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96화
돌이켜보면 <아주사> 때부터 선아현에게는 유독 이런 새끼들이 잘 붙는 것 같다·
단순히 누가 싫다 이게 아니라 선아현이 인정받는 건 일어날 수 없는 부당한 일이라며 억울해하는 이상한 정신 세계를 가진 새끼들 말이다·
하지만 이건 또 새롭다·
[선아현의 뻔뻔한 가식에 참다못한 테스타 리더의 사이다 발언ㄷㄷㄷ]
‘선아현 제발 X 되라고 자기 인생을 걸고 행동에 나서네·’
모여서 욕하며 비는 수준이 아니다·
혼과 열정을 쏟아부어서 루머를 만들고 ‘제발 하나만 걸려라’ 하는 꼴을 보니 대체 어디서부터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X발·’
나는 골 아픈 미간을 누르며 위튜브 동영상 캡처를 보았다·
왜 류청우가 회사에 넣어버리기 전에 나부터 보여줬는지도 알겠다·
‘멤버가 직접 이 이야기 잡아다 회사에 넣는 순간부터 이걸 심각하게 고려해달라는 제스처지·’
그럼 무조건 일이 커진다·
그 전에 ‘그 방법이 맞는가’를 한번 검토해 보자는 뜻이다·
나는 아무 대가리든 후려갈기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다시 페이지를 넘겼다·
휴가 끝나자마자 별일을 다 겪는군·
‘우선····’
루머 유포하는 사이버 렉카·
‘이런 건 위튜브 플랫폼 특성상 신고가 잘 안 먹히지·’
그런데 말이다·
이딴 식으로 매일매일 집요하게 구는 새끼들이 있었으면 내가 진작 알았을 것 같은데 왜 몰랐지?
이 정도 악질이면 이미 선아현 안티 네임드여야 하는 거 아니냐·
“잠시만요·”
나는 류청우에게 손바닥을 들어 보인 후 직접 내 스마트폰을 가져와 해당 루머 살포 계정에 들어가서 쭉 살펴보았다·
“····”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왜 이걸 특정하지 못했는지·
‘선아현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잖아·’
[미리내 정율기가 참지 못하고 올린 사진의 소름 돋는 의미]
[헤일로 하임의 빌런 이수희 다이어트 언플 총정리!]
이건 캡처만 쭉 있을 때처럼 선아현에 대한 악의로만 가득한 안티 계정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냥 위튜브에 흔히 보이는 연예계 가쉽 물어 나르는 질 나쁜 계정처럼 보였다·
게다가 하루에 적어도 서너 개 이상의 이슈 동영상을 업로드하는 미친 물량을 좀 봐라·
류청우가 선아현의 이야기만 캡처해 놔서 그 빈도수가 보였던 것이지 실제로는 이 계정의 영상 대여섯 개에 하나꼴이었다·
즉 마치 평범한 사이버 렉카 계정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
류청우는 내가 실제 계정을 제대로 뜯어볼 때까지 기다린 후 침착하게 물었다·
“어때·”
나는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머리 써서 작정한 것 같은데요·”
“···!”
이거 그냥 전방위 저격하는 악질 아니냐고?
‘아니·’
이게 더 위험했다·
선아현과 일반 연예계 루머·
둘이 종류가 달랐다·
‘일부러 교묘하게 섞어놨군·’
“다른 루머들은 이미 이 계정이 올리기 전부터 다른 곳에서 이슈가 됐던 것들입니다·”
“····”
“딱 아현이만 자기가 새로 만들어서 집어넣은 거죠·”
이렇게 이 새끼가 창조한 선아현의 루머를 유명한 이슈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슬쩍 끼워놓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아현이 이야기도 원래 있던 소문처럼 보이겠네·”
“예·”
선아현의 루머도 ‘요즘 핫한 이슈’로 자연스럽게 취급받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연예계 질 나쁜 이슈를 다루는 계정이야 흔하다·
‘조회수가 수십만이 아니라 수백 만까지 나오는 계정도 몇 가지 있지·’
그러니 이 정도 규모는 그냥 ‘좀 인기 있는 연예계 렉카 계정 중 하나’로 보인단 말이다·
그럼 아무 생각 없이 이 루머 동영상을 접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얘한테 이런 소문도 있어?
