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03화
“그럼 오프닝 게임은··· 이구동성!”
“으헉·”
이 소속사 단체 예능은 처음에는 정말 흔한 MT 구조를 따랐다·
팀별 구호와 간단한 제스처 안무를 만들고 퀴즈를 맞히고 상벌을 준다· 그렇게 아직 어색할 팀별 정체성과 소속감을 돈독하게 하는 것 말이다·
···물론 애초부터 그런 게 필요 없는 팀도 있었다만·
“이제 정말로 우리 해바라기 팀이 이길 것 같아요!”
“그거야 채율아! 다들 노란색 고르기 잘했죠?”
“네!”
“우리 팀 다 같은 마음이 됐나 봐요!”
응· 너희는 이거 하기 전부터 그랬다·
나는 이 팀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꼴찌 해놓고도 싱글벙글이다·
이런 게임마다 하나씩 있다는 행복한 바보들 팀이었다·
내가··· 바보라니·
“문대 선배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네· 정말 행복해요·”
쌍 따봉이나 날리자·
“큽·”
내 꼴을 보고 저편에 파랑 띠 매고 서 있던 큰세진 놈이 처웃는다·
웃지 마라·
너희 팀이나 돌아보라고·
“음 저희가 비록 각자 다른 그룹이지만 저는 오늘 파란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
청려가 웃으며 화이팅 포즈를 단정하게 올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운찬 호응이 쏟아졌다·
“존경합니다 선배님!”
“이게 바로 이심전심이죠~ 파랑배 팀 파이팅!”
“····”
저놈들은···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 술술 흘러나오네·
나는 팀장 배세진에게 한 말씀을 요청하며 살갑게 웃는 파란 팀을 본 후 그저 웃고 있는 내 팀을 돌아보았다·
“헤헤!”
“····”
밸런스 X망 아니냐?
참고로 파란 팀 저놈들은 이번 오프닝 게임 2등 팀이었다·
악착같이 잘 맞추다가 예능각 보이면 참지 못하고 덥석 물어서 일부러 틀리더라고·
덕분에 초록팀이 순조롭게 1위를 하고 있다만····
“하하·”
나는 그저 웃으며 조용히 팀원 뒤에 물러나 있는 청려를 보았다·
‘안 웃기는데·’
너 노잼이라고·
특히 실실 쪼개며 조용히 남들 챙기거나 양보나 해대는 청려는 정말 예능 욕심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
딱히 편집 각도 안 나왔고·
‘흐음·’
왜 저런 선택을 하는 거지?
그러나 길게 탐색할 것도 없이 곧바로 본격적인 첫 메인 게임이 진행되었다·
“이번 게임은 바로··· 초능력 술래잡기!”
“말 그대로 초능력을 써서 서로 쫓고 쫓는 게임이죠!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가면서 진행합니다·”
모 모바일 대전 게임에서 따온 것 같은 초능력 술래잡기는 적당히 수치스럽고 재밌는 구조였다·
능력을 가진 당사자가 구호를 외치며 사인을 보내면 다른 모두가 암묵적으로 그 능력에 당해주는 척하는 것이다·
그렇다· 뻔뻔한 자만이 버틸 수 있다·
“나는··· <하늘을 나는 멍멍이>!”
“문대 씨 하늘로 손 모양!”
···이렇게·
내가 허공을 향해 번쩍 손을 들자 온갖 놈들이 그 손짓을 따라 하늘을 보며 할리우드 액션을 펼치기 시작했다·
“Ohhhhh 강아지 하늘을 날아?”
“너무 놀라운 광경에 몸을 움직일 수 없다!”
“흠· 이건 아군 적군 가리지 않는 <멈춤> 능력이죠·”
“그 그렇구나···!”
