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90화
테스타의 예능 합숙이 끝나는 날·
우리는 인형 사냥꾼 OST를 쾌속으로 납기 일에 맞춰 보낸 후 마지막 날은 예능답게 불태웠다·
“그리고 ‘지금의 테스타가 승리할 경우 즉각 촬영이 종료’··· 와아악! 우리가 이기면 바로 퇴근이야!”
“오오오오!”
정시 퇴근을 걸고 다양한 게임을 하며 보낸 것이다·
바로 ‘테스타를 이겨라!’
우리가 과거에 출연한 예능들에서 했던 게임의 최고 성적을 뛰어넘으면 퇴근이었다·
사이사이 의식주를 위한 PPL 게임도 했으나 이런 것도 뜨끈한 온천에 뛰어들어서 식재료가 적힌 볼을 찾는 등의 건전한 합동 게임으로 바뀌었다·
뭐··· 어떤 의미에서는 덜 건전하긴 하다만·
“이건··· 팬분들이 좋아하시겠지·”
“응·”
음 다른 의미로 수요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간에 전체 구성은 괜찮군·’
초반엔 고통받는 테스타의 모습을 보여주며 전통적인 버라이어티 예능으로 대중성으로 허들을 낮추고 후반엔 진지한 작곡에 돌입해 전문성을 보여주며 어필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다시 생각 없이 웃으며 볼 수 있게 마무리된 것이다·
“재밌었다!”
“후회 없었습니다~”
그렇게 초반의 ‘제작진 놈들을 가만두지 않겠다’ 식의 초췌함은 온데간데없이 테스타는 즐겁게 해가 지기 전에 퇴근에 성공했다·
-안 돼!
너무 일찍 끝났다며 절규하는 PD를 두고 퇴근하는 맛은 훌륭했다·
상쾌하게 끝났다·
‘완성도가 괜찮겠어·’
나는 적당히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며 현재 절찬리에 방영 중일 이번 예능으로 얻을 수익을 추리했다·
그런데 귀가 후·
‘인형 사냥꾼의 기존 OST들에 관한 평론을 찾아보고 싶다’라며 인터넷에 접속했던 김래빈이 먼저 이번 예능에 대한 반응을 우연히 접하게 된다·
줄줄 올라오는 테스타 예능에 관한 인기 글들로 말이다·
다만 그 글들을 클릭한 녀석은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
우리 예능 관계자가 절찬리에 욕을 먹고 있다니!
“···그러니까 제작진분들과 CM송 담당자분이 곤혹스러울 것 같다 그거지·”
“바로 그렇습니다!”
김래빈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래·”
“····”
알았다니까·
“아··· 안 놀라셨습니까?”
“놀랍지·”
거짓말이다·
‘당연한 일에 왜 놀라겠냐·’
애초에 류서린 작가 특기가 욕할 놈 만들어서 시청자가 과몰입하게 만드는 거다·
아마 아주 오묘하게 구도를 잡아둬서 욕 좀 먹고 그걸 다 화제성을 소화하려고 들었겠지·
일부러 자초한 일이란 뜻이다·
“편집에서 싹 걷어낼 수도 있는데 안 하신 걸 보면 다 생각이 있는 거겠지·”
“하지만····”
그래도 김래빈의 표정은 그다지 밝아지지 않았다· 마음에 걸리나 보다·
그렇다면야·
“한번 확인해 볼까·”
“···! 예!”
나는 녀석의 스마트폰을 받아들었다·
그래도 확인은 한번 해보는 시늉을 해야 이 녀석도 안심할 테니까·
‘보는 김에 이번 예능 화제성도 한번 체크하고·’
나는 느긋하게 화면을 굴렸다·
어차피 예능 방영이 계속되면서 수습될 여론이다· 제작진도 본인들이 욕먹는 거니 분명 선 지켜서 적당히····
-사형
-제작진 월급도 게임으로 타가라 어어 못 이기면 니 탓이니까 공짜로 근무하고
-언제부터 출연진을 고문하는 게 예능이었음?
