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9화
다음 날 아침·
룬 리그 둘째 날·
숙면을 취한 시몬은 기지개를 쭉 켜며 일어났다· 그리 푹 자지는 못했지만, 긴박한 전장에서 눈을 붙이고 잠을 잤다는 것 자체가 분에 겨운 일이었다·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풀벌레 소리가 찌르르 울려 퍼지는 푸르른 새벽, 둘째 날 출전을 앞둔 동료들이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아, 시몬! 좋은 아침이에요!”
제일 먼저 시몬을 발견한 카미바레즈가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 옆에서 머리를 묶고 있던 메이린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바, 바보야!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넌 둘째 날 휴식이잖아·”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걱정되기도 하고, 너희들 출발하는 모습 배웅해 주고 싶기도 하고·”
룬 리그는 5일 동안 진행된다·
모든 인원이 5일 내내 100%의 컨디션, 100% 칠흑과 신성을 보유한 채 싸울 수는 없다· 어느 정도는 번갈아가며 휴식을 취해야 했고, 당일 과하게 힘을 소모한 대표들은 ‘본진 방어’ 임무를 명목으로 본진에 있기로 했다·
암흑연합의 둘째 날 본진 방어 멤버는 에이션트 언더링을 단독으로 잡아낸 1번 시몬, 그리고 신성연방의 본진을 점령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3번 에이젤, 4번 샤텔으로 정했다· 두 사람 모두 칠흑 고갈 증상이 일어나 있었다·
그중에 에이젤은 오후에는 전투에 참여하기로 했고, 시몬도 그 시간에는 슬슬 움직일 생각이었다·
“시몬, 안녕!”
“좋은 아침이오· 시몬·”
마침 클라우디아와 쥴도 이리로 합류하며 인사를 건네왔다·
맹독술사인 클라우디아는 새벽에 포션 제조로 바빠서 잠을 조금 못 잤는지 살짝 퀭한 얼굴이었다· 반면엔 쥴은 거의 하루 종일 성검 사용자와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해 보였다· 과연 마투가다운 회복 속도였다·
저벅 저벅·
2번 헥토르도 준비를 마친 채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따라 특히 더 결연한 모습이다· 둘째 날 최고 전력은 헥토르인 만큼 그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아침잠 많은 엘리사랑 일라이저도 슬슬 일어나 준비하는 것 같고·’
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은 시몬이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았다·
룬 리그 둘째 날이 시작되기 30분 전·
고요하다·
풀벌레 소리, 간혹 점령지에서 일어나 움직이는 칠흑 언더링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다들 각자의 성향과 개성대로 긴장을 풀고 있다· 가슴에 손을 올리며 심호흡을 하는 사람도 있고, 눈을 감고 멍하니 있는 사람도 있다·
그들을 지켜보며 시몬이 입을 열었다·
“잠깐 주목해 줘· 말했다시피 둘째 날의 목적은 ‘지역 점령’이야·”
첫째 날은 무모하게 적진 깊이 파고들어 가 상대 본진을 점령하느라 힘을 너무 많이 썼으니, 둘째 날은 유리한 고지를 잡은 채 조금 더 느긋한 템포로 진행해 볼 생각이었다·
사실 시몬의 마음 같아서는 한 번 더 적진에 들어가서 흔들어놓고 싶었지만, 휴식으로 1번, 3번, 4번이라는 주요 전력들이 빠져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번 둘째 날의 목적은 점령·
비교적 본진과 가까운 2지역의 <2-A> 점령지·
그리고 3지역의 <3-A>, <3-C> 점령지를 반드시 손에 넣고 셋째 날로 넘어가야 했다· 그중에 <3-A>은 신성연방 측이 들어와 점령한 지역이다·
“오전은 점령, 오후에는 회복된 에이젤 선배님을 중심으로 공세에 들어갈 거야· 전술을 다시 한번 이야기할게·”
마침 엘리사와 일라이저도 오고 있었다·
그들에게 인사한 시몬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호흡이 잘 맞는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팀을 이뤄서 신성연방이 점령한 <3-A>로 가줘· 아마 신성연방에서 한 명쯤은 그쪽에 올지도 몰라· 가장 위험할 거야·”
“응! 맡겨줘!”
“네, 시몬!”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힘차게 말했다·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3-B>는 우리 영토지만 엘리사가 가서 지키고, <3-C>는 일라이저가 점령해 줘· 후방인 <2-A>는 클라우디아가 가줘· 아직 피로가 있을 테니 무리하지 말고·”
“알았어!”
