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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쿵-!
콰콰콰쾅!
거인들 간의 격전이 벌어졌다·
힐링으로 거대화한 르바임과, 대지의 거인 ‘기간테스’로 무장한 샤텔이 서로 주먹으로 치고받고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치열한 육탄전은 잠시뿐·
쩌엉!
크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순수 파괴력은 기간테스가 우위였다· 대자연의 힘을 그대로 모은 듯한 공격에 르바임이 밀리기 시작했다·
‘굳이 정면 승부를 고집할 필요는 없어·’
이에 르바임은 발 빠르게 전술을 변경했다·
다시 작은 인간 형태로 돌아온 그녀가 지면에서 달리기 시작했고, 기간테스는 그녀를 잡기 위해 거대한 발을 들어 올렸다 내리찍기를 반복했다·
까각!
그때 기간테스의 어깨가 통째로 비틀어지더니 도망치는 르바임을 향해 가공할 만한 속도로 주먹을 내질렀다·
<그레이트 힐>
이에 르바임도 덩치를 순간적으로 확 키우며 그 주먹을 피하는 동시에 팔을 붙잡았다· 기간테스의 균형이 쏠려 있는 틈에 르바임이 등을 밀착한 뒤 옆으로 힘껏 넘겼다·
“하아아아아아!”
그 거대한 기간테스의 다리가 살짝 떠오르더니 균형을 잃고 지면에 쓰러지려 했다·
쿠쿠쿠쿠쿵!
조종자인 샤텔은 가까스로 기간테스의 오른 다리에 칠흑을 실어서 축으로 버티게 한 뒤, 그대로 반대쪽 주먹을 휘둘렀다·
부아아아아아아앙!
그 어떤 생물도 짓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맹공· 그러나 기간테스의 오른팔을 붙잡고 있던 르바임은 ‘슉!’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아니, 다시 작아진 것이다·
어느새 그녀는 내질러진 기간테스의 팔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기간테스가 그녀를 잡기 위해 반대쪽 손을 뻗었으나·
“진짜 자신의 몸으로 싸우는 나와, 흙을 모아 만든 가짜 몸으로 싸우는 당신·”
터엉!
그녀가 다시 그레이트 힐을 걸어 몸을 키운 뒤, 기간테스의 팔 위에서 도약해 단번에 기간테스의 머리 쪽으로 도달했다·
기간테스의 머리에는 샤텔이 숨어 있었다·
“승부의 결과는 뻔하지 않을까요!”
쩌어어어어어어엉!
르바임의 주먹이 기간테스의 머리를 뚫고 들어갔다·
암벽으로 이루어진 머리가 완전히 박살 나고, 그 안에 있던 샤텔이 커헉 소리를 내며 밖으로 날아갔다·
“승부는 났네요·”
르바임이 입꼬리를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때 피를 흘리며 날아가던 샤텔이 손끝으로 뒤를 가리켰다·
“!”
르바임이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자, 머리를 잃은 대지의 거인이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결국 르바임도 큰 한 방을 허용했다·
쿵-
이미 먼저 날아가던 샤텔이 저만치 날아가 지면에 틀어박혔다·
쿠웅-
조금 떨어진 곳에 작아진 르바임도 지면에 충돌하며 굉음을 토해냈다·
두 구덩이 속의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르바임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텔 마에르·”
“나는-”
쿠구구구구!
샤텔도 몸을 일으키며 다시 한번 자신의 등 뒤에서 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싸운다·”
그러나·
키이이이잉!
그의 몸이 새파랗게 변했다·
<암흑연합 대표팀 4번, 샤텔 마에르가 탈락했습니다·>
그의 다리 아래로는 ‘탈락’을 확정 짓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펼쳐졌다·
“네, 결국 이런 결말이네요·”
르바임이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숨을 헐떡였다· 처음부터 샤텔의 컨디션이 만전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컨디션 관리 또한 실력인 법이다·
파앙!
