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6
시몬과 모제의 승부가 갈린 룬 리그 4일 차.
-가라! 시몬!
-파이팅!
-제발 제발 제발!
시작의 동굴이 열기로 뜨거워진 사이, 로크섬에 남아 마나 스크린으로 지켜보는 학생들의 열기도 덩달아 뜨거워져 있었다.
현재 키젠은 공강과 휴강의 연속.
3학년 저주학 교수 바힐이 냅다 3주 휴강을 선언한 뒤 홀연히 사라진 건 놀라운 소식도 아니었다.
학생들도 룬 리그를 보느라 밤을 새우거나 수업을 빼먹기 시작했고, 이에 질린 교수들도 반쯤 포기하고 수업 진도를 느슨하게 진행했다. 특히 홍펭과 별야는 시몬이 마투를 사용한 장면이나 맹독기를 응용한 장면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어느새 룬 리그 기간은 키젠 내부에서 축제와도 같은 기간이 되어 있었다.
터벅 터벅.
그리고 여기, 시몬의 경기를 보느라 밤을 새운 학생이 한 명 더 있었다.
소환학과 2학년의 버나 펠턴은 학생회관 건물의 긴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서류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아침부터 교수님 심부름이라니.’
그가 하품을 쩍쩍 하며 학생회실 앞에 섰다.
꽤 웅장해 보이는 커다란 문.
처음에 여기 왔을 땐 학생회실이 범접할 수 없는 공간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마음이 편했다. 학생회의 3학년들은 지금 모두 ‘룬 리그’에 나가 있으니까.
그가 손등으로 가볍게 노크했다.
“치엘라! 안에 있어? 들어갈게!”
버나가 문을 좌우로 열어젖히고 학생회실에 들어왔다.
정돈된 책 냄새와 커피 냄새가 난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테이블과 책상들 너머로, 학생회장 자리에 앉아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인다. 커다란 책들과 서류 사이에 가려져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시체처럼 미동이 없다.
“헤이, 살아 있냐?”
버나가 시시덕거리며 걸어갔다.
서류 더미 뒤에 엎드려 자고 있는 건, 은회색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앳된 얼굴의 여학생이었다.
“헤이! 치엘라!”
그 외침에 소녀가 부스스 잠에서 깨어났다.
멍하니 눈을 비비는 그녀의 얼굴을 목격한 버나는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눈 밑이 다크서클로 까맸고, 얼굴에는 극도의 피로가 찌들어 있었다.
현재 키젠의 학생회가 대부분 룬 리그에 가 있었고, 2학년 아서도 임무평가 중이었기에, 치엘라는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회장 대리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마침내 멍하니 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뭐요.”
선후배 관계가 지엄한 키젠에서 하늘 같은 선배한테 ‘뭐요’라니. 하지만 버나 펠턴은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운 얼굴로 픽 웃을 뿐이었다.
“나 버나야. 부총장 대리께서 보낸 공문 들고 왔는데.”
멍해 있던 그녀가 눈을 한 차례 깜빡이더니 느릿한 동작으로 인사를 하려고 몸을 일으켰다.
“아, 실례했습니다. 버나 선··· 배.”
쾅!
버나에게 인사하려던 치엘라가 그대로 머리를 이마에 쾅 찧고는 허물어졌다. 옆에 쌓여 있던 서류들이 파라락거리며 흩어졌다.
버나가 식겁하며 뛰어와 그녀를 부축했다.
“야, 야! 괜찮아? 의무실 갈래?”
“···괜찮, 습니다. 고마워요.”
그녀가 퀭한 얼굴로 다시 학생회장 자리에 앉았다.
이내 주섬주섬 치마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그 안에 하늘색 도시락통 같은 것을 꺼냈다. 그 위에는 ‘메이린 빌렌느’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그 옆에는 종이가 하나 붙어 있었다.
<세 번째 조언. 정 못 견딜 것 같으면 보시오.>
달칵.
치엘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도시락 통을 열었다. 그 안에는 각종 알약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메이린이 시험 기간 때만 먹는 특제 각성 알약이었다.
<명심해. 하루에 하나씩 먹어! 꼭 하루에 하나씩···.>
치엘라가 덥석 손바닥으로 알약을 한 움큼 쥐더니 그대로 입에 와르르 털어 넣었다. 버나 펠턴이 ‘흐헉!’ 하고 기겁한 소리를 내며 뜯어말렸다.
