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08화
자정 직전·
이세진과 박문대의 트윈 홈마 직장인 류서진은 긴 야근을 마치고 PC 앞에 앉았다·
“····”
길었다·
테스타 활동기에 연차와 반차를 몰아낼 수 있도록 개같이 야근하며 준비하는 지난 두 달이 길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차라리 다행일지도·’
일하느라 사람들의 반응을 제대로 들여다볼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인터넷은 그야말로 혼란의 용광로였다·
-오늘 테스타 공개
-미친 아 진짜 컴백 딱 한 주 차이네
-손 떨린다
-화요일 테스타 담주 금요일 브이틱··· 와 긴장해서 토할 것 같아
-개꿀잼
바늘로 찌르면 터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은 바람 한 점 빠지지 않고 계속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부푼 상태였다·
소속사 단체 예능에 같이 출연한다는 예고편까지 등장했을 때는 정말로 인기글의 절반 이상이 관련 소식이었을 때도 있었다·
혹시 노리고 같이 나온 거냐는 의혹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대체 올해 대한민국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퇴홀릭 X발놈들 다 늙어서 노욕부리고 지랄 아 머리 터질 것 같아
-이거 아무리 봐도 레티가 화제성 어쩌구 하면서 정신 나간 플랜 짠 것 같음
-무조건 시청 갈겨ㅋㅋㅋㅋㅋㅋ
물론 결론은 ‘LeTi가 미쳤다고 그러겠냐’였으나 그 추측이 논란이 될 정도로 여론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관련 커뮤니티나 SNS에서는 관심 없는 극소수가 타임라인에 진절머리내며 접속하지 않을 정도의 미친 열기·
더는 개인이나 일부 팬덤이 여론을 호도한다고 잡힐 판도 아니었다·
‘이거 이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그녀도 심지어 답지 않게 초조해지기까지 했고 자신이 세운 암묵적 원칙까지 어겼다·
<아주사>의 작가였던 류서린 그녀의 언니에게까지 슬쩍 물어본 것이다·
테스타가 왜 VTIC이랑 컴백이 겹친 건지 아냐고·
-···노린 것 같지는 않던데·
“후·”
그 애매한 대답에 더 미칠 것 같았다·
연예계 관계자들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시원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은 사람들을 더 애태웠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사람들이 눈을 못 떼게 만드는 데엔 성공한 거지·’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녀는 결국 하이볼까지 하나 말아서 다시 PC 앞에 앉았다·
그리고 정말로 시간이 됐다·
“····”
정적 속에서 그녀의 앞에 새 동영상 알림이 떴다·
[테스타(TeSTAR) – Bad Feelings Official M/V]
썸네일의 배경은··· 그림자가 진 어둑한 창고의 실내였다·
그리고 얼굴에 상처가 난 채로 정면을 보는 하얀 박문대의 얼굴·
약간 놀란 듯 살짝 벌어진 입· 그리고 다소 무표정한 기본 표정까지·
살짝 긴 검은 머리카락이 흩어지는 것이 척 보기에도 잘생겼다·
분명··· 예쁘고 잘생긴 건 확실하지만·
“하·”
상처··· 그리고 저 구도·
···9할의 확률로 또 초자연적인 세계관 컨셉일 게 분명했다·
류서진은 미간을 짚었다·
“하필····”
이번에는 지나치게 컨셉츄얼하면 부작용이 클 텐데·
본래 테스타가 ‘빡센 컨셉츄얼 컨텐츠’ + ‘대중적인 노래와 안무’ 공식으로 국내 인지도와 팬덤을 양면 공략한다는 건 안다·
‘이해 가능한 전략이었어·’
아니 제법 영리하다고 생각해서 기특하다고까지 여겼다·
다만 그건 대중이 뮤직비디오니 설정이니 하는 아이돌 세계관에 별 관심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들 관심이 넘칠걸·’
화제성의 부작용이었다·
뭐 하나라도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대중이 많았다· 궁금하니까!
