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88화
제작진은 그 후로도 현 상황과 앞으로의 촬영 계획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했다·
“맡은 일 당번은 돌아가면서 하실 거고요· 내일부터는 지역 특산물이나 현지 맛집 음식도 공수해서····”
그들은 방어적으로 나오지 않았고 정성스러웠다·
게다가 결정타는 제작진들이 가편집하던 1화 영상까지 공개하면서 나왔다·
‘대체 무슨 맥락으로 이 극한의 작곡 환경이 나온 건지 보여드리겠다’라는 말에 배세진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 강원도 산골까지 용케 옮겨진 편집 장비들의 모니터가 러프한 자막이 형태만 들어간 영상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는데····
상상도 못 한 내용이 나온다·
[테스타에게 물어봤습니다·]
[위대한 창작은 에서 나온다·]
“···??”
[김래빈 : 예! 저는 <영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몇 주 전 시상식 퇴장 중에 비하인드 제작진이라며 접촉했던 사람들과 지나가듯 짧게 했던 인터뷰였다!
“자 잠깐만요· 저분들····”
“예· 사실 전부 저희 제작진이었고요·”
“····”
테스타가 각자 가진 ‘창작’에 관한 소견들이 빠르게 나왔다·
[위대한 창작은 <수많은 시도>에서 나온다·]
[이세진 : 뭐든 숙련되는 게 결국 중요하니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수많은 시도·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참 이세진답다며 흘려들었던 말이었으나 이렇게 들으니····
‘···설마?’
배세진은 침을 삼켰다·
화면에서 자신의 답 ‘치열한 고민’부터 선아현의 ‘시간’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마지막·
차유진이 해맑은 얼굴로 해당 문구를 채웠다·
[위대한 창작은 <고생>에서 나온다·]
[차유진 : 저 맞아요?]
그는··· 한국식 속담 맞추기로 착각한 것이다!
그리고 유유히 형들을 따라 신나게 시상식장 레드카펫을 떠났다·
[이 작가 : 아 안 돼·]
[박 작가 : 으아악 유진 씨!!]
[PD : ㅋ]
[PD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떠오르는 거대한 영화용 자막·
[테스타의 운명]
[테스타가 결정했다!]
“····”
“····”
“여기서··· 나온 건가요·”
“넵·”
배세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걸 토대로 게임이나 역할을 구성했죠····”
지금 이건··· 테스타의 답변으로 제시한 키워드를 끼워 맞추어 만든 환경이던 것이다·
“사실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었는데 게임 결과에 따라서 환경이 휙휙 바뀔 예정이었어요·”
“····”
“그런데 또 하필 게임 운이 엄청 안 좋게 돌아가서··· 결과가 극단적으로 나와 가지고요·”
우연히 극단적인 상황? 웃길 수밖에 없다·
사실 밥 공급이 골고루 안 되는 상황은 제작진들끼리도 살짝 의견이 갈리긴 했지만 대부분은 어차피 하루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많은 예능에서 식사를 걸고 게임을 하고 실패하면 아예 주지 않는 경우도 잦으니까·
게다가 테스타가 워낙 유쾌하게 이겨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알려주지 않은 게 출연진을 얼마나 불안하게 할지는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그림 일부러 뽑기도 힘든데 자연스럽게 나와줘서··· 저희 욕심이 너무 컸나 봐요· 진짜 죄송해요· 하····”
“아니···· 그 예·”
이러니 결국 배세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작진이 순순히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니 뭐라고 더 이야기가 어려웠다·
사실 몇 가지 그가 말하고 싶던 핵심 맹점과 어긋난 답변들도 있었으나····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
상대에게도 고충과 고뇌 여러 가지 사정이 있다는 걸 실감하고 나니 배세진도 그들의 행동 원리를 너무 더 꼬치꼬치 캐묻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혼자만이었다면 그래도 했을지 모르나 그는 지금 팀 컨텐츠를 촬영 중이었으니까·
‘···그래!’
