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95화
“VTIC··· 제대 알림 문자?”
“예·”
“그런 걸 너한테 왜 보내?”
그러게 말이다·
나는 며칠 만에 만난 배세진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다른 녀석들도 오묘한 표정으로 식탁에 둘러앉아 있다·
‘다들 잘 지냈나 보군·’
다 얼굴이 뺀질뺀질해지고 미국 간 3인방은 좀 얼룩덜룩해지기까지 했다·
‘저 셋은 몸까지 좀 좋아진 것 같고·’
피부 관리만 죽도록 받으면 되겠군·
어쨌든 간에 푹 쉰 만큼 전투력이 회복됐는지 하나 같이 VTIC 제대 이야기에 눈에 빠릿하게 힘이 돌아왔다·
데뷔 이후 언제나 테스타의 최대 장벽·
비비지도 못할 선배에서 팽팽하게 수요층 파이를 갈라 먹는 경쟁자가 되도록 우리가 꾸역꾸역 기어 오는 동안 계속 최정상에 알박기하고 있던 1군 아이돌·
VTIC이 곧 판에 들이닥칠 것이다·
“으음 다들 아시겠지만··· 애초에 VTIC 선배님들이 언제 제대할지야 이미 정해진 일이고 저희도 그걸 고려해서 플랜을 잘 짰잖아요?”
“으응!”
“그럼 문대도 그냥 ‘화이팅 선배님~’같은 거 한번 보내고 무시하고 저희 할 일 열심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지만!”
큰세진이 서글서글 웃었다·
“그래도 굳이 알려주기까지 하셨으니 한번 저희가 알고 있는 걸 점검이라도 해보죠!”
오냐·
나는 입을 열었다·
“우리가 예상했던 VTIC 선배님들 컴백 일자는?”
“6월 12일·”
망설임 없이 대답이 나온다·
왜냐·
“VTIC 선배님의 첫 1위 날짜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데뷔했을 때 VTIC과 활동이 겹쳤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 새끼들이 의미 있는 숫자를 골라서 컴백했던 거거든·
“공백기가 길었고 이렇게 의미 있는 날짜가 주변에 있으면··· 무조건 이때일 확률이 높다고 저희 다 생각했잖아요·”
“그렇지·”
빌보드 성적을 고려해 발매 요일을 맞추는 등의 수작이야 티저 공개일 등으로 조정할 수 있다·
‘어쨌든 컨텐츠 첫 공개는 12일로 갈 것 같고·’
팬덤 결집과 임팩트를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날까진 앞으로··· 남은 건 단 3달뿐·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그 전 5월쯤에 컴백할 거고요·”
“그렇지~ 아무래도 우리보다 VTIC 선배님들이 유리하시니까 시기를 잘 선정해야죠!”
“저 그 점에 관하여 여쭤보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만····”
김래빈이 번쩍 손을 들었다· 아무래도 전부터 곰곰이 생각해 본 모양이었다·
“어째서 VTIC 선배님들께서 더 유리하시단 판단을 내리신 건지 그 연유가 궁금합니다!”
그건 간단했다·
“래빈아· 우리 마지막 활동이 언제였지·”
“어··· 그러니까 1월입니다! 팬송이 큰 사랑을 받으며 예기치 못하게 방송활동까지 하게 되는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김래빈이 속사포처럼 대답했다·
“그리고 최근에도 예능 등으로 팬분들과 대중분들을 찾아봤습니다!”
“그래· 꾸준히 활동했지·”
“예!”
나는 김래빈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말이다·
“이제 네가 좋아하는 음악 두 곡을 떠올려봐라· 그 두 곡을 어느 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듣는 거야·”
“네!”
“그런데 거기서 한 곡은 매일 들을 수 있었고 어떤 곡은 18개월 만에야 듣는다고 생각해 봐·”
“···!”