-뭐가 많네··· 흠
-몰랐는데 좀 얄밉고 겉 다르고 속 다른? 느낌이다
“····”
그렇게 스며드는 것이다·
그리고 슬슬 유명한 사이버 렉카의 동영상 내용을 무조건 복제해가서 짜깁기해 올리는 공장형 사이버 렉카들도 붙기 시작했다·
그럼 정말 맨땅에서 만든 헛소문이 진짜 논란과 이슈로 번지게 되는 거다·
[난리 난 선아현 앰버서더 논란 그 진실은?]
여럿이 떠들면 안 뗀 굴뚝에도 연기가 날 수 있다·
“····”
X발·
나는 검색어를 지웠다·
‘류청우가 제대로 알아왔군·’
이거 자칫해서 타이밍 넘어갔으면 정말로 선아현이 두고두고 시달리게 생길 일이었다·
“원래 이런 건 조용히 무시하다가 선을 넘으면 대처하는 게 상책이라는 이야기가 많지만··· 키우지 않고 없앨 수 없을까 해서·”
류청우가 쓰게 웃더니 곧 침대에 걸터앉아 깍지를 꼈다·
“한 사람만 잡으면 되는 문제라면 그게 낫겠지·”
현명한 판단이다·
다만··· 말이다·
“그게요·”
나는 묵묵히 화면을 훑었다·
“이거 한 사람 아닙니다·”
“···!”
생각해 봐라·
매일 매일 서너 개씩 영상을 찍어낸다?
아무리 자기가 지어내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논란을 가져오는 거라도 그게 혼자 가능하겠는가·
심지어 선아현의 논란은 직접 지어내는 걸 텐데 이걸 스크립트 짜고 적당한 영상들 찾아 넣고 임팩트 있게 편집하는 걸 이렇게 돌릴 순 없다·
“AI 쓰는 공장들은 연결이나 문법이 부자연스럽게 나오는데 그것도 아니고요·”
“····”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사람이 쓸 수 있는 시간과 노동력 내에서 생각해 보면····”
“여러 명이란 뜻이구나·”
그렇다·
계정주인은 하나일지라도 이건 집단행동이었다·
아마도 소속감에 신나 있고 수틀리면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도 여러 사람이 함께하니 분산된 그런 놈들 말이다·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형 말대로 회사에 알리는 게 맞는 것 같긴 합니다·”
이거 묻어뒀다간 나중에 더 크게 터질 것 같다· 일단 법적으로도 대응할 루트를 회사가 빨리 알아봐 두는 것까진 낫겠지· 물론····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이 보고의 결말도 대충 예상은 간다만·
나는 다소 착잡한 기분으로 류청우가 통화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이미 알고 계셨다고요·”
-예···· 그렇죠·
류청우는 회사로부터 ‘이 계정에 대해서 이미 모니터링 중이었음’이라는 응답을 받는다·
‘그래·’
이럴 줄 알았다·
이미 팬들이 PDF 따서 여러 번 회사에 신고했던 것이다·
‘확률적으로 우리보다 선아현 팬들이 먼저 알았을 가능성이 훨씬 크지·’
그리고 회사도 그걸 확인한 게 벌써 몇 주는 된 것 같았다·
다만 전 T1 소속일 때처럼 심각성이고 나발이고 파벌 싸움하느라 방치하는 중인 건 아니었다·
거기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이런 계정들이 전에 소송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살펴봤는데 소송 결과로··· 오히려 영상을 만들더라고요·
“····”
어 나도 기억난다·
[영린 소속사의 급발진! 이슈 위튜버가 두려운 그들이 틀어막으려고 한 영린의 성형 진실은?]
