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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공포를 맛보고 있었다·
신성연방 2번의 신의 손, 모제 델 베아투스·
그 강력한 에이젤을 일방적으로 쓰러뜨린 축복사제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왜 그렇게 얼어 있어? 아직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터벅 터벅·
모제가 오른손을 들어 올린 채 다가오고 있다·
엘리사는 알고 있었다· 모제를 찾아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고, 정면에서는 그에게 이길 수 없다는 사실 쯤은·
‘큭!’
온몸의 피가 굳어진 것 같다·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이빨은 뇌의 통제를 벗어나 딱딱 부딪힌다·
시작부터 승리에 대한 의지가 꺾이는 건 네크로맨서에게는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맞서야 했다·
“두 번의 실수는 없어·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끝내줄게·”
구식 목자옷을 휘날리며 모제가 다가와 오른손을 내뻗는다·
저 손에 닿으면 아웃, 아니, 즉사다·
눈물이 날 만큼 두렵지만·
“나라고!”
그녀가 등을 뒤쪽으로 기울이며 흑마법을 사용했다·
“진지한 때가 없는 건 아니거든!”
<혼령화>
후웅!
다가온 모제의 오른팔이 유령처럼 투명해진 엘리사의 몸을 그냥 통과해 버린다·
제아무리 신의 손이라 해도 닿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모제도 놀랐는지 눈이 조금 커졌다·
스스스!
엘리사는 물리력의 세계를 초월한 혼령화 상태를 유지하며 그대로 갑판 아래로 내려가더니 배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제 그녀는 하늘에 떠 있고, 모제는 유령선 갑판 위에 서 있었다·
<유령함대 – 출격명령>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녀의 등 뒤에서 연달아 사령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유령선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수는 무려 7척·
그중 6척의 유령선들이 모제가 타고 있는 유령선을 빠르게 포위한다· 포문이 열리고 포탄이 장전된다·
“선체째로 날려 버릴 속셈이네· 한 척이라지만 아깝지 않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모제가 축복을 준비했다·
그가 준비한 건 방어력을 증강시키는 축복·
배의 방어력을 강화시키고 그 안에 들어가면 포격쯤은 간단히 막을 수 있다· 그의 오른손이 배의 선체에 닿으려는 순간·
<혼령화>
“!”
그가 타고 있는 유령선마저도 물체의 성질을 벗어던지며 완전 혼령화 상태가 된다· 배에 닿으려던 그의 오른손은 허무하게 허공을 휘저을 뿐이다·
‘어떻게든!’
엘리사가 심장이 쫄리는 압박감을 느끼며 포격명령을 내렸다·
‘저 괴물에게 피해를 준다!’
투콰아아앙!
맹렬한 포성과 함께, 유령선에서 발사된 포탄들이 공중에 뜬 모제를 향해 다가온다·
“쯧·”
모제가 피곤한 표정으로 왼손을 펼쳐 백마법을 일으키고, 오른손에는 여전히 강화 축복을 유지한다·
왼손에는 신성역학· 오른손에는 축복학·
우선 오른손을 이용해 축복을 허공에 퍼뜨려 대기에 축복을 머금게 한다·
축복을 머금은 대기는 모제를 중심으로 투명한 사각형처럼 넓게 퍼졌다· 포탄은 그 사각형을 통과해 모제에게 들이닥쳤다·
사락!
사라라라락!
왼손의 백마법은 바람을 일으킨다· 이 바람은 포탄이 모제에게 닿지 않도록 흘려보내 반대쪽 허공으로 날아가게끔 만든다·
쌔앵!
쌔애애애애애앵!
무려 유령선 여섯 척의 포격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공중에 뜬 모제는 맞고 있지 않았다· 모제를 지나친 포탄들이 다른 유령선의 선체에 틀어박히며 갑판이 박살이 나고 돛에 구멍이 뚫렸다·
엘리사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중간에 포탄이 폭발하도록 설정했는데!’
“포탄의 탄체(彈體)를 강화한 거야· 엘리사 셀린·”
모제가 태연히 설명했다·
“저 안에는 화약이 아니라 스피릿이 들어 있지? 탄체 자체를 강화해 버리면 스피릿이 압력을 일으켜도 포탄은 깨지지 않고 한참을 날아가다가 그 끝에 터지는 거야·”
그 말대로·
거의 시야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날아간 포탄이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터졌다·
애초에 탄체 자체는 그리 튼튼하지 않지만, 스피릿의 압력을 견딜 정도로 축복의 성능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다·
“그리고 그거, 풀렸네·”
“!”
