그건 아니고·
나는 류청우의 부축을 슬쩍 피하며 빠르게 사고했다·
자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공포영화 모티브 같다·
천천히 멤버들이 탈락하면서 뭐가 해금되는 구조다·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소수만이 살아남아 진상을 파악하고 엔딩을 보게 설계해놓은 거지·
‘그러니까····’
차라리 선택권이 있다면 써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순간 면면을 둘러보았다·
배세진 선아현 차유진 류청우·
둘은 직급이 높고 둘은 힘을 잘 쓴다·
‘설정이 위력이 있으니까 직급 높은 녀석은 어딘가 쓸 데가 있을 거다·’
괜히 대리나 인턴부터 탈락시키는 게 아닐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난··· 그래 인정하자· 썩 귀신에 강한 사람도 아니라서 말이다·
그러니까·
“····”
나는 수면실 문에 표기된 명단의 제일 밑 공란에 터치해서 키보드를 활성화했다·
“문대리 형?”
“박문대 너 뭐해?”
그 말을 적고 있지·
-박문대·
그 순간·
다시 사이렌이 울린다·
[납품용 직원 징발을 시작합니다·]
“괜찮아요·”
들렸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게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누군지 모를 옆 멤버의 등을 툭 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대리 박문대· 오늘의 업무가 종료되었습니다·
-부산품을 확인해 주세요·
그렇게 나는··· 납품되었다·
* * *
정적 속·
“형 괜찮으십니까?”
눈을 떴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눈을 빛내고 있는 김래빈이었다·
아주··· 말쑥한·
“···?”
뭐야·
“문대리 왔구나~! 웰컴!”
옆에서 튀어나와서 얼싸안는 큰세진의 때깔도 좋아 보였다· 아니·
“니들 왜 멀쩡하냐·”
귀신 분장이라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문대리도 멀쩡하잖아~ 아 이제 대리가 아니지!”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저거!”
나는 큰세진이 가리킨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려다가··· 그보다 먼저 주변 환경을 보게 되었다·
‘X발 뭐야·’
말쑥한 회사의 휴게실처럼 생긴 곳이었는데 스파이 영화처럼 한 면에 거대한 홀로그램 패널이 떠 있었다·
[정직원 발령]
박문대 (A) 12:33:52
-축하합니다!
“···?”
이게 뭐냐·
“아니 그 ‘직원 징발’이라는 게 알고 보니까 납품 업무 담당 직원을 하나 더 뽑는 것 같더라?”
“····”
“그리고 납품 업무를 진행하는 직원이 정직원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실질적으로 승진인 거지~ 와 우리 다 원래 정직원이 아니라 계약직이었다니·”
정직원이 아니라고?
그 순간 나는 기억해냈다·
···지침서의 그 문구 말이다·
[11· 탕비실엔 정직원만 출입이 가능합니다·]
“····”
‘그래서 잠겨 있었냐·’
인턴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우리 모두 출입이 불가능했다 이 말이었냐·
“근데 왜 갑자기 사라지는 건데·”
“시크릿 요원이라 그런 게 아닐까? 국정원처럼·”
“····”
뒤통수가 얼얼한 그 와중에 홀로그램의 문구가 바뀌었다·
[당신의 업무는 격리시설의 유지 보수입니다·]
[괴생물체를 오르골형 제어 기구에 포획하여 KIS 재단에 납품하세요·]
“····”
재단?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사이비 재단 정직원이 되려고 이 짓을 했다····”
“어허이 사이비라니 무서운 말을! 비밀 재단이라고 해야지! 시크릿 요원!”
“그렇습니다! 세상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물건을 이 회사 내부에서 지키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
일단 넘어가자·
그 와중에 김래빈은 약간 풀이 죽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제가 우선 설득을 시도하고 싶었습니다만 정직원이 아닌 관계자에게는 정보 공개가 제한된다고 하여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그래도 최대한 ‘나는 지침서에서 금지한 계단도 이용할 수 있다’ 같은 어필을 했다고 해맑게 말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침음을 참았다·
“···?”
“아무튼 저 재단에··· 오르골 다 납품하면 퇴근이라는 거지·”
“예!”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멤버들을 다 정규직으로 편입시킨다 이거다·
‘나 참·’
[시설팀 / 박문대 (A)]
[근무 시작]
나는 전광판의 표시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 * *
“····”
‘납품’을 마치고 남은 멤버들이 모인 어두컴컴한 7층 복도·
“문대야····”
‘대리’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도 잊어버렸는지 선아현이 내 이름을 우울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남은 건 부장 선아현 과장 배세진 그리고 주임 차유진과 인턴 류청우 뿐이었다·
[KIS Company]
박문대 대리 / 오르골
-Keep it Safe
아마 그런 문구가 태블릿 PC에 뜬 걸 보고 있지 않을까?
직전에 내가 했던 것처럼 말이다·
멤버 절반이 공포영화처럼 리타이어했으니 슬슬 공포만큼 침울함이 커질 상황이었다·
‘흠·’
슬슬 애들 진 다 빠지겠다· 이제 진도 쭉쭉 뺄 때가 됐지·
어디 보자·
‘정직원용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다음으로 납품될 사람의 직급을 부르랬지·’
오냐·
똑똑·
나는 우선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잠긴 탕비실 안에서 아직 납품되지 않은 멤버들이 조용히 뭉쳐 있을 7층 복도를 향해·
그리고 말했다·
“주임님·”
[···!]
그 순간 비명을 참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문밖에서 갑자기 쥐 죽은 것처럼 확 소리가 줄어들었다·
···입이라도 틀어막고 있냐?
“거기 계시는 거 아는데요·”
그러자 우당탕탕 멤버들이 구르는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도망가는 것 같다·
‘····’
아니·
나는 최대한 온건하고 안 무섭게 말했다·
“몇 마디만 대화할 수 있을까요· 조금만요·”
짙은 침묵·
그리고 숨죽인 목소리가 속삭였다·
-대답하지 마!
“····”
방음이 나빠서 다 들린다· 이놈들아·
그렇게 귀신 알바 일일 체험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