-보다가 스마트폰 부쉈다 시청 중 재해니까 빡치게 만든 제작진이 저한테 천만 원 보상하세요 암튼 하셈
“····”
잠깐·
‘이게 뭐냐·’
개판 났다·
나는 그제야 김래빈이 예상치 못하게 아는 사람들이 욕먹는 것을 보고 마음 여리게 깜짝 놀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불지옥이었다·
-와 근데 테스타 탓까지 하네?ㅋㅋㅋ 그래 유진이가 창작이 고생에서 나온다고 한 게 예능 찍으면서 감금 협박에 시달리고 싶다는 뜻··· 이겠냐?!
-제 생각에 예능은 제작진의 고생에서 나오는 것 같음 그러니까 님들도 생고구마만 먹으면서 편집하세요
“····”
차갑다!
제작진과 PPL 담당자는 산 채로 화형당하다시피 하며 팬덤의 몰매를 맞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나는 약간 당황해서 지금 방영된 예능 1 2화들을 돌려보았다·
그러나····
‘수위 조절은 괜찮은데·’
자고로 예능은 노잼 유죄였다·
재미없고 출연진이 고통받으면 보기 괴롭지만 재미있는데 출연진이 고통받고 있으면 그냥 개꿀잼 컨텐츠가 되는 거 아니겠는가·
테스타가 밥을 잘 못 먹는 등 눈살이 찌푸려질 만한 부분도 적당히 자르고 테스타의 인터뷰나 시골 개와 매치시켜 놓아서 그냥 웃기고 불쌍해 보였다·
‘우리야 당사자고 협의가 안 돼서 빡쳤던 거지····’
솔직히 보는 입장에선 재밌었다· 이 정도면 시청자층에서도 충분히 쉴드를 받을 만한 것 같은데·
제작진도 거기까지 생각해서 만들었을 테고 말이다·
‘뭐냐·’
나는 다시 시청자 반응으로 돌아와서 좀 더 넓게 관련 글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결국 이유를 알았다·
[새벽 3시까지 이상한 피드백 받으면서 작곡한 아이돌·jpg]
딱 테스타의 첫 CM송 피드백 부분만 자른 이 컷본·
커뮤니티 캡쳐글을 넘어서 위튜브 인하트까지 온갖 업자들에게 쇼츠 비디오로 편집되어 널리 퍼지는 이거·
반응이 아주··· 좋더라고·
-처음 준 거랑 똑같은 데 진작에 이렇게 주지 뭐했냐고?ㅋㅋㅋㅋ 뚫린 입이라고 막 지껄이네ㅋㅋ
-와 숨이 막힘
-이거 무슨 프로그램이에요? 최근 거예요? 테스타 작년 대상 받고 음원 1위 아님? 최근 폼 미쳤는데 저럴 수가 있나?ㄷㄷㄷ
└작곡하는 게 테스타인줄 몰랐대요ㅋㅋ하ㅠ
└와··· 더 싫다
“····”
그렇다·
네티즌들이 신나게 팬들의 분노에 맞장구를 쳐주고 있다·
흔히 보이는 ‘아 아이돌 팬들 유난 떠네ㅋ’ 같은 일반 대중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보통은 ‘불편해? 너희 때문에 예능이 노잼되는 거야’라며 반대 각을 세우는데 말이다·
이유인즉····
-왜 내가 일할 때 모습이 아이돌 예능에 나오냐···
-아 X발 이래서 이래라저래라 원래가 나았다 말 바꾸는 새끼들 다 작두로 손모가지를 잘라야됨
-저거 테스타인 거 끝까지 몰랐음? 몰랐으면 계속 저렇게 피드백 X 같이 줬겠네ㅋㅋㅋ 장담한다
└경험담임?
