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6화
쿠우우우우웅!
투명해서 밖이 훤히 보이는 수정벽에 커다란 바다 몬스터의 꼬리가 부딪혔다·
실내가 거칠게 진동하며 사람들의 놀란 비명이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악!
허어억!
뾰족한 수정 잔해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드레스와 턱시도 차림의 사람들이 몸을 바짝 낮추고 걸었다·
시몬은 달리면서 수정벽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예리하게 살폈다·
‘저게 뭐지?’
뾰족뾰족한 비늘로 덮인 피부에 물갈퀴가 붙어 있는 두 팔 악어를 연상케 하는 긴 주둥이와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우악스럽게 큰 눈동자까지·
그야말로 심해의 몬스터· 모험가들이 위험도 등급을 정해놓지 않은 희귀 개체로 보인다· 상당히 빠르고 강력하다·
게다가 한 마리가 아니라 암수 한 쌍인 두 마리다· 정확히 어떤 종류의 몬스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람들의 대피가 우선이었다·
“사람부터 지켜야 해!”
여기 있는 전원이 고위 관계자들이다· 시몬의 외침에 Top10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몬이 착착 지시를 내렸다·
“카미! 샤텔! 방호물을 만들어 사람들을 직접 보호해 줘!”
“네! 시몬!”
“알겠다·”
<블러드 실크>
카미바레즈가 손끝에서 피를 짜내더니 방대한 넓이의 섬유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휘감아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파편에도 그녀의 피를 감싸고 있으면 안전했다·
<어스 아머>
샤텔은 칠흑대지계 마법으로 일으킨 흙을 사용해 사람들의 몸을 빠르게 덮어가기 시작했다·
<본 아머>
시몬도 물론 움직이고 있었다· 아공간에서 여러 스켈레톤들을 꺼낸 뒤 엎드려 있거나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바로바로 본 아머를 입혀서 안전한 곳으로 보냈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때 다시 한번 꼬리가 개회식장에 부딪히며 주위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저 몬스터의 꼬리 힘이 얼마나 강한지 금방이라도 연회장이 뒤집힐 것 같았다· 도망치던 사람들이 그 진동에 바닥에 나자빠졌다·
‘이대로는 사상자가 나와!’
시몬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메이린! 칠흑빙결계로 사람들이 피난할 곳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최대한 위쪽에!”
“응! 맡겨줘!”
안 그래도 대형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메이린이 수식을 조금 변조해서 천장을 향해 발사했다·
<메이린 리메이크 – 프로즌 캐슬>
연회장의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뒤 그 위로 얼음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공간이 촤르르르 펼쳐졌다· 3층 높이의 수정 연회장 위로 4층에 새로운 얼음의 층이 생겨났다·
“키젠의 통제에 따라주세요! 머리를 감싸시고 높은 곳으로 대피해 주세요!”
메이린이 팔을 맵시 있게 휘두르며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얼음 계단을 무수히 만들어냈다·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제길!”
머리에 샴페인이 떨어졌는지 뚝뚝 물방울을 흘리며 일어난 남자가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이게 다 뭐냐고! 기껏 시간 내서 온 연회가···!”
촤르르륵!
화를 내고 있던 그 남자의 허리에 긴 꼬리 같은 게 휘감겼다· 남자가 그대로 뚫린 벽면을 지나 바다로 날아갔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남자의 비명소리가 점점 더 멀어지다가 이내 멀리서 첨벙! 하는 물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외쳤다·
“에이젤 선배님!”
“가 가가가 갈게!”
에이젤이 자신의 몸에 바람을 두른 채 사람을 구하러 날아갔다· 그사이에 쿠웅! 하고 또 하나의 사람이 꼬리에 붙잡혀 바다로 날아가고 있었다·
“저쪽은 내가 가겠소!”
무슨 이유인지 마검을 쓰지 않고 있던 쥴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래도 마투학과 총대표답게 놀라운 신체 능력으로 헤엄쳐서 사람이 떨어졌던 곳으로 빠르게 접근해 갔다·
“시몬!”
카미바레즈가 숨을 헐떡이며 옆으로 다가왔다·
“이거 역시 결사와 관련된 일일까요?”
“아직까진 확신할 수 없어·”
시몬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때 옆에서 투쾅! 투쾅! 하고 포탄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맞아! 맞아랏! 아 쪼옴!”
엘리사 셀린이 스피릿 대포를 여러 문 꺼내놓고 바다를 헤엄치는 괴수를 맞히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빨라서 쉽지 않은 모양·
결국 포탄을 피해 접근한 바다 괴수가 꼬리를 휘둘렀다·
꾸우우우웅!
