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99화
“후·”
김래빈의 개인 팬 아니 이제는 그룹과도 미운 정이 꽉 든 이 팬·
그녀는 눈앞에 뜬 테스타 위튜브 계정 업로드 알람을 보고 PC로 자리를 옮겼다·
손톱이 따닥따닥 마우스에 부딪혔다·
컴백 시기면 늘 그렇듯이 초조한 기대가 마음을 찔렀다·
‘김래빈이 이미 직전에 한번 솔로로 인트로에 나왔으니까 또 해 먹는 건 무리인데··· 아 모르겠다· 시켜달라고!’
요리도 만든 놈이 제대로 먹을 줄 안다고 곡도 만든 놈이 제일 잘 표현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게다가 정말 중요한 시기였다· ‘다 모르겠고 X발 김래빈만 잘 되게 해주세요’ 태세를 고수하던 그녀도 피부로 느꼈다·
왜냐하면··· 은근한 지표가 나오고 있었으니까·
‘네임드 번역 계정 팔로워가 거의 3배로 뛰었더라·’
참고로 여기서 번역 계정은 영문을 한글로 바꾸는 게 아니라 한국 활동을 영문으로 번역해 주는 계정이었다·
즉 테스타의 소식을 챙겨보겠다는 외국인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글로벌 수요 그중에서도 팬 증가 지표에 가까웠다·
심지어 지금은 투어 기간·
제대로 된 활동기도 아닌데 야금야금 이렇게 불어났다는 건···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잠재수요는 더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투어로 관심 가지고 진짜 테스타 활동 거슬러 올라가서 싹 찾아본 외국 애들이 계정 막 만들던데·’
SNS의 타임라인을 훑어만 봐도 어떤 태동이 느껴졌다·
그건 팬들 사이에서도 묘한 긴장감을 조성했다·
타이밍이 온 것 같은 느낌·
사실 테스타는 지금까지도 분명 해외에 어필할 만한 요소들을 쌓아왔고 성과를 거뒀다·
<127 Section>을 필두로 하는 게임 콜라보 영화 참여 예능··· 굵직한 컨텐츠마다 글로벌 유인책과 매력이 있었으니까·
덕분에 이제 테스타의 해외 팬덤은 결코 체급에 비해 부족하진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싹 쓸어버릴 듯이 핫하게 팡 터진 적은 아직 없었다·
-아··· 이게 딱 한 끝 차이인 것 같은데!
아예 가능성이 없다면 모를까 될 듯하니 왠지 더 감질맛이 났다· 괜히 답답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투어가 글로벌 평론가들의 호평 속에서 입소문을 탄 것을 보는 순간 팬들도 느낀 것이다·
-이거··· 잘하면 터지겠는데?
밑천이 없는 반응이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테스타가 투어로 ‘독특한 시도를 하는 컨셉추얼한 싱어송라이터 그룹’이라는 이미지를 얻은 것도 그들이 꾸준히 쌓아온 컨텐츠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해외와 국내를 고르게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러니 그녀까지도 좀 긴장한 것이다·
‘아니··· 내가 이러고 있을 정도면 올팬 걔네들은 벌써 김칫국 배 터지게 마시고 있겠지·’
본래라면 테스타가 해외에서 더 먹힐 경우 자연스럽게 국내 활동을 도외시하고 콘서트나 뺑뺑 돌게 될까 봐 걱정도 했을 테지만····
‘음 갑자기 회사가 넘어가지 않는 이상은 그럴 일 없을 듯?’
놀랍게도 그녀같이 다소 과격한 성향의 개인 팬도 그 점을 이젠 염려하진 않았다·
이제 그 돈독 오르고 일은 개 못 하는 T1 소속도 아닐뿐더러 T1 소속일 때도 아득바득 컨텐츠 만들려 들던 녀석들이 독립까지 했으니 그럴 가능성은 더 낮았다·
그러니까 무조건 여기서 더 잘 되는 게 끌렸다 이거다·
‘에픽 때 초심 잃었다느니 뭐니 하는 소리 때문에 정신 나갈 뻔했던 거 생각하면 진짜··· 잘해라·’
몇 년이나 쉬지 않고 활동한 테스타·
이 그룹이 이번에 시들해지거나 불발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미친 듯이 터질 수 있길·
“····”
김래빈의 팬은 자신도 모르게 약간 감성적으로 바랐다·
“아 뭐래!”
그 직후에 아닌 척 진절머리를 치며 아닌 척 빠져나왔지만 말이다·
‘인트로나 보자!’