휘오오오오!
어느새 혼령화 상태가 풀린 엘리사가 고공에서 자유낙하하고 있었다·
“그 혼령화란 거, 두 번은 쓸 수 없는 거지?”
모제가 무릎을 굽히는 자세를 취하며 오른손으로 제 신발 밑창을 가볍게 한 번씩 짚었다·
그러자 신발이 번쩍번쩍 금빛의 무언가로 변하더니, 요란한 동력음을 토해내며 모제의 몸을 밀어냈다·
“끝이야·”
모제의 오른손이 다가온다·
엘리사는 후으읍 숨을 들이마시며 다시 한번 크게 숨을 참았다·
‘키젠의 사령학과 총대표를!’
그녀가 심장을 움켜쥐듯 가슴에 손을 얹으며 눈에 바짝 힘을 주었다·
‘얕보지 마!’
<혼령화>
상식을 뒤흔드는 혼령화의 연속 사용·
모제의 오른팔이 엘리사의 몸을 허무하게 지나쳤다· 모제가 피곤한 표정으로 인상을 굳히며 공중에서 다시 멈춰 섰다·
“···잔챙이를 상대로 오래 걸리네· 내가 상성이라는 걸 타다니·”
하이야아아아압!
엘리사가 속으로 함성을 쏟아내며 두 팔을 내리그었다·
<유령함대 – 돌진 명령>
촤아아아아!
유령선이 일제히 혼령화되더니 내장된 스피릿을 모조리 동력으로 태우며 돌진해 모제의 몸에 겹친 채 파고들었다· 물론 물리력이 없기에 모제에게 부딪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쩌려는 거야?”
모제가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엘리사가 두 손을 포개는 자세를 취했다·
‘해체!’
일곱 척의 유령선들이 일제히 혼령화 상태가 풀리며 자기들끼리 부딪히고 깨지며 박살 났다·
이 정도라면 보통의 상대의 몸뚱이는 짓이겨졌겠지만, 상대는 그 모제 델 베아투스·
엘리사는 포갠 두 손을 펼치며 모제를 끝장내기 위한 마법진을 만들었다·
‘윽!’
곧 저지를 짓을 생각하니 주마등 같은 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저 유령선 한 척 만든다고 개고생한 과거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를 보수하느라 정신없던 하루하루들, 셀린가 가주인 아버지에게 찾아가서 용돈 좀 가불해 달라고 싹싹 비는 미래까지·
뭔가 눈물이 주르륵 나는 것도 같지만, 지금은 나중 일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그녀가 완성한 마법진을 손바닥에 붙이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유령함대 – 자폭 명령>
귀가 잠시 마비될 듯한 웅장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가 지금까지 태어나서 사용한 스피릿 폭발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크기와 위력·
연녹색 스피릿 폭발이 유령 모양처럼 일어나 퍼져 나가고 있었다·
‘아름답다·’
혼령화 상태가 풀린 채 하늘에서 빠르게 낙하하고 있는 엘리사는 그런 생각을 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주머니에서 초록색 조명탄을 꺼내 하늘로 날렸다·
휘오오오오!
잠시 후 폭발 연기가 거센 돌풍으로 걷혀 나가며, 모제가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른손으로 제 몸을 짚고 있었는데, 몸이 황금 동상처럼 번쩍번쩍거리다가 그가 손을 떼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생각이 바뀌었어·”
모제가 다시 오른손으로 제 신발 밑창을 툭툭 훑고는 자세를 낮췄다·
“너는 조금 고통스럽게 만든 뒤에 죽여야겠다·”
터어어어엉!
모제의 몸이 빠르게 내려왔다· 엘리사는 아까부터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지만 모제가 더 빨랐다· 이내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지면에 내려왔고·
쿠웅!
천천히 엘리사를 가지고 놀 생각이었던 모제는, 뭔가 심상치 않은 충돌음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
커흑!
지면에 추락한 엘리사가 피를 토하고 있었다·
네크로맨서가 고공에서 다치지 않고 떨어지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단순히 지면이 가까워졌을 때 칠흑을 아래로 뿜어내는 것만으로도 낙하 속도를 대폭 줄일 수 있고, 그게 안 된다면 그냥 칠흑으로 몸을 보호해도 어딘가 부러지는 건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엘리사는 몸을 칠흑으로 보호하지도 않고, 흑마법으로 혼령 기술을 쓰지도 않았다· 그 결과로·
<암흑연합 대표팀 6번, 엘리사 셀린이 탈락했습니다·>
그녀의 몸이 새파랗게 변하며 텔레포트 마법진이 펼쳐졌다·
룬 리그 역사상 첫 낙하 아웃이었다·
“약 오르지?”