샤텔의 몸이 룬 리그의 전장에서 이탈했다·
‘···이겼다·’
암흑연합의 까다로운 적 중 하나를 쓰러뜨렸지만, 르바임은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아까 기간테스의 일격을 허용한 충격·
그리고 무엇보다·
“····”
마지막까지 르바임을 바라보던 그의 안타까운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녀가 빠득 이를 갈았다·
-나는· 모든 거인을 위해· 아인종의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
사실 아인종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신성연방과 암흑연합 양측 모두 존재하는 사회문제였다·
특히 신성연방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데바교 경전의 기록은 인간의 기록이다· 거인을 비롯한 아인종들은 나쁘게 표현되거나, 인류의 성장을 위해 넘어야 할 시련 정도로 등장했다·
특히 거인들은 유독 취급이 나빴는데, 경전에서 그들은 인간들을 노예로 부리다 데바의 명을 받은 전도사에 의해 신의 징벌을 받아 쓰러지는 역할 정도였다·
어쩌겠는가· 대륙은 인간의 세상인 걸·
그 철없는 반쪽짜리 거인이, 아주 오래전에 체념했던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바람에 르바임은 기분만 나빠졌다· 샤텔은 거인혼혈이다· 거인이든, 인간이든, 어느 쪽으로 가든 지탄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일 텐데도 거인을 위해서 싸우겠다고 한다·
“얄팍한 선의도 힘이 있어야 가능한 법이죠· 결국 당신은 이렇게 룬 리그에서 퇴장했습니다·”
르바임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어요·”
[아니·]
갑자기 단호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르바임이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고고고고고고!
샤텔이 탈락했에도 불구하고, 목을 잃은 기간테스는 아직도 움직이고 있었다·
그 거대한 팔을 움직여 누군가를 이리로 옮기고 있었다·
그 손바닥에 서 있는 건 다름 아닌·
‘제7군단장, 시몬 폴렌티아!’
처억·
기간테스가 손바닥을 내렸고, 시몬이 거기서 천천히 내려와 르바임의 앞에 섰다·
[탈락했어도 샤텔은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렇게 말한 시몬이 뒤를 가리켰다·
[직접 봐·]
쿠구구!
머리 잃은 기간테스가 스스로 움직여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시전자가 없어도 움직이는 건가? 처음부터 패배를 예견하고···!’
외부 이탈형 마법진은 언데드를 조종하는 소환 마법진과도 같다· 칠흑역학 마법으로 일종의 인스턴스 소환수를 재현하는 것이다·
당연히 쉽지는 않다· 술사가 사라져도 저 정도 대규모의 흑마법을 계속 진행시키는 건 악명 높은 ‘풀고르’ 이상의 초고등 칠흑역학 기술이다· 하지만 샤텔은 그것을 해냈다·
이내 기간테스의 중심부 마법진이 번뜩이더니·
퍼어어어어어어엉!
기간테스의 전신이 갈라지고 무수한 바위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그것들은 한참을 날아가 신성연방 내부 곳곳에 설치된 시설물을 정확히 노렸다· 모제가 숨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렌디아의 첨탑들, 크리쳐 공장, 성유물 시설은 물론, 외부의 성벽, 점령지 근처에 밀집된 언더링, 기수 축복을 뿌리는 여성형 언더링들이 있는 곳까지·
마법의 정확도까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밀했다·
무엇보다 다른 대표들이 모제가 있는 곳을 일일이 찾아야 할 수고를 절반 이하로 줄였다· 르바임은 자신의 플랜이 산산조각나는 모습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시몬이 저벅 저벅 걸어왔다·
[이게 샤텔의 각오야·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답을 찾고 헌신하지·]
스릉!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세워 들었다·
[그러니, 나도 샤텔의 기대에 부응해야겠어·]
“····”
신성연방의 구역 전역에 샤텔의 바위가 떨어졌다· 시몬이 느끼기엔 그중에 몇 군데 모제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눈앞의 4번 르바임을 상대해야 할 때다· 치유사제인 르바임 또한 반드시 이번에 잡고 넘어가고 싶었다·
“보아하니·”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미 한바탕 싸우고 온 뒤 같은데요·”
[10번 리사라를 쓰러뜨리고 오는 길이야·]
리사라가 당했다는 말에 르바임의 표정에 일순 균열이 일어났으나 이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대단합니다· 하지만 성녀 리사라 님을 쓰러뜨리고 바로 이어지는 연전은 아무리 당신이라도 부담이 있을 터·”
쿠구구구구구!