-그래서 도리어 이게 찔려서 이런다 이런 식으로 홍보가 될까 봐····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간단한 이치다·
미국처럼 고소가 쉽고 보편화된 나라에서도 왜 사생활 침해하는 파파라치들이 안 없어지는가·
‘벌금 내고 계속 찍는 게 더 이득이거든·’
돈이 더 돼서다·
비슷하게 이런 계정도 조회수가 몇십만쯤 찍히기 시작하면 벌금 거뜬히 내고 계속 운영하는 게 돈이 훨씬 달달하다·
내 인생에 빨간 줄이 신경 쓰일 만한 목표가 없다? 겁먹을 이유가 없다·
‘고소당했다는 것까지 컨텐츠로 만들어서 어그로를 끌걸·’
게다가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선아현을 노리는 새끼들이면 오히려 쾌재를 부르며 이걸 빌미로 일을 더 키우려고 들 것이다·
만든 논란들을 물 위로 띄우기 더없이 좋은 기회니까·
‘얼마나 의식했으면 기획사가 내 영상을 고소하겠냐는 논리로 나오겠지·’
그리고 X 같지만 그 말에 솔깃해하는 사람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회사도 그 수작에 놀아날 수 있으니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우선 그래도 저희가 바로 대처할 수 있게 준비는 더 단단히 잘해놓겠습니다·
“예·”
그래도 이걸로 한번 재촉을 해놨으니 이 논란이 진짜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빠릿하게 대응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전화를 끊는 류청우의 얼굴에서 약간 씁쓸한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으나 곧 평온함과 힘을 회복했다·
“음 다른 방법도 좀 더 알아보자·”
“예·”
물론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 전에 잠깐만·
“형·”
“응?”
나는 류청우에게 지나가듯 물었다·
“원래 이런 거 잘 안 본다고 하셨잖아요· 인터넷 논란들이요·”
“····”
“어쩌다 보셨는지 궁금해서요·”
녀석이 전부터 모니터링을 적당히 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거지 이렇게 ‘무슨 논란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측하고 파악하고 피하려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지·’
애초에 류청우가 강점인 파트도 아니었고 나나 큰세진이 있는데 굳이 하라고 부추길 것도 없지 않은가·
나는 입을 다문 류청우의 시선과 마주했다·
녀석은 작게 웃었다·
“음 그냥 입국 길에 생각나서 해봤는데 우연히 발견한 거야· 다행이었지·”
“음 예·”
흠·
무난한 대답이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그냥 적당히 말했다는 거지·’
나는 안다·
스티어 때 이 녀석은 그룹이 별 루머와 논란에 휘말리는 걸 다 보고 있었고 그걸 악착같이 방어하고 멤버들을 통솔하려고 고생했던 놈이다·
‘그리고 그때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겠지·’
그래서 모니터링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잘 알겠다·
하지만 말이다·
‘할 수 있는 것과 강박적으로 하는 건 또 다른 거다·’
나나 큰세진 같은 타입이야 툭툭 봐도 괜찮다·
원래 이런 걸 별로 애먹을 것도 없이 하니까· 너무 물 밑 보지 않고 기분 전환하면서 멘탈 관리하면 충분하지·
그런데 이 녀석은 원래 안 맞고 좋아하지도 않는 일 아닌가·
굳이 이런 것까지 신경 곤두세워서 하려는 게 그렇게 긍정적인 신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도 기분 좋게 휴가 잘 끝내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구구절절 말해봐야 ‘아니 나 없었으면 몰랐을 놈이 무슨 소리야’ 같은 생각이나 들 테니 나는 그냥 녀석의 등이나 쳤다·
“형이야말로 쉴 때는 좀 쉬세요· 고맙긴 한데 미안하잖아요·”
“그럴 필요는 없는데··· 알았어· 고마워 문대야·”
류청우는 피식 웃고는 별 어색함 없이 넘어갔다·
‘이건 이놈 경과를 좀 관찰해 봐야겠고·’
“그럼 다른 방법을 알아볼까?”
자· 이제 행동에 들어갈 때군·
“그거 말인데요·”
나는 밝은 얼굴로 휴가 동안 자기가 만든 디퓨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선아현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차유진은 본인 선물이라는 것을 듣고 미리 거절하려다 김래빈과 배세진에게 은밀하게 맞고 있다·
“아직 확실히 모르는 것 같죠·”
“그러네·”
“일단 형한테 선아현이 눈치 못 채게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당사자가 알아봤자 좋을 게 없을 것 같아서·”
“당연하지·”
류청우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그 외에도 현실에서의 일들을 전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응?”