다시 한번 연회장 전체가 기우뚱하고 바퀴가 붙어 있던 대포들이 뒤로 스르륵 밀려났다·
“꺅!”
엘리사가 신은 굽 높은 구두 때문에 바닥에서 미끄러지더니 공처럼 대굴대굴 구르다가 기둥에 등을 찧었다· ‘끙악!’ 하는 특이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거기에 대포가 뒤로 내려오며 하마터면 사람들이 다칠 뻔했다· 시몬이 다급히 본 아머들을 보내 사람들에게 입히고 메이린이 보호하는 얼음층으로 올려보냈다·
“피난이 끝나기 전까진 함부로 공격하지 마! 일단 사람들의 안전이···!”
쿠우우우우우우우웅!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큰 진동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자 투명한 벽면에 바다 괴수의 몸통이 부딪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바다 괴수의 꼬리를 잡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하하하하!]
다름 아닌 복면을 뒤집어쓴 하운드 키즈 제나르였다·
바다 괴수의 크기는 어지간한 소형 범선만 한 크기였지만 제나르는 엄청난 완력으로 바다 괴수의 꼬리를 붙잡은 채 빙빙 돌리다 다시 연회장에 처박았다·
꾸우우우우웅!
바다 괴수와 연회장이 충돌했다· 몬스터가 피를 토하며 괴로워했지만 동시에 사람들도 피해를 입었다· 얼음 계단을 오르는 자들이 떨어질 뻔하기도 하고 벽에는 금이 갔으며 바닥이 크게 기울어졌다·
“야! 거기 무슨 짓이야?”
메이린이 발칵 화를 내며 따졌지만 제나르는 낄낄거리며 바다 괴수를 공격하기 바빴다·
보다 못한 시몬이 직접 제지하려는데·
“두게나· 내 지시일세·”
볼드윈의 3왕자 헨릭 볼드윈이 팔을 뻗어 시몬을 제지했다·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게 우리 네크로맨서들 아닌가·”
그렇게 말하는 헨릭의 등 뒤로 꼬리 하나가 창끝처럼 날아들었다·
반대쪽 괴수의 공격이었으나 헨릭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허공에 아공간이 열렸다·
서겅!
아공간을 열자 꼬리가 깔끔한 단면을 그리며 절단되었다· 시몬의 눈이 커졌다· 아공간 너머로 검을 쥔 거대한 동상의 팔 같은 게 보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상이라기보다는 마치 체스의 말 같았다·
‘소환술사였어? 이게 바로 볼드윈의 왕국의 핏줄만 쓸 수 있다는···!’
“아이비·”
헨릭이 손짓했다·
“반대쪽을 맡게나·”
“알겠어요! 왕자님!”
타다닷!
드레스덴 왕국의 하운드 키즈 아이비 골드빈이 뛰어가서 엘리사 옆에 섰다· 엘리사는 마음을 다잡고 대포 몇 문을 추가로 꺼내 포격을 퍼붓는 중이었지만 모두 빗나가고 있었다·
“허접하네·”
“뭐?”
아이비가 손에 든 가방을 꺼내더니 휙 하고 허공으로 던졌다· 이내 손가방이 바닥에 부딪힌 충격으로 펼쳐지고 그 안에서 가지각색의 마력 아티팩트가 퉁퉁 튀어나왔다·
엘리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게 다 마력 아티팩트야? 저걸로 뭘 하려고?’
덜컹!
이에 대한 의문은 곧 알 수 있었다· 아이비가 아공간에서 제 몸보다 큰 거대한 기관총 같은 것을 꺼내 들더니 흑마법을 사용해 전원을 켰다·
바닥에 뿌려둔 값비싼 마력 아티팩트들이 모조리 공중에 두둥실 떠오르더니 약실에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간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아티팩트는 약실이 회전하는 것으로 박살 나고 그것이 머금고 있는 마나가 탄환처럼 바뀌어 쏘아져 나갔다·
어마어마한 마력양과 포격 범위였다· 엘리사의 스피릿포탄이 일으키는 물보라 크기의 3~4배는 될 정도였다·
-키이이이익!
심지어 제대로 맞았는지 바다 괴수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주변이 피로 물든 붉은 바다가 되기도 했다· 엘리사는 진땀을 흘리며 아이비를 바라보았다·
‘저 값비싼 아티팩트를 그냥 일회용 탄환처럼 쓰는 거야? 뭐 저런 게 있지?’
아이비가 엘리사를 바라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엘리사가 분한 듯 이마를 구긴 채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방대한 아티팩트를 탄환으로 쓰는 만큼 안정적인 기술은 아닌 듯 불가사의한 도탄이 벌어지고 있었다·
탄환이 뒤로 날아가거나 벽면에 부딪히는 등 주위가 점점 더 초토화되어갔다·
“잠깐 광녀! 사람들이 다치겠어! 멈춰!”