그리고 인터넷에 전투적으로 접속했으나····
안 보고 싶었던 걸 보았다·
-VTIC 전원 일시 제대··· ‘이 순간 본업으로 복귀·’
“아악! 씨”
VTIC 제대 기사였다·
대상에 빌보드 수상까지 했던 아이돌이 단체로 일정 맞춰 함께 제대했다? 당연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느슨해진 케이팝에 기강 잡으러 오심
-제대일을 맞추다니 미친 놈들··· 독기가 여기까지 느껴진다 (칭찬입니다)
-나 18개월 적금 들었다 얘들아
아직 VTIC은 ‘빠르게 찾아뵐 것’ 정도로만 언급하고 제대로 된 컴백 날짜를 언론에 공표하진 않았다·
그러나 무조건 올해 내로 나온다는 게 모두의 예측이었다·
‘쇼한다·’
그녀는 짬을 그만큼 먹었으면 회사 이사나 해 먹으라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쨌든 다시 심호흡을 한 후·
“후·”
원래 목적대로 테스타의 인트로 뮤직비디오를 보려던 순간····
이번엔 SNS로 짧은 스포일러를 접해버렸다·
‘아니 하·’
인트로의 주요 인물에 대해서·
-이이인트로 선아현 미및;ㄴ
“····”
‘걔였냐·’
역시 김래빈한테는 안 줬다·
김래빈 내세우고 올드스쿨 힙합이나 돈 발라 하는 게 글로벌 자지러지는 지름길인데 맛알못 새끼들·
김래빈의 개인 팬은 약간 짜증스럽게 PC를 두드렸다·
“으·”
이제 짜증 때문에 기대고 뭐고 그냥 얼른 보고 넘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썸네일을 보는 순간·
“····”
그녀도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맑고 흐린 꽃과 풀을 배경으로 달 같은 얼굴이 환하게 떠 있다·
들고 있는 양산 틈새로 스며든 빛줄기가 볼 가와 턱 눈가 부분에 산란하고 있었다·
그래서 살짝 눈꺼풀이 내려앉은 모습까지 아주 우아하고··· 명화가 따로 없다·
선아현이 그다지 취향이 아닌 그녀까지도 혹할 만한 미감이었다·
‘얼굴은··· 인정한다·’
짜증이 사라졌다
그녀는 결국 재생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눈앞의 스크린에 한가득 풍경이 차올랐다·
“···!”
우아하고 빛에 물든 어떤 봄날의 화원 혹은 자연이 인상주의 화가의 풍경화처럼 황홀하게 펼쳐졌다·
나비와 새소리·
[Toutes les couleurs ont ton nom·]
그 틈으로 불어로 이루어진 내레이션이 노래하듯 속삭였다·
천천히 들어오는 반주·
그리고 자막·
-ALL THE COLORS
HAVE YOUR NAME·
그 하얀 문구는 곧 사라지고 다시 아름다운 배경이 수채화처럼 일렁였다·
이윽고 그 정적인 색채 사이를 홀로 뚫고 나오는 것이 하얀 의상을 입은 훤칠한 무용수·
‘아·’
선아현이다·
무용복과 슬랙스 사이 어딘가쯤의 의상을 입은 그는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우아한 선을 그리는 스텝으로 일어섰다·
그리고 입을 연다·
[Morning glory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여
향이 나
떨림을 멈출 수 없어]
팔과 다리가 사지 끝까지 날렵하고 우아하게 움직이며 원형을 그렸다·
“····”
그 모든 움직임이 극적일 만큼 완벽한 각도로 화면 속에서 퍼졌다·
빛 속의 독무·
[My blue is gone
이제 슬프지 않아
그 파랑새는 바로 너]
명화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압도적인 예술감·
프리즘의 무지개빛 색채를 하나씩 섬세히 되짚는 가사처럼 화면은 온갖 색의 향연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새하얀 선아현은 놀랍도록 눈에 확 들어오듯 존재감을 자랑하면서도 그 광경에 녹아들 듯 어울렸다·
왜 선아현이 인트로에 나오냐고 반박할 수 없을 만큼·
[From green to gold
내 감정이 여물어가
네 모든 시간들로]
손끝을 살짝 떨며 화면 사각으로 뻗은 선아현은 부드럽게 팔을 당겼다·
그러자 그 손끝에서 누군가의 손이 함께 화면 속으로 들어온다····
‘어?’
깍지 낀 선아현의 손 너머에서 나타나는 건 검은 발레리나의 손이었다·
선아현은 부드럽게 그 발레리나를 안고 함께 파드되(pas de deux)를 췄다·
그런데····
[볼이 붉어질 때까지
함께 숨을 맞춰
널 계속 만나 And then Eden]
“····”
‘미쳤다·’
선아현과 함께 움직이는 검은 발레리나·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검은 토르소에 관절이 섬세히 연결된 마네킹이었다·
선아현은 오로지 자신의 힘과 테크닉으로 관절의 반동을 이끌어내 마치 페어 댄스처럼 그것을 소화하고 있었다·
팡슈부터 피루에트까지·
연인처럼·
[그런 네 마지막 색은]
해가 화창한 날 모네의 그림 같던 화면은 노래가 진행될수록 점점 붉게 물들며 화려하고 감성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카메라의 각도가 무용수의 동작과 함께 서서히 옆으로 이동하고·
어느새 물가 앞에 선 선아현이 움직인다·
[in the Sunset]
조심스럽게 정성스럽게·
선아현은 자신의 발을 수면 위로 살짝 올렸다·
그리곤 거침없이 호수 위로 미끄러지듯 스텝을 옮긴다·
“···!!”
