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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과 레테의 승부가 결착이 나기 전·
다른 대표들 간의 전투는 더더욱 빠르게 결착이 나고 있었다·
‘승산이 없다·’
쥴은 셀레스티얼 프로텍터를 입은 시그문드와 수 차례 검을 부딪혀 보고는,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시그문드와 셀레스티얼 프로텍터의 조합은 사실상 신성연방의 마지막 승리 플랜이라도 해도 될 만큼 압도적으로 강력했다·
이대로는 시몬이 레테를 쓰러뜨려도, 힘을 다 소진한 그가 시그문드를 확실히 이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든 시그문드를 막아야 한다·’
자폭기는 신성연방 측만 가진 게 아니다· 쥴은 검을 거꾸로 고쳐쥐는 자세를 취하고, 모든 칠흑을 한계까지 끌어모았다·
<쥴 오리지널 – 명륜(冥輪)>
마검의 모든 힘을 쥐어짜내 내지르는,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극단적인 관통기· 강력하지만 동작이 너무 커서 확정적인 빈틈이 생기기에 실전에서는 쓸 이유가 없었다·
-정말로 그 수밖에 없나?
마검의 목소리가 말리는 것 같았지만, 쥴은 이 방법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그나마 상대가 시그문드라서 다행이었다· 지난 5일간의 싸움으로, 쥴은 시그문드가 자신에게 무조건 달려들게 하는 마법의 주문을 알고 있었다·
“오시오! 시그문드 형제!”
검을 거꾸로 붙잡은 쥴이 목청껏 외쳤다·
“이번 공격에 모든 걸 걸겠소! 나의 의지와 그대의 사랑, 어느 쪽이 더 강한지 시험해 보지 않겠소!”
가슴을 울리는 그 말에, 시그문드는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듯 입가를 찢으며 수락했다· 그가 방대한 양의 신성과 함께 성검을 휘둘렀고·
촤아아아아아!
쥴 또한 방어 대신 아웃을 각오한 ‘맞지르기’로 검을 내질렀다· 두 공격이 동시에 두 사람에 닿았다·
‘네크로맨서는 마지막까지 상대를 속여야 이길 수 있는 법이오·’
그 결과·
<암흑연합 대표 8번 쥴 빈체레가 탈락했습니다·>
<신성연방 대표 8번 시그문드 아한델이 탈락했습니다·>
쥴이 당하는 건 당연했으나, 시그문드의 갑옷이 거짓말처럼 뚫렸다· 두 사람의 몸이 동시에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소·’
쥴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뒤는 맡기겠소· 시몬·’
* * *
그사이 카미바레즈와 아렌디아, 워턴 간의 전투도 결착이 나고 있었다·
카미바레즈는 2:1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우르슬라의 피를 한계 개방했다· 길어야 5분 정도 싸우면 한계에 도달하지만, 그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쏟아지는 카미바레즈의 폭발적인 공세에 모든 고문 기구를 잃은 워턴은 지레 겁먹었는지 물러섰고, 바로 그 실책으로 아렌디아가 위험에 빠졌다·
셀레스티얼 프로텍터를 만드느라 아렌디아는 진이 다 빠져 있었다· 약해진 그녀의 방어 기술로는 카미바레즈의 송곳니를 막지 못했다·
<신성연방 대표팀 9번, 아렌디아 오르발로가 탈락했습니다·>
바로 뒤이어 카미바레즈가 워턴을 마무리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워턴도 자신의 꼴불견인 모습을 생각하고는 결단했다·
‘지, 진짜로 대중들의 돌에 맞아 죽는 것만은 피해야 해!’
