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6화
하늘섬에서 가장 많은 빛이 들어오는 곳·
좌동성당·
오늘 좌동성당의 예배실 앞은 수많은 고위급 프리스트들이 줄을 선 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1년에 몇 없는 대주교들과의 고해성사가 이루어지는 날이었다·
그리고 예배당 내부의 긴 의자에는 네 명의 대주교가 위엄 있게 앉아 있었다· 그들 앞에는 털모자를 눌러쓴 노년의 남자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대주교들 사이에서도 가장 중앙에 앉은 대주교·
머리가 하얗게 센 노파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웃을 때 입가와 미간의 주름이 선하고 아름답게 굽어지며 인자한 자태가 되었다·
“율법의 정정이 필요하단 말이군요·”
“그러하옵니다·”
대주교 앞, 노년의 남자가 고개를 깊게 숙였다·
“오래된 초창기의 율법은 이치와 맞지 않은 부분이 많사옵니다· 데바 여신께서 점지해 주신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고, 젊은 신도들이 이를 진실인 것처럼 배우며 신앙을 쌓고 있사옵니다·”
중앙에 앉은 대주교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긴 의자에서 가장 오른쪽에 앉은 대주교가 입을 열었다·
“율법의 정정· 그것도 초기 율법의 변화는 많은 혼동이 생기게 마련이오· 네르실라 주교·”
그가 인중부터 턱까지 양털처럼 수북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미 많은 신도들이 이 율법에 따라 신앙을 쌓아왔고 지금도 그리하고 있소· 불필요한 변화는 신앙의 기반을 흔드는 일이오·”
“거기에!”
이번에는 의자에서 가장 왼쪽에 앉은 대주교가 인상을 구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표독스러운 인상에 비쩍 마른 몰골이었는데, 헐렁한 옷 틈으로 앙상한 갈비뼈가 보였다·
“검은 속내가 훤히 보이는군 네르실라 주교! 두 개의 하늘섬? 그대가 다스리는 지역만 하늘섬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모양인데, 그런 일이 허용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실례하겠습니다!”
대화 중에 한 프리스트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제일 먼저 중앙에 앉은 인자한 대주교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이야기를 들은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네르실라 주교· 설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대주교의 앞에서 말하던 네르실라 주교가 본색을 드러내듯 입꼬리를 올렸다·
“대주교분들께서 무려 네크로맨서들을 이용해 ‘그것’을 제거하려 하시니, 그 미물 또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옵니다·”
연달아 다른 대주교들에게도 소식이 들어갔고, 왼쪽에 앉은 대주교가 벌게진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네르실라 주교!”
척·
중간에 앉은 노파가 조용히 하라는 듯 손을 세우더니, 이내 소식을 전해온 프리스트가 보는 앞에서 손을 한 바퀴 빙그르 돌리다 약지 끝을 내리긋는 시늉을 보냈다·
지시를 알아들은 프리스트가 전보다 하얗다 못해 파래진 안면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나려는 그때·
“성물, 아라비안타 하스티나로 폭격하시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옵니다·”
네르실라 주교가 태연히 말했다·
“메시아가 있는 섬에는 대주교 여러분이 그토록 찾으시던 바훔 복음의 마지막 장이 보관되어 있사옵니다·”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품에서 마력 촬영기 사진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대주교들이 애타게 찾던 바훔 복음의 마지막 장은 물론, 신성연방에 큰 의미를 가지는 온갖 희귀한 성물들이 그 섬에 있었다·
“폭격으로 섬을 지우시면 바훔 복음은 영영 해석하지 못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역시 그대가 가지고 있었나!”
왼쪽의 대주교가 버럭 소리 질렀다· 중앙의 대주교는 탄식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더니··· 하늘섬에 당연히 그것의 끄나풀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대였나요? 네르실라 주교·”
“설령 다나 성녀를 그곳에 보내셔도 바훔은 손에 넣지 못할 것이옵니다· 연방의 프리스트가 들이닥치면 바훔을 찢으라 일러두었습니다· 이 늙은이, 그리고 메시아가 원하는 건 하나뿐입니다·”
네르실라 주교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율법을 정정하여 두 개의 하늘섬을 인정하시옵고, 전 신성연방의 신도들에게 메시아의 섬을 엘리시움으로 받아들여지게 하시옵소서·”
* * *
로하론 지방의 상공·
후우우우웅!
키젠 전체 3위, 에이젤이 시몬을 데리고 저 높이 떠 있는 메시아의 엘리시움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엘리시움 외에도 하늘에 둥둥 떠 있는 포도밭들이 무수히 많았다· 지금도 지상의 포도밭들이 하늘로 승천하는 중이었다·
“시몬! 정말로 혼자 가도 괜찮겠어?”