“야! 야! 하나씩 먹으라고 적혀 있잖아! 아니!”
급해진 버나가 치엘라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치엘라는 마구 고갯짓하며 저항했다. 기어코 옆에 놓은 물까지 마셔서 알약을 다 섭취했다.
그렇게 1분 후.
“오.”
치엘라의 혈색이 돌아왔다.
“효과 최고네요. 역시 메이린 부회장 선배님.”
버나 펠턴이 한숨을 푸욱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 아직 어리다고 그러다간 나중에 진짜 훅 간다.”
“지금 훅 가기 직전인데 나중에 훅 가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보다 그거, 부총장 대리께서 보낸 공문이라구요?”
그녀가 팟 하고 버나의 손에서 서류를 빼앗아 눈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읽어 내려갔다. 버나가 벽에 기대어 팔짱을 꼈다.
“미래의 학생회장 체험은 할 만하냐? 특례 1번.”
“일단 지금은, 이딴 게 학생회장이라면 안 하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하하! 공문엔 뭐라고 적혀 있는데?”
치엘라가 인상을 썼다.
“부총장 대리께서 룬 리그 기간 ‘특별 학생 선도 기간’을 선포했습니다. 룬 리그에 과몰입한 학생들을 일깨우고 교내의 기강을 바로잡으라는 명령이네요.”
버나가 푸핫 웃었다.
“되겠냐?”
이래서 어른들이란. 지금 학교가 룬 리그 때문에 어떤 지경이 됐는지 모르니 할 수 있는 전형적인 탁상공론 행정이다.
“까라면 까는 게 학생회입니다.”
치엘라가 손바닥을 책상에 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업무를 미뤄두고 해당 지시를 가장 우선시하라는 명령이니, 같이 선도하러 가시죠, 버나 선배님.”
“엉? 나도?”
버나가 자신을 가리키며 눈을 깜빡였다.
“나 학생회도 아닌데 왜? 이래봬도 바쁜 몸인···.”
“공강이고 한가하니 심부름이나 하러 온 거 아닌가요? 어차피 기숙사 침대에서 빈둥대거나, 룬 리그 영상 담긴 메모리얼 수정구나 무한반복으로 돌려볼 거 아닙니까.”
버나가 시선을 피했다.
“···크흠.”
“불쌍한 1학년 앞에서 선배로서 모범을 보여주실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모범 같은 소리 하네! 나 학생회 아니라니까!”
드르륵!
치엘라가 서랍을 열더니 학생회 완장을 꺼내 그의 왼팔에 달아주었다.
“학생회장 대리의 권한으로 버나 선배님을 임시 학생회 일원으로 임명합니다.”
“어?”
버나가 입이 떡 벌어진 채 자신의 왼팔에 달린 학생회 완장을 바라보았다.
키젠이라면 모두가 동경하는 학생회.
누구나 왼팔에 이 완장 한번 차보고 싶지 않겠는가. 바로 그 증명이 여기에 있다.
‘이, 이게 권력!’
가슴이 쿵쿵 미친 듯이 뛰었다. 아주 귀한 보물을 만지듯 그냥 천 조각에 불과한 완장을 소중히 쓰다듬는 버나였다.
혹시 아는가. 이번 일 잘해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내년에는 진짜 학생회 일원이 될지도?
“그래도 혹시 곤란하시면···.”
“아, 얼른얼른 출발합죠! 학생회장 대리!”
그렇게 조잡한 학생회 선도 임시 듀오가 탄생했다.
* * *
두 사람은 학생회관 건물에서 나와 나란히 걸어갔다.
“어디부터 돌 거냐?”
“캠퍼스 광장부터 가시죠.”
그렇게 말한 치엘라가 버나를 한 차례 흘겨보았다.
콧대가 우뚝 높아진 버나는 왼팔에 찬 학생회 완장을 자랑하듯 왼팔을 과장된 동작으로 흔든 채 어기적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 걸음 그만하시면 안 될까요? 같이 걷기 부끄러워요.”
“나 원래부터 이렇게 걸었는데.”
“어휴.”
그렇게 학생회관에 갇혀 있던 치엘라가 밖으로 몇 걸음 나오자마자, 평소의 키젠과는 다른 분위기가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예에에에!
휘이익!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박수 소리가 들렸다.
대낮에 맥주에 취했는지 벌게진 얼굴로 돌아다니는 학생도 보였고, 룬 리그 출전 학생의 이름을 연호하며 지나가는 학생도 있었다.