“끼하하! 싫은데 싫은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머리가 불타는 듯한 남자 칼로스 왕국의 하운드 키즈 크레이그 슈텔츠헨이 공중에 떠오르더니 두 손을 모았다·
<크레이그 리메이크 – 세그네스(Segness)>
그의 몸을 중심으로 연회장을 넘어 바다까지 닿을 만큼 방대한 저주 마법진이 결계처럼 펼쳐졌다·
“커흑!”
“몸이!”
그러나 이 저주는 마법진 범위에 들어온 보통 사람들에게도 적용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저주저항을 갖춘 키젠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멀쩡했지만 보통 사람들은 헛구역질을 하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무슨 짓이야! 멈춰!”
시몬이 다급히 외쳤다·
“내 지시라네·”
이번에도 헨릭 왕자는 태연히 말했다·
“희생 없는 승리는 없는 법 모든 게 효과적인 승리를 위한 발판일세·”
‘이 인간들···!’
살육기계라는 별명답게 죽이는 것 외에는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었다·
화르르르르륵!
그때 불덩이 하나가 저주를 시전하고 있던 크레이그에게 날아왔다· 크레이그가 즉시 저주를 끊고 피했다·
[머저리들·]
어느새 악룡으로 변신한 헥토르가 인상을 구겼다·
저주가 풀리고 사람들이 그제야 숨을 헐떡이며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헨릭이 혀를 찼다·
“방해하는 건가· 키젠과는 팀워크가 맞지 않는군·”
시몬이 인상을 썼다·
“동감입니다·”
그때 제일 먼저 나가 있던 제나르가 바다 괴수의 꼬리를 붙잡고 다시 연회장 쪽으로 날려보냈다·
“하하하하하! 헨릭 왕자!”
“잘했네· 마무리는 내가 하지·”
헨릭이 손을 펼쳤다· 그의 주위가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체스판처럼 변했다·
<볼드윈 왕가 고유기 – 디맨션 링크>
바로 그 체스판 아래에서 로브를 입은 동상이 튀어나더니 연회장의 기둥보다도 거대한 장창을 던졌다·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장창이 바다 괴수의 목구멍으로 들어가 살점을 모조리 찢어버린 뒤 꼬리에서 빠져나왔다· 장창은 그것으로도 멈추지 않고 멀리까지 날아갔다·
팔을 내린 헨릭이 시몬을 바라보았다·
“효율과 실용을 표방하는 게 키젠이 아니었나·”
“····”
“다시 말하지만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성과를 내는 게 네크로맨서의 마인드일세· 그대는 키젠을 나와야 하네·”
헨릭이 말하고 있는 사이 하나 남은 마지막 바다 괴수가 바다를 빙 우회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앗!”
마침 아이비의 탄환이 다 소모되었고 포격이 멈춘 걸 알게 된 괴수가 연회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왔다·
“충돌한다!”
“대비해!”
이대로는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다· 모두가 돌발 상황에 얼어붙어 있는 그때·
스으·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시몬만이 제 속도로 움직였다· 앞으로 걸으며 뭔가를 손에서 던졌다·
지켜보던 헨릭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마정석?’
그것은 거대한 마정석 덩어리였다· 이내 방금 헨릭이 일으켰던 것보다 압도적인 크기의 ‘묘소’가 열리더니·
덥석!
대뜸 이곳을 꽉 채울 듯한 거대한 본 드래곤의 머리가 튀어나와 마정석을 집어삼켰다· 그것이 마정석을 꿀떡하고 목구멍으로 넣는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
세상의 모든 소리와 시야가 사라졌다· 하늘이 일순 검푸르게 물들다가 돌아왔고 주위의 바다는 평정과 고요를 되찾았다·
모두가 팔로 눈을 가리고 멈춰 있다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고오오오오오오!
빛의 기둥이 지나가고 바다 괴수가 갈비뼈만 남은 채 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브레스는 계속해서 지나가고 있고 주위의 바다에는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 있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강렬한 맞바람이 몰아친다·
헨릭의 시선이 돌아간다·
휘이이이잉!
흩날리는 푸른색 앞머리를 붙잡은 채 펄럭이는 검은 코트를 어깨에 걸친 채 멋들어지게 서 있는 소년이 보인다·
“희생 없는 성과도 가능하니 대피를 우선한겁니다 왕자님· 말씀하신 그런 방식-”
시몬이 빙긋 웃었다·
“할 줄 몰라서 안 한 게 아닌데요?”