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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동굴·
룬 리그 개최협회 텔레포트 센터·
이곳은 룬 리그에서 벌어지는 모든 텔레포트를 관리하는 기관실이다·
시작의 동굴에 있던 대표들을 언더링의 호수숲으로 텔레포트하거나, 탈락한 대표들을 다시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역할을 여기서 수행했다·
어느 세력이 통제하느냐에 따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에, 중립지대의 일원들이 텔레포트 작업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만큼·
털썩·
쿵·
기습에는 취약했다·
이곳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줄줄이 쓰러졌고, 유일하게 멀쩡히 서 있는 한 남자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마법진을 조작하고 있었다·
“빨리 빨리 움직이거라·”
그의 목 뒤에 서슬 퍼런 유리 조각을 대고 있는 건 결사의 구원자, 시엘·
정체를 발각당해 네크로맨서들에게 쫓기던 그녀는 이곳으로 들어와 텔레포트 센터를 장악했다·
“한눈팔면 죽이겠다·”
이미 한바탕 전투가 벌어졌는지, 센터 곳곳에 시엘이 소환한 ‘모래 개’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현재 조작 중인 텔레포트 장치 외에 다른 텔레포트 장치들은 모두 망가져 있었는데, 장치 위에 유리로 이루어진 커다란 조각이 깊게 박혀 있었다·
지직!
직!
중앙 마나 스크린에는 커다란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장치에 중대한 손상 발생· 텔레포트 강제 중단·>
<전송 도중 강제 중지된 텔레포트 수 : 5개>
<전송 사전 차단된 텔레포트 수 : 1개>
끄흡!
흑!
목에 유리칼이 들어온 남자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마지막 텔레포트 마법진을 조작하고 있었다·
시엘은 남자를 압박하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제 히에로미르가 무슨 짓을 벌일지는 확실해졌다·’
우선 구원자 히에로미르의 목적은 룬 리그를 망치는 것 이전에, 라우라를 처단했던 ‘시몬 폴렌티아’를 잡아 죽여 복수하는 것·
이를 위해 호수숲에 본인이 직접 등장하는 등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히에로미르는 시엘처럼 공간을 조종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 힘을 활용해 언더링의 호수숲을 자신의 세계로 전이시키려는 게 목적일 것이다·
현재 룬 리그 5일 차·
시몬 폴렌티아는 룬 리그 끝까지 살아남을 테고, 지금 그가 있는 장소를 통째로 전이시키는 것만이 방해꾼들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한 수였다·
‘···그건 그렇고, 일이 꼬일대로 꼬였구나·’
시엘이 눈을 감았다·
카이 로가 그녀에게 내린 명령은 히에로미르를 막을 것, 막지 못하면 죽일 것·
이를 위해 직접 시작의 동굴에 잠입했지만, 지금은 임무를 수행하려다 역으로 자신이 살해당할 판이다· 이 동굴에는 신해의 성녀도 있고, 키젠의 부총장도 있다·
더욱이 그 여자, 심판의 성녀 다나·
소란을 일으켰으니 그녀가 자신을 찾아내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러니, 일단은 도망쳐야 했다·
“똑바로 좌표를 언더링의 호수숲으로 맞춰라! 허튼 수를 부리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 그러고 있습니다요!”
이것은 마치 달리는 마차 위에 올라타는 것·
늦지 않게 언더링의 호수숲에 도착하면 히에로미르의 능력이 발동되어 이 끔찍한 시작의 동굴에서 무사히 도망칠 수 있다· 그곳에서 히에로미르를 만나게 되겠지만 설마 누이를 죽이기라도 하겠는가·
위잉!
위잉!
그때 텔레포트 센터에 연신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마법진을 조작하던 남자가 덜덜 떨리는 눈으로 마나 스크린을 돌아보았다·
“호, 호수숲에 이질적인 공간의 비틀림이 감지됐습니다! 이대로 언더링의 호수숲으로 들어갔다간···!”
그녀가 입가를 쭈욱 찢었다·
역시·
예상대로다·
“상관없느니라! 계속해!”
남자가 정신없이 조작 마법진 위에 둔 손을 놀렸고·
우우웅!
마침내 하나 남은 텔레포트 마법진의 전원이 켜지며 작동되었다·
그녀는 눈으로 텔레포트 마법진에 새겨진 좌표를 확인했다· 그녀 또한 공간적 지식이 있는 구원자였고, 좌표는 잘못된 게 없어 보인다·
퍼억!
