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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멘탈 서클>
화아아아아아아아아!
4원소가 뒤섞인 거대 구체가 모제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대형 저택을 몇 채나 뭉쳐놓은 듯한 방대한 크기·
이를 바라보는 모제는 태연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신께서 가라사대, 믿음을 갖지 못하는 전도사를 꾸짖으며 말하노니·”
그가 허리를 굽혀 흙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며 말을 이었다·
“네 눈에는 손에 쥔 그것이 정녕 나뭇가지이더냐· 천국의 증명이더냐·”
화아아아악!
그의 오른손에 붙잡힌 나뭇가지가 눈부신 빛을 내뿜더니 그 형체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나무의 끝부분이 검처럼 날카롭게 변하며 맹렬한 빛을 내뿜었다·
지켜보던 메이린의 눈이 커졌다·
‘저거 설마···!’
“성검기·”
촤아아아-
내려오는 엘레멘탈 서클에 대항하여 다리를 가볍게 벌린 모제가 두 손으로 성검이 된 나뭇가지를 붙잡고 자세를 취했다·
“디바인 저스티스(Divine Justice)·”
그가 가볍게 나뭇가지를 허공에 그었고·
기적이 일어났다·
내려오던 엘리멘탈 서클이 좌우로 쩌어어어억 갈라지더니 그대로 허무하게 폭발해 버린 것이다· 멀리서 오로라 마녀 모자를 쓴 채 지켜보던 메이린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성검 사용자의 기술? 뭐냐고! 대체!’
사아아-
마치 힘을 다한 듯 깨져 나가는 빛의 검을 무심하게 등 뒤로 던져 버린 모제가 성큼성큼 걸어갔다·
“네 번째 제자 바훌이 가로되, 여신께서 모든 것을 굽어보고 계신다면 어찌하여 우리를 이리 욕되게 하시옵니까·”
스으·
그가 목에 두르고 있던 긴 목도리를 풀어서 오른손에 닿게 했다· 그러자 목도리가 눈부신 빛과 함께 성스러운 불꽃이 휘감긴 채로 하늘로 나풀나풀 날아올랐다·
“우둔한 바훌아· 전능하신 어머니는 모든 것을 아끼시매, 보아라· 신께서는 하늘의 별조차 거두어주시니라·”
그가 목도리를 한번 휘두르자 쏟아지던 메이린의 4원소 마법이 유리창처럼 깨지거나 사라지기 시작했다·
퍼어어어엉!
퍼어어어어어어엉!
가히 압도적인 힘·
그가 목도리를 휘두르며 메이린에게 점점 더 빠르게 접근했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메이린은 화력을 쏟아부으면서도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을 초월한 강자?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합숙 기간 동안 로하론 지방에서 경험했던 고블린인 메시아 코코가 우습게 보일 정도의 권능·
‘···신성연방이 말하는 진짜 성자는-’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메이린은 자신도 모르게 생각했다·
후웅!
모제가 지면을 딛고 날아올랐다· 휘두르던 목도리가 그의 축복을 견디지 못하고 타들어 갔지만, 이번에도 미련 없이 손에서 놓아버렸다·
휘오오오오!
왼손을 들어 백마법으로 바람을 일으킨 모제가 그 바람을 자신의 오른손에 닿도록 했다· 바람이 오른손을 타고 휘몰아칠수록 점점 더 눈이 부시고 강렬하게 번쩍였다·
이내 모제가 손바닥을 내뻗자 강화된 신성의 힘이 창격처럼 메이린을 향해 쏘아졌다·
“큭!”
메이린이 남은 힘을 모조리 쥐어짜 내 두 팔을 앞세웠다· 등 뒤의 오로라 마법진에서 무수한 4원소 마법들이 쏘아져 나갔지만 모제가 한번 날린 공격이 모든 마법을 받아내며 전진했다·
위태로워진 메이린이 급히 오로라를 엮어서 전면에 방패처럼 펼쳤고·
쩌저저저저정!
두 힘이 부딪히며 폭발했다·
“꺄악!”