···저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긴 했다만 말이다·
나는 오두방정을 떠는 놈들의 꼴을 보며 강아지 머리띠를 쓴 채로 잠시 침묵했다·
-ㅋㅋㅋㅋ표정 봨ㅋㅋㅋㅋ
-박문대 강아지 자주 해봤다고 뻔뻔하더니 여기서 무너지넼ㅋㅋㅋ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몰랐나봄ㅋㅋㅋㅋ
-오구오구 문댕아 사람들이 리액션 잘 해주니까 당황했어?ㅜㅜ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충 무슨 소리를 들을지 알겠다만····
‘어쨌든 덕분에 이겼다·’
나는 레드팀의 마지막 주자 차유진까지 초능력으로 굳힌 후 아슬아슬하게 잡아냈다·
“오~ <해바라기> 노랑팀 승리!”
차유진이 나와 악수하며 씩 웃더니 나에게 속삭였다·
“이거 진짜 술래잡기면 형 나한테 졌어요·”
“알았다· 패배한 빨간 팀 유진아·”
“····”
“뿌이뿌이뿌이~”
차유진은 하진태의 야유를 배경으로 충격받은 얼굴로 나를 보더니 불퉁한 볼을 한 채 사라졌다·
참고로 차유진의 옆에서 주단이 ‘초능력 사용을 꺼린 것이 결정적 패배의 원인’이라고 굳이 분석까지 해주면서 그 불퉁함을 더 키우고 있다·
“이 게임에서 가장 강력한 건 신체 능력이 아니라 초능력이니까요· 초능력이 있다고 가정했다면 의심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써야····”
뭐 너도 강하게 커라·
다만 예상하지 못한 것은 남의 경기에서 이보다 더 충격적인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는 점이다·
“자 다음은··· <안전제일> 초록팀과 <파랑배> 파랑팀의 대전!”
여기서 청려가 행동에 나섰거든·
녀석은 주저 없이 화끈하게 초능력을 사용했다·
“어어?”
“잠깐만·”
팀원이 잡히기 직전 아슬아슬한 순간 청려는 공격팀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눈앞으로 뭔가를 단숨에 꺼내 내밀더니 다른 손으로 총구 모양을 멋지게 만들어 겨냥했다·
마지막으로 구호까지!
“<잠시 단속 있겠습니다>·”
청려가 든 경찰 배지가 햇빛에 반짝였다·
그러나·
“엥?”
“배지··· 안 보여주셔도 되는데요·”
“아·”
“아이고 청려 씨·”
필요 없는 동작이었다!
“···어쨌든 초능력 사용 세이프!”
심판의 선언에 강제로 3초간 자리에 앉혀진 초록팀 류청우는 웃으며 파랑팀 스페이서 멤버를 놓아주었다·
“와아아!”
“청려 씨! 굿!”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이게 아니었군요····”
청려는 약간 쑥스러운 듯이 들고 있던 경찰 배지를 내렸다· 마치 열중하는 바람에 무심코 들어 올린 후 약간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하하!”
“청려 귀엽네~”
티홀릭 놈들이 가당치 않은 개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저것보다 더 심한 짓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뻔뻔하게 해낼 수 있는 놈이 저런 가증스러운····
“···!”
그렇군·
나는 깨달았다·
‘일부러 틀렸냐·’
저 새끼의 노림수가 이거였다·
생각해 보자· 왜 예능 출연한 아이돌들은 웃기려고 하는가·
‘화제성과 분량을 위해서지·’
근데 이미 둘 다 가지고 있다면?
당장 이 단체 MT 예능은 이미 미친 출연진 조합으로 화제성을 확보했다· 거기서 가장 큰 축이 VTIC이었다·
분량도 마찬가지였다·
‘VTIC한테 분량 안 주는 미친 제작진이 어딨어·’
없는 분량을 쥐어 짜내서라도 만들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분량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전적으로 VTIC의 맘이다·
그리고 청려가 고른 건····
-컨셉은 세지만 의외로 허당미 있는데?ㅋㅋㅋㅋㅋ애들이 순하넼ㅋㅋㅋ
-노잼이라 좋다
-노잼틱이 바로 수요다!!!
웃기는 건 너희들이 해·
우리는 호감 이미지 챙길 거야·
이번에 강한 컨셉으로 컴백하는 만큼 어두운 곡에 거부감이 있는 층을 살살 녹여서 ‘열심히 하는 청년들이네~’ 같은 느낌까지 가지고 가려 하는 것이다·
“····”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런··· 알맹이만 쏙 챙겨 먹는 짓이 제대로 통할 거라 믿냐?