시몬이 헥토르를 보았다·
“둘째 날의 지휘관은 헥토르야· 공중에서 지켜보면서 전황이 불리하거나 적의 공격이 시작되는 쪽을 지원해 줘·”
헥토르가 콧김을 뿜었다·
긴장하기보다는 호승심이 끓어오르는 모양이다· 거기에 간만의 지휘관 역할이니 책임감도 있을 터· 시몬이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중앙에 있는 4지역의 승부는 아직 가려지지 않았지? 아마 그 성검 사용자가 또 나올 것 같은데 쥴이 가줄래?”
척·
쥴이 마검을 붙잡으며 답했다·
“바라던 바요·”
메이린도 뒤따라 쥴을 돌아보았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쥴, 그 8번 성검 사용자는 상대해 보니 어때? 각자의 점령이 끝나면 <4-A>로 모여서 확 덮칠까 하는데·”
쥴이 고개를 내저었다·
“시그문드는 공격력은 다소 부족하지만 인간을 초월한 스테미나와 체력을 가졌소· 만약 3:1· 아니, 4:1로 포위해서 싸운다고 해도 기어이 포위망을 뚫고 나가 살아남을 인물이오·”
“진짜?”
곳곳에서 힘겨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말만 들어도 상당히 까다로운 적이었다·
“···괜히 포위해서 공격했다가 숨어 있던 연방의 반격에 당하기 딱 좋겠네·”
“5일 내내 선두에 나와서 우릴 괴롭히겠지? 지긋지긋하다·”
시몬이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말 나온 김에 다른 상대의 정보도 공유해 보자· 헥토르는 리사라를 상대했었지? 어때?”
헥토르가 시몬을 보았다·
“성녀를 친근하게도 부르는군·”
“그, 그랬나? ···하하·”
시몬은 땀을 삐질 흘렸다·
사실 하늘섬에 갔을 때 리사라의 성녀 즉위에 관여한 적이 있기도 하고, 지인이긴 했다·
헥토르가 뒷목을 쓱쓱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아직은 1학년이라 경험이 미숙하다· 그래도 권능의 성능이 직관적이고 강력하더군· 심지어 싸우는 중에 계속 성장하고 있다·”
헥토르의 눈빛이 내려앉았다·
“빨리 쳐내지 않으면 까다로워질 거다·”
“이길 수 있을까?”
“당연한 소릴·”
헥토르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시몬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밖에 따로 이야기할 거 있는 사람?”
엘리사가 양갈래 머리를 펄럭이며 손을 들었다·
“나! 나! 한때 신성연방의 누군가가 들어와서 점령했다가 내가 다시 점령한 <2-B> 점령지 있지? 거기서 나온 신성 언더링이 뭔가 이상했어·”
“이상하다니?”
“몸이 막 이상한 빛으로 빛나고 비정상적으로 강력했어· 강력한 축복이 깃든 것처럼·”
“음·”
아무래도 룬 리그 첫째 날에 신성연방의 2번, 모제 델 베아투스가 점령을 맡았던 모양이다· 그는 한 번도 전투를 하지 않았으니까·
다행히 이쪽도 전부 신성연방 측으로 몰려가서 그와 싸운 적은 없지만 소문이 사실이라면 상당히 까다로운 적일 것이다·
<룬 리그 2일 차 시작 5분 전입니다·>
저택의 방송음이 울려 퍼지고 모두가 자세를 다잡았다·
본진 방어를 맡은 시몬이 말했다·
“모두 조심해· 우리 입장에선 둘째 날이 가장 고비일 거야· 신성연방 측에서 어떤 전략으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시몬이 길게 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전황에 따라 판단해서 유연하게 움직여 줘·”
* * *
<룬 리그 2일 차 시작 1분 전입니다·>
모두가 숨을 고른 후 자세를 낮추며 본진에 펼쳐진 결계가 걷히기를 기다린다·
밝아오는 새벽·
모두가 천천히 머릿속으로 숫자를 센다·
4·
3·
2·
1·
<룬 리그 2일 차가 시작되었습니다·>
본진을 둘러싼 결계가 사라지고, 일곱 명의 학생들 모두 칠흑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빠른 건 역시·
촤아아아아아!
마검 사용자 쥴 빈체레였다·
그는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최단 거리로 호수숲 중앙을 향해 달렸다·
나무와 수풀이 자욱해서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2지역을 넘어·
늪지대나 연못, 호수까지 있는 3지역을 넘어·
드문드문 나무가 심어져 있는 개활지이자 평지가 가득한 4지역·
그곳의 한복판, <4-A> 점령지·
두두두두두두두!
저쪽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한 명의 소년이 두 다리에 신성을 가득 일으킨 채 달려오고 있었다·
“역시 와줬구나!”
8번, 성검 사용자 시그문드가 반가움 가득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쥴 형제! 6시간 내내 칼을 맞대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어!”