‘그리고 나오는 대로 VTIC과 비교당하겠지·’
하필 VTIC의 컨셉츄얼은 해외에서 호평받는다는 것이 유명해서 더 국내 대중평가가 관대했고 말이다·
‘그에 비해 테스타는 이번 타이틀 뮤직비디오가 조금이라도 우스워 보이면 대놓고 마이너스야·’
퀄리티 내용 구성 방식·
조금만 조롱할 구석이 있어도 집요하게 파고들 여론을 생각하며 류서진은 눈을 눌렀다·
물론 다르게 말하자면 제대로 매력적인데도 주목을 받지 못하고 묻힐 비운의 사태는 막았다는 거지만····
‘부작용도 심각할 텐데·’
-그게 뭔데 씹덕아ㅋㅋ
-테스타 이런 거 했었음?;;;
-요새 아이돌들 이런 거 하는 줄 몰랐당 뭔가ㅋㅋ 괴리감?
···이런 거 말이다·
트윈 홈마는 선명한 예상 반응에 눈가를 떨며 우그러지는 눈썹을 눌렀다·
그렇다고 테스타가 무조건 대중적인 MV를 내보냈다가는 ‘실험정신 뛰어난 아티스트’로서 자리매김 중인 해외의 평판이 시들해질 텐데····
그걸 테스타가 고를 리가 없다·
“하····”
그래·
약간의 조롱은 감수하자· 노래 잘 뽑고 무대만 잘하면 없어질 일이었다·
‘<약속> 뮤직비디오에서 인어 어그로 끈 정도겠지·’
그녀는 반쯤 체념하는 마음으로 하이볼을 마셨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MV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달칵·
검은 화면에 처음 나온 것은 마치 기업용 같은 로고였다·
[TESTAR in
-Keep It Safe]
그 글자는 읽기가 무섭게 사라졌고 영상이 시작되었다·
휘익·
밝은 이미지들이 지나간다·
웃음소리 종소리 커튼이 휘날리는 창가의 저 장면은····
‘···교실·’
학교·
운동장 부서진 교문 시계 복도 교복 책상 엉망이 된 칠판····
장면들은 데뷔 앨범인 <마법소년>과 의 뮤직비디오 외곽 컷들을 지나 와 <비행기> 그리고 <약속> 너머까지 흘러갔다·
소년기의 성장 과정 같기도 테스타의 성장 과정 같기도 한 그 파노라마·
그 무수한 짧은 이미지의 향연은····
탁·
사무실 키보드 자판을 비추며 멈추었다·
탁 타다닥 타닥·
고전적인 전화 벨소리와 말소리 서류를 넘기는 소음으로 가득한 배경·
검은 타자기 위로 올라온 와이셔츠 소매의 흰 남자 손이 자판을 두드렸다·
카메라가 올라가며 그 얼굴을 비추었다·
단정한 오피스 슈트를 입고 검은 안경을 쓴 박문대다·
“···!”
그리고 톡톡 펜을 두드리는 듯한 베이스 위로 도드라지게 겹치는 김래빈의 나즈막한 싱잉 랩·
[Get this feeling
Then I’ll fall and fall]
음악이 몰아친다·
센치하고 리드미컬한 비트와 매끈하게 튀는 기타 변조음이 세련된 팝 멜로디로 흘렀다·
그 대중적이고 어른스러운 맛의 반주는 매끄럽게 스텝을 밟아 나아갔다·
동시에 박문대가 가볍게 자리를 박차고 안경을 던지며 일어났다·
그는 딱 맞는 회색 정장 차림이었다·
[아스팔트 위를 걸어
맨발로
천천히 덤덤히 여전히]
뒤에 앉아 있던 이세진이 씩 웃으며 사원증을 걸고 일어나 합류해 박문대의 앞으로 나온다·
그리고 가벼운 스텝과 함께 손을 들며 페어 안무·
[아직까지 Reload
재장전 중
겁 없이 열없이 너 없이]
발을 움직이며 손을 튀기자 카메라가 돌아가고 화초에 물을 주던 선아현이 부드럽게 센터로 합류하며 노래를 불렀다·
[매일 꾸는 꿈에도
네가 나와서
오늘도 sleepwalking]
카메라가 돌아갈 때마다 멤버가 하나씩 나타나 퍼포먼스를 하고 대형에 합류해 테스타를 만들어 간다·
넥타이를 거의 푼 채 어깨에 걸친 차유진 코트까지 걸친 배세진 딱 맞는 검은 정장을 입은 김래빈·
팔꿈치까지 셔츠를 걷은 류청우까지·
트윈 홈마마저 눈을 번쩍였다·
‘오피스 컨셉의 원테이크 퍼포먼스인가·’
잘생기고 훤칠한 체격의 아이돌들이 깔끔한 정장을 입고 퍼포먼스를 하는데 싫어하는 팬이 있겠는가?