손등으로 쳐서 남자를 기절시킨 뒤 다급히 중앙의 텔레포트 마법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언더링의 호수숲으로 이동합니다·>
우우웅!
마법진으로부터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나오며 그녀의 두 발이 붕 떠올랐다·
‘살았다·’
온몸에 안도감이 퍼진다·
카이 로의 명령을 수행하진 못했지만 이미 임무는 실패· 차후에 추궁당하겠지만 여기서 죽는 것보다는 낫다·
그녀가 비로소 안도하며 마음을 놓으려는 순간·
파지지직!
마나 스파크가 격렬하게 튀어올랐다· 갑자기 붕 떠오른 발밑이 다시 바닥에 닿았다·
그녀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아까 기절한 남자를 보았다·
“네놈이···!”
그러다 퍼뜩 냉정을 되찾았다·
아니다·
죽음을 앞두고 수작을 부릴 정도로 담력이 큰 남자는 아니었다· 그녀가 급히 마법진을 살폈고·
“!”
어느새 마법진 곳곳에 촛농이 덮여 있었다·
그것이 룬어와 마나 회로를 덮어서 망가뜨리고 있었다·
[안 되지, 안 돼·]
샤아아아아아아아-!
어느새 텔레포트 센터 사방에 불붙은 촛대가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마치 악마를 소환할 것 같은 끔찍한 분위기·
당황한 시엘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바닥의 칠흑 마법진으로부터 호박탈을 쓰고 까마귀 망토를 어깨에 두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젠의 까마귀!’
[도망치려고?]
스으·
그가 팔을 뻗었다·
[너희들의 의도대로 놀아나지는 않을 거다· 우린 키젠이다·]
촛농이 텔레포트 마법진 전체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시엘이 기겁하며 자리에 쪼그려 앉아 촛농을 손으로 덜어내 막으려 했지만 홍수처럼 퍼져 나가서 막을 수가 없었다·
점점 더 텔레포트 마법진이 촛농으로 덮여갔다· 그 모습이 도화선이 타들어가는 자신의 목숨 같아 보였기에 시엘은 비명처럼 소리 질렀다·
“네이노오오오오옴!”
우우웅-·
마침내 텔레포트 마법진의 전원이 꺼져 버렸다·
구원자 시엘은 ‘시작의 동굴’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 * *
“···?”
한편, 언더링의 호수숲에 있던 시몬은 현재 한 가지 문제에 당면해 있었다·
레테와의 결전에서 승리했고, 레테가 탈락하며 텔레포트 마법진이 발동되었다· 그녀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
이제 그녀가 호수숲 밖으로 소환될테고, 시몬은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왜?’
잘 작동하던 텔레포트가 갑자기 취소되어 버렸다·
힘이 빠져 쓰러지려는 레테를 시몬이 다가와 받아주었다· 혼돈에 맞아서 잠깐 정신을 잃었는지 시몬의 품에서 색색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탈락했는데 왜 텔레포트 마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걸까·
‘마법진에 문제가 생겼나?’
시몬이 의아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우웅!
웅!
품에서 진동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시몬은 다급히 품을 뒤적거리다가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비상 연락망!’
룬 리그에서 통신 수정구는 쓸 수 없지만, 시몬과 레테는 통신 수정구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오로지 비상사태에서만 작동되는 물건, 레테는 정신을 잃었지만 그녀 쪽의 통신 수정구도 울리고 있었다·
시몬은 자신의 것을 들고 작동시켰다· 치직! 칙! 하고 잠시 잡음이 울려 퍼지나 싶더니·
-시몬 학생회장, 들리나요?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제인 교수님!”
-아무래도 결사가 룬 리그 마지막까지 추한 발악을 포기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목소리가 조금씩 끊기고 있었지만 제인의 음성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룬 리그가 끝난 직후라 피곤하겠지만, 결사가 공격해 왔을 때의 플랜대로 움직여 줘야겠습니다· 만약 공간 전이가 정말로 시작된다면 우리가····
시몬이 그녀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데·
뚝·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거짓말처럼 끊겼다·
동시에 레테의 수정구에도 진동이 사라졌다·
‘···벌써 시작됐네 보네·’
물론 무슨 말인지, 어떤 상황인지, 제인이 다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들었다· 이미 사전에 이야기가 된 부분이었으니까·
시몬은 가볍게 한숨을 쉰 뒤 입꼬리를 올렸다·
‘준비해 볼까·’
결사가 언제쯤 나타날지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이쪽의 전력에 겁먹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건 그것대로 실망했을 것이다·
사실 기다리던 바다·
룬 리그 퇴막식에, 결사의 구원자를 한 명을 더 붙잡아 끌고 가면 될 일이다·
우우우웅!