<워턴 오리지널 – 발라 모르티페르>
결국 워턴이 자신의 비기를 사용했고, 카미바레즈의 송곳니가 워턴의 목덜미에 틀어박혔다·
거의 동시에 벌어진 상황·
워턴이 입은 피해는 카미바레즈도 입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아웃된 것이, 바로 뒤 시몬과 레테의 결전 직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 * *
-기억에 남을 전투였다· 레테 샤르데나·
-승리, 축하해요·
시작의 동굴의 마나 스크린에 제 7군단장과 별의 성녀가 손을 잡는 광경이 펼쳐지고·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침내 세상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기다리고 응원했던 결실을 맺는 순간, 암흑연합의 모든 주민들이 부둥켜안고 쉰 목소리로 환호성을 외치고 있었다·
시몬 폴렌티아!
시몬 폴렌티아!
시몬 폴렌티아!
배신의 군단장이라는 과거의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는 암흑연합의 전 주민들에게 영광을 손에 거머쥐게 한 영웅이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환호를 터뜨리고 있었다·
“시모오오오온!”
“으아아아앙!”
마지막 날인 만큼, 4일 차에 퇴장한 모든 암흑연합의 대표들과 신성연방의 대표들도 무대 위에 올라와 같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시몬이 불끈 쥔 주먹을 들어 올리는 ‘승리 콜’을 벌이는 순간 서로 얼싸안았다·
메이린과 엘리사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으며, 그 덤덤한 샤텔도 마구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며 세레머니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가슴 졸이며 보던 에이젤도 두 팔을 번쩍 들고 바닥에 엎어졌다·
“···시몬 폴렌티아·”
복잡한 표정의 헥토르도, 지금은 굳건히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모두가 그 이름을 외쳤다·
시몬 폴렌티아!
시몬 폴렌티아!
시몬 폴렌티아!
승리 중 승리·
곳곳에서 쉰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혼절하거나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80년 만에 다시 열린 룬 리그·
여러 비난과 비판의 이야기도 많았지만 최고의 서사를 쌓아 올렸고, 마침내 그 끝이 암흑연합의 승리라는 이름으로 결실을 맺었다·
모두가 밀려드는 기쁨에 몸을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었다·
신성연방의 대표들도 덤덤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축하의 박수, 혹은 마지막까지 분투한 레테와 대표들에 대한 박수였다·
특히 5번 디아나는 눈물을 훌쩍이며 텔레포트로 사라져 가는 레테에게 격려의 박수를 치고 있었고, 7번 하미엘은 허무하게 탈락해 버린 시그문드를 욕하며 두 발을 동동 흔들고 있었다·
“군단장과 성녀 두 사람 모두 대단했소! 하하하하하! 이런 전투는 보는 것만으로도 훈련이 되지!”
테르곤이 솥두껑 같은 손바닥으로 쾅쾅 손뼉을 쳤다·
그리고 레테보다 다른 한쪽에 시선이 꽂혀 있는 두 사람·
“아무리 생각해도 저 사람, 분위기가 닮았어····”
뭔가 탐정처럼 눈을 빛내고 있는 리사라·
그리고·
“시몬 폴렌티아·”
마찬가지로 침을 꼴깍이며 지켜보는 모제도 있었다·
“···역시 내 생각이 옳았어· 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편린이야·”
“거기 너! 더러운 소리 하지 말지?”
저 멀리서 듣고 있던 메이린이 빼액 소리 질렀다·
“남의 자랑스러운 군단장에 신 같은 거 묻히지 마!”
“그는 너희 암흑연합 따위가 갖고 있기엔 너무나 아까운 남자야·”
모제도 지지 않고 그렇게 말한 뒤, 상기된 얼굴로 스크린의 시몬을 보았다·
“당장에라도 하늘섬에 올려야 해· 나의 축복이라면 그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어·”
“우리 클라라나 빨리 그 빌어먹을 축복에서 회복시키지? 아직 못 일어나고 있거든?”
클라우디아는 모제의 신의 손에 닿아 탈락했는데, 피해 일부를 아티팩트와 더미가 받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병실에 있었다·
모제가 한숨을 쉬었다·
“네가 하도 난리쳐서 직접 가서 축복을 지웠다· 곧 일어날 거야·”
이렇게 결과가 나오니, 다른 대표들도 각각 적수에게 다가가 악수를 하거나 훈훈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하하! 에이젤 형제! 대체 나를 어떻게 탈락시킨 건지 자세히 말해보게!”