‘착각이다 그거·’
임팩트 있는 놈이 결국 다 먹는 판이라는 걸 보여주마·
“다음 게임은 <숨바꼭질>!”
* * *
“후우·”
초능력 술래잡기가 한 판 끝난 후 초록팀 박민하는 이마를 닦아내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걱정한 질문이 들렸다·
“괜찮으십니까? 물이라도····”
“괜찮습니다! 하하하!”
박민하는 벌떡 일어나 숨도 못 쉬고 부리나케 손을 뻗어 물을 셀프로 챙겼다·
생존!
‘정신 바짝 차리자!’
비록 김래빈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팀원 겸 후배에 대한 공경(?)이었으나 그녀는 방심하지 않았다·
‘뭐든 편집 거치면 그럴싸해 보여·’
제작진이 안 해도 세상엔 사이버 렉카가 널려 있었다·
열애설의 지옥··· 안 된다·
그래서 워낙 허물없고 붙임성 좋은 율기 언니에게도 여러 번 충고와 예상 질의 문답까지 해서 보냈는데····
“수아 웅니!”
“으아앙 율기야!”
···말랑달콤 선배님과 어느새 찰싹 붙어 다니며 자연스럽게 모든 어그로를 그쪽으로 끌어가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후우우·’
미리내의 실질적인 리더 박민하는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좋은 기회였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해서 그녀는 끝까지 절대 긴장을 풀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다!
‘활약도 해야 하고!’
박민하는 눈을 빛내며 일어섰다·
다행히 초록팀은 성적이 괜찮았다· 바로 직전에는 탈락했지만 오프닝 팀전도 1등이었고 팀 분위기도 좋았다·
괜히 선배들 눈치에 대화에 끼어들지 못할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내 분량 잘 챙기자·’
이대로 계속 잘하면 됐다!
“자~ 다음 게임 시작한다고 하십니다!”
“네!”
어느새 티홀릭에게 즉석 MC로 섭외당한 이세진이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침을 삼켰다·
그리고 이어진 게임은 숨바꼭질·
“여기 있다·”
“와아악!”
뒤뜰에 세운 거대한 놀이터 같은 세트 구조물·
거기에서 분장한 사람 하나가 곳곳에 숨은 상대 팀원들을 다 찾아내는 심플하고 귀여운 구조였다·
그리고 이번엔 초록팀이 숨을 차례였다·
‘조 좋아·’
이런 건 들킬 때 리액션만 잘해도 분량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박민하가 조용히 상자더미 옆에 숨어 있을 때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톡톡·
조용한 가운데 누군가 어깨를 건드렸다·
‘제작진인가?’
혹시 카메라에 잘 안 나오나 싶어서 고개를 돌리니
“안녕하세요·”
“흐아아악!”
도끼가 있다!
아 아니 도끼를 든 체육복 박문대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근데 양갈래머리다!
“···?!”
자신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박문대가 스스로의 머리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너무 무서운 소품이 걸려서··· 팀원분들이 중화하자고 해주셨는데요·”
“····”
귀엽···긴한데 더 무서워!
‘대체 어떻게 소리도 안 내고 오신 거야!’
심지어 박문대의 등 뒤에는 태엽이 달려 있었다·
저 태엽이 멈추면 게임이 시간 초과로 끝나는데 그걸 달고서도 대체 어떻게 저렇게 살금살금 움직인 건지 모르··· 겠다고 생각한 순간·
박민하는 박문대가 신발이 아닌 수면 양말을 신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이게 진짜 게임에 진심인 사람이구나·
“얍· 찾았습니다·”
“···예·”
어쨌든 그녀는 그렇게 탈락했다·
멋진 리액션을 남기고·
‘···분량은 나오겠다····’
터덜터덜 밴치로 돌아가며 그녀는 이미 탈락한 사람들의 틈으로 갔다·
“어서 오십시오!”