여기서 마무리하고 ‘대화가 잘 끝났다’라는 소식을 가지고 멤버들에게 돌아가야겠다·
그가 그렇게 결심했을 때였다·
“저기요·”
누군가 불쑥 손을 들었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
그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경호원처럼 뒤에 서 있던 박문대였다·
“저희가 만든 CM송은 어떻게 됐나요·”
“예?”
“래빈이가 참여를 안 했잖아요·”
이 이렇게 그냥 때려 박는다고?
불도저처럼 제작진을 방문한 배세진마저 약간 당황한 찰나·
박문대가 여기서 살짝 커브를 틀었다·
“래빈이가 작곡하길 기대했는데 명단에 없다고 광고주들이 고소하면 어쩌지 하면서 어제 뜬눈으로 밤을 보냈거든요····”
“커흡!”
무표정으로 슬쩍 고개를 숙이는데 어쩐지··· 체념한 듯 허탈해 보였다·
“저희 고소당하는 거 아니죠?”
“그럼요!”
‘지 진지하긴 하지만··· 심각하지는 않잖아·’
분위기가 무거워지진 않았으나 이제 제작진이 대답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배세진은 입을 벌리고 박문대가 제작진을 캐내는 것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 * *
지금까지 나는 배세진에게 열심히 상황을 해명하는 제작진을 쭉 살펴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가 괜찮아졌다·
‘이럴 줄 알았지·’
배세진은 다른 놈 사정에 공감이 가는 순간부터 전투력이 떨어지더라고·
제작진들이 하다 보니 좀 선 넘은 것 같긴 하지만 우리가 워낙 잘 받아치고 맥여주니 못 끊고 액셀러레이터 밟은 모양이라고 받아들인 듯했다·
출연진이 예상보다 더 고생하는 거야 ‘원래 우리 예능 출연하면 개고생 국룰 아니냐’라는 무의식이 넘긴 것 같고·
‘신났던 거지·’
대충 판 돌아가는 꼴은 알겠다·
하지만 제작진이 이렇게까지 협조적으로 나오면서 가편집한 1화까지 내놓는 속셈이 뭔지도 알았다·
나는 내심 턱을 문질렀다·
‘이거··· 먼저 자기들끼리도 말이 나왔었군·’
우리 너무 나간 거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다가 배세진에게 연락이 오니 ‘앗 뜨거라’ 하고 제 발 저려서 예상 답안을 준비한 게 뻔히 보였다·
아까 PD 등짝 때리는 것 좀 봐라·
‘PD를 분위기용 제물로 바치려고 작정했던 거지·’
뭐 그래서 분위기는 좋게 풀렸고 사과도 충분히 받기는 했다만···· 자기들이 대답하고 싶은 것만 대답하면 되나·
‘CM송 어쨌냐고·’
이 팀 공식 프로듀싱 멤버를 제외하고 만든 거 피드백으로 장난친 거 광고주한테 말했냐고·
이건 팀 커리어 문제라 배세진의 지적 중 가장 심각한 파트였는데 이거 답변만 살살 피해 가더라?
물론 저 PD든 류서린이든 자본주의를 물로 보는 사람들은 아니다· 도리어 자본주의 맛을 톡톡히 보는 타입이지·
대책이야 잘 세워뒀을 것이다·
근데 이것만은 출연진들한테 아직 말하고 싶지 않은 거다·
‘촬영 진행하면서 저절로 해소되게 해놨다든가 하는 거지·’
그래서 이 화제를 최대한 피한 거라는 게 내 추측이다· 촬영 그림이 부자연스러워질까 봐·
하지만 여기서 ‘아이고 그래· 감안하자· 제작진이 고생 많지·’ 이러면서 봐주면 어떻게 되냐?
도리어 우리가 봐준 게 아니게 된다·
제작진 자기들이 미리 잘 준비해서 출연진 항의를 성공적으로 능수능란하게 다뤘다고 생각하겠지·
‘그건 안 되지·’
그래서 대놓고 찌른 것이다·
“아··· 그거요·”
그리고 결국 피하지 못하게 된 제작진이 토로한 진실은····
“사실 CM송 말인데··· 광고주분들은 이걸 테스타가 작곡하는지 몰랐어요·”
“····”
“····”
“예?”