“아니· 그, 그게····”
테르곤은 여전히 자신을 탈락시킨 에이젤의 실력에 꽂혀 있는지 그와 어깨동무를 한 채 시시덕거렸고, 에이젤은 부담스러움에 말라비틀어져 가고 있었다·
“···애, 애초에 당신은 나한테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
“하하하하하! 소심한 것 같으면서도 그런 당돌한 부분은 흥미롭구만!”
헥토르와 리사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먼저 말을 건건 리사라였는데, ‘제가 부족한 게 뭘까요?’ 하고 물었던 것·
헥토르는 순순히 답했다·
“뻔한 도발이나 강렬한 눈속임에 넘어가지 마라· 경험 부족인 걸 떠나서 너는 머리가 단순하다·”
“알겠다구요! 그, 그리고 시몬 폴렌티아 군단장에 대해 궁금한 게····”
후자가 본론이었던 모양·
그리고 샤텔은 르바임 메델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메이린! 저 둘 뭔가 쫌 묘한데?”
하미엘 쪽으로 중지손가락을 날려준 엘리사가 시시덕거리며 메이린의 팔꿈치를 툭툭 쳤다·
“설마 알콩달콩 사랑?”
“미쳤구나·”
메이린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상식에서 네크로맨서랑 프리스트의 사랑은 생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불가능했다·
물론 그런 부분을 떠나 르바임 메델은 이번에 샤텔을 만나서 자신의 믿음이 깨진 대신에 생각의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가지 물리적인 변화도 있었는데, 르바임의 덩치가 샤텔과 비슷한 크기로 커져 있었다·
르바임이 마지막에 사용했던 ‘리저렉션’의 효과였다· 리저렉션을 건 직후는 거의 산만큼 커졌지만 거기서 꽤 줄어들었다· 지금은 이 정도 몸 상태에서 더 작아지진 않는다고·
그래도 이제 거인인 모습을 더 이상 남에게 숨기려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둘은 거인과 아종족의 생활과 처우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 잠시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모두 주목해 주십시오!”
룬 리그 사회자가 통신 수정구를 교체하고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 옆에는 룬 리그 협회장 벤트레스가 서 있었다·
흠흠·
룬 리그 첫째 날 무덤덤한 얼굴로 시작했던 벤트레스가, 이제는 상기된 표정으로 앞으로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5일간의 긴 여정 함께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제17차 룬 리그의 경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위의 일대가 일순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의 정적이 내려앉았다·
“현재 룬 리그 5일 차의 생존자는 암흑연합의 시몬 폴렌티아 한 사람· 그리고 점령지의 수는 암흑연합 7개, 신성연방 6개로-”
그가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17차 룬 리그의 승리는 암흑연합이 가져갔음을 협회장의 이름으로 이 자리에서 선언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다시 한번 격렬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다들 작은 소리도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목이 쉬었는데, 환호성은 나오는 점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신성연방 주민들도 잠시 망설이더니 짝짝 박수를 쳤다·
“···데바께서 이르되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일어날지어니·”
“아직 다들 어리지 않습니까· 레테 성녀님께도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겁니다·”
그때 관중들 중에 한 프리스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대표들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레테 성녀님과 다른 대표들에게도 박수를 보내줍시다!”
짝짝짝짝!
신성연방 측도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모제를 비롯한 신성연방 대표들이 고개를 숙였다· 분함의 눈물도, 아쉬움의 감정도, 미래를 위한 자양분으로 여기고 나아가야 할 때였다·
누군가의 말대로, 아직 그들은 어렸으니까·
암흑연합 측에서도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쪽 대표들도 잘 싸우던데!”