환영해 주지 마세요····
박민하는 김래빈에게 대가리를 오지게 박으며 인사한 후 남은 사람들의 게임을 보았다·
그런데····
“···!”
“청우 형만 남은 상태입니다!”
어느새 게임은 개인전이 되어 있었다·
박민하는 가늘어지는 눈을 똑바로 뜨기 위해 노력하며 상황을 관찰했다·
류청우는 놀랍게도 박문대를 역으로 관찰해서 슬쩍슬쩍 장소를 옮기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쉽게 잡힐 것 같지 않았다·
‘되게··· 침착하시다·’
박민하는 새삼 느꼈다·
그러고 보니 류청우는 이번 MT 내내 그랬다· 뭘 시켜도 빼지 않고 하는데 뭘 하든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했다·
그게 리더의 자세인 걸까?
‘나도 다음 게임에서는 저런 모습을 보여줘야 해···!’
박민하는 다짐했다· 하지만 그 순간·
“···!!”
기어코 류청우가 움직인 흔적을 발견한 박문대가 살금살금 접근하는 것 아닌가!
‘드 들켰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그녀는 박문대의 뒤에 달린 태엽을 보았다· 아직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류청우는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안 돼!’
결국 그 순간이 왔다·
박문대가 슬쩍 류청우의 뒤로 돌아가더니 손을 뻗으며 외쳤다·
“찾았····”
그 순간·
류청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박문대의 도끼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혹시 그가 다칠까 봐 박문대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
그리고 놀라운 속도로 박문대의 뒤로 돌아가더니 그의 등을 툭 잡았다·
정확히는 박문대의 등에 달려 있는 태엽을 잡고 정방향으로 돌려버렸다·
“앗·”
그렇다·
태엽을 수동으로 멈춰버린 류청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태엽이 멈추면 시간 초과로 끝··· 맞지?”
“···!!”
역발상이었다·
“우와아!”
“대박!”
사람들이 쏟아져나오는 가운데 이세진이 제작진의 신호를 보며 발랄하게 외쳤다·
“아~ 파죽지세 초록팀! 전체 1등으로 올라섭니다!”
“오오!”
양 갈래머리를 한 박문대가 엄숙하게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주변에서 노란색 팀원들이 ‘괜찮아요!’ ‘문대 씨 정말 잘했어요!’ 같은 소리를 하면서 박문대를 위로하는 모습을 보자니····
‘잠깐 괘 괜찮은 건가?’
박민하는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이거··· 내가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지!
‘결국 테스타 선배님들이 컷을 다 가져간 거잖아!’
박문대와 류청우의 세기의 대결로 끝나버렸다·
그렇다면 차라리 나 말고··· 결승전에서 율기 언니가 활약할 기회를 주는 게 우리 그룹에 더 도움이····
“설마 이대로 초록팀이 계속 우승할까요? 우리 파랑팀도 힘을 내야 하는데~”
“····”
“1등 하면 밥차 상품을 잊지 마세요!”
그래도 1등 좋아!
박민하는 일단 즐기기로 했다!
* * *
몇 시간 후·
마침내 MT 첫 촬영 날도 저물었다·
“테스타는 맨날 이런 거 먹어요?”
“부럽다·”
“역시 팀 내 가장 중요한 포지션은 요리야·”
나는 가뿐히 <디너 요리왕 챌린지>를 우승하고 잘 삶은 수육과 수타 칼국수를 팀원들에게 배분했다·
제작진들은 다른 팀과 음식을 나누는 걸 굳이 막지 않았고 덕분에 MT 첫날은 더 훈훈하고 편안하게 마무리되는 중이다·
‘완급 조절을 할 줄 아는군·’
그리고 이제 한밤·
카메라 데이터 교체 겸 정비를 위해 촬영도 잠시 중단된 이 시기 사람들은 각자 흩어져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방금까진 목숨 걸고 신나게 놀더니·’
아까 같이 밝은 소란스러움은 거짓말처럼 사라진 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대 씨 여기 있네요!”
정정하겠다· 아까와 똑같은 녀석도 있다·
나는 내 옆에 웃으며 앉는 진채율을 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