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91화
금의환향·
출세해서 고향에 돌아간다는 뜻의 사자성어이다· 현대 한국에선 주로 입시나 취직에 성공해서 명절을 맞으면 쓰더라고·
그리고 아이돌의 경우엔 집에 돌아갈 때마다 경험할 수도 있다· 숙소 생활을 하며 집과 떨어져 생활하니까·
물론 조건은 있다·
‘성적이 좋아야지·’
인지도·
‘와 그 곡?’이나 ‘나 들어본 것 같아!’라는 반응이 나오는 활동을 해봤을 것·
이러면 집에 갈 때마다 금의환향 맛을 보는 거다·
그리고 테스타는 그 방면에선 지금까지 가족을 실망시킨 적이 없을 것이다·
증거로 우리가 휴가철마다 이런 일을 하거든·
“여러분 연례행사 서로 잘해봅시다~”
“예 예·”
착착·
숙달된 시범 조교의 솜씨로 앨범이 손에서 손으로 넘어간다·
최신 앨범과 MD에 돌아가면서 사인 공장을 돌리는 거다· 멤버 부모님과 친척들이 부탁한 분량이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게 할당량을 마치고 나면 이제 집 갈 준비를 하는 거지·
“이번에는 일주일이지? 다들 잘 쉬고·”
“네···!”
여기서 또 재밌는 일이 나온다·
데뷔 초에는 각자 계획을 세워서 뒤도 안 돌아보고 뿔뿔이 흩어졌는데 어느 날부턴가 휴가 중에도 서로 일정을 맞추는 것 같더라고·
‘가족끼리도 안면이 생긴 거지·’
가령 김래빈은 할머님과 할아버님을 모시고 미국 여행을 가는데 차유진의 집에서 며칠 숙박한다고 한다·
그간 연습생 시절부터 차유진이 김래빈의 집에서 신세를 지는 경우가 잦다 보니 그쪽에서 초대한 모양이다·
“마일리지가 충분히 쌓여서 더 좋은 좌석으로 편안히 모실 수 있을 듯합니다!”
“잘됐네·”
그냥 현금으로 일등석에 때려 박아도 될 만큼 많이 번 놈치곤 참 소박한 소리다·
게다가 녀석이 이 여행을 준비하는 중 류청우 가족과도 연락이 닿아서 그쪽도 중간에 합류하는 모양이었다·
“내 휴가가 끝나도 가족들은 조금 더 미국에서 여행을 즐기면 좋겠거든· 나만 시간 맞춰서 먼저 입국하려고 해·”
“형 효도 멋져요·”
“하하·”
참 화기애애한 광경이다· SNS에 올리면 팬들에게 반응도 좋을 것 같군·
다만 이쯤 되면 알겠지만 이 모든 일에서 나는 예외다·
뭐··· 같이 움직일 사람이 그간 없어서 말이지·
‘얘들 사인할 때부터 내 눈치를 보던데·’
이런 일을 할 때면 나만 들고 가는 물량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의상 몇 개 챙기는 수준이지 이 녀석들처럼 사인 용품을 나눠줄 친인척이 없으니까·
박문대도 류건우도·
그러다 보니 은근히 이 점을 신경 쓰는지 전부터 은밀한 제안이 들어온다·
“문대 형도 이번에 내 집 와요! 우리 서핑해요·”
마음은 고맙다·
하지만 난 며칠 후부터 한국에서 계획한 일이 좀 있어서 말이다·
‘좀 쉬다가 할 일 해야지·’
적절히 거절했다·
“오오 문대 그럼 이번 휴가 내내 한국에 있는 거지?”
그렇지·
“그럼 잠깐 우리 집에도 좀 들려서 놀다가~ 근처잖아· 우리 여사님이 진짜 보고 싶어 하신다니까·”
“···??”
내가 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으나 큰세진 놈은 도리어 정색했다·
“세상에 우리 여사님이 문대 생일마다 갈비찜 챙겨주셨는데··· 시간이 있는데도 뵙기 싫다니···· 갈비찜 맛은 다 잊어버린 거야?”
“····”
“문대문대가 이렇게 차가운 사람이었구나· 울 여사님 얼마나 실망하실지····”
그만·
“간다·”
“응? 뭐라고?”
