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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가지 재해>
천장의 붉게 물든 호수에서 흘러내린 빨간 물이 모제의 지팡이를 중심으로 휘몰아친다.
그것은 액체가 아니라, 마치 바람에 나풀거리는 거대하고 빨간 목도리처럼 보였다. 재해가 불러온 메뚜기 떼와 개구리 떼도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가히 종말의 경관.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해, 시몬.”
모제는 오른팔로 지팡이의 힘을 이끌어내면서, 왼손으로는 마법진을 펼쳐 가슴에 올려두고 있었다.
“축복의 정점은 단순히 나뭇가지를 성검으로 만드는 걸까? 아니야. 축복의 정점은 사람이 신이 되는 거지.”
모제의 가슴에 있는 마법진이 점점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가끔 지팡이를 쥔 오른손으로 마법진 내부를 직접 그리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던 시몬이 살짝 인상을 굳혔다.
‘단순히 과장이나 허세라기엔 심상치 않네. 뭔가를 준비하고 있어.’
다른 건 몰라도 저 백마법이 완성되면 좋을 게 없다는 건 확실했다. 시몬이 무릎을 굽히고 하늘로 도약하려는 순간.
촤아아아아-
머플러처럼 나풀거리는 피의 호수가 먼저 내려왔다. 그것은 마치 칼날처럼 지면에 커다란 흉터를 남기며 다가왔고, 돌진하려던 시몬은 다급히 몸을 날려 피해내야 했다.
‘큭!’
사방에서 붉은 천들이 나풀거리며 시몬이 피할 공간을 좁혀가고 있다. 바위나 나무가 이에 닿자 세상에서 삭제되듯 사라졌다.
‘···이런 게 백마법이라고?’
누가 봐도 이 시뻘건 기술은 신성 기반의 백마법이 아니라 혈류계 흑마법처럼 보인다. 지팡이를 붙잡은 모제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신성이 언제나 생명과 풍요의 성질만 가진 줄 알았어? 신의 이면. 위대한 데바는 자신에게 반하는 자들은 늘 지독한 징벌로 다스렸지.”
지금 모제는 신을 대신하여 인간에게 재해를 일으키는 재해의 프리스트였다. 시몬은 피의 호수를 피해 다니면서, 그것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감지하고는 확신했다.
‘믿기 힘들지만 진짜 신성이야.’
확실히 모제는 상식을 비트는 적이었다.
축복을 저주처럼 쓰질 않나.
신성을 칠흑처럼 쓰질 않나.
그래서 흥미로운 적수란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이 전장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꺾고 싶었다.
[크흐흐! 그럼 슬슬 이쪽도 반격해야 하지 않겠나 소년!]
“그럼요 피어.”
시몬이 힘차게 아공간을 열어젖혔다. 각종 무기를 든 스켈레톤들이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와 지면에 멋들어진 자세로 안착했다.
이어서 준비해 둔 마법진이 발동되는 것으로, 에메랄드빛 섬광이 내려와 지면에 대기하는 모든 스켈레톤에게 깃들었다.
<시몬 오리지널 – 친위대>
평범한 언데드들의 몸에 에메랄드빛 망토가 입혀지고, 형광색으로 번쩍이는 청록색 무기가 손에 들린다.
“가라.”
시몬이 에메랄드빛 관을 붙잡으며 말했다.
터엉!
텅!
30기가 넘는 친위대들이 일제히 총탄처럼 날아올랐다. 모제가 조종하는 피의 호수 자락을, 친위대의 힘이 깃든 검으로 썰어버리는 모습은 마치 재단사를 연상케 했다.
시몬이 집중하며 친위대를 지휘하고 있는데, 피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년! 후방에 메뚜기 떼다!]
‘네!’
시몬의 뒤쪽으로 팔을 휘둘렀다. 친위대 몇몇이 뛰어들어 양손에 검을 쥐고 빙빙 회전하기 시작했다.