“애초에 저희 프로그램에서 PPL할 때 BGM으로 쓰려고 했던 거거든요·”
그러니까 PPL에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자체 CM송이었다··· 이 말이다·
기업의 명운이 달린 광고 마케팅의 절정이 아니라!
“그 그럼 CM송 경매는요?”
“사실 PPL 비중을 놓고 경매를 한 거죠· KPOP 대상 아이돌 테스타분들 나오시는데 얼마까지 진심인지 성의를 보여줄 거냐 뭐 그런 거요·”
테스타가 직접 작곡한 CM송까지는 광고주들도 따라올 줄 몰랐다는 거다·
고개를 돌리니 배세진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이걸··· 사기꾼 새끼들이라고 해야 하나····’
잠깐만·
나는 퍼뜩 드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저희가 지금까지 만든 곡들은···?”
“그냥 저희 외주 담당자들이 만드는 줄 아셨겠죠?”
그렇다면·
우리가 첫 곡에서 받은 그 개빡치는 미친 피드백들은 설마·
“네· 정말로 광고 기업 측 담당자분이 그렇게 주셨던 건데····”
“····”
“아마 누군지 모르는 외주 관계자인줄 알고 주셨겠죠?”
맙소사·
그 개소리가 난무하는 피드백들이··· 신인 무명 작곡가의 현실이라 이거군·
‘X발····’
사회고발 다큐가 따로 없다·
나는 양 눈을 거칠 게 눌렀다·
“···PPL 넣은 회사 쪽에서 이미지 망가진다고 따지지 않을까요·”
그러나 류서린은 태연했다·
“뭐··· PPL 제품 비판도 아니고 회사 비판도 아니고 담당자 때문에 자연 발생하는 여론까지 저희가 책임져줄 순 없죠·”
“···아 예·”
‘그러게 누가 그런 꼴통 담당자 쓰래?’로 요약할 수 있겠다·
“아무튼 그래서 이렇게 됐어요·”
류서린이 약간 머뭇거리다가 말을 덧붙였다·
“어차피 하루 만에 열악한 환경에서 만든 거니까 제일 좋은 환경에서 만드는 것보다 오히려 결과물 평가에서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했고요·”
“····”
“곡이 별로라고 욕하고 싶어도 ‘저 환경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같은 반박도 가능할 거고·”
곡이 잘 빠지면 테스타 덕 못 되면 제작진 덕이라는 것이다·
‘부담을 줄이려고 나름대로 수 쓰긴 했군·’
“그리고 평이 좋으면··· ‘우와 테스타라는 걸 몰라도 메인 프로듀싱 멤버가 없어도 우리가 만든 곡이 호평 받네!’ 하는 자부심도 생기시겠고요·”
그리고 차근차근 시청자가 작곡 과정에 익숙해지게 하다가 진짜배기 작곡 컨텐츠로 포텐을 터트리는 것이다·
바로····
“<인형 사냥꾼> OST요·”
“···!”
그게 사실 이 프로그램 진짜 메인 광고주님이고 메인 컨텐츠였다·
배세진이 동공을 떨었다·
“하 하지만· 제가 합류하기 직전에 드라마 제작사에서 ‘재밌어 보인다’라면서 즉석에서 PPL이 결정됐는데····”
“세진 씨 낚으려고 연기한 거예요·”
“····”
배세진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배신감도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웃기긴 했겠어·’
나는 이 모든 반전이 공개되는 순간을 떠올리다가 짧게 인정했다·
* * *
“메인 컨텐츠는 진짜 제대로 된 환경에서 작곡하실 수 있을 거예요!”