“그 순간 둘 중에 어느 쪽에 더 관심과 흥미가 가겠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이 적용해 보면 답 나올 거다·”
이건 희귀성의 문제였고 인간 심리의 문제였다·
연차 쌓인 VTIC에 대중이 느끼는 식상함이 사라지고 녀석들은 반갑고 신선해진 것이다·
‘속된 말로 쿨이 돌았다고 하지·’
물론 인지도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지 않는다면 다 헛소리다·
공백기? 그냥 잊히면서 끝이지· 특히 대체재가 있으면 더 순식간이고 말이다·
그러나 VTIC의 인지도는 그 이상이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포지션도 독보적이다·’
아직까지도 같은 계열 대체재가 없다·
그런데 군대 갔다 오며 폼이 무너져서 기대가 다 식을 거란 기대? 제대 직후 앨범까지 다 프로듀싱해 놓은 놈들을 두고 무슨 행복 회로를 돌리냐· 다 타겠다·
게다가 소속사인 LeTi를 쥐어 잡고 사니 자본과 기획력이 퇴보했을 확률도 희박하다·
게다가 말이다·
“사실··· 우리도 한몫했다·”
“What?”
“경쟁자가 될만한 신인을 우리 선에서 다 정리해 놔서 VTIC도 팬덤 유출이 거의 없다고·”
“····”
“우리··· 진짜 열심히 살았네·”
그렇다·
‘신인 견제를 너무 잘해놨어·’
필드가 겹치는 부작용이었다· 라이벌 좋은 일을 해줬군·
특성을 EX로 각성까지 해가며 이테르를 자근자근 밟아둔 큰세진은 천연덕스럽게 실실 웃었다·
“선배님들이 우리 덕을 보셨네! 보신 김에 보답으로 올해 푹 쉬실 겸 컴백도 안 하시면 참 좋을 텐데~”
“하하····”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날 리가 없다· 그 새끼들도 공백기가 2년 넘어가는 건 건 못 참겠지· 빨리 나오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반대로 우리가 그놈들 컴백 후에 하반기쯤치고 들어가기엔 문화 훈장 전에 배세진이 군대부터 갈 거고·’
배세진이 입대한 후에 내년쯤 받으면 그게 무슨 웃기는 일이겠냐· ‘타이밍 망한 남돌’ 뭐 이런 식으로 화제는 되겠다만·
맞은편에서 류청우가 정리하듯이 차분히 대화를 다듬는다·
“그래· 최악의 상황까지 전부 생각해서 준비했으니까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가자·”
“네···!”
“그래야지·”
나는 다시 한번 의지를 다지는 녀석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다음 컴백·
타이틀곡 안무 수록곡 인트로까지 전부 정해졌다·
예정대로만 되면····
‘적어도 밀리진 않는다·’
그놈들이 뭘 들고 와도 곡빨로 뒤지진 않을 거란 자신감은 확실했다·
다만 주목도·
어떻게 하면 겨우 한 텀 뒤에 나올 VTIC 놈들에게 존재감이 흐려지지 않을 수 있는가·
“그래서 제 생각에는 강렬한 마케팅 한 수가 더해지면 어떨까 했거든요·”
내 말에 작게 동조하는 리액션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의견도·
“저 혹시 예능은··· 어때?”
다만 이건 반박해야겠군·
“그건 이미 <인형 사냥꾼> OST로 한번 써먹어서·”
“아···!”
지금도 절찬리에 조회수가 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서 한탕 더 해 먹기엔 텀 문제도 있으니 뇌절이 될 것이다·
게다가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그 PD님 쉬신대·”
“···??”
기사 떴더라·
[정함도 PD 전격 휴식 발표··· “내일을 고민할 시기”]
우리와 일하던 그 예능 군단의 대표 PD는 ‘한동안 쉬면서 이 일에 대하여 더 고민하고 성찰하겠다’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잠수를 타 버렸다·
‘어쩐지 감성에 차서 배세진한테 감사 문자를 보내더니·’
“그 그렇구나····”
“이야 화끈하시네·”
“그 그럼 앞으로는 함께 컨텐츠를 제작할 수 없는 겁니까?”