그 후폭풍으로 메이린이 한참을 날아갔다· 얼마나 강력한 위력인지 순간 살짝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다· 날아가던 그녀가 얼른 칠흑바람계 마법을 일으켜 추락 속도를 조절했다·
첨벙·
정신없이 날아가다 보니 어느새 큰 호수 한가운데 근처였다· 그녀는 호수에 빠지기 전에 바람마법으로 수면 위에 멈춰 섰다·
‘···물·’
위쪽에서 흐르는 물로 이루어진, 이 숲에서 가장 큰 호수였다·
그녀가 이를 악물고 다시 마법진을 일으켰다·
주르르륵!
그녀가 사용하고 있는 ‘부스트’ 마법으로 이미 몸 상태는 한계에 달했다· 코에서 검은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냉기를 일으켰다·
‘여기 있는 호숫물을 얼려서···!’
“위대한 데바께서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나를 원망하며 부르짖느냐·”
차박· 차박·
어느새 모제가 메이린을 따라잡은 채 호수에 나타났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웅얼웅얼거리던 모제가 천천히 몸을 굽히더니·
“바다 가운데 육지로 백성들을 행하라·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을 갈라지게 하라 하시더라·”
그 오른손으로 호수를 짚었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
즉시 호수가 좌우로 갈라지며 마른 바닥이 드러났다· 갈라진 호수는 해일처럼 솟구쳐 올랐으며 강렬한 신성을 머금은 듯 하얀 물결로 바뀌어 있었다·
모제가 중얼중얼 기도문을 읊으며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모든 호수 물이 그 위로 모여들며 휘몰아치며 점점 더 맹렬한 흐름으로 바뀌었다·
메이린이 다급히 화력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원소마법을 정면으로 끌어올렸다·
“데바께서 예언자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병사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게슴츠레한 눈의 모제가 일순 두 눈에 힘을 바짝 주었다·
“물이 다시 흘러 바다에 들어간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콰콰콰콰콰콰콰콰콰!
그대로 호수를 통째로 들어 만든 수류계 백마법이 메이린과 마법진들을 덮쳤다·
메이린도 4원소 마법을 일으켜 저항했지만 힘의 차이는 명백했다·
쿠구구구구구!
메이린이 다시 한참을 날아가 흙바닥을 뒹굴며 쓰러졌다·
“하아! 하아!”
머리에 쓴 오로라의 마녀 모자가 금방이라도 꺼질 듯 희미하게 변한 상태였다· 그녀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첨탑에서 힘을 너무 쓰지만 않았으면 이렇게 밀리지는···! 아니, 변명하지 말자· 싸워야 해·’
그녀가 힘주어 오로라 모자를 손으로 짚었다·
다시 한번 대리연산이 진행되며 등 뒤에 오로라 마법진이 펼쳐졌다·
“포기해·”
모제가 잔상과 함께 그녀의 정면에서 나타났다·
“승산이 없다는 걸 알았잖아?”
메이린은 묵묵부답이었다· 그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마지막 한 방을 준비했다·
그러나 거리가 좁혀지면 모제의 축복 범위에 들어오게 된다· 모제가 오른손에 휘감은 축복을 허공에 날리듯 손을 휘저었다·
“두뇌 회전이 빨라지는 축복·”
그 순간·
메이린의 사고가 붕 부유하며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연산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졌다· 마법진의 구축 속도가 메이린의 두뇌 연산량을 따라오지 못하고 마구 망가지고 깨져나갔다·
파직!
까드득!
그녀의 등 뒤에 놓여 있던 오로라 마법진들이 하나둘 박살 나기 시작한다· 준비하던 흑마법도 불꽃이 튀더니 허공에 흩어져 사라진다·
“재미있지 않아?”
모제는 산책하듯 주위를 거닐며 흑마법 시전이 모조리 실패하는 메이린의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마법사들은 높은 사고력의 경지를 원하지만, 막상 그런 경지에 도달하면 오히려 잘 써지던 마법도 안 되는 거야· 너무나 명확한 범재의 한계지·”
그가 오른손에 축복을 만들었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네크로맨서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살해할 것이다·
레테도 전투 중이다· 더 이상의 방해는 없다·
“다음은 더 잘 보이게 되는 축복이야·”
모제가 메이린에게 축복을 걸었다·
“그다음은 더 잘 들리게····”
그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모제가 멈칫했다·
마법진들이 망가져 가는 중에 한 가지 마법진이 멀쩡히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파아아아아앙!