└응···
└나도 그래
└서로 한번 토닥여줘라
“····”
‘다들 겪어본 일이다 이거군····’
직장인 PTSD였다·
졸지에 너도나도 할 거 없이 사회생활 해본 사람들은 다 공감할 수 있는 분노 유발 컨텐츠가 나온 것이다·
심지어 이 사람들은 팬들보다 오히려 더 테스타 입장에 과몰입하며 해당 CM송의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문화까지 미친 듯이 까고 있었다·
-거기 실적보다 정치질 잘해야 승진한다고 직장인 앱에서 말 나오던데 그 형들 말 피해망상 아니었네ㅋ
-아ㅋㅋㅋ내 돈 받으려면 내 스트레스도 받아줘야 한다고ㅋㅋ
└사실 내 돈도 아니고 회사 돈이지만 암튼 그럼ㅋ
-저런 인간이 담당자라 오렌소다 인하트 바이럴도 그렇게 감 없이 하는 거였구나?ㅋㅋㅋㅋ이제야 이해가 되네
-예능에 PPL 넣는데도 저 지랄이면 저 사람 밑에서 일하는 사람은 죽고 싶을 듯
이러니 팬들이 자제할 필요가 없다·
소식을 접한 모든 사람이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PPL 담당자를 금방이라도 캠프파이어 한복판에 산제물로 던져버릴 것처럼 개빡쳐 있었다·
심지어 이건 ‘테스타도 잘못 있지 않냐’ 같은 역풍이 불 염려도 없었다·
CM송 담당자는 테스타 때문에 욕먹는 게 아니라 그냥 X신 짓을 해서 욕을 처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 인간은 작곡한 게 테스타인 줄도 몰랐지·’
그냥···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통렬히 반성하고 있겠지 뭐·
게다가 PPL 넣은 다른 그룹들은 오히려 이번 어그로로 프로그램 시청률과 주목도가 올라가면서 이득을 보고 있었다·
덕분에 딱히 PPL 쪽 계약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문대문대 우리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거지?”
“응·”
우리는 팝콘이나 먹기로 했다·
과연 이 판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리고 그다음 주·
놀랍게도 묘수가 나온다·
‘오·’
고심 끝에 제작진들은 선택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논란이 된 오렌소다 CM송 담당자에게 모든 어그로를 토스하기로·
물론 대놓고 ‘이 새끼가 가장 잘못했으니 이 새끼를 욕해주세요’ 같은 소리를 넣진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광고주 관계자 아닌가·
그럼 어떻게 했는가?
-와 이 곡 정말 좋네요! 수정 요청 드리고 싶은 부분은 없지만 방영하실 때 후렴구 위주로 사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기프티콘 첨부)
바로··· 다른 CM송 담당자의 인격 있는 피드백을 보여줬다·
‘오·’
비교용으로 던져준 것이다·
게다가 이 사람에겐 해당 CM송을 만든 익명 작곡가의 유명한 정체를 밝히고 리액션을 따는 재미까지 챙겼다·
-그거 아세요? 사실··· 작곡해 주신 분들이 테스타세요·
-···네?
-아이돌 테스타요·
-···?! 엄마야 나 세상에 ([email protected]#%!)
흐뭇하고 재밌지 않은가·
그럴 수 있는 건 이 담당자가 상식적이고 인격적인 피드백을 해서라는 걸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이다·
-원래 이런 그림이 정상인데··
-와 훈훈하고 괜히 내가 자랑스럽네ㅋㅋ
-그 이상한 피드백 주던 담당자 보고 배워야함 진짜
그렇게 대비효과를 통해 오렌소다 CM송 담당자에게 모든 어그로가 쏠리며 제작진만은 간신히 분노한 직장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모양이었다·
게다가 테스타가 무전기로 제작진에게 한 방 먹이는 내용도 방영되어서 균형을 맞췄다·
-이거지
-하··· 인간 사이다 테스타가 탄산수 광고하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오렌소다가 탄산수네ㅅㅂ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딱 보니 감질나게 다음 화로 넘겼어야 할 내용까지 다 끌고 와서 시원하게 엔딩까지 보여줬더라·
거기에 예고편도 팬들의 안심을 노리고 삽입했다·
테스타가 쾌적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장비로 작업하는 내용을 최대한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욱여넣은 것이다·
-전부 게임 때문에 발생한 우연입니다!ㅜㅜ 좋은 환경도 있었어요!