“최소한 한동안은 그럴걸·”
게다가 사실 이 사람이랑 또 하는 것 자체가 이번 목표랑 안 맞지·
‘뭐 믿고 본다는 사람도 있다만····’
너무 편안한 감상이다· 18개월 만에 완전체 컴백하는 놈들을 견제하려는 용도로 쓰긴 애매하다·
테스타에게 지금 필요한 건 익숙한 즐거움이 아니라 임팩트였다·
‘···라는 생각을·’
청려 놈이 문자를 보낼 때부터 했지·
그 전에 예능 제작진이랑 면담할 때부터도 어렴풋이 계획을 세우긴 했다·
새로운 마케팅용 컨텐츠 루트 개척을 말이다·
획기적인 것으로·
“그래서 말인데 이거 어떠냐·”
“···??”
나는 회사와 주고받은 메일을 하나 보여주었다·
어떤 유명한 이름이 주소에 보이자 순간 멤버들이 눈을 깜박인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긍정적인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이건···?”
“대안으로 후보에 올리고 싶은 컨텐츠 제작자요·”
정확히는 회사에 온 1년 치 컨택 제안을 다 뒤져서 찾아낸 거다·
“오오!”
순식간에 메일 화면에 멤버들이 들러붙는다·
그리고 감탄과 의혹 환호로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지 진짜 이곳과 하는 겁니까?”
“넌 이런 발상을 매번··· 어떻게 하는 거야·”
“저 이럴 줄 알았어요· 문대 형 언제나 답 생각하고 물어봐요!”
“욕이냐·”
“No! 칭찬이에요!”
물론 묘한 시선을 보내는 놈도 있다만·
“저 문대는 쉬어야 할 때마다 매번··· 일하는 것 같아·”
“···푹 쉬다가 한 거다·”
딱 하룻밤 일한 거라고·
어쨌든 간에 종합적으로 반응을 보자면····
아주 괜찮다·
나는 열망과 도전욕으로 불타는 녀석들을 보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컨택하자고 말할게요·”
“OK~”
‘이걸로 먼저 치고 나간다·’
나는 회의를 끝낸 후 웃으며 흩어지는 녀석들을 보았다·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의욕적인 모습이 보기 아주 괜찮군·
‘이 마케팅이 성공만 하면····’
그때였다·
“아· 문대야· 잠깐 여기 와볼래?”
“아 예·”
나는 류청우의 부름에 자연스럽게 녀석의 방으로 들어갔다·
‘뭐 줄 거 있다는 말투였는데·’
역시나 녀석은 마치 기념품을 뒤적이는 것처럼 가방에 손을 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방으로 들어오자 가방 지퍼를 닫았다·
“···!”
페이크였던 것이다·
다른 녀석들의 주목을 끌지 않기 위한·
“일단 문 닫고·”
심상치 않군·
나는 반발하지 않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눈앞의 류청우는 난처하거나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조용히 내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오늘 입국하면서 본 건데 네 판단이 궁금해서·”
“····”
“나는 회사에 알리려고 해·”
조용히 스마트폰을 받아들고 화면을 보았다·
그건 대충 45만 뷰쯤 나오는 어떤 위튜브 영상의 캡쳐였다·
[또 관종 심리 주체 못 한 왕자병 1군 아이돌 멤버! 휴가 중 올린 사진은?]
“····”
참고로 썸네일은 이렇다·
-ㅠㅠ너희는 이런 거 없지?
-이세진 집에 먼저 갔는데 인증은 왜 내가 올리냐고? 금수저니까^^
···라는 글씨가 검은 테이프로 눈이 가려진 선아현의 얼굴 옆 말풍선에 시뻘겋게 궁서체로 적혀 있었다·
“····”
뭐야 이 개소리는·
맥이 풀릴 지경이다·
‘사이버 렉카잖아·’
요새 이런 공장은 많았다·
물론 빡치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우리가 루머로 욕먹는 게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어차피 이런 건 물 위로 올라오기 전에 팬들 선에서 두들겨 맞고 들어간다·
심지어 선아현과 관종? 어울리는 키워드여야 대중도 반응을 하지· 이쯤 되면 그냥 AI 랜덤 매칭이 따로 없다·
‘이딴 게··· 위협?’
나는 떨떠름한 눈으로 류청우를 보았다·
그냥 조용히 회사에 고소감으로 넘기고 무시해도 괜찮을 걸 모를 만큼 짬이 덜 차진 않았을 텐데·
그러나 류청우는 침착했다·
“계속 볼래?”