“레테 성녀와 리사라 성녀는 상당히 전도유망하오· 부럽소·”
“그쪽 군단장들이야말로 굉장히 위협적이군···· 데바시여···!”
5일 내내 니가 죽으니 내가 죽으니 싸우던 관중들도 이제는 정이라도 들었는지 서로 은근히 덕담을 해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룬 리그 대표들도 그 모습을 흡족하게 지켜보았다·
“시몬 군단장과 레테 성녀는 어디 있소!”
“주인공들을 빨리 이 자리로 부릅시다!”
“옳소!”
앞에 앉은 관중들 몇몇이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자가 진정하라는 듯 두 손을 펼쳐 보인 뒤, 벤트레스를 보았다·
벤트레스가 확성 수정구를 입 앞에 가져다 댔다·
“자, 이번 룬 리그의 결과는 암흑연합의 승리로 확정났음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하지만 아직 룬 리그가 끝나려면-”
그가 손목에 찬 시계를 한번 본 뒤 말했다·
“아홉 시간 남았습니다· 내빈분들께서는 조금 휴식을 취하시고, 아홉 시간 뒤에 시몬 폴렌티아 대표를 이 자리에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어차피 결과는 났는데 그냥 데려오시오!”
“하하하! 물론 그렇습니다만 룰은 룰입니다·”
벤트레스가 미소 지었다·
“룬 리그는 120시간이 지나야만 종료됩니다· 그 전에 승부가 났다고 해도 대표는 5일 차가 끝나는 순간까지 전장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아홉 시간 뒤에 룬 리그 퇴막식을 진행하지요· 그 전까지 관중 여러분은 다들 휴식을····”
타닷!
그때 룬 리그 협회 쪽 직원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벤트레스에게 뛰어왔다·
그가 다급히 벤트레스에게 귓속말로 중얼거렸고, 벤트레스의 눈이 확 커졌다·
“?”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대표들은 그의 표정이 바뀌는 걸 볼 수 있었다· 무슨 일 있나 싶어서 지켜보고 있는데, 벤트레스가 흠 하고 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관중 여러분, 룬 리그는 종료되었고 퇴막식 장소로 이동하시겠습니다! 이곳 ‘시작의 동굴’은 퇴막식의 장소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군요·”
그가 팔을 펼쳐 들었다·
“넉넉하게 이틀 뒤에 룬 리그 퇴막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관중 여러분은 배로 옮겨 타시길 바랍니다! 최고급 선상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또 뭐야? 번거롭게·”
“장소까지 옮겨? 그래도 준비 많이 했나 본데·”
“배고팠는데 잘됐소· 밥이나 먹으러 가지!”
관중들은 의아한 눈치였지만, 룬 리그가 끝나고 기분은 최고조로 좋았기에 싱글벙글 웃으며 순순히 통제에 따랐다·
아직 여운이 진하게 남아 있는지 몇몇 암흑연합 주민들은 연합찬가를 부르기도 했다·
-시몬 폴렌티아! 시몬 폴렌티아!
-암흑연합에 영광을!
관중들이 하나둘 시작의 동굴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벤트레스가 웃는 얼굴로 대표들을 바라보았다·
“자, 대표 여러분도 함께 배를 타고 퇴막식 장소로 이동하시지요·”
“네!”
대표들도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걸어갔다· 메이린과 모제만이 조금 수상쩍은 눈으로 벤트레스를 바라보다가 이내 사람들의 재촉에 마지못해 등을 돌렸다·
그리고·
대표까지 돌려보낸 벤트레스가 저벅 저벅 빠르게 걸으며 방금 소식을 전해온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치겠군· 결사의 구원자가 시작의 동굴에 있다고?”
“예, 그렇습니다! 팔라딘과 네크로맨서 측과 교전 중이라고 합니다!”
벤트레스가 이마를 쓸어 넘겼다·
다 끝난 마당에 이게 다 무슨 소란이란 말인가·
“최대한 빨리 알아보게·”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