나는 엄숙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스마트폰 볼 동안·”
“···음· 문대야·”
“네·”
“그러니까··· 스마트폰으로 다른 방법을 써보게?”
“예·”
류청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 네가 그럴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럴 때 같은 팀 멤버가 익명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린 걸 사람들에게 들키면 더 곤란해질 거란 건 잊지 말아야 해·”
“····”
그럴 거라고 생각 안 한 거 맞냐? 얼굴에 의심과 염려가 넘치는데·
나는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인터넷에 글 올릴 생각 없는데요·”
“···?”
내가 쓰려는 건 다른 방법이거든·
나는 목을 꺾었다·
한 놈이 아니라 집단이라 이거지·
오히려 좋다·
“이게 혼자가 아니라서 통하는 방법도 있거든요·”
컴백 전에 싹 정리하고 간다·
* * *
3월의 어느 날 오후·
한 익명의 단체 메시지방·
-화난 와피치 : 오늘 물량 끝
-부끄러운 포도도 : 고생 많으셨습니다
-기뻐하는 레오 : ㅊㅊ
-건배하는 튜본 : 정말 대단해요 저희 끝까지 힘내서 해내보죠ㅋㅋ
-화난 와피치 : ㅋㅋㅋ넹
마치 힘차게 조별 과제나 팀 프로젝트를 하는 듯 격려가 오간다·
하지만 공지로 걸려 있는 글을 보는 순간 보통 사람이라면 멈칫하게 될 것이다·
[어버버 논란용 자료 주간 하나 이상 필수! 타격감 임팩트 부족하면 방장 선에서 자름]
계속 쌍욕이 오가는 것도 정신 나간 헛소리가 방에 도배되는 것도 아니다·
평범한 대화 사이로 위화감 있는 악의가 지나가는 것이다·
-건배하는 튜본 : 빨리 게시판에서도 인기글 1위 했으면 좋겠는데ㅠㅠ 화력 부탁드려요!
-선글라스 낀 레오 : 지원 갑니다 어버버가 은퇴하는 그날까지···
-기뻐하는 레오 : ㅋㅋㅋㅋㅋㅋㅋ
그들끼리는 화목하다·
다들 공유하는 감성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만 받기 위해 걸러냈으니까·
이 메시지방은 생성 이후로 가끔 그들의 본 발상지인 거대 커뮤니티 속 외딴 익명 게시판에서 혹은 SNS 비밀 계정 인맥을 통해서만 사람을 받았다·
그 커뮤니티의 시시콜콜한 옛 논란과 이야깃거리들을 맞출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정답을 따라오다 보면 주소를 알아낼 수 있게 해놨다·
복잡한 방식을 써서 거르고 걸러 그 어쭙잖은 관문들을 다 통과해야 사람이 접속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리고 전체 익명을 유지했다·
그러다 보니 책임은 뭉개지며 분산되고 힘을 휘두르고 같은 감정을 공감하는 사람들과 떠드는 재미는 더 커졌다·
집단 속에 있는 소속감·
다수에게 영향을 행사하는 효능감·
싫어하는 공통된 적을 끌어내리는 재미와 우월감까지·
-기뻐하는 레오 : 어버버 패션위크 때 차유진 밀치고 내리면서 아닌 척하는 눈 굴리는 거
-기뻐하는 레오 : 진짜 쎄한데 이번에 조회수 잘 나올 듯? (슬로우 동영상)
조용히 들어온 몇몇 신입들도 슬슬 맞장구를 쳤다·
자음을 남발하고 웃고 어떻게든 더 인상적이고 통쾌한 표현을 쓰려고 신이 난 것 같은 반응들이 줄을 잇는다·
그리고 그중에는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는 어젯밤 신입도 있다·
-행복한 라이온 : ㅋㅋㅋㅋ
“····”
박문대·
익명 카톡방 잠입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