쥴이 인상을 쓰며 웃었다·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시오·”
호수숲 정중앙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점령지·
검을 뽑은 두 사람이 동시에 그곳으로 짓쳐들며 서로를 향해 힘껏 검을 휘둘렀다·
까아아아아아앙!
주위가 폭발하는 굉음과 함께 룬 리그의 2일 차가 시작됐다·
“하여간·”
저기 멀리 해일처럼 솟구치는 모래 연기를 보며, 조용히 달리던 메이린이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바보들이라니까· 왜 저렇게 달리는 데 힘을 쓰는 거야?”
“메이린!”
카미바레즈가 엘리사가 표시해 준 종잇조각을 들며 손을 들었다·
“이쪽 방향인 것 같아요!”
“응· 서두르자·”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는 속도의 페이스를 조절하며 <3-A>로 향했다·
<3-A> 점령지는 신성연방 측에서 점령한 영역·
그래서인지 곳곳에 언더링들의 시체가 보이고 있었다· 아마도 휴전 기간에 본진과 다른 점령지에서 쏟아진 칠흑 언더링들과, 신성연방에서 온 신성 언더링들이 싸운 흔적으로 보인다·
메이린은 흔적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거리상 우리 점령지가 더 가까우니까 우리 쪽 언더링들이 신성 언더링을 밀어낼 줄 알았는데·’
보이는 시체는 대부분 시커먼 칠흑 언더링들이었다·
이내 두 사람이 수풀을 뚫고 점령지에 도착하니·
“!!”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 자애로운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길쭉한 언더링이 그 나무를 휘감은 채 껴안고 있었다·
오금이 저릴 것 같은 신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뭔데 저거! 저런 언더링이 있다는 걸 들은 적 없어!’
메이린이 바짝 긴장했다·
‘분명 저건···!’
엘리사가 말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신성 언더링이 뭔가 이상했어· 몸이 막 이상한 빛으로 빛나고, 비정상적으로 강력했어·
확실했다·
신성연방 2번, 모제의 손이 닿았던 언더링이다·
스으-
빛을 휘감은 여성형 언더링이 손을 펼치자 지면 곳곳에서 신성의 언더링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수가 무척 많았고, 일반적인 신성 언더링과는 달랐다·
“쉬운 일이 하나 없네·”
화르르륵!
메이린이 양손에 칠흑화염계를 일으켰다·
“우리 쪽 땅에 이런 짓을 했다 이거지? 가자, 카미!”
“네! 메이린!”
카미바레즈도 칠흑과 피를 끌어올렸다·
두 사람이 여성형 언더링을 향해 뛰어들었다·
* * *
펄럭!
헥토르는 높은 상공에 시룡의 날개로 떠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워낙 숲이 빽빽해서 모두의 움직임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상황은 제법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4지역에서는 무식한 칼잡이들의 전투가 한창이다·
폭발음이 들리는 걸 보니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간 <3-A> 쪽은 벌써 전투가 일어난 모양· 엘리사는 <3-B>에 자리 잡은 채 대포를 설치하고 있고, 아군 측 변수인 일라이저도 명령대로 <3-C> 쪽으로 갔다·
다들 재깍재깍 움직여 주고 있다·
‘성체의 성녀가 더 성장하기 전에 쳐내야 한다만·’
그의 시선이 신성연방 진형 쪽으로 향했다·
이쪽의 휴식은 세 명·
저쪽도 아마 최소 세 명 정도는 휴식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력한 인물을 추정해 보자면 1번 별의 성녀 레테, 3번 철벽의 광자 테르곤, 7번 고통의 심문관 워턴·
저들도 인원이 부족할 테니, 오전에는 점령지를 점령한 뒤에 오후에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점령이 끝난 뒤에는 우리가 먼저 공세를····’
그렇게 생각하던 헥토르의 눈이 부릅떠졌다·
상정 외의 사태였다·
‘이것들이·’
당한 만큼 돌려준다는 걸까·
둘째 날이 시작함과 동시에 한 무리의 인원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3번, 철벽의 광자 테르곤·
4번, 치유의 거인 르바임·
5번, 선향의 주인 디아나·
6번, 천사의 성악대 하미엘·
10번, 성체의 성녀 리사라까지·
신성연방 측 진형에서 무려 다섯 명의 대표가 파티를 이루어 4지역을 건너고 있었다·
연방의 총공세였다·
‘다수 대 다수, 팀전으로 우릴 유도하고 있다·’
칠흑을 절약하려고 쓴 시룡의 날개를 벗어 던져 아공간에 집어넣은 헥토르가 단번에 군단장의 힘으로 직접 ‘악룡’으로 변했다·
그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군에게 전하는 이 신호는 하나·
‘전면전 집합 명령·’
울음소리를 크게 내뱉은 헥토르가 다섯 명의 신성연방 파티가 있는 쪽을 향해 단신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