<블레이드 스톰>
오랜만에 보는 기술, 회전하던 친위대들이 이내 맹렬한 회오리처럼 변해 메뚜기들을 언어 그대로 갈아버렸다.
개굴! 개굴! 개굴! 개굴!
이번엔 신성 크리쳐로 보이는 순백의 개구리 떼들이 끝도 없이 지면을 새하얗게 덮으며 다가왔다.
이에 시몬이 보낸 친위대들이 쏘아져 나갔다. 두 명씩 짝을 지어 클라우드를 길게 늘려 잡더니, 앞으로 돌진하는 동시에 개구리를 베면서 지나갔다. 한번 초록색 선이 지나갈 때마다 개구리 수백이 잘려 나갔다.
“잘 막는데? 그럼 이건 어때.”
모제가 지팡이를 높이 들자, 하늘에서 바위만 한 하얀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차악!
착!
네 기의 친위대가 즉시 시몬의 곁으로 내려오더니 서로 등 뒤의 에메랄드빛 망토를 교차하듯 잡아당긴 채 동서남북으로 멀어졌다.
망토가 펄럭이며 높게 솟구치더니 시몬의 머리를 덮는 천막으로 바뀌고, 그것에 칠흑이 검게 물든 채 굳어졌다.
쏟아지는 우박들이 칠흑의 막을 뚫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오늘 컨트롤이 좋아. 아직 콤펠로 상태였던 잔재가 남아 있어.’
눈을 감고 양 손끝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휙휙 움직이던 시몬이 미소 지었다.
병력의 수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컨트롤.
고양된 기분에 빠진 시몬이 게슴츠레 눈을 떠 모제를 응시했다.
‘이제 간다.’
모제가 쏟아내는 재해의 공세를 한 차례 물리쳤으니 이제 시몬이 공격할 차례였다.
시몬이 무릎을 굽히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촤아아아아아!
즉시 등 뒤로 따라붙은 친위대들이 시몬의 등을 떠밀었다. 시몬의 몸이 에메랄드빛 섬광을 그리며 쏘아져 나갔다.
모제가 지팡이를,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휘둘렀다.
쩌어어어어어어어어엉!
두 사람의 공세가 크게 격돌하며 대기가 파르르 진동했다. 그러다 모제가 시몬의 대검을 아래로 밀어내며 지팡이 끝을 세웠다.
<재해의 뱀>
촤아아아아아아아!
이번엔 지팡이 끝에서 뱀들이 쏟아져 나와 시몬의 몸을 휘감았다.
[소년!]
터엉!
시몬을 감싸고 있던 피어가 등 뒤의 본 아머를 열고, 시몬을 뒤쪽으로 빼내주었다. 시몬은 하늘에서 자유낙하했고 피어만 뱀에 감싸졌다.
떨어지는 시몬의 등 뒤를 즉시 친위대들이 받쳐준다. 그들이 각기 시몬의 몸에 찰싹 찰싹 달라붙으며 새로운 본 아머를 입혔다.
<친위대 – 비행 모드>
에메랄드빛 망토에서 클라우드를 부스터처럼 뿜어내며 시몬이 단번에 공중으로 돌아갔다.
스릉!
촤아악!
그대로 에메랄드빛 검을 휘둘러 뱀들을 베어내 피어를 구해낸 뒤, 다시 친위대들이 물러나고 시몬은 피어의 품으로 복귀했다.
이 모든 게 초 단위에 일어난 일. 순식간에 피어를 입은 시몬이 힘차게 파멸의 대검으로 허공을 그었다.
쩌저저저저저정!
공간이 일렁이며 하늘을 가를 듯 거대한 검격이 모제의 지팡이에 부딪혔다. 이때 시몬은 그의 지팡이에 빠르게 금이 가는 것을 캐치했다.
“···대단해. 이렇게 잘 싸울 수 있다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복하고 있어.”