그렇게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제작진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이 모든 신중한 시도들은 그럭저럭 통했다·
-문댕댕의 아기호랑이 기지개 번쩍번쩍 율동 보고 가세요 당신의 60초가 사라집니다 (영상)
-얘들아 류청우는 닭도 잘 고른다··· 이 남자 대체 못 하는 게 뭐임
해당 회차가 방영되며 팬들은 ‘일단 두고 보겠음’이란 자세로 다시 예능을 즐기는 모양새가 되었다·
간신히 분위기 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제작진 나름대로도 생각이 깊어졌던 모양이다·
“박문대· 저기··· 문자가 왔는데·”
“예?”
며칠 후 배세진이 PD에게 온 문자를 하나 보여줬다·
-한 번 더 제가 따로 감사 인사 남기고 싶어서 이렇게 문자 드려봅니다·
이어지는 장문의 문자는 테스타가 예능에 진지하게 임하고 적당히 넘기지 않아서 고맙다는 이야기였다·
이전에 면담에서 보였던 상황을 모면하려던 능청 대신 제작진의 대표로서 다소 진솔하게 털어놓으려는 말투가 바로 보였다·
그래서 배세진은 더 당황한 모양이다·
“···왜 이걸 나한테 보냈는지 모르겠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긴·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스마트폰을 돌려주었다·
“형이 면담을 걸어준 덕분에 지금 여론을 수습할 기회가 생겼다는 걸 깨달으신 거죠·”
“···!”
그 계기가 없었더라면 사실 제작진도 테스타의 환경을 그렇게 신경 쓰며 개선하려고 들지 않았을 것이다·
‘눈치 보면서 적당히 좀 나아지는 정도로 그쳤을 것 같은데·’
그건 영상에서도 드러났을 거고 당연히 ‘진짜 처우가 좋은 게 아니라 욕먹으니 편집으로 수 쓴 거다’라며 여론 수습은 더 힘들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제 피부로 깨달은 것이다·
그 면담이 단순히 출연진이 자신의 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한 게 아니라 좀 더 거시적 관점에서 꺼낸 의견이었다는 걸 말이다·
“이제 제작진도 진짜 형한테 도움을 받은 거라고 인정하는 것 같은데요·”
“···그래·”
배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을 받아들였다·
그 눈에 스친 것은 분명 뿌듯함이었다·
녀석은 그 문자를 지우지 않았고 후에 나름대로 잘 답장한 것 같았다·
‘그럼 됐지 뭐·’
예능 목적도 제대로 달성했으니까·
‘쟤네도 저렇게 고통받네’하는 친근감과 ‘그런데 프로듀싱 열심히 잘하네’하는 전문적 매력·
다 건진 것이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쭉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 누웠다·
‘남은 건 <인형 사냥꾼> 시즌 2가 얼마나 잘 뽑혔냐에 달렸군····’
그거야 방영이 되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방영에 맞춰서 우리 예능의 OST 작곡 분량을 파트 2로 빼서 뒤로 미루기까지 했으니 아직 몇 주는 더 기다려야 알 수 있는 일이고 말이다·
“나는 후회 없이 연기했어·”
“Oh··· 그러면 충분해요·”
이제 테스타는 투어에 집중하면서 우리 예능 후반부 회차들과 <인형 사냥꾼> 시즌 2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겨울이 끝나며 초봄이 왔다·
그리고 우리가 이 두 소식보다 먼저 접하게 된 것이 있는데····
놀랍지만 휴가 소식이다·
“우리 명절에 하루도 못 쉬었으니까 지금이라도 좀 쉬자는 말이 나와서·”
“오오오·”
바로 테스타의 뒤늦은 설연휴 기념 휴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