[아무 다짐도 소용없어]
그리고 그 리듬에 맞춰 가끔 화면이 휙 돌아가 검은 키보드 위를 질주하는 흰 두 손의 현대적인 움직임을 안무와 매치해 보여주었다·
감각적이었다·
현대적이고 무난하게 예술적인 뮤직비디오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스치고 지나갈 무렵·
[받은 게 너무 많아서
하나도 못 버려
나도 선물을 줄게]
문득 키보드 위에 파문이 일어난다·
뚝·
[····]
정적 속·
박문대가 손을 들어 파문이 닿은 손등을 쓸었다·
핏방울이 묻어났다·
[These bad feelings!
너도 벗어나지 마
매일 아침 나를 생각해 줘]
오피스 안에서는 테스타가 계속 각자에게 딱 맞는 쓰리피스 정장을 입고 댄서들과 함께 무대를 선보인다·
신사용 우산을 이용해 강렬하고 경쾌한 안무 대형이 사무실 책상을 밀고 펼쳐졌다·
[These bad feelings!
너도 가지고 가
매일 꺼내 봐 나처럼]
하지만 한 편에서는 묘한 스토리라인이 전개된다·
야근 중 사무실 천장에서 혹은 휴식 중 탕비실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이상한 흔적을 발견하는 테스타의 모습·
검게 탄 로고 비밀 통로 숨겨진 상징물·
[Umm- um Dduru- du
해가 지고 달빛이 내려도
잊지 못할 feelings]
흰 천이 덮인 수상한 검은 토르소와 지하 창고에서 이상한 재단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 것까지·
폭발 고개를 돌리는 얼굴 문을 두드리는 손과 허공에 날리는 A4 용지·
손을 떠는 배세진 눈짓하는 류청우
그리고 사무실 창을 부수는 김래빈의 송곳까지·
[Uuuuuu-!]
빠르게 지나가는 모든 컷씬들·
그건··· 마치 드라마 하이라이트 예고편 같았다·
‘이건··· 뭐지?’
[Bad feelings!]
그 사이 떠난 관계에 대한 집착을 노래한 테스타의 무대는 거의 끝나갔다·
센터에 선 차유진이 재빠르게 턴을 돌며 바닥에 무릎으로 착지해 씩 웃었다·
[These bad feelings-!]
그리고 어두운 사무실 빛나는 전등 스포트라이트 사이에서 엔딩·
[후!]