모제가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 자신 외에 매료된 인간은 네가 처음이야.”
“미안하지만 나는 그쪽이 취향이 아니라.”
휘오오오!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들고 모제의 위에서 나타났다. 시몬이 힘껏 파멸의 대검을 휘둘렀고 모제는 지팡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쩡!
공격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으나 지팡이가 그 일격으로 금이 가더니.
꽈드드득!
결국 완전히 박살 나고 말았다.
“끝이야!”
시몬이 자세를 고쳐 잡고 온 힘이 깃든 파멸의 대검을 모제의 이마를 향해 내질렀다.
바로 그 순간.
텁.
시몬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 강대한 공격이 모제의 검지 끝에 가볍게 막히고 말았다.
“미안.”
서서히 눈을 크게 뜬 모제의 동공이 나른하게 풀린 채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완성됐어.”
화아아아아아아아악!
모제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눈부신 빛에 시몬이 얼른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설마 정말로···!’
가슴 위의 마법진이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모제가 자신의 오른손을 한 번 더 그 마법진에 안착하는 것으로 그의 몸이 강한 힘에 떠밀렸다.
[빛이 있으라.]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시몬은 얼른 피어의 투구를 다시 쓰고 모제를 바라보았다.
구름이 모제를 떠받든다. 성녀의 성의를 연상케 하는 빛의 의복이 모제의 몸을 휘감았다. 모제 뒤에 광륜이 펼쳐지고 맹렬한 후광이 쏟아졌다.
모제의 형체는 흐릿하게 변해 있었다. 그러나 후광과 함께 모제를 보니 모제가 아니라 마치 다른 무언가의 모습이 되어 비치고 있었다.
<모제 오리지널 – 반신화(半神化)>
후광을 뿜어내며, 모제가 당당히 시몬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두 손가락을 가볍게 붙이더니 딱 소리가 나게 튕겼다. 작은 마찰음이 울려 퍼지고.
“!!!”
그것만으로도 시몬의 몸이 강한 압력에 떠밀려 날아갔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시몬의 몸이 뭔가 할 틈도 없이 지면에 강제로 틀어박혔다. 그의 입에서 컥! 하고 핏물이 튀어나왔다.
‘무슨···!’
[이 모습을 보이는 건 교황 성하 이후로 네가 처음이야.]
고오오오오오오!
후광으로 인해 다른 모습을 한 모제가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더 이상 그는 ‘신의 손’이 아니었다. 이 상태에서는 ‘신의 몸’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전신에서 축복을 뿜어내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축복을 한 몸에 받아들인 게 지금의 나. 나는 지금 인간을 초월했어.]
툭.
모제가 목에 매고 있던 평범한 십자가 목걸이를 뜯어서 자신의 앞에 띄웠다.
[진정한 신의 위광을 보여줄게.]
고오오오오오오오!
십자가가 빛의 힘으로 휘감기더니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이내 모제의 크기를 넘어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자가의 몸체에서 다소 징그러운 외형의 천사의 손이 수천 개 튀어나왔다.
차악.
착.
차악.
그것들이 기도하듯 두 손을 맞잡는다. 빛으로 영롱해진 십자가가 재앙의 병기로 진화한다. 오로지 반신화 상태만 쓸 수 있는, 가히 신의 심판을 형상화한 기술.
<모제 오리지널 – 기펠크로이츠(Gipfelkreuz)>
모제가 오른손으로 십자가를 밀자, 그것이 시몬을 향해 천천히 내려온다. 시몬의 이마에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일종의 질량 병기인가. 아니, 그 정도가 아니겠지.’
닿으면 배리어 따위는 잠시도 버틸 수 없어 보였다. 시몬이 얼른 뒤로 물러나려고 했으나.
출렁!
허공이 물결처럼 비틀리기 시작했다. 모든 세상이 닫히고 휘어지더니 어느새 이 세상에는 바닥에 틀어박힌 시몬과 모제,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십자가만 남게 되었다.