사람 열받게 만드는 재주가 여전하네·
“···간다고·”
놈이 히죽 웃었다·
“잘 생각했어~!”
“····”
딱 한 대만 쥐어박고 싶다· 한 대만·
내가 주먹을 쥘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톡톡·
“저 저기·”
고개를 돌리자 선아현이 기대가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
“우리 가족도 문대를 보고 싶어 하는데··· 으응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고·”
“····”
“아 곤란하면···! ”
“···갈게·”
“크하학!”
그렇게 ‘휴가 초반엔 숙소에서 꿀을 빨자’라는 내 계획은 취소 및 변경되었다·
“오오 그럼 아현이도 우리 집 들렸다 가는 거지?”
“으응!”
“좋아 좋아···· 굿굿· 우리 휴가 첫날 재밌게 보내겠네~”
큰세진이 희희낙락하며 짐을 쌌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여기 2명 추가요’ 같은 소리를 떠드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께 연락 안 드리냐·”
“응?”
“우리 간다고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은데·”
큰세진이 의미심장하게 씩 웃었다·
“사실 우리 여사님··· 내가 오늘 가는 것도 모른다?”
“···!”
“워낙 공사가 다망하셔서··· 오늘도 행사 여시거든!”
무슨 행사?
* * *
이세진의 어머니· 그녀는 누구인가?
지역 사회의 봉사활동 단체에서 한 자리 맡고 있는 그녀는 굳이 아들이 아니더라도 동네의 네임드였다·
그리고 MBTI 극한의 E 집안답게 그녀의 집은 오늘도 지인으로 붐볐다·
이건 일종의 봉사활동 뒤풀이 행사였다·
그녀의 장남은 일찌감치 아이돌로 성공했고 차녀도 대학을 다니며 기숙사에 들어간 상태였기에 내키는 대로 사람을 부르기 편했다!
“다 애들이 다 잘 커서 그렇지~”
“어휴 무슨 소리야· 요즘 집이 휑해 아주!”
그리고 이 자리에 ‘이것도 경험이다’라며 얼결에 부모를 따라 같이 나온 중학생과 초등학생 몇 명은 동태눈을 한 채로 옆에 앉아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다·
‘개노잼····’
이어폰을 끼면 예의가 아니라는 말에 무음으로 틱택톡을 보고 있자니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그 집 아들이 무슨 유명한 연예인? 아이돌이라든데· 누구냐고? 엄마가 요즘 애들은 잘 몰라서···· 근데 들어본 이름이긴 했어!
그 이야기에 살짝 혹했는데 당연하지만 이 집에 그 아이돌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직접 누군지 물어보기도 그렇고 말이다·
뭐 물어봐 봤자 실망할 확률이 높을 거란 건 이제 애들처럼 꿈과 희망이 넘치지 않는 자신도 알았다!
‘요새 유명한 남돌도 별로 없는데 내가 왜 그랬지?!’
중학생이나 돼서는 그런 말에 혹한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그녀는 다시 스마트폰에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이제 이 모임도 곧 끝날 타이밍이었으니 조금만 더 배터리가 버텨주면 됐다·
그때였다·
띵-동·
“정아 씨 누구 왔나 봐!”
“응?”
인터폰이 울렸다·
누군가 아주 뒤늦게 온 모양이다·
집주인이 다소 의아한 듯 반응했지만 중학생은 당연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반사적으로 열리는 문을 대충 힐끗 보기만 했을 뿐이다·
그렇게··· 목격했다·
“아이고 사람이 많으시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남자·
훤칠한 인영이 무거운 현관문을 가뿐히 열고 들어온다·
쓰고 있던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벗자 시원시원하고 선부터 잘생긴 이목구비가 확 드러났다·
“잠시만요· 들어가겠습니다~ 어머니 안에 계시죠?”
그리고 손부채질을 하면서 인사하는 그 사람은··· 그 사람은·
테스타 이세진이다!
대상 아이돌 음원 1위 방금까지 그녀가 보던 인하트 페이지의 몇백만 뷰 동영상에서도 봤던 인물이 지금 같은 공간에 등장했다니·
“테····”
그러나 단어는 외마디 비명으로 끝났다·
현관으로 들어오는 게 한 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 안녕하세요···!”