“다들 정신이 반쯤 나가 있네요.”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녀가 앞을 보지 못하고, 빠르게 지나가던 한 남학생과 어깨를 부딪혔다.
“아, 죄송합니다.”
“나야말로 미안.”
치엘라가 고개를 들어 그 2학년 남학생을 바라보고는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남학생은 머리에 푸른색 가발을 쓰고 있었다.
이 사람뿐만 아니었다. 곳곳에 남학생들이 시몬의 머리색과 똑같은 가발을 쓰고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실례지만 그런다고 본인이 시몬 폴렌티아 선배님이 되는 건 아닙니다.”
“아! 분위기지! 분위기!”
대광장에 가까이 갈수록 상황은 악화됐다.
시몬을 비롯한 키젠 대표 10인의 코스프레는 물론, 나무로 유령선을 깎아 만든 장식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자들도 있었으며, 심지어 중앙에는 시몬의 모습을 한 초콜릿 동상이 설치되어 있었다.
와아아아악!
각 매점 테이블에는 학생들이 다 같이 메모리얼 수정구를 둘러싼 채로 보고 있었다.
-시몬! 시몬!
-이겨주십시오 시몬 선배님!
-모제를 꼭 잡아줘!
그 중간에는 가장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두 명이 보였다. 치어리더 복장의 2학년 전체 1위의 사샤가 ‘시몬 오빠!’를 연신 외치고 있었고, 몰리는 시몬 모양의 배개를 끌어안은 채 울먹이고 있었다. 다들 교내 수석과 공주의 체통은 밥 말아먹은 모습이었다.
치엘라가 멍하니 감상을 내뱉었다.
“진짜 키젠 전체가 미쳐 돌아가고 있네요.”
“내가 말했지?”
“그래도 일은 해야겠죠.”
그녀가 교복 치마를 팔랑이며 성큼성큼 걸어가 시몬 동상에 금지 스티커를 붙였다.
“불법 시설물입니다. 철거하겠습니다.”
바로 옆의 유령선 모양 시설물에도 스티커를 붙였다.
“이것도 철거. 이것도요.”
강아지처럼 빨빨 돌아다니며 악착같이 스티커를 붙이던 그녀가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삐익 소리를 냈다.
“거기 선배님! 두발 불량입니다!”
지나가며 파르페를 떠먹고 있던 2학년 여학생이 응?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머리를 초록색으로 염색한 채 마구 모아서 뱀처럼 꼬아놓은 상태였다. 클라우디아 흉내인 것 같았다.
“우리 학교에 그런 게 있었니?”
“물론이죠! 교칙에 품위 유지 조항이 명확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치엘라가 마구 호루라기를 불고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피어를 흉내 냈는지 탈을 쓰고 다니는 학생, 안대로 눈을 가린 채 목검을 휘두르는 학생도 있었다. 그들은 학생회 완장을 찬 치엘라를 보고는 혼령화로 벽을 넘어 도망쳤다.
치엘라가 불을 부풀리며 화를 냈다. 버나가 뒤따라 달려오며 말했다.
“헤이, 이렇게까지 단속해야 해? 이건 그냥 축제 분위기 좀 내는 정도잖아.”
“품위가 너무 떨어지지 않습니까! 외부 언론에 노출되면 조롱거리가 될 겁니다!”
치엘라가 손끝을 세워 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시몬 폴렌티아 선배님은 제게 학생회를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이 시몬 폴렌티아 선배님을 응원하는 만큼, 저도 학생회장의 빈자리를 완벽히 채우고 학생들의 기강을 바로잡는 게 시몬 폴렌티아 선배님을 응원하는 방법입니다!”
버나가 오호 하며 웃었다.
“그럴듯하게 들리는데. 그럼 나도 도와줘 볼까!”
그렇게 두 사람은 정신없이 광장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다들 너무 축제 분위기라서 일일이 선도를 하는 건 불가능했다. 대낮에 술에 취하는 등 너무 문제가 되는 사람 위주로 지적했다.
그러는 사이 치엘라가 문득 말했다.
“역시 이상합니다.”
“뭐가?”
“룬 리그 참여 멤버를 본떠 만든 물품들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마치 처음에 이런 걸 다 예상하고 굿즈를 제작한 뒤 싹 푼 것처럼 말입니다.”
“듣고 보니 그러네.”