“맞아요! 걱정마셔요·”
“···옙·”
그렇게 제작진과의 면담은 잘 마무리되었고 우리는 제작진의 거처를 나와 산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괜찮았다·’
이 사람들의 의도는 확실히 알았고 사과도 확실히 받긴 했다·
심지어 PD가 ‘담배 피우러 나가려고 했다’라며 배웅을 나오면서 이런 말을 약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테스타 분들이 또 워낙 잘나가시다 보니··· 우리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급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정말 싫거나 곤란하면 얘기하겠지~’하면서요·”
“····”
능수능란한 예능인과 1군 아이돌의 특징들을 입맛대로 취사선택해서 테스타에 대한 뇌 내 공식을 새우셨다 이 말이군·
반성했다니 다행이다·
나는 PD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죠?”
“그럼 내일부터 제가 밥해도 되는 거죠·”
“···그래도 게임은 하셔야·”
나는 다시 PD를 아무 말 없이 쳐다보았고 곧 그는 성토했다·
“아 부엌 담당 뽑으실 때까지 계속 재도전하게 해드릴게요!”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짝짝짝·
그렇게 그 대화도 마무리되었다·
PD가 마지막까지 좀 구질구질하게 굴긴 했다만·
“···CM송 비밀은 러뷰어 온라인 청음회 이후에 다 공개하려고 했었는데···· 혹시 그때까지만 다른 멤버 분들에게는 비밀로 좀·”
“안 되는데요·”
“····”
“제가 멤버들에겐 굉장히 솔직한 사람이거든요·”
“잘 알죠····”
어림도 없지·
“알아도 놀라는 척 잘할 테니까 걱정마세요·”
“···!”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제작진을 돌아보았다·
“테스타를 좀 믿어주시죠·”
“···그럼요· 저희 제작진 일동이 또 우리 예능 천재 테스타 엄청 믿죠!”
입은 살아가지고·
어쨌든 몰래 문을 열고 지켜보던 제작진들도 작게 웃었고 우리도 웃으며 PD와 인사한 발을 옮겼다·
“잘 들어가셔요!”
뒷맛은 나쁘지 않았다·
도착한 테스타의 숙소에서도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긴 했다만 말이다·
“아 얘들아· 이야기 잘 됐어?”
“너··· 듣고 놀라지 마·”
“···??”
반전에 반전을 들으며 몸서리를 치는 멤버들과 내일이면 호캉스 지옥에서 탈출이라는 말에 의지를 다지는 김래빈까지·
그 난리통 이후에야 잠자리에 드니 어느새 새벽이었다·
“····”
그리고 배세진은 가만히 누워 있다가 내가 자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박문대·”
“예·”
“넌··· 대단하더라·”
음?
“그러니까 듣고 싶은 대답을 끌어내지만 대화 분위기를 망가트리지 않는 거 말이야·”
뭔가 했다·
“다 잔재주죠 뭐·”
이렇게 입 터는 재주 부리는 새끼들은 보통 성격이 피곤하거든· 다 장단점이 있다·
게다가 말이다·
“애초에 형이 말하겠다고 결정 안 했으면 없었을 일인데 무슨 소리세요·”
“···!”
이놈이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아마 이 팀 대부분의 멤버 성향상 그냥 참다가 어떻게든 촬영을 잘 마무리 지었을 것이다·
‘근데 좀 진절머리가 난 상태가 되는 거지·’
그럼 어떻게 됐겠는가?
그렇게 계속 가다 보면··· 어쩌면 다음에는 정말로 이 제작진과 틀어지게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녀석의 융통성 없는 윤리적 기질은 팀에 색다르게 기여했다·
충분히·
“형이 할 말을 차분하게 잘 해줘서 다행이었던 거죠·”
“···고마워·”
배세진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약간 밝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오늘 이야기하길 잘한 것 같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Me too·”
“····”
“···차유진 넌 왜 안 자고 있냐·”
“여기 세 명 방이에요· 제 맘이에요·”
“하하!”
그날 배세진은 서너 시간뿐인데도 아주 달고 편안하게 잠을 잤다고 한다·
* * *
그리고 얼마 후·
테스타의 개고생 산장 감금이 전파를 타는 가운데 그들은 드디어 ‘본격적인’ 작곡에 들어가게 된다·
<인형 사냥꾼> 시즌 2의 OST·
눈으로 뒤덮인 심상 세계·
정이솔의 테마곡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