길이 잘 든 누가 봐도 비싸 보이는 단정한 재질의 코트를 걸친 사람도 꾸벅 고개를 숙이며 들어오더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드러난 얼굴은····
‘어 헉·’
어마어마한 미인이었다·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볼 때도 그랬는데··· 현실로 보니 저게 사람인가 싶었다· 얼굴이 주먹만 한데 거기 눈코입이 또렷하게 선이 살아서 들어가 있다·
그렇다· 이쪽도 낯이 익다!
‘서 선아현!’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들어오는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을 한 사람·
강아지와 사과를 딴 온갖 귀여운 별명이 붙어 있는 사람이었으나 실물로 보니 오히려 하얗고 서늘하고 무심한 인상이다·
잘생겼단 뜻이다·
“갑자기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박문대·
‘바 박문대!!’
테스타가 셋! 실물로!
“아들!”
“어머니~ 집에 손님들이 많네요!”
중학생은 이 집주인인 봉사활동 단체의 팀장과 이세진이 따스하게 포옹하는 것을 보고 벼락같이 깨달았다·
이 집 아들이라는 게 테스타였어!
“아 별 건 아니지만··· 마침 또 제가 집 오는 길에 챙겨 온 게 있는데! 타이밍이 이렇게 또 맞네요·”
그 와중에 이세진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떠들면서(?) 웃으며 인사를 하고 심지어 자신이 챙겨온 물건들을 멤버들과 함께 나눠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그녀에게도 테스타의 사인이 들어간 앨범이 떨어진 것이다·
‘미친 개이득····’
심지어 전달하면서 한 멤버에게 악수까지 받았다·
“저 이거····”
“네 네네 네···· 엄마야· 저기 저 악수··· 한 번만· 혹시 되면!”
“아 네· 그럼요···!”
중학생은 손을 벌벌 떨면서 선아현과 악수한 후 거의 울 뻔했다·
‘손가락까지 잘생겼어 미친!’
감사합니다 어머님!
-야 미친미친 나 방금 ㅌ[스타 봄
잠시 후 집에 가는 길·
중학생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카톡에 접속하며 이 자리에 자신을 끌고 나와준 엄마에게 크게 효도하기로 마음먹었다!
* * *
“어떡해! 어머····”
이게 바로 힘을 숨긴 찐따 메타에서 힘을 보여줄 때 느끼는 사이다 맛인가·
나는 앨범 증정식이 끝난 후 끝까지 마지못해 길을 떠나는 이 집 손님들의 뒤통수를 보았다·
테스타 이세진이 이 집 아들로 등장하자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라던 사람들이 경악하고 열광하는 반응은 상당히··· 음 인상적이었다·
‘유명인으로 사는 게 이런 기분이었군·’
평소에 우리끼리만 있다 보니 별로 느낄 일이 없어서 말이다· 새삼 한 번 테스타 인지도를 실생활에서 느껴보니 나쁘진 않다·
그리고 사람들이 떠난 후·
이 서프라이즈의 주인공이 된 큰세진의 어머님은····
“얘가 진짜! 어휴!”
“으하핫!”
이놈 등짝을 때리셨다·
‘맞을 만했다·’
말도 안 하고 다짜고짜 손님 있는 집에 쳐들어오는 아들이라니·
물론 두들겨 맞으면서도 큰세진은 시원하게 쪼갰다·
때리는 사람도 사실 뿌듯해 보이긴 했으니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 이게 바로 깜짝 효도라고 할까!”
더 많은 매타작을 능수능란하게 피한 녀석은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며 거실에 편하게 주저앉았다·
나는 놈이 건네는 음료수를 받아들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어머님 체면 챙겨드리려고 한 거냐·”
“그것도 있고 사실 어머니 통해서 나한테 뭘 부탁하려다가 막히니까 괜히 여사님한테 반감 가지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서~ 으음 이번 기회에 좀 직접 막아볼 겸?”