낙하의 충격에 벌벌 떨면서도, 엘리사가 혀를 삐쭉 내밀며 약 올렸다·
“지금 건드려 봐· 널 아웃시킬 수 있다면 기꺼이 죽어줄 테니까·”
“····”
아웃 직전 푸른색 상태가 된 플레이어를 건드리면 즉시 탈락하는 게 룬 리그의 엄중한 룰이다·
모제는 움직이지 않았고, 엘리사는 혀를 삐쭉 내민 채 텔레포트로 사라져 버렸다·
휘이이잉-
허무한 바람이 한 차례 불었다·
모제는 길게 한숨을 흘렸다·
“방심했네·”
어떻게 된 연유인지, 에이젤에게만 보였던 자신의 능력을 다른 네크로맨서들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자신이 네크로맨서들을 진심으로 죽이려고 하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싸우지 않고 적당한 타이밍에 스스로 아웃·
이건 상정 외의 사태였다·
“···에이젤 브링어·”
아무래도 에이젤은 자신의 정보를 동료들에게 흘리고 아웃됐으리라·
사라진 뒤에도 번거롭게 구는 남자였다·
이번 엘리사 셀린도 번거로웠던 건 마찬가지· 처음 갑판 위에서 마주했을 때의 그 표정은 패배를 직감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예상 이상으로 분투했고 자신의 체력과 신성 소모를 이끌어냈다·
한번 믿음이 꺾이면 모든 걸 포기하는 프리스트들과, 저 네크로맨서들은 마인드부터가 달랐다· 자신이 끝나도 계속해서 동료들에게 뒤를 맡기는 느낌·
“이런 게 네크로맨서의 싫은 점이라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그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무수한 오로라 빛깔의 크고 작은 마법진들이 펼쳐져 있었다·
“다음은 너야?”
꽃밭을 연상케 하는 무수한 마법진 너머로,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로라 마녀 모자를 쓴 소녀가 보인다·
“5번 메이린 빌렌느·”
고오오오오!
이미 ‘엘리멘탈 마스터’의 지속 시간은 끝난 상태·
하지만 메이린은 이를 악물고 기술을 유지하고 있었다·
“에이젤 선배님, 클라라, 그리고 엘리사의 복수전·”
그녀가 팔을 내리그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고·”
마법진이 번뜩이고·
화염, 얼음, 바람, 대지 4속성의 마법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엘리멘탈 버스트>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메이린의 진가 중의 진가·
무수한 원소마법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모제는 왼손으로 신성 결계를 펼치며 그 공격을 받아냈다·
“귀찮네·”
아무리 모제라도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그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흑마법 공세를 피해 앞으로 달리는 와중, 오로라 빛깔의 힘을 휘감은 메이린이 정면에서 내려왔다·
그녀가 즉시 오른팔을 세우고 마법진을 펼치자, 그 안에서 막대한 질량의 빙산이 정면으로 쏟아졌다·
스으·
모제는 왼손으로는 계속 머리 위에 결계를 펼치면서, 태연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들어 날아오는 빙산을 텁 하고 짚었다·
콰창!
짚는 것만으로 그 거대한 빙산이 흔적도 없이 박살 났다· 모제가 오른손을 파리 쫓듯 휘두르며 얼음을 쳐내고 있는데·
콰아아아아악!
그다음 빙산은 오른손에 닿아도 없어지지 않고 모제의 몸을 뒤로 주르륵 밀어냈다· 그가 픽 웃었다·
“순수마법?”
그러나·
“그래서 어쩌란 거지?”
키이이이이이잉!
그의 오른손에 닿은 얼음이 마치 눈부신 빛의 광물처럼 변했다·
축복술사라면 누구나 꿈에 그리던 힘·
<성물화>
그가 성물화된 빙산을 역으로 날렸고 그것이 그대로 메이린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쐐애애애액!
성물화된 빙산은 한참을 날아가서 숲의 나무와 바위를 모조리 부수며 전진했다· 메이린을 꿰뚫은 것처럼 보였지만, 모제는 방심하지 않았다·
‘마법진만 진짜고 형체는 환상·’
화아아아아아아아아!
<엘리멘탈 서클>
하늘에서 거대한 4원소의 구가 모제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좋아, 제대로 해보자· 메이린 빌렌느·”
그가 천천히 발아래를 바라보았다·
바닥에 널려 있는 나뭇가지 하나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