어디로도 도망칠 틈이 없었다.
[이건 신의 징벌이야. 인과의 역전 정도는 당연한 것]
모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네 죽음은 결정되었고,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어.]
고오오오오오오!
삼라만상의 법칙을 일그러뜨리며 죽음을 확정 짓는 신의 징벌.
그것과 마주하며, 시몬은 옅게 웃음 지었다.
[그렇담 최선을 다해 발버둥 쳐야 겠네.]
이렇게 공간이 일그러졌으니, 룬 리그의 옵저버로는 관중들이 보지 못할 것이다.
시몬은 과감히 두 손바닥을 펼쳤다.
오른손에는 칠흑.
왼손에는 신성.
두 가지를 뒤덮는 피. 이 세 가지의 자원을 부딪히며 서서히 회전시킨다.
[자.]
시몬이 입꼬리를 올렸다.
[어느 쪽의 왜곡이 더 강한지, 붙어보자.]
피가 제거되고 홀로 남아 부딪히던 두 힘이 서로 끝없이 회전하고 돌고 돌다가.
고오오오오오!
공간이 일렁거리며 ‘왜곡’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이내 시몬은 정면을 응시했다. 피할 공간을 모조리 일그러뜨리며 징벌의 십자가가 다가오고 있다.
‘내가 저 십자가에 닿는 건 결정된 운명.’
시몬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렇다면 공간을 비트는 정도로는 부족해. 그 인과마저도 왜곡해서 비틀어야 해.’
아까도 느끼는 부분이지만, 시몬은 콤펠로 상태 이후 초월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것 자체에 대한 잔상이 남아 있었다.
지금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시몬이 과감하게 준비 중인 ‘소용돌이’를 붙잡았다. 소용돌이는 결과적으로 방향을 왜곡시킬 뿐, 모제의 십자가는 방향을 트는 것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촤아아아아아!
시몬이 스스로 제 몸에 소용돌이를 닿게 했다.
소용돌이는 시몬의 몸을 빨아들이지 않는다. 그 점을 고려한다면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게 하나 있었다.
‘입는다.’
시몬이 소용돌이의 근원과 같은 혼돈의 힘을 뿜어내며 서서히 소용돌이를 제 몸에 안착시킨다. 피어의 본 아머 위로 왜곡이 덧입혀진다.
왜곡이 끝없이 비틀어지며 갑주에 녹아들었다. 시몬은 어둠을 뒤집어쓴 듯한 형상이 되었다. 빛마저 집어삼키는 왜곡이 시몬의 전신을 시커멓게 물들인다.
<왜곡 – 다크후드>
콰콰콰콰콰콰!
새로운 경지의 지평이 열리고.
형언할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 한때 봤던 미래의 자기자신과 비슷한 감각이 찰나의 순간 느껴진다.
‘완벽해.’
왜곡을 몸에 두른 시몬은 천천히 손을 뻗어 다가온 모제의 십자가를 두 손에 대더니 서서히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화아아아악!
인과가 틀어지고 삼라만상의 법칙이 변화한다. 십자가가 왜곡에 휘감기며 서서히 시몬의 몸 안으로 끌려들어 간다.
십자가에 피어난 무수한 손들이 기도하듯 손을 맞잡은 상태에서 서서히 벌어져 손바닥을 쫙 펼치고, 이내 손목을 붙인 채 빙글 돌고 역수로 깍지를 끼는 듯한 자세로 바뀌었다.
‘이럴 수가.’
이를 목격한 모제는 전율했다.
전율에 뇌와 몸이 떨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촤아아아아아!
시몬 폴렌티아가, 다름 아닌 네크로맨서가 <기펠크로이츠>의 소유권을 휘어잡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시몬이 공간과 인과를 조종하는 십자가를 등 뒤에 짊어진 듯한 전투 자세를 취했다.