바람을 일으키던 에이젤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시몬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저는 군단장이잖아요· 혼자였던 적이 없어요·”
“무, 물론 군단의 힘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메시아는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도 막지 못했어· 상식을 뛰어넘는 강적이야·”
“괜찮아요·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어느새 구름 너머로 저 멀리 엘리시움이 보였다·
시몬이 말했다·
“이렇게 흑마법을 일으킨 채 더 가까이 가면 메시아에게 들킬 거예요· 저만 저쪽으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아, 알았어!”
에이젤이 시몬의 등에 손을 올렸다· 작은 돌풍이 원을 그리며 시몬의 등에 펼쳐졌다·
“부탁한다 시몬!”
“맡겨주세요!”
에이젤이 등을 밀자 시몬의 몸이 굉음을 일으키며 날아갔다· 에이젤은 칠흑을 다 소진했는지 숨을 헐떡이며 자유낙하하기 시작했다·
휘오오오오오!
바람을 타고 엘리시움과 가까워지자 시몬은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파아아앗!
시몬의 몸이 신성으로 가득 차올랐다· 프리스트로 변하여 단숨에 엘리시움까지 접근한 시몬이 팔을 뻗어 삐쭉 튀어나온 지면 한쪽을 붙잡은 뒤, 힘주어 위로 올라왔다·
‘여기구나·’
찌를 듯한 신성이 가득 느껴진다· 시몬은 결계에 손을 대보았다·
처음과는 달랐다·
철저하게 모든 침입을 통제하던 그 처음의 결계와는 달리 방어력이 약해져 있었다·
헥토르와의 결전에서 메시아가 힘을 많이 썼는지, 아니면 하늘로 올라와 방심했는지, 혹은 그 두 가지 모두 절묘하게 결합한 결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이라면 출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다·’
시몬이 결계 앞에 마법진을 펼치고는 두 팔을 교차했다·
* * *
엘리시움 내부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진행 중이었다·
엘리시움에 있는 모든 고블린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다리고 있었다·
쟁반과 칼을 든 고블린들이 다가와 그들의 등을 칼로 찢고, 그 안에 몬스터의 촉수 같은 것을 집어넣은 뒤 실로 꿰맸다·
[나의 아들과 딸들이여· 그대들은 선택받았다·]
메시아가 높은 곳에서 연설을 하고 있었다·
[나의 유전자를 가장 강하게 물려받은 백성들은 이 엘리시움에 올라타 승천했다· 그대들은 앞으로 더 이상 고블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을 것이다·]
촉수를 등에 심은 고블린들은 줄을 서서 메시아가 직접 펼친 마법진을 통과했다·
그러자 등 뒤에 삽입했던 촉수가 회복을 받아 일어나며 고블린들의 몸에 날개 같은 것이 흐느적거리며 일어났다·
[그대들은 이제부터 ‘천사’라 불릴 것이다·]
놀랍게도 지금 엘리시움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 ‘인조 천사’의 생성이었다·
이곳의 모든 고블린이 날개를 주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곳곳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누구도 메시아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리고 녹색 피부 또한 ‘미물’의 상징·
메시아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은 소수의 고블린들은 피부가 하얗게 되었으나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다른 고블린에게도 인조 색소를 주입하여 피부를 하얗게 물들인 뒤, 소매가 긴 사제 옷을 입고 지팡이와 성서를 들게 했다·
엘리시움이 율법의 인정을 받는다면, 엘리시움 위의 백성들은 모두 ‘천사’가 된다·
이를 위해서 메시아는 종족을 바꾸는 수술을 강행하고 있었다·
[지금 모습이 낯설다고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계속해서 열등종을 가려내고 우등종을 번식시킬 것이다· 그대들이 아니라고 해도, 그대들의 자손들은 언젠가 틀림없이 천사가 되리라·]
하얗고 날개 달린 신성 고블린들이 하나둘 걸어와 연설을 하고 있는 메시아 앞에 엎드렸다· 그들은 비로소 이 엘리시움의 시민으로서 준비를 마친 것이다·
[미물이라 손가락질 받는 나날도 끝이다· 나의 피를 물려받은 그대들 또한 성자의 피를 이은 자로서 천사로 불릴지어니, 인간을 뛰어넘은 권위와 신성을 손에 넣을 것이다·]
멕-스시야여·
멕시야아여·
고블린의 언어를 버리고, 발음을 최대한 또렷하게 말하며 그들이 메시아를 찬양했다· 메시아가 신성을 일으키며 두 팔을 벌렸다·
[나는 데바의 아들이며, 이 대륙의 유일한 성자다·]
“과연 그럴까?”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주위가 싸늘한 정적으로 휩싸였다·
바닥에 엎드린 수천 신성 고블린들이 하나둘 고개를 움직여 뒤를 돌아보았다· 메시아 또한 고개를 돌렸다·
고블린들이 있는 반대편 바위 지대· 그중 가장 높은 바위 위에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이 당당히 서 있었다·
메시아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네크로맨서 중에서도 가장 특별하다는 군단장, 시몬 폴렌티아·]
시몬이 비릿하게 웃었다·
“나를 아는 거야? 들은 대로 학습이 빠르네·”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지? 그리고-]
메시아의 눈이 미지의 존재를 탐구하는 것처럼 커졌다·
[너는 칠흑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신성· 네크로맨서는 결코 신성을 가질 수 없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시몬이 태연히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개등>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시몬의 몸에서 태양과도 같은 거대한 신성이 일어나며 주위로 퍼져 나갔다·
마치 빛을 본 동굴의 박쥐 떼처럼 신성 고블린들이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며 눈을 가리거나 몸을 움츠렸다·
시몬은 그 모습을 보고 미소 지었다·
그들의 근본은 결국 동굴에서 생활하는 고블린이다· 아무리 신성포도를 먹고 바뀌고 개량되어도 바뀌지 않는 게 있었다·
[신성을 쓰는 네크로맨서라니! 있을 수 없다· 그대의 정체는 무엇인가?]