“····”
“페이지 넘기고·”
흠·
나는 류청우의 눈짓에 손을 움직였다·
캡처 화면이 바뀐다·
그런데··· 끝나질 않는다·
“····”
그 전날·
그 전전날·
그리고 계속 계속·
[명품 앰배서더 욕심에 같은 팀도 눈치 주는 선아현]
[학창시절 따돌림? 안하무인 수석이었다는 선아현의 실체]
[또 너냐··· 이젠 지겹다 선아현의 이미지 메이킹 시도와 실패!]
매일매일 올라오고 있었다·
매일이 안 되면 일주일에 최소한 세 번· 이틀에 한 번이라도 어떻게든 쥐어짜내고 같은 주제를 써서라도 꾸준히·
계속 화제가 덧대어져서 몇 개월이나·
[모른 척 차유진 앰배서더 브랜드 의상 꼽 주는 선아현의 놀라운 솜씨ㄷㄷ]
[금수저 이미지 메이킹에 진심인 선아현의 소름돋는 SNS글들]
끈질기게·
집요하게·
마치 이 일에 인생을 건 것처럼 말이다·
“····”
“다시 제일 앞으로 가봐·”
나는 군말 없이 페이지를 옮겼다·
이제 녀석이 말하고자 하는 게 어떤 것인지도 알았다·
[45만]
이 조회수·
언뜻 보기엔 적당히 어그로가 좀 끌린 것 같아보인다·
그렇게 신경 쓸 정도의 논란까진 아니고 그냥 테스타 선아현의 이름값으로 인해 단발적으로 나타날 만한 수치라고 보겠지·
그러나 몇 달 전에 올라온 이 망할 위튜브 계정 초기 영상의 조회수를 다시 보고 오면·
[3만]
조회수는 열 배가 넘게 늘어 있었다·
반년 간 그라데이션으로 차근차근히 이 미친 새끼들의 집요함은 보답을 받고 있었다·
서서히 덩치를 키우며·
“····”
‘X발·’
이 새끼들은 또 어디서 붙었냐·
게다가 타이밍도··· 아니 X발·
“알지· 우리 이번 앨범 인트로·”
“····”
“아현이 솔로잖아·”
물어뜯기기 딱 좋게 말이지·
* * *
같은 시각·
비무장지대에 위치해 고요한 JSA·
-형 그럼 우리 말년 휴가 싹 몰아서 쓰고 2주 먼저 나와서 준비하고 있을게요!
“그래·”
청려는 쾌활한 채율의 목소리에 평온하게 답변했다·
군에서도 아무런 문제 없이 생활한 그들은 조용히 제대를 앞두고 있었다·
오랜만의 활동기에 신나고 들뜬 것을 더 부추기고 격려하여 의욕을 관리하는 건 쉽다·
“팬분들이 많이 기다리셨을 테니까 우리도 빠르게 돌아가는 거야·”
-예!
이토록 선명하다·
청려는 턱을 괬다·
물리학엔 복잡계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마치 우연의 연속처럼 복잡해 보이나 사실 그 안에 숨겨진 질서가 있어 원리와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물리학이 아닌 사회학에서도 비슷했다·
그 성정을 충분히 정성 들여 세밀히 파악할 수만 있다면 사람은 이토록 예측이 가능한 존재다·
멤버들이 타성에 젖지 않고· 최선을 다해 완벽한 컴백을 위해 노력하도록 이끄는 것도·
-D-40
경쟁자를 그렇게 압박하면 자신의 계획을 더 가다듬는 것도·
그래서 그가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화제성을 불러일으킬 발화점을 찾아다닐 것도·
그게 전부 마지막에는 이 그룹의 좋은 양분으로 환원될 것도 말이다·
물론 그런 그도 이런 답장까지 예측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박문대 : 예 선배님 화이팅
그 영혼 없는 답장을 다시 열어보며 청려는 빙긋 웃었다·
“날 응원할 때가 아닐 텐데·”
VTIC은 6월 12일에 컴백하지 않는다·
그들의 컴백 일자는····
5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