주위의 지면에 신성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바닥에 신성을 주입한 그녀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이곳은 6지역 점령지 인근이에요·”
신성에 반응한 신성 언더링들이 하나둘 지면에서 튀어나왔다· 인근의 신성 언더링들도 다가오고 있었다·
-그그그그그·
-그그그극·
시몬이 검을 세운 채 경계하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느새 시몬은 다수의 적에게 포위당한 격이 되었다·
“그리고 당신의 군단은 성벽 밖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어요· 당신 혼자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적절한 지적이야·]
그 순간·
피어의 본 아머가 딸칵 딸칵 소리와 함께 좌우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내 그 안에서, 검은 제복을 입은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리사라에 이어서 너, 바로 뒤에 모제까지 잡아야 하니까 여력을 아껴야겠네·”
시몬이 빙긋 웃으며 피어를 돌아보았다·
“피어· 여기선 제 힘으로 충분하니 잠시 쉬어주세요·”
[크하하! 그렇게 하지 소년!]
피어가 순순히 아공간으로 들어가고, 이제는 맨몸인 시몬과 르바임, 그리고 신성 언더링들만이 남았다·
이를 본 르바임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모제 형제님과의 전투를 대비해 여력을 온존하겠다? 너무 여유로운 생각 아닌가요?”
그녀는 거인으로 변신하기 싫어서 후방에서 치유마법만 쓰려 했을 뿐이지, 엄연히 룬 리그 신성연방 대표팀의 최고 스트라이커였다·
“군단장이 군단의 힘을 쓰지 않으면 뭘 할 수 있죠?”
“군단이 없어도-”
시몬이 씩 웃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나는 키젠의 학생회장이야·”
키이이이이이이잉!
시몬의 아공간이 열리고, 아공간의 앞으로 시몬이 미리 준비해 둔 3중 마법진이 펼쳐졌다·
“오래 기다렸지? 네 차례야·”
시몬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서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단 하나의 언데드가 세 가지 마법진을 동시에 통과했다· 둥글둥글한 안광이 투구 안에 번쩍이고, 상급 소환수의 엔진인 다크홀이 작동하고, 뼈 곳곳에 갑옷이 입혀진다·
이내 은빛의 갑주를 입은, 마치 여기사와도 같은 언데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펄럭!
한 손에 쥔 커다란 깃발을 등에 짊어진 뒤 언데드의 투구 사이에서 푸른 동공이 피어올랐다·
적대국인 신성연방에서도 익히 알려진 극강의 언데드·
<서먼 데스나이트>
‘···뭐지, 이 기분은?’
르바임은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직감할 수 있다· 저건 결코 보통의 데스나이트가 아니다·
-그그그그그!
강렬한 칠흑에 자극을 받은 신성 언더링들이 몰려들어 시몬과 데스나이트 주위를 둘러쌌다·
처억!
척!
이에 시몬과 데스나이트가 서로 등을 맞대고 손을 들어 올렸다· 시몬은 아공간에서 대검 한 자루를 꺼내 어깨에 짊어졌다·
우우웅!
데스나이트는 손안에서 무엇이든 벨 수 있는 데스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켰다·
“자·”
시몬이 미소 지었다·
“2차전도 시원하게 해보자·”
-키잉!
둘의 신형이 동시에 정면으로 쏘아져 나갔다·
상대는 4일 차 언더링· 거기에 모제의 축복 효과를 받아 더 강력해진 상태였으나·
촤아아아아아아!
촤아아아아아!
시몬과 데스나이트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먼저 뛰어나온 시몬이 검을 휘둘렀다·
<제국 검술 – 현몽(現夢)>
나무들이 그대로 꺾여 나가 베어지고·
촤아아아아!
이번엔 시몬보다 더 빠르게 앞으로 쏘아져 나간 데스나이트가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허공에 연달아 번쩍이는 검광이 일어나고, 베인 자국으로부터 빨간색 장미 꽃잎이 휘날렸다·
‘···강해·’
침을 꿀꺽 삼킨 르바임이 마음을 다잡고 팔을 뻗었다·
<힐링>
오른손을 거인화하고·
<홀리 라이트>
거인화한 상태에서 백마법을 시전한다· 보통의 공격 마법진의 크기가 다섯 배 이상 거대해졌다·
퍼어어어어어엉!
빛의 기둥이 데스나이트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언더링을 참하고 있던 데스나이트의 후방을 노리는 일격·
그러나·
화악!
데스나이트는 그저 파리를 쫓듯 팔을 휘두르는 것으로 신성 마법을 쳐냈다·
르바임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어떻게 이런···!’
높은 신성 면역력을 가진 데스나이트·
프리스트들에게는 또 다른 악몽이 될 존재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