키스를 부는 이세진을 건너 색색의 클립이 카메라 위로 쏟아졌다·
엔딩 크래딧·
‘····’
“하·”
뮤직비디오가 끝나고 나서야 트윈 홈마는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댓글은····’
예상대로 온갖 나라 언어로 외마디 비명이 난무하고 있었다·
그나마 내용 있는 걸 건지면 이 정도·
-ㅅㅂ정장
-사랑해
-이건 된다 미친미친
-종류별로 슈트 오지게 잘 입혔네 미친놈들아 감사합니다
-선아현 검은 양말 삭스가터 박제해
-청우 포마드 완깐 포카 제발
그럴 만했다·
‘노리고 나왔던데·’
아끼고 아낀 세련되고 섹시한 정장 컨셉을 예고 없이 쏟아부은 테스타의 파괴력은 대단했다·
그간 교복이 아니면 테크웨어 옛날 제복 혹은 리폼한 전통 의상 등을 입어온 덕에 이런 기본적인 목마름에 대한 충족감은 엄청났다·
다소 냉소적인 그녀까지도 당장 무대 사진 찍을 생각에 온갖 계산이 머릿속에 휘몰아칠 뻔했으니까!
-슈트의 은혜가 끝이 없네···
‘····’
동감이었다·
다만 1절 후렴부터 시작된 묘한 스토리 라인에 대해서는··· 이성이 돌아오자 머리가 점수를 매기기 시작했다·
분명 크게 오글거리진 않았다· 그건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왠지 좀 겉핥기 같았는데·’
보통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는 스토리라인을 가진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팬덤을 위한 세계관의 일부였거나 곡의 임팩트를 위한 거였다·
즉 과장되고 연극적인 면 초현실적인 면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잦았다·
결국 이 뮤직비디오의 짧은 임팩트만을 위한 연기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건 테스타도 마찬가지였지·’
게다가 멤버 중 유명한 연기자가 있어서 그것을 잘 조절하여 더욱 도드라졌다·
‘···배세진·’
그런데 이 뮤직비디오의 짧은 컷씬들·
거기서 배세진은 연극적인 연기가 아니라 약간 어색하고 자연스러운 태도와 표정으로 화면 속에서 비추어졌다·
드라마보다도 현실적인 느낌으로·
‘오글거리지 않게 하려다 보니 이렇게 간 건가?’
팬으로서는 흥미롭고 실험적이긴 했지만··· 무슨 예고편 스틸컷 같은 데다가 그걸 뺀 퍼포먼스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도리어 아쉬웠다·
‘성적에 도움될 요소가 없는데·’
그냥 재생 시간만 잡아먹은 게 아닌가·
트윈 홈마는 짜게 식은 눈을 하고 생각했다·
‘혹시 MV 스토리 확장필름 30분 이러면서 뇌절할 거면 제발 한참 후에나 내라·’
조회수만 분산되고 공감 못 한 대중들은 떨떠름하게 반응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약간 걱정이 되긴 했으나 일단 그녀는 자신이 찍는 아이돌들의 센스를 믿기로 했다·
회사 독립까지 했는데 당연히 발언권이 강해졌을 테니까·
‘내일 자세한 활동 일정 테이블표 나온다고 했지?’
그때 확인하면 확실할 것이다·
하지만 다음날·
“····”
그녀는 충격적인 소식을 확인한다·
뮤직비디오에 있던 그 짧은 컷씬들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추가 컨텐츠 공개 일정이 정말로 있었다·
심지어 다음 주!
‘그럼 VTIC 뮤직비디오 공개 시기랑 겹치는데·’
하지만 트윈 홈마가 예상한 그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그건 어쭙잖은 MV 확장판이 아니었으니까·
[테스타의 기묘한 오피스 1화 공개]
바로 자체 컨텐츠·
활동기 휴식기마다 테스타가 전통적으로 잘 만들어 공급하기로 유명한 떡밥·
뮤직비디오의 그 컷씬들은··· 실제로 테스타가 촬영한 자체 오피스 리얼리티의 하이라이트였던 것이다!
“····”
정말로 예고편이 맞았다·
-이번 주 금요일 선공개 영상 릴리즈·
멍하니 화면을 보던 트윈 홈마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근데 잠깐·
머릿속에서 아주 의미심장하고 독특하고 약간 섬뜩하기까지 했던 그 컷씬들의 모습이 지나갔다·
‘스틸컷들이 그런 거였다면····’
테스타는 대체 무슨 자컨을 찍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