오냐·
그 심리를 대충 알아서 협조해 준 것도 있긴 하지·
-그런데 나 집에 먼저 잠깐만 갔다 올게· 숙소에서 둘이 쉬고 있어요~
이러고 가려는 놈을 잡아다가 사정을 듣고 같이 동행한 거라 말이다·
테스타가 이렇게 뜬 지도 몇 년째·
이쯤 되니 돈 냄새든 인맥 냄새든 이득 보려는 사람이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이런 건 협조해야지·’
그룹은 하나가 X 되면 같이 타격을 입지 않는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큰세진은 의외로 멋쩍게 웃었다·
“으음 그래서 나 혼자 먼저 들어와도 괜찮았는데··· 고맙다 진짜!”
“뭘···!”
선아현이 헤헤 웃었다· 그리고 큰세진도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는 게 아주 낯이 간지러울 지경이다만····
‘뭐 좋은 일이지·’
나도 그냥 웃었다·
배웅을 끝내고 마침 돌아온 큰세진의 여사님이 본인 아들한테로 애정 어리게 눈을 흘겼다·
“놀러 온 친구들한테 일을 시켰네 그래! 그래도 얘가 참 우리 문대 씨랑 아현 씨를 좋아해· 다 커 가지곤 자기 친구 자랑을 엄마한테 얼마나 하는지····”
“아아니 여사님! 우정을 소중히 하는데 나이가 있나요!”
“어이구 또 말은 청산유수야!”
“우리 여사님 닮아서 그렇지!”
뭐 화목한 가정이군·
이후로도 별일 없이 재밌게 보냈다·
“매번 제가 얻어먹어서··· 어머님 것만큼 맛이 있진 않겠지만 한번 도전해 봤습니다·”
“어머 어머!”
명절 휴가를 뒤늦게 받아온 것답게 명절 음식도 몇 가지 싸 들고 왔는데 그걸 꺼내먹으면서 남의 집에 늘어져 있는 건 참 독특한 경험이었다·
예전 명절 휴가 때 배세진 집에서도 그랬지만 역시 익숙해지진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싫진 않았다·
-끄야아악?!
“으하하! 아 진작 줄걸!”
이윽고 큰세진의 여동생이 류청우의 사인 MD를 받아들고 괴성을 지르는 감상 동영상을 카톡으로 보내는 것까지 본 후·
“잠깐 아현이네 갔다 올게요!”
우리는 자리를 옮겨 아현이네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도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좀 다른 의미로·
“어서 와요~ 아현이 그리고 문대랑 세진이!”
팡·
꽃가루가 눈앞에 터졌다·
서울에 정원 딸린 집이라는 무지막지한 스펙의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당한 일이다·
눈앞에는 두근 두근하다는 얼굴의 선아현 부모님이 서 계신다·
“···감사합니다·”
이쪽은 깜짝 방문은 아니었으나 그래서인지 ‘이날을 위해 준비했다!’라는 느낌이 대놓고 전해져왔다·
‘선아현 가족답군·’
정말 감사하긴 하지만 그만큼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때 녀석의 부모님이 내게 다른 녀석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조심스럽게 건넨 말이 있었다·
“아현이랑 항상 잘 지내줘서 참 고마워···· 매번 보면 문대가 우리 아현이 챙겨줘서··· 언제 꼭 한번 뭐라도 해주고 싶었는데 기회가 너무 없어 가지고·”
“···아닙니다·”
“아니긴 가족도 그렇게 해주기 힘든데·”
아무래도 이 가족은 단순히 자식의 직장 동료가 아니라 진짜 고맙고 친한 누군가가 방문한다고 생각하고 준비한 것 같았다·
‘거참·’
나는 목 뒤를 눌렀다·
“오늘 자고 갈 거지?”
“음 폐가 안 된다면····”
“무슨 소리니· 당연히 좋지!”
그렇게 나는 방까지 하나 배정받으며 좋은 대접을 받게 됐다·
그렇다· 선아현 방에 끼어 자는 게 아니라··· 방을 지정해 주시더라고·
‘무슨 서울에 이런 집이 있냐·’
외제차에 얻어탈 때부터 짐작했지만 금수저는 확실한 모양이다·
그렇게 ‘내 방’에 짐을 푼 후 신난 선아현과 이동한 끝에····
“이쪽이 내 방이야···!”
녀석의 방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