치엘라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아마 캠퍼스를 이런 광기로 몰아넣은 주도자가 있을··· 아!”
뭔가를 본 걸까. 치엘라가 움찔하더니 대광장의 공원 벤치 뒤로 휙 숨어서 머리를 가리는 시늉을 했다.
“뭐 해?”
버나가 물었다. 치엘라가 그의 손목을 잡고 휙 잡아 끌었다.
“찾았습니다. 서류에 적힌 조사 대상.”
대광장 한복판.
그곳에는 큰 규모의 야외 매장이 하나 열려 있었다. 백 명이 넘는 사람을 소화할 만큼 많은 야외 테이블과 의자가 곳곳에 놓여 있었고, 학생들의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무대의 중앙.
그야말로 솜씨 좋게 마나 스크린을 펼쳐놓았는데, 현재 룬 리그의 하이라이트 광경이 나오고 있었다. 3일 차 광경, 시몬이 군단을 소환해 1지역까지 밀고 내려온 신성 언더링들을 역으로 밀어내는 모습에 학생들의 뜨거운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 팟 하고 익숙한 얼굴이 비쳤다. 시작의 동굴로 보이는 장소에 두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에 한 명은 키젠 학생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인물. 바로 딕 헤이워드였다.
-다들 잘 봤지? 3일 차는 다시 암흑연합의 우위! 다행히 영역은 7:6으로 우위를 점했네! 현재 지형은 이런 느낌이야.
딕은 노트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현재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4일 차는 어떻게 생각해? 피츠.
-뭐, 4일 차에 모제를 잡는 게 핵심이라고 본다. 우리 쪽 대표들이 전원 총공세로 들어갈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에이젤 선배님을 쓰러뜨린 모제를 단순한 방법으로 이기는 건 힘들고, 암흑연합 대표들이 무리하는 한이 있더라도 시몬과 모제의 1:1 매치업을 만들어야겠지.
딕은 아예 예비 멤버인 피츠제럴드까지 앉혀놓고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물어보고 있었다. 가끔 시작의 동굴의 관중들에게 인터뷰를 하거나 그들의 열기를 전하기도 했다.
키젠 학생들은 진짜 시작의 동굴에 간 것처럼 실감 넘치게 듣고 있었다. 물론 메모리얼 수정구의 특성상 시작의 동굴보다는 하루 느리게 현장을 접하는 거지만, 대륙의 반대편인 로크섬에서 이 정도라도 빨리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는 건 딕 덕분이었다.
그리고.
“···역시. 이 사건의 배후는 딕 헤이워드 선배님 같네요.”
멀리서 지켜보는 치엘라가 미간을 모으며 중얼거렸다. 버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배후랄 것까지야. 네프티스 님도 룬 리그를 널리 알리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시잖아. 벌을 받을 게 아니라 오히려 상 받을 일 아닌가?”
“바로 그런 점이 교활한 거예요!”
치엘라가 분한 듯 공원 벤치를 주먹으로 탕탕 쳤다.
“학생회의 멤버면서 자기 금전적 이익만 밝히다니! 학생회가 얼마나 곤욕을 치를지 뻔히 알면서!”
그때 마나 스크린 앞으로 두 명의 1학년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자, 자. 여러분 잠시만 주목해 주시길 바랍니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곧바로 영상 틀겠습니다! 메모리얼 수정구를 교체 중이라!”
그들을 본 치엘라의 눈이 부릅떠졌다.
“쟤들!”
차세대 악동.
떠오르는 샛별 수전노.
딕 헤이워드의 후계자.
“특례 9번 빌 헤이워드! 특례 10번 알 헤이워드!”
“아, 쟤들이?”
두 헤이워드 쌍둥이는 관중들에게 의젓하게 인사해 보이고는 커다란 나무판을 들어 올렸다.
“아, 존경하는 선배님들! 룬 리그를 그냥 보기만 하면 재미가 없죠! 더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판돈을 올리는 거죠!”
두 쌍둥이가 낄낄거리며 나무판을 가리켰다. 판돈과 배당금이 적힌 문구가 보였다.
“자, 선택하세요! 종목은 많습니다! 룬 리그 MVP는 누가 될지! 어떤 매치업이 벌어질 것인지! 멤버마다 얼마나 킬수를 올릴지 예측하는 종목도 있습니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회장 선배님은 무려 4명으로 가장 많네요! 아! 아! 시몬 선배님 혼자서 다 쓰러뜨릴 거라는 쪽에 배팅한 야수의 심장을 가진 분도 있습니다!”