언더링의 호수숲에 방대한 공간의 비틀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 *
-저들의 금무더기 보다 더 강한 힘이 우리 손아귀에 있다네! 연합에 자유를! 연합에 자유를!
-바다를 향해! 승리를 위해! 오오오!
룬 리그에 참여한 관중들의 분위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연합 찬가를 부르고, 국가를 부르고, 어깨동무를 하고, 다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바다에 대기하고 있는 배에 올라타고 있었다·
중립지대 직원이 땀을 뻘뻘 흘렸다·
“자, 자! 서둘러 주십시오! 퇴막식 장소로 이동하시겠습니다!”
“거 시간도 남았는데 천천히 좀 갑시다! 하하하하!”
그렇게 관중들이 시작의 동굴에서 빠져나와 무사히 배에 오르고 있는 이때·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막아라!”
“크읍!”
시작의 동굴 내부에서, 암흑연합과 신성연방의 전투 요원들은 거의 무한히 쏟아져 나오는 시엘의 모래 개를 상대하고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관중들이 자리에 앉아서 응원하던 무대까지 시엘의 모래 개들이 몰려와 있었다·
“관중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여기서 틀어막아야 한다!”
“절대 밀리지 마라!”
쿠쿵!
쿵!
신성연방의 팔라딘과 프리스트들이 신성이 깃든 방패를 앞세우고 통로를 막아 세우며 밀려드는 모래 개들을 상대했다·
“연방 놈들에게 뒤져치지 마!”
그렇게 팔라딘들이 통로를 막는 사이, 암흑연합의 네크로맨서들은 내부를 휘저으며 모래 개들을 광범위 흑마법으로 쓸어버리고 있었다·
일반인이나 관중들도 없으니 거치적거릴 것도 없다· 칠흑화염계나 맹독마법 같은 기술도 마구 써대면서 모래 개들을 막고 있었다·
“커흡!”
그때 모래 개에 어깨가 물린 네크로맨서가 피를 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피가 철철 나는 어깨를 붙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침 대신 모래를 줄줄 흘리는 끔찍한 외형의 모래 개가 으르렁거리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허, 허억!”
죽음을 직감한 네크로맨서가 다급히 두 팔을 세우는 그때·
쏴아아아아아!
갑자기 바닷물이 폭발하듯 튀어 올랐다· 물줄기에 부딪힌 모래 개가 산산조각 나서 바닥에 흩뿌려졌다·
“괜찮으세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가 눈을 뜨니, 긴 바다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실눈의 여성이 빙그레 웃어주고 있었다·
신해의 성녀, 이스라필이었다·
퍼어어엉!
퍼엉!
하늘섬 온건파의 실권자답게 압도적인 성녀의 권능· 달려오던 모래 개들이 모조리 바닷물에 얻어맞으며 나가 떨어지고 있었다·
“고, 고맙소!”
그의 동료가 부상 입은 네크로맨서를 부축하여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대피로로 빠져나갔다·
커컹!
컹! 컹!
또 다른 모래 개 무리가 바로 그 대피로로 향하고 있었다· 저쪽으로 가면 관중들이 배에 올라타고 있는 선착장이 있었다·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룬 리그에서 결사가 공격해 왔다는 사실을 대중들이 알아선 안 돼·’
이를 막기 위해 이스라필이 손바닥을 들어 올리려는데·
살랑-
갑자기 보랏빛의 뭔가가 날개를 팔랑이며 이스라필의 옆을 날아가고 있었다·
‘나비?’
보라색 나비들은 소리 없이 날아가 개들의 머리 위에 앉았다·
어느새 키젠의 부총장, 제인이 정장 자락을 휘날리며 걸어왔다· 그녀는 손에 쥔 낫을 역수로 잡고 죄수의 목을 베듯 서서히 낫을 당겨 올렸다·
서겅!
서겅! 서겅!
모든 모래 개들이 일제히 목이 날아간 채 바닥에 엎어졌다· 이스라필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역시 깔끔한 솜씨네요· 제인 부총장님·”
“그쪽도 솜씨가 훌륭합니다· 이스라필 성녀·”
또각 또각 구둣발 소리를 내며 걸어오던 제인이 직접 낫을 휘둘러 달려오는 모래 개를 베어내고는 넥타이를 고쳤다·
“화력전에 특화된 권능을 가지고 있는 것치고는요·”
“짓궂으시긴·”
슬쩍 웃어 보인 이스라필이 이내 표정을 굳혔다·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는 짐작하고 계시죠?”