오른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메이린의 몸이 새파랗게 변해 있었다·
쓰러진 그녀의 아래에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펼쳐져 있었다·
<암흑연합 대표팀 5번, 메이린 빌렌느가 탈락했습니다·>
“···하하· 아하하·”
그녀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어쩜 너희들은 하나같이 멍청해?”
모든 건 메이린의 연기였다·
먼저 모제에게 탈락된 에이젤이 시몬에게 바람으로 정보를 보냈고, 그 덕분에 모제의 능력과 그의 성격에 대해서는 네크로맨서 대표팀 전원이 숙지한 상태였다·
모제를 찾아내 쓰러뜨리는 게 그들의 1순위 목표였지만, 사실상 시몬이나 헥토르급이 아닌 이상 다른 네크로맨서들은 모제와 맞닥뜨리면 살해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고민한 부분이었다· ‘어떻게 신의 손에 닿지 않고 스스로 탈락할 것인가’·
그 방법이 엘리사는 추락이었고, 메이린의 경우에는 체력을 소모하는 대신 억지로 엘리멘탈 버스터의 지속 시간을 늘리는 ‘부스트’ 마법으로 스스로 탈락할 준비를 했다·
“너희들과는 달리, 우리는 어떻게 탈락할지도, 탈락한 뒤의 상황까지 계획했어· 그리고·”
파아아아아앗!
허공에 완성된 하나의 마법진이 커다랗게 펼쳐지더니, 하늘을 향해 칠흑바람계 마법 하나를 발사했다·
“네가 어떻게 날 가지고 놀지도 예상했어·”
메이린의 ‘엘리멘탈 마스터’의 원리는 ‘대리 연산’이다·
술사 본인의 능력과 지식을 기반으로 여러 개의 ‘간이 뇌’를 만들어, 한 사람의 마법사가 연산할 수 없는 다량의 흑마법을 쏟아내는 기술·
최고의 속도를 가진 에이젤에게 빨라지는 축복을 걸었던 것만큼, 모제는 상대하는 적을 자신의 축복으로 무력화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걸 즐긴다·
근본이 마법사인 메이린에게는 에이젤에게도 걸었던 ‘두뇌 회전이 빨라지는 축복’을 걸려고 할 터·
하지만 사실 메이린의 엘리멘탈 마스터는 술사의 컨디션과는 아무 상관 없는 ‘대리 연산’이다· 그래도 모제의 승리감을 연출하기 위해 메이린은 스스로 마법진들을 부수고 무력화되는 척한 것이다·
“···너·”
“덕분에 시간을 끌었고, 마법도 하나 완성했어·”
품에서 초록색 조명탄을 날린 메이린의 몸이 텔레포트 마법진의 빛이 올라오며 서서히 사라져 갔다·
“내가 쓰러뜨리지 못하면 다음 동료가 널 쓰러뜨릴 거야· 우리 네크로맨서를 얕보지 마·”
파앗!
그 말을 마지막으로·
메이린의 몸이 완전히 호수숲에서 사라졌다·
모제는 그 모습을 손 놓고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
모제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한 방 먹였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래서 뭐가 달라지지?”
그가 오른손을 천천히 주먹 쥐었다·
“탈락한 뒤의 상황을 계획한다고? 탈락하면 끝이야·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뒤를 맡긴다는 것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범재의 우스운 책임 넘기기일 뿐이야·”
그가 등을 돌려 걸었다·
‘이 룬 리그가 끝난 뒤에 내 손으로 직접 죽여주마·’
그 순간·
휘오오오오오오!
하늘을 향해 사용했던 메이린의 칠흑바람계 마법이 나타났다·
커다란 회오리가 다시 날아와 모제와 떨어진 등 뒤에 쿠쿵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모제가 뒤를 돌아보았다·
[너는 이해 못 하겠지, 모제·]
펄럭!
방금 마법의 정체는 에이젤의 기술을 보고 메이린이 새롭게 모방한 바람계 이동마법·
바로 그 바람 속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형의 망토, 빈틈없는 피어의 본 아머, 그리고 새하얀 파멸의 대검까지·
모제가 마침내 완전히 등을 돌려 새롭게 등장한 소년을 바라보았다·
[뒤를 맡긴다는 건 이런 거야· 드디어 우리가 만나게 됐네·]
쓰윽·
시몬이 피어의 투구를 손끝으로 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모제 델 베아투스·”
모제의 입가에도 의미심장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번엔 네 차례인가, 군단장 시몬 폴렌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