[Red is yours
your color your name]
터지듯 극적이고 아름다운 화음이 조화롭게 귓가에 울렸다·
호수 저편의 산과 들꽃 풀이 흔들렸다·
붉은 햇빛이 물낯으로 쏟아졌다·
[아침보다 눈이 부셔
다가가 입맞춤을]
발이 닿는 곳마다 포물선이 생기며 일몰이 일렁였다·
선아현은 흐트러진 꽃다발을 매단 토르소와 함께 수면 위에서 열정적으로 춤을 추었다·
[(Red is yours)
해가 지고
달빛이 내려도
잊지 못할 색상으로]
그리고 여기서 썸네일의 장면이 나오는 것이다·
‘아·’
물 아래로 스치듯 손을 살짝 넣은 선아현이 그 안에서 하얀 천에 감싸인 막대를 꺼내 들었다·
바로 양산·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쓰는 용도가 아니라 토르소에 정중히 씌워주는 용도다·
그는 우아하게 물방울을 튀기며 양산을 펼쳐 품속의 토르소에게 기울였다·
그리고 큰 손으로 토르소의 허리 부분을 감싸는 것까지·
어딘가 묘한 섹슈얼한 긴장감과 아릿한 느낌을 줬다·
하지만 노래는 계속 맑고 청초하다·
[Red is yours
your color your name]
물가의 저편까지·
선아현은 양산까지 화려한 동작의 일부로 사용하며 토르소와 함께 우아하고 열정적인 춤을 이어갔다·
그리고 어느새 도착한 호수의 끝·
[U- Um u- Umm]
이제 어둑해지는 땅 위로 디딘 선아현의 발이 화면에 담긴다·
그는 부드럽게 걸음을 옮겨 꽃잎이 소복하게 쌓인 언덕에 도착했다·
그 언덕 가운데가 클로즈업된다·
바로 하얀 관·
“····”
선아현은 양산을 정중하고 섬세하게 토르소의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미소 지은 채 열린 관 그 안에 함께 들어가 뚜껑을 닫는다·
해가 지기 전에·
쿵·
소리 없이 화면이 검게 변한다·
그리고 읊조리는 내레이션·
-Les rêves ne finissent jamais·
이윽고 검은 화면이 갈라진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빛이 찌르듯 내려왔다·
열린 시야 너머 평상복 차림을 한 소년들이 선아현을 웃으며 들여다봤다·
멤버들이다·
일상적으로 웃고 떠들고 있던 듯 편안한 얼굴들·
-Comme une chanson d’amour·
박문대가 손을 뻗어 선아현을 일으켰다·
어느새 그도 평상복 차림이다·
[잘 잤어?]
[응·]
선아현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함께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부드러운 반주와 함께 느긋이 잡힌다····
갑자기 고조될 때까지·
[in the Sunset-]
반주가 치닫는 순간·
툭·
검은 무언가가 옆으로 떨어지며 화면을 가린다·
“···!”
바로 양산을 쓴 검은 토르소였다·
“····”
그렇게 영상이 끝났다·
[♪♪♩- ♬♩♪♪-]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곡의 후렴구 멜로디를 들으며 김래빈의 팬은 잠시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오감을 자극하는 이 인트로·
“···그·”
그리고 깨달았다·
이번 앨범에 기대와 긴장감 힘을 꽉 주고 있는 것은 팬들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가수도 알았다·
‘작정했어·’
혼신의 힘과 기술 시간을 쏟아부은 것이 분명했다·
대체 얼마만큼 오랫동안 이걸 준비한 것인지도 모를 만큼의 매력과 완성도로 나온 인트로를 보며 김래빈의 팬은 손을 꽉 쥐었다·
“···가자 X발!”
흥분과 기대가 올라왔다·
연이 없었던 사명감 비슷한 것까지 그녀의 마음에 깃들 정도로·
‘인트로를 이렇게 가져왔으면 대체 타이틀은 어떻게 뽑아왔냐!’
그녀는 SNS와 커뮤니티를 뒤덮는 반응들을 보며 기세에 차서 웃었다·
하지만 얼마 후·
-미미미ㅣ친 이거
“···?!”
팬 중 누구도 상상하지 못 한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밤·
어느 영상이 갑작스럽게 공개된 것이다·
그러나 테스타의 영상이 아니었다·
[VTIC – ‘뱀(Serpent)’ Official M/V Teaser 1]
“···!!”
그 썸네일에는 맨 등으로 대리석 의자에 걸터앉아 뒤를 돌아보는 날카로운 인상의 미남이 있다·
신오였다·
그리고 컨셉은····
-이이이ㅣ거 단밤이잖아
-아 미친 니트 입고 웃던 갓기들 이렇게ㅠㅠ
사후세계·
VTIC의 데뷔 컨셉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첫 컨셉을 극점까지 갈아 강렬하게 리프라이즈 해온 것이다·
-독기 레전드···
“야 이 미친····”
태풍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