“네·”
모래 개들이 동굴 곳곳에서 계속 튀어나왔지만, 현역 성녀와 키젠의 부총장이 힘을 발휘하니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통신 수정구를 든 네크로맨서 요원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제인 부총장님! 언더링의 호수숲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바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곳의 전투는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같이 가시죠· 부총장님·”
마침 이스라필도 팔라딘들에게 같은 보고를 받고는 앞을 가리켰다·
“텔레포트 센터가 마비됐다고 하니, 제가 미리 준비하고 있던 마법진으로 함께 가요·”
* * *
언더링의 호수숲·
시몬은 공간의 비틀림이 끝나가는 것을 느꼈다· 당장 크게 바뀐 건 없어 보인다·
슬슬 주위를 정찰해 보고 싶었지만·
“···저기, 레테·”
시몬이 당황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레테는 여전히 시몬의 몸에 꼭 달라붙은 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주변을 정찰하러 가야 되는데·”
스으·
레테가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그녀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못 가요·”
“아, 아니· 너도 알잖아· 플랜 S가 발동한 것 같아서· 떼를 쓸 때가 아니라····”
터업-
레테가 시몬의 가슴을 밀어서 바닥에 쓰러뜨렸다· 그대로 위로 올라온 그녀가 시몬의 얼굴 앞으로 제 얼굴을 들이밀며 사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딜 떨어지려고요· 아무 데도 못 가요·”
두근 두근!
시몬의 이성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얼굴에 피가 쏠리고 심장이 폭발할 것 같았다·
갑자기 레테가 다른 사람처럼 바뀌었다· 당황한 와중에도 시몬의 머리가 원인을 찾기 위해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잠깐만, 설마·’
레테를 마무리할 때 사용한 기술이 ‘혼돈’이라는 걸 깨달은 시몬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혼돈의 효과 중에는 이성을 뒤흔드는 효과가 있었다·
“저, 저기· 레테· 두고 가지 않을 테니까 내 말 좀 들어봐·”
시몬이 애써 웃는 얼굴로 손을 뻗어 제 머리에 손끝을 댔다·
“일단 스스로 정화 마법을 걸어볼래?”
“?”
레테는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일단 시몬이 시키는 대로 정화 마법을 제 머리에 걸었다· 우웅 하고 신성이 그녀의 머리에 깃들었다·
“자, 이제 됐슴까?”
“음··· 아무렇지도 않아?”
잠시 순진무구하게 눈을 깜빡이던 레테의 얼굴이 일순 화아악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녀의 풀어헤쳐진 그녀의 머리카락이 하늘로 떠오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
“····”
등을 돌린 채 수치를 이겨내는 듯 어깨를 파르르 떨고 있는 레테가 있었다·
“저기, 레테?”
시몬이 쓰라린 등을 매만지며 말을 걸었다· 그러나 레테는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툭 내뱉었다·
“···변태·”
“의도한 게 아니라니까!”
레테가 마침내 뒤를 돌아보며 새초롬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일은 좋은 말로 할 때 잊어요· 아시겠슴까?”
“무, 물론이야·”
이내 간신히 진정된 두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레테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공간 전이가 된 거 맞아요? 주위가 전혀 안 바뀐 것 같은데·”
시몬은 조용히 하늘을 가리켰다·
이곳은 언더링의 호수숲·
위에는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서 나가 확인해 봐야지·”
망설일 필요 없었다·
시몬이 어깨를 빙빙 돌리며 말했다·
“레테는 여기 있어· 내가 가서 확인해 볼게·”
시몬은 아공간에서 스컬윙을 꺼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천장 위의 호숫물로 들어갔다·
쏴아아아아!
‘추, 춥다!’
수온이 극도로 낮았다· 얼음장 같은 물이었다·
그리고 분명히 호수에 물고기가 있어야 하는데, 물고기는커녕 어떤 생물도 살지 않는 것 같았다· 시몬은 정신없이 수면 위로 올라갔다· 저 위에 태양빛 같은 게 보인다·
쏴아아아아!
마침내 시몬이 호수의 수면을 뚫고 고개를 내밀었고·
“···!”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탄성을 흘렸다·
확실히 여기는 중립지대가 아니었다·
“···세상에·”
온통 빙판으로 이루어진 겨울 세상에, 시몬은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