“자! 거세요 걸어요!”
흥분한 학생들이 주머니에서 동화와 은화를 꺼내며 달려들었다.
“줄을 서세요! 줄!”
“좋습니다! 어서 오세요! 샤텔 선배님께 걸었군요! 이것도 탁월한 선택입니다!”
삐이이익!
결국 보다 못한 치엘라가 나섰다.
그녀가 호루라기를 불며 나타났다.
“빌! 알! 교내 도박은 교칙 위반이야!”
두 쌍둥이가 ‘윽’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학생회 떴네.”
“튀자.”
두 사람이 주섬주섬 판자를 챙기고 도망칠 준비를 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치엘라가 인파를 헤치고 다가왔다.
“멈춰! 비켜주세요! 지나갑니다!”
그 모습을 본 빌 헤이워드가 관중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 학생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학생회가 학생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몇몇 학생들이 ‘우우’ 하고 야유하기도 했다.
“학생회는 물러가라! 우리끼리 놀게 냅둬라!”
“2년 뒤 미래의 독재자다!”
“그냥 좀 즐기자고!”
치엘라가 빨개진 얼굴로 ‘조용히 해요!’ 하고 외치고는 쌍둥이를 바라보았다. 감히 관중을 오도하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녀가 칠흑을 밟고 날아올라 손 끝에 저주를 모아 발사했다.
<페럴라이즈>
“어이쿠!”
빌 헤이워드와 알 헤이워드가 아공간에 나무판을 숨기고 요리조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온갖 발명품을 던졌다. 끈끈이 함정에 그물망까지.
물론 치엘라도 특례 1번인 만큼 쉽게 당해주지 않았다.
“거기서!”
우당탕탕탕!
야단법석인 1학년들의 모습에 지켜보던 선배들은 재미있다는 듯 낄낄대며 웃었다.
“다음 영상이나 틀어봐! 궁금해서 미쳐 버릴 것 같으니까!”
“오케이! 오케이!”
* * *
한편, 시작의 동굴에서도 뜨거운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관중들은 다들 잠을 못 자고 퀭한 얼굴이었지만 열기는 여전했다.
“아, 돈 벌기 쉽다. 쉬워.”
시작의 동굴에 나와 있는 딕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주판을 굴리고 있었다.
그는 메모리얼 수정구로 작업한 자신의 촬영 영상을 납품하며 돈을 벌었다.
무리해서라도 룬 리그에 오기를 잘했다.
자신은 현장에서 활약하고, 학교에는 동생들이 활약하고 있다. 자신과 같은 피가 흐르는 문제아들이 학교에 남아 있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딕은 학생회 신분. 공적으로 돈을 벌 수 없지만 빌, 알 헤이워드 쌍둥이는 딕의 지시대로 움직여 주며 자금 세탁까지 해주니 완벽했다.
“고맙다, 피츠제럴드! 정확한 분석이었어.”
“···학우들에게 내 분석이 도움이 된다니 했을 뿐이다만.”
피츠제럴드가 안경테를 붙잡으며 표정을 굳혔다.
“혹시 내가 이용당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하하! 룬 리그에 대한 네 전략적 안목을 궁금해하는 애들이 한둘이겠냐? 안 그래?”
“음.”
그 말에 피츠제럴드가 으쓱한 표정으로 안경을 추켜올렸다. 딕은 속으로 쉬워서 좋다고 생각하며 시시덕거렸다.
“그럼 좀 이따가 다시···.”
그렇게 말하던 딕의 귀가 쫑긋했다.
사냥감을 발견한 곤충의 더듬이가 흔들리는 것처럼 좌우로 한 차례 움직였다.
“피츠, 나 잠깐 다녀올게.”
“그래.”
딕이 후다닥 걸음을 옮겼다.
틀림없이 뱃소리가 났다. 그가 시작의 동굴을 빠져나와 바다 쪽을 응시했다.
‘세상에.’
쏴아아아아!
쏴아아아!
바다에 무수한 함대가 들어서서 해안길을 틀어막고 있었다.
깃발에 그려진 상징을 보니 함대의 주인이 누군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게 저 사람까지 올 일이야?’
딕이 턱을 쓸며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제3군단장, 그 유명한 ‘제독’의 함대가 시작의 동굴 인근의 바다를 틀어막고 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