[간다.]
시몬의 몸이 가볍게 지면을 박차고 서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모제가 물러나려 했지만, <기펠크로이츠>의 효과로 공간이 왜곡되며 뒤로 물러날 공간 자체가 일그러진다.
인과의 역전이 비틀려, 이제는 그 칼날이 자신의 목을 향하고 있다.
‘내가 내 기술에 당할 운명이라니.’
하.
하하하!
모제가 큰 소리로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두 손을 모았다.
[내 영혼까지 매료하는구나! 시몬 폴렌티아!]
모제가 두 손을 벌리자 새로운 십자가가 일어났다. 십자가의 몸체 위로 무수한 손이 피어나 기도하듯 포개어진다. 또 한 번의 <기펠크로이츠>.
기펠크로이츠는 오로지 기펠크로이츠로밖에 막을 수 없다.
촤아아아아!
후광을 등지고 선 모제가 함박 미소를 지었다.
왜곡을 몸에 두른 시몬이 입꼬리를 올렸다.
위에서는 후광이 뿜어지고.
아래에서는 왜곡이 후광을 집어삼킨다.
두 개의 <기펠크로이츠>.
두 사람의 소년.
인과도 운명도 비틀어진 이 공간에서 두 소년이 서로를 향해 십자가를 휘두른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신성 질량이 부딪히며 공간 전체가 뒤흔들린다.
두 십자가가 맹렬히 격돌하며 세상에 불똥을 튀긴다. 부딪힌 십자가 너머로 두 소년의 눈빛이 맹렬히 교차한다.
[이렇게 되면 유지력 싸움이구나!]
입꼬리가 귀 끝까지 걸린 모제가 말했다.
[내 반신화가 오래갈지! 네 왜곡이 오래갈지 말이야!]
[틀렸어.]
쩌적.
적.
힘의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모제의 십자가에 빠르게 금이 가고 있었다. 모제의 눈에 의문과 경악이 깃든다.
[왜? 서로 동등한 힘의 기펠크로이츠일 텐···!]
[가장 기본을 잊었나 보네.]
시몬이 자신의 십자가에 점점 더 강하게 힘을 주었다.
[믿음의 차이.]
까가가가가각!
시몬이 힘을 주는 만큼 모제의 십자가가 더 빠르게 붕괴되기 시작한다.
[반신화는 네 우월감의 발현이고, 기펠크로이츠는 신의 징벌을 내리는 절대적인 기술이겠지. 나를 향한 신의 징벌이 내 손에 들어온 순간부터 승패는 결정됐어.]
까가가가가각.
시몬의 십자가가 마침내 모제의 십자가를 부수고 다가왔다.
[너는 신이 아니야. 모제 델 베아투스]
그 한마디에 모제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시몬이 힘껏 십자가를 모제의 가슴을 향해 내질렀다.
천지가 개벽하는 굉음이 울려 퍼진다.
왜곡된 세상이 풀어지고 다시 이곳은 언더링의 호수숲의 드높은 상공.
결과는 ‘반신화’가 풀린 채 하늘로 떨어지는 모제와, 십자가를 손에 넣은 채 하늘에 고고히 떠 있는 시몬의 모습.
승패는 누가 보아도 선명히 보였다.
쿠쿠쿵-!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모제가 바닥에 떨어져 멍하니 상공을 올려다보았다.
“···하.”
구도가 역전됐다.
이제는 자신이 시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태양빛이 강하게 들어오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시몬은 마치 후광이 가득했다.
“저거야말로 신의 편린이구나.”
파앙!
모제의 몸이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신성연방 대표팀 2번, 모제 델 베아투스가 탈락했습니다.>
룬 리그 내내 가장 위협적인 적수인 모제의 탈락.
시작의 동굴은 물론, 대륙 전역에서 지켜보던 암흑연합의 주민들이 뜨거운 함성을 토해내는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