“네 입으로 말했잖아· 특별한 네크로맨서인 군단장이라고·”
[혼란스럽지만, 그대가 지금 신성을 쓴 거라면 그대는 네크로맨서가 아니라 프리스트다·]
<개등>
마찬가지로 메시아의 등 뒤에서 연달아 신성 마법진과 고리가 펼쳐지더니, 환하게 빛났다·
번쩍이는 신성의 힘이 주위로 퍼져 나가며 다시 용기를 얻은 신성 고블린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륙의 데바의 아들이자 유일한 성자다! 그대는 내 발밑에 부복하여 충성을 맹세하고 여신에 대한 신앙을 보여라·]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궁금했어· 성자란 게 뭐지?”
시몬의 물음에 메시아의 입이 열렸다·
[성자는 신의 뜻을 행하는 자· 신의 기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바꾸는 자다·]
그가 자신만만하게 손끝을 움직였다·
[수도원을 엘리시움으로 바꾸고, 고블린을 천사로 바꾼 나처럼 말이다·]
곳곳에서 고블린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모두 메시아의 이름을 연호하며 사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신성의 기본은 믿음·’
시몬이 팔짱을 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게 공략법·’
시몬은 미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친 생각을 지금 실현하기로 했다· 경건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이것으로는 모자라다·
마음을 일깨우는 고요함·
지금의 역량, 지금까지의 경험이라면 할 수 있다·
한때 도달했던 진리를 떠올리며 시몬이 두 팔을 벌렸다·
‘나는 전능하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처음의 개등보다 더 거대한 빛이 터져 나왔다· 시몬의 몸이 물들이더니 머리색이 하얗게 변하며 눈동자가 금빛으로 바뀌었다·
이내 시몬이 팔을 들어 올리자 피어의 뼈가 뒤덮였다·
[크흐흐! 여전히 세상의 섭리를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구나! 소년!]
지켜보던 메시아 또한 경악했다·
에이션트 언데드인 피어의 뼈가 칠흑이 아닌 신성을 띠고 있었다·
신성의 뼈들이 시몬의 몸을 착착 뒤덮기 시작하며, 어두운 무형의 망토가 아닌 빛의 망토가 펄럭이며 자리 잡았다·
마지막으로 빛의 안광을 뿜는 피어의 투구가 시몬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
메시아가 눈에 덜 띄는 하늘로 올라가 주고, 굳이 결계도 펼쳐줬으니, 시몬도 이 힘을 드러내는 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와라·]
시몬이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빛의 군단이여·]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주위가 지진이 일어는 것처럼 뒤흔들리고 떠들썩해졌다·
이내 시몬의 등 뒤로 언데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켈레톤, 좀비, 구울, 온갖 군단형 언데드들이 전부 칠흑이 아니라 신성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럴 수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
신성 언데드를 본 메시아가 경악했다·
[죽어 있는 망자를 신성으로 움직이다니!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바꾸는 자가 성자라며?]
그 말을 들은 메시아의 표정에 균열이 일어났다·
개등으로 일으킨 그의 방대한 신성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시몬이 팔을 들어 올렸다· 빛으로 번쩍이는 파멸의 대검이 그의 손안에 들어왔다·
[누가 네가 말한 그 존재에 가까운지-]
시몬의 검을 앞세웠다· 군단의 신성 언데드들이 함성을 지르며 쏟아져 내려왔다·
[겨뤄보자· 코코·]
메시아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그가 팔을 휘둘러 자신의 신성 고블린들을 보내며 외쳤다·
[그 이름으로 나